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씁쓸하게 남을 이야기를 만들어서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 죄송스러운 감정도 없지 않아요. 결말에 '우리가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은 작품들이 '이언사' 소설집에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인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인간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저의 고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Eins님 말씀처럼 '넘을 수 없는 선'을 만들어야만 서로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게 가능하다면 그 세계는 참 '격리적 사회'일 것 같아요. 되레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 역설적으로 우리를 한데 공고히 묶어주는 선, 둘레, 끈, 실낱 같은 희망이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읽어주셔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감상평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허블/책증정] 최이아의 블랙 코미디 SF『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함께 읽어요!
D-29
최이아
siouxsie
둘은 서로를 안았다. 각자의 목에 닿은 서로의 살결은 따뜻했다. 둘 사이에 중요한 건 말이 아닌 체온이 맺어주는 관계였다. 둘은 한동안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11p,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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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밍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만 꼽자면, ‘욕심’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어긋난 욕심으로 인해 사회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다방면으로 보여주는 게 인상적입니다. 특히, <랩에서 생긴 일> 코멘트 중 진형의 마지막 한마디가 ‘행복을 꿈꾸는 건 헛된 짓이었구나’라는 말조차도, 욕심을 부리다 망한 자의 합리화같다고 느꼈습니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학부생 성적 조작 비리와 감당할 수 없는 사치 위법행동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행태 등은 본인 손으로 이끌어낸 파멸엔딩임이 자명해보입니다. 갑질•권력 등을 논하기 전에도요.
편집자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보려고 하지 않아서 안보인다 치부하듯, 저 역시도 피로도가 상당한 ‘불편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이 기회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어떠한 입장인가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절망편...이기에 혹시 이 이야기들, 이 세계관들에도 희망은 있는지 작가님께 여쭙고 싶어요. 상황이나 사람이 개선될 여지가 있을지, 자정작용이 가능한 세계일지. 그런 암시가 있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행복할 가능성이 존재했으면 좋겠는 제 이기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최이아
<랩에서 생긴 일>의 진형의 결말에 대해서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진형 역시 충분히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여겼거든요. 성적 조작과 연구비 횡령 같은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핑계 댈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깐요. 진형 역시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갑질과 권력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학부생 성적 가지고 장난치는 대학원생이니깐요. 제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를 꼽자면 ‘중첩’인 것 같아요. 우리 삶이 그러하듯 적지 않은 인물들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중첩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거든요.
작품 세계관에는 분명 희망이 있기는 합니다. <이언사>에서는 “둘 사이에 중요한 건 말이 아닌 체온이 맺어주는 관계였다”라는 결말 부분 문장처럼 ‘관계’의 소중함이 혐오와 증오를 이길 힘이라는 메시지가 던져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니의 역>에서 다은이가 마지막에 제니의 가슴에 있던 구체를 들고 “넌 뭐였니?”라고 묻는 건 새 세계를 향한 각성,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엄마는 제니의 조력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에 패했지만 다은이는 저항할 각오를 다지게 된 것이지요. 물론 독자에 따라서는 결말을 정반대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을 수 있고요. 아무튼 이렇게 표제작과 당선작의 세계관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좀 흐릿하게 보였다면 저 역시 아직 잘 모르겠지만 최이아식 희망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분들은 결말을 먼저 써 놓고 앞으로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구조를 짜놓기는 하나 쓰다 보면 처음 생각한 결말과 다른 결말로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글의 흐름이 제가 명확히 자각하지 못하는, 일관성이 엿보이는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 건가 봐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글이 나오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막 첫 책을 낸 신인 작가인 데다, 이런 공간 덕에 독자들과 소통하고 관계하면서 성장(?)하는 중이기에 앞으로는 또 어떤 글이 어떻게 나오게 될지는 저 역시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siouxsie
말이 없어서 좋아요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20p,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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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uxsie
언어가 사라졌다.
이윽고, 평온이 찾아왔다.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50p,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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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uxsie
“ 대가없는 쾌락을 누리려 하다니,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가. 이게 도둑놈 심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환희는 고통이 따라야 진정 완성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외면하려 할까...(중략)...사라져야 할 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아니라 대가없는 쾌락을 바라는, 그걸 위해 주변에 독을 뿌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64p,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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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uxsie
“ "나도 나가."
엄마가 소리쳤다. 조문객들이 엄마를 쳐다봤다.
"나도 선거 나간다고."
엄마는 안주머니에서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접은 종이를 펴더니 말했다.
"후보 등록할 거야. 우리도 다 할 수 있어." ”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256p,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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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츄베베
해로운 건 술의 독성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심보다. 사라져야 할 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아니라 대가없는 쾌락을 바라는, 그걸 위해 주변에 독을 뿌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p.164,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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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츄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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