“ 머릿속의 쓰레기를 종이 위에 토해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머릿속을 온통 감염시킬 것이다.
머릿속의 쓰레기는 우리에게 해롭지만,
종이 위에 쏟아낸 쓰레기는 안전하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다. ”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p.35, 피터 엘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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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최종 생산물의 세포 하나하나에 전체 설계도와 소우주(유전자)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작정 쓴 글이 천천히 공들여 쓴 글보다 더 나은 글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P.107, 피터 엘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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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당신 안에서 글쓰기를 방해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진짜 문제는 글쓰기가 아니라 당신 자신일 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P.118, 피터 엘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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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안녕하세요. 지난 며칠 간 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진도를 잠시 잊었습니다.
네 번째 진도를 공지합니다.
[참고용 읽기 진도]
12/05(목)-12/08(일)까지,
4장 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 (~170p)까지 입니다.
이제 '무작정 쓰기'와 '글쓰기 과정'에 대한 안내를 지나
글쓰기 모임에 대한 읽기입니다.
저자가 요구하는 모임에 대한 요건이 다소 까다로운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독서 모임 문화를 고려할 때 바로 적용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점도 있는 것 같구요.
독서 모임/글쓰기 모임에 경험이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이어서 네 번째 질문은,
독서 모임/글쓰기 모임 경험 중에서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함께 읽기 이후에 모임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저자가 언급한 부분에 대한 논평이나 비판도 좋겠습니다.
'문장 수집'은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서 계속 해주시면 됩니다.
내로
해당 챕터를 절반으로 나눠서, 이틀 전에 앞부분을, 나머지는 오늘 읽었습니다. 앞부분을 읽으며 독서 모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일었고, 기어이 구체적인 상상으로까지 번졌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분들 중 7명을 모아 “창조적 시선”과 같은 벽돌 책을 3개월에 걸쳐 함께 독파하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오늘 나머지 절반을 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사라졌음을 확인했어요. 저자의 사려 깊은 가이드를 읽을 때 조금 지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고려할 것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시작부터 벽돌책을 골라서 그런 걸까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해당 챕터를 읽고, 만들고 싶거나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나요?
아뿔싸... 다쓰고 나니, 완벽한 논점 이탈이었네요. 글쓰기 모임을 독서 모임으로 착각하다니..
ICE9
글쓰기 모임에 대한 부분에서는 피터 엘보가 언급하는 '모임의 요건'에 대한 기준이
꽤나 까다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 자신도 여러 모임에 참여했고,
숱하게 '실패'한 모임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어서, 어디나 쉽지는 않구나 싶었습니다.
한편으로 모임 참여자가 이런 모임의 일반적인 모습들(우왕좌왕하거나 삐걱대는?)이
함께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인식한다면 또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구요.
물론 이것도 쉽지 않은 문제긴 하네요.
모든 모임이 흡족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게 되거나, 부족함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부정적인 경험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정도로 생각해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산강처럼
토론 거리 (feat. 아티스트 웨이 경험담)
82쪽 뭔가를 글로 쓰는 것이 성장을 자극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뭔가를 쓸 때, 과도하게 몰두해서 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글의 대상을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다. ... 글로 풀어 쓴 생각이나 인식의 한계가 더 잘 보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생각이나 인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94쪽 일기의 역할은 종이 위의 기호(단어나 문장)와 나 사이에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격한 감정을 품고 있다가 그것을 거침없이 쏟아 놓으면, 거리감과 통제력이 생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감정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무력감에 빠지거나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때로은 어떤 감정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좋다.
이 두 문단은 모순됩니다. 과도한 몰두를 전제하지 않는다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 감정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모닝페이지를 오래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강한 감정을 느낀 후 그것에서 빠져나와 적절한 자기통제력을 얻기 위한 글쓰기 방법은 무엇일까요?
ICE9
말씀해주신대로 저자가 어떤 조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는 상황 같긴 한데요,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안해봐서 감정의 변화에 주목해보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싶네요.
이 부분은 무작정 글쓰기 방식을 어느 기간 이상 해보신 분들의 경험이 궁금해집니다.
