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정희진의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의 글도 함께 써 가봐요.
63개의 챕터를 하루 3개씩 읽고 그 중 하나의 주제로 나의 글을 써보면 어떨까요?
글은 그냥 주제어를 잡아 3문장 이상만 되면 되는 걸로.
일주일에 2일은 글쓰기쉬고 5일씩 4주정도 읽으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의 글도 20여편이 생길 것 같네요.
편하게 즐거운 진지함을 나누실 분 함께해요!!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함께 읽어요^^
D-29
Joy모임지기의 말
모리와함께
안녕하세요. 반값습니다.^^
이런 모임을 저는 처음 가져보는데 그 시작이 설레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도 되지만.....
좋은 책으로 이런 좋은 장을 열어주셔서 용기를 내어 보려고 합니다. 함께하면 힘이 솟으니까요!^^
하루 3챕터 글을 읽고 여기에 3문장을 기록하는 것이 기본인거죠?
다른 분들은 글쓰기를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한 번 제대로 시작해볼까?'하는 동기가 살짝 업 된 상태인데요.
과거에는 밴드에 혼자서 책 읽고 간간히 쓰고, 노트에 연필로 사각사각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여전히 그렇게 할 것 같아요.
마토
안녕하세요! 사 놓고 안 읽고 있는 책 펼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이런 모임은 처음이라서 살짝 긴장되네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강렬한 문장을 쓰시는 정희진 작가님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하고요. 이 모임에 참여 하신 분들은 어떤 글을 나눠 주실지도 궁금합니다. 다들 글쓰기 좋아하시고 잘하시는 분들만 오셨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마트김치
안녕하세요^^
책 주문해 받고, 읽기 시작했어요. 3줄이상이라 하셨는데, 책 읽으면서 걱정스런 긴장이 됩니다. 글 써본적이 언제였나..., 과연 매일 써갈수 있을까 그러면서요. 멀어졌던 일에 조금 악착같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운이
안녕하세요! 글을 쓰고 싶어 책을 읽다가 읽기와 쓰기를 같이 하는 모임 모집글을 보고 참여하고 싶어 인사남깁니다~ 저는 책을 내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늦지 않게 정해진 분량 읽고 글 기록하러 오겠습니다!
한그루
안녕하세요,
책이라는 하나의 도구로 이렇게 만나 서로의 글을 나누게 되어 무척이나 설레이고 기쁩니다.
사유하는 사람으로 살길 원하고 또 바라는 마음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누고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쓰는 기록의 시간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들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한 성장을 맛보길 기대합니다.
한그루
나는 무엇을 위해 침묵하는가? 침묵했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
조금은 창피하지만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침묵하는 것이라 여김이, 침묵이 나와의 대화임을 되뇌어 볼 때 그저 침묵이라 부르며 나의 생각과 마음이 걸어오던 말들을 타인을 의식한 채 외면했을 뿐이다.
나 그리고 나, 나의 생각이 나에게 걸어오는 대화의 침묵 속에서 나는 더 깊은 나로서의 초대에 응하며,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시간 속에 더 성장한 나를 만나고 싶다.
운이
<시작>
그게 시작이었다. 어렸을 적 읽었던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는 실제 세상과 똑같으면서도 달랐다. 같은데 다르다는 것, 이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나는 나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나'와 마음에 들지 않는 '나'. 주로 마음에 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혼내곤 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주변인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그러다 나는 누구인지 혼란이 찾아왔다. 점점 거울에 금이 생겼다. 이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드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설득의 시간이 끝난 뒤, 나는 거울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아직 고민이 남았다. 나는 어떤 '나'를 용서해야 하는가, 어떤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마음에 드는 '나'일까,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일까.
3개의 챕터 내용을 아우르는 짧은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거울, 해방, 나, 용서. 글을 읽고 저에게 남은 4개 단어와 '시작'을 주제어로 잡고 오늘의 글을 썼습니다. 저는 늘 허구의 이야기처럼 쓰는 게 좋아요. 아마 이번 모임 때도 계속 이런 글을 쓰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마토
#1.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위해 평생을 산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타인으로부터 강요 당하지 않으려고 매일 쓰고 매일 읽는다. 잘 쓰고 잘 읽기 보다는 매일 실천하기를 믿는다. 내 몸을 믿는다!
한그루
나에게 외로움은 필자와 같이 견디는 것이였다.
하지만 나의 내면의 깊은 소리, 왜 외로움을 느끼는 가에 대해 물어볼 때 그것은 타인의 부재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관계의 부재 등 여러가지의 복합적인 부분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외로움은 홀로 있는 시간, 그 적막함 속에서 느끼게 되는 사회적 고립이랄까? 그 외로움은 내가 선택한 하나의 결과일 뿐, 그 틀을 깨고 나아간다면 다시는 오지 않는 외로움이란 생각이든다.
진정한 외로움은 내가 나를 외면할 때 찾아온다.
운이
<꺼진 신호등>
늦은 밤, 차도 사람도 없는 2차선 도로 옆 길을 걷고 있다.
지나온 횡단보도와 내 앞의 횡단보도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횡단보도가 있다.
지나온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불이 모두 꺼져 있다. 이미 내가 건너왔기 때문에, 혹은 건널 필요가 없어서.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빨간 불이다. 때를 지나쳤거나 혹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이 횡단보도를 지나쳐 길을 따라 걸을지, 혹은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여기 서서 건너편 길을 바라볼지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여기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꺼지게 될까, 초록불이 될까.
어느 길로 가면 나는
시를 봐서인지 오늘은 시처럼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전에 신호등을 보며 느꼈던 걸 '침묵', '끝', '지긋지긋' 3단어와 합쳐서 짧게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