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 인생책>골목책방서성이다와 [축복받은 집] 함께 읽기

D-29
<진짜 경비원> 공동주택 주민들에게 부리마는 '자신과 바같 세계사이에서 경비를 서주는' 존재였지요. 그러나 공동주택주민들이 물질적으로 경쟁하면서 공동체적인 정서가 깨집니다. 공동주택 세면대가 도난당하자 주민들은 부리마를 비난하고 쫓아내지요. 주민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물질이었을 것이고, 부리마가 지켜냈던 것은 공존하며 살아가는 마음과 삶의 방식이었을것입니다. 자본이 모든 가치를 삼겨버린 이 시대에 부리마 같은 존재들이 우리 삶의 현장에도 많습니다. 인류가 진짜 지켜내야 할 따뜻함은 어디에서 찾아야할까..씁쓸한 마음이 드는 단편이었어요. 나누실 이야기 있으시면 글 올려주세요. 다음 단편은 <섹시> 2일 금요일까지 이야기나누어요.
저는 부리마라는 사람의 위치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어요. 자기 인생에 대한 회한과 바람을 허구로 지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이 부리마이니까요. 누구나 부리마가 지어서 들려주던 왕년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마을에서 그녀 나름으로 방범 활동을 하고 행상인을 막아주는 등 최소한의 경비 역할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인정해주고 있었죠. 그러다가 달랄 부인 집에서 무언가를 더 '소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비교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죠. 그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이 소유물이나 귀중품을 가지게 되고요. 결과적으로 마을에서는 진짜 경비가 필요해집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이야기를 지어내긴 하지만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던 부리마는 거짓말쟁이에 '진짜 경비원'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내쫒깁니다. 소설이 처한 운명도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실용서를 읽으면 뭔가 스마트하고 자기계발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지만, 소설을 읽는다거나 쓴다고 말하면 뭔가 몽롱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도 있구요(제가 보기엔 실용서만 읽는 게 더 몽롱해보이긴 합니다만). 생각해보면 우리부터 그러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순히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할 때도 "소설쓰지 말라"고 하거나, "소설가로 데뷔하지 그러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하죠.
@russist 부리마 같은 존재가 소설이 처한 운명과 비슷하다는 의견에 동감입니다. 이익과 경쟁으로 치달리는 공동주택에서 부리마는 쫓겨난 존재이구요. 소설( 문학)도 거대한 물질의 세계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삶의 진실을 캐고자하는 부리마같은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책방에 찾아오시는 손님 중에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라 의미를 찾지 못하겠어서 읽지 않는다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사실과 허구의 차이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이 비슷해보여서 말입니다^^~
'진짜 경비원'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사실이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경비원이라면, 허구는 부리 마 할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허구'라는 말이 허구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소설을 허구의 장르라고 말하기보다는 진실의 장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이 그때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현실의 작은 레고 조각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레고 조각을 모은 것을 진실이라고 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사실이되 진실하지 않을 수 있고, 진실은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말도 가능한 거겠죠. 그리고 소설이 허구이기 때문에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직한 진단 같지도 않구요. 의미는 원래 쌍방향이고 손벽 같은 거여서 먼저 주어야 얻어내는 것이라고 봐요. 소설에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소설에 의미를 주고, 또 받아오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쪽이 유령이면 저쪽이 사람이어도 손벽을 칠 수 없겠죠. 유발 하라리도 말했듯이 모든 것이 인간의 상상력, 즉 허구와 진실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합의한 문명화된 질서나 국가도 마찬가지죠. 크게는 빚을 내어서 자본을 통용하고 증식하는 현 중앙은행체제와 국가를 믿는 것에서부터 작게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파란불에 건너고 빨간불에 선다는 아주 작은 약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허구의 체계 위에서 지어진 질서입니다. 따라서 허구이기 때문에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말은 이해할 만한 말이긴 하지만, 썩 정직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허구가 소설에만 국한한 개념은 아니니까요.