무작정 글쓰기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감정의 깊이를 조절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이런 경우, 그저 물을 흘려보내듯이 내보내다보면 진정이 되는 과정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짐작만 해봅니다. 아니면 정말 당시의 감정에 푹 젖듯이 마주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ICE9
@산강처럼 님의 토론 거리 제안에 감사드려요. 그뭄의 여러 기능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공지나 화제 지정하기 기능을 이제 발견했습니다.
산강처럼 님의 토론 주제 제안을 다시 화제로 지정해보겠습니다.
김나은
그 인물이나 장소,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묘사해보라. 예컨대 특정 장소를 내가 맹인인 것처럼, 그래서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가정하고 묘사해보라.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P. 125, 피터 엘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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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
“ 원래 가장 흔하고 쉽게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글을 쓰다가 또는 뭔가를 이해하려다가 막혔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을 한 명 이상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들이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거나 당신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좋다. 단,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비롯한 대다수에게 늘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글을 한 편 쓴다. 그런데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나는 그 글에 관해 누군가와 의견을 나눈다. 15분 동안 갑론을박하면서 그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다. 그러다 그가 말한다. “그런데 왜 그 말을 안 쓰는 거예요? 그거 좋은데요. 명확하잖아요.” 나는 소리치고 싶다. “썼잖아요. 제 글 전체에서 내내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고요.” 하지만 사실 나는 글 전반에서 그냥 그 얘기를 함축하거나, 그렇게 믿도록 유도하거나, 그저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의 의식을 통해 굴절된 나의 단어와 생각들을 깨닫기 전에는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피터 엘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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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안녕하세요. 다섯 번째 진도를 공지합니다.
[참고용 읽기 진도]
12/11(수)-12/15(일)까지,
5장 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에 관한 고찰 (~209p)까지 입니다.
지난 한 주간 많은 일을, 다양한 감정과 함께 경험하고 있네요.
저도 잠시 책을 덮고 있었구요.
이제 글쓰기에 관한 기본적인 안내와 글쓰기 모임에 대한 저자의
경험담(?)을 마무리하는 단계입니다.
우리의 독서 모임/글쓰기 모임 문화와 조금은 다른 듯 싶기도하고,
어떤 점들을 참고해볼 수 있을지 살펴보게 됩니다.
다 읽으신 분들도 범위의 제한 없이 질문이나 책에 대한 피드백을 남겨주셔도 좋겠습니다.
그럼 주말까지 각자의 상황과 속도로 참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산강처럼
네번째 진도를 이제 읽었는데요, 여기서 모임 지침은 매우 훌륭합니다만, 과연 이것이 교사 없이 가능할까요? 어느 독서모임 단체에서 훈련받은 분들이 하는 모임에 가봐도 잘 못하던데요. 완전 전문가가 이끄는 모임 같습니다. 교사들에게는 좋은 지침이 될 것 같네요.
ICE9
저도 이 부분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공감합니다.
참여자 각자의 취향과 목표가 조금씩 다를 테니 완벽한 모임이 있을까 싶거든요.
어떤 분은 모닝 페이지와 같이 어느 정도 고독 속에서 글쓰기하기를 선호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뚜렷하고 실질적인 목적(신춘문예나 공모전 같은)으로 구성된 글쓰기 모임이 아니더라도
글쓰기 모임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읽기에서 더 나아가 쓰기 모임도 실제로 구성하고 참여해보면서 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의견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사과
이 책을 읽으면서 <아티스트웨이>도 찾아서 읽어보고, 무작정 글쓰기와 모닝페이지를 해봤습니다. 모닝페이지는 일기쓰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나를 돌아보고 막연했던 마음을 구체적으로 잡아나가는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작정 10분동안 쓰기도 재미있었는데요. 혼자 수다떠는 기분이었어요.
어제까지 마감해야할 글이 있었는데 도저히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이 주제로 무작정 10분동안 써보자 했더니 의외로 쓸 만한 내용들이 나오더라구요. 계속 다듬어야겠지만 일단 뭐라도 쓰고 끝까지 써보는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이제서 나머지 장을 부지런히 따라읽어보겠습니다.
ICE9
저도 무작정 쓰기를 몇 번 해보고 있는데요, 항상 집중이 되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부분은 일기처럼 진행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현재 저의 감정을 확인하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꺼내보는 경우도 생기네요. 정말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는 쓰기 방식이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좀 익숙해지면 특정 주제로 진행하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나은
당신의 내면에서 실제 어떤 반응이 일어났고 어느 대목에서 무엇이 당신 눈에 띄었는지만 얘기해주세요. 무엇이 좋은 글이고 무엇이 나쁜 글인지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P.201, 피터 엘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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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안녕하세요. 마지막 읽기 진도를 공지합니다.
지난 두 주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더 희망이 있는 방향으로 이제 한 걸음 옮긴 느낌입니다.
[참고용 읽기 진도]
~12/21(토)까지,
'부록 에세이'를 포함하여 책의 전체 범위를 대상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가 벌써 마지막 주네요.
지금까지 함께 해주셨던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뉴스보느라(?) 하지 못했던 문장 수집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함께 읽기 도서와 관련하여 추가로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은 점은 의견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이틀 간(21/22일)은 책을 읽으신 소감도 올려주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지난 한 달 가까이 어떤 글을 써보셨는지도 궁금하구요.
산강처럼
간단한 독후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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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배우지 않을 수 있는가?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라는 책이 2024년 11월에 출간되었다. 서지사항을 보니 원저가 1973년 발행이다. 50년 전 책이다. 이렇게 오래된 책을 출간한 일월서각의 배짱이 대단하다.
(표지가 아주 독특하다. 제목 글씨 크기가 본문 크기와 같다. 책의 대강의 내용을 설명한 표지 디자인의 문장도 날개를 펴야만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좀 파격적이지만 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다 보니 글쓰기 강사를 하고 있다. 대학 강의 29년 중 10년은 글쓰기를 가르쳤고, 지금은 평생교육센터 등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대학의 글쓰기 강좌가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잘 안다. 그것은 피터 엘보가 누누이 강조한 대로,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평생교육기관에서는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고심하고 있다.
피터 엘보는 이런 글쓰기 지도 방식이 ‘불신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글에 피드백할 때 문법이나 단어, 문장, 구성 등을 평가하는 불신 전략 방식보다는 느끼고 표현하는 24가지 ‘보여주기’ (137-139쪽) 같은 ‘신뢰 전략’으로 해볼 것을 권한다.
피터 엘보의 이런 방식이 유용하다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다. 어느 대학 야간 강의를 한 학기 한 적이 있는데, 수강생이 대부분 직장인이라 숙제 해올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짧은 단편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발표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나는 그야말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고개만 끄덕이거나 잘 들었다는 정도로만 피드백을 해주었을 뿐인데 학기 말에는 한눈에 보일 정도로 글이 성장한 학생이 많았다.
다만,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은, 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에 정말 교사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피터 엘보는 글쓰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교사가 없다’는 말은 지도 방식이 기존의 교사 역할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피터 엘보가 불신 전략을 배척하고 신뢰 전략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책 말미에 가서는 이 두 가지 전략이 상호 보완적이라고 하면서 신뢰 전략을 바탕에 두어야 불신 전략이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반전 아닌 반전을 보면서 약간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이 대목이 없었다면 피터 엘보의 교사 없는 글쓰기 방법은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이 책을 읽었으면 4장을 참고해서 당장 글쓰기 모임을 만들 일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이 책은 실제로 한 편의 글을 써보려는 독자를 위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
ICE9
@산강처럼 님, 정성스러운 후기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쓰기 교육을 오래 해오셨는데, 이 분야와 전혀 관계도 없는 독자인 제가
함께 책읽기를 제안하게 되었네요. 그뭄에서 처음 함께읽기를 만들어보니
저의 미흡한 점도 많이 보입니다.
한 가지 핑계거리를 생각해보자면, 함께 읽기 기간 중에 40년 만의 계엄이라는 사태와
그 이후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 모임(?)이 될 듯합니다.
우선적으로 저의 부족함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몇 분의 참여자들께서
틈틈이 의견과 문장수집 활동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산강처럼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책의 디자인도 흥미로웠는데요,
책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쓰기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지만, '함께 책을 읽는 경험'에도 주목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책읽기 경험은 첫의 첫 표지에서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결과물로서 만들어지는 책'을 물성으로서 경험하는 일에도
책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 원제와 한글 제목에 대한 이야기, 옮긴이의 해제나 후기,
참고문헌에 대한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 언급해주신 부분을 보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또한 몇 가지 독서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언급을 해주셔서 저도 저자의 주장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많이 보여 아쉽기도 하네요.^^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