@russist 소설은 진실을 추구한다는 말씀 공감입니다. 책방 독자님의 자기진단에 의하면 늘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니 허구의 이야기가 현실이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쓸모와 효용이 주도적인 가치가 된 이 세계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 분께 전해드린 소설이 어떤 진실을 전달하길 소망하는 맘이었지요^^
그렇군요. 그래도 요즘은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찾는 듯합니다. 소설을 영화나 만화, 웹툰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저는 책의 큐레이션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소설을 읽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분을 위해서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 중 한 쪽을 추천드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과 진실'이라는 글 꼭지였는데 아직도 인상 깊어서 보고 또 보고 있답니다😀 여담이지만 서점을 운영한다는 건 멋진 일 같아요.
<섹시> 유부남을 사랑한 미랜더는 로힌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랑이 타인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그녀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공정하지 않으며, 자신과 아내 모두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더 끌고 가는 건 온당치 않다고' 말이지요. 사랑을 하면서 상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4일까지 <축복받은 집 > 단편으로 이야기나누는데요. 저는 순차적으로 나머지 단편에 대한 질문과 생각들을 올리겠습니다. 지난 단편이어도 순서 상관없이 편하게 이야기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센아주머니의 집> 센아주머니는 인도여성으로 결혼이주민으로 보입니다. 남편의 도움없이는 생선을 사러 갈 수도 없는 상황으로 인도의 음식을 그리워합니다. 조카의 출생과 조부의 죽음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끼며, 자립을 시도 해보지만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앨리엇이 이 사건을 계기로 자립의 단계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 센 아주머니에게도 그런 계기와 희망이 생기겠지요? 우리 주위에서 문화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결혼 이주 여성의 모습이 겹쳐보입니다. 또한 이런 고립감은 비단 이주민들만의 감정은 아니겠지요. 각자의 상황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개인은 많을 것 같아요. 센아주머니와 앨리엇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외로운 개인들도 포함해서 말이죠. 마음에 드는 구절들, 책 읽으며 든 생각들 나누어주세요.
⟨섹시⟩는 중반부 넘어갈 때까지도 사실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전개가 조금 뻔하기도 했고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나 결말까지도 조금 예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아이가 나오는 대목부터 급격히 좋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순수하게 어른들의 말을 옮기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장면장면이 참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소설이긴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떠오르기도 했네요.
@russist 저도 '섹시' 단편 읽으면서 아니 에느노의 '단순한 열정' 을 떠올려보았어요. '섹시' 글 초반엔 도덕적 판단 없이 상대에 빠져드는 감정들이 '단순한 열정' 과 비슷하게 느껴지더라구요. 후반에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깨달음으로 홀로서기 하는 부분에선 차이를 느꼈구요.
<축복받은 집> 단편 어떻게 읽으셨나요?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단편이라 기대가 크리라 생각해요. 제목처럼 부부에게 이 집은 축복받은 집인지 궁금하네요. 각자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누어보시게요.
한역본과 달리 원서는 '질병 통역사'를 표제작으로 삼은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왜 이것을 표제작으로 정했을까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만, 특별한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귀엽게 느껴졌어요. 타국에서 성공한 이민자이자 공대생인 산지브와 문학도인 트윙클이 만나서 서로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였거든요. 산지브는 일찌감치 성공한 사람들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뭐든 규정하기를 좋아하고, 딱딱 정해진 대로 해야 하고, 그것을 지킴으로써 제 삶의 통제력을 끌어올리고 방법론을 정립해서 성공에까지 이른 유형의 인물이요. 굉장히 미국적인 성공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 산지브는 트윙클의 무구하거나 불안정한 면모를 이해하지 못하죠. 산지브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통해서 사랑을 정의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그런데 소설 말미에 이르러서, 집들이를 하면서 산지브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랑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겪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요. "산지브는 깃털 모자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 커다란 은제 얼굴을 자신의 갈비뼈에 꼭 붙이고 뒤를 따랐다." 이런 부분은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의 창조를 설명하는 내용이 연상되었어요. 아이러니하게 뒤집어져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작가적 유머(?)라고 할까요? 물론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만···
트윙클과 산지브의 집에 비밀처럼 숨겨진 기독교 용품들은 두 사람에게 갈등을 일으킵니다. 트윙클에겐 그 물건들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산지브에겐 이교도의 상징물로 힌두교인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보다 자신의 취향과 신념, 입장이 먼저입니다. 산지브는 아내의 모습에서 다시 예전의 설레는 마음을 느끼게 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며 상정적 이미지에 고착화된 생각을 돌아보기도 했어요. 종교, 문화, 가치관에 의해 생겨난 수많은 상징적 의미들에 갇혀 갈등과 싸움이 반복되는 역사가 떠오르기도 했구요. 실상의 세계, 이미지를 벗어난 세계에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센 아주머니의 집'는 사실주의 문학의 어떤 좋은 전범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설 내적으로 얘기하기보다 소설 외적인 면면들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네요. 소설가들은 아이 화자의 시선이나 대사를 통해서 세상의 어떤 이면, 혹은 진실을 밝히려는 욕망이 있는 듯합니다. 어느 소설가든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낸 작품이 꼭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기억나네요. 홀든이 여동생 피비의 돼지 저금통에 있는 돈을 좀 쓰겠다고 하자, 피비가 흔쾌히 그러라고 하던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또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도 떠오르고,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도 떠오르네요. 제 생각에는 소설가들은 유년에 대한 강한 이끌림이 있는 것 같아요. 소설 자체가 어떤 의미로든 젊은 장르는 아니다 보니, 더욱 그런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아이를 등장시키면 어떤 낙원에서 추방된 어른들의 삶과 대비하기도 좋고 교훈이나 통찰을 내비치기도 쉬운 것 같고요. 물론 단점도 명백한 것 같습니다. 어른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그려내다보니,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내는 듯합니다. 순진무구하게 어른 말을 따라하다가 말간 얼굴로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리거나, 지나치게 영악해서 왠만한 어른들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통통 튀는 역할을 하죠. 결국 성장 서사의 익숙한 틀에 갖히게 되기도 쉬운 듯합니다. 그래도 그래도 아이가 등장하는 소설은 늘 기대되고 재밌습니다. 어떤 대사가 나올까 기다리면서 읽었습니다. 이 소설도 그랬습니다:)
어쩌다보니 둘이서만 이야기나누고 있네요^^~ 이 공간에서 14일까지 이야기 진행합니다. 9편의 단편을 거의 다 읽어나가셨을 것 같아요. 가장 마음에 남는 단편 제목 서로 나누어볼까요? 부담갖지 마시고 제목만 말씀주셔도 좋겠어요
좋은 생각 같아요. 한번 다 읽고 나서 꼽아보겠습니다:)
늦었습니다! 어제서야 다 읽었는데 이제야 얘기하게 되네요. 마지막 작품이 가장 좋더군요. 좋은 소설은 덧붙일 말이 특별히 없는 듯해요. 덕분에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립니다. 한번 책방도 놀러갈게요:)
@russist 저도 그렇습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단편이 가장 맘에 남아요. 29일동안 말동무가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독백이 될 뻔한 방이 말소리 들리는 모임방이 되게 해주셨어요^♡ 순천 여행오실 일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골목책방 서성이다입니다.
처음 마음은 옹기종기 오손도손 책 이야기 나눌 수 있을거라는 설레는 마음이었는데요. 9개의 단편이 가벼운 이야기들은 아니어서 천천히 생각해보기도 하고 선뜻 말문이 트이기가 어색하시기도 하여 시간이 훅 지나가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마지막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남아요.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마지막 문장이 우리 인생을 절묘하게 잘 표현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지났지만, 제 인생에서 유일무이한 하루이기도 하네요. 29일의 날들 또한 책읽고 이야기 나누는 평범하고 특별한 시간이었어요.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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