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책증정] 최이아의 블랙 코미디 SF『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함께 읽어요!

D-29
제가 옥타비아 버틀러를 좋아하는데 돌아가셨잖아요. 근데 최이아 작가님 책 읽고 아~다시 읽을 만한 SF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언사' 다 읽고 황모과 작가님의 '언더 더 독' 읽는데 우리나라 SF의 미래에 갑자기 그린라이트가 비춰지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좋은 책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이 정말 마음에 드는 동시에 참 슬펐어요. 무리지어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연약한 생물인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를 상처입힐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끝없이 잔인해질 수밖에 없는 본능을 타고났는가 싶었거든요. 우리가 서로를 상처입히고 죽이지 않기 위해서난 단절의 가능성이, 맥락은 다르지만 보르헤스의 말처럼 '우리 사이에는 칼이 있었네'와 같이, 넘을 수 없는 선처럼 생겨버리고서야 간신히 도래할 수 있는 걸까요. 여러모로 오래도록 씁쓸하게 남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함께할 수 있어서, 그믐 모임을 통해 서로의 세계에 맞닿을 수 있어 기쁘고 즐거웠어요. 개인적인 추천 : 서동욱의 『타자철학』과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데리다와 뒤푸르망텔의 『환대에 대하여』, 김애령의 『듣기의 윤리』 그리고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도록 씁쓸하게 남을 이야기를 만들어서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 죄송스러운 감정도 없지 않아요. 결말에 '우리가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은 작품들이 '이언사' 소설집에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인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인간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저의 고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Eins님 말씀처럼 '넘을 수 없는 선'을 만들어야만 서로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게 가능하다면 그 세계는 참 '격리적 사회'일 것 같아요. 되레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 역설적으로 우리를 한데 공고히 묶어주는 선, 둘레, 끈, 실낱 같은 희망이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읽어주셔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감상평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둘은 서로를 안았다. 각자의 목에 닿은 서로의 살결은 따뜻했다. 둘 사이에 중요한 건 말이 아닌 체온이 맺어주는 관계였다. 둘은 한동안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11p, 최이아 지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만 꼽자면, ‘욕심’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어긋난 욕심으로 인해 사회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다방면으로 보여주는 게 인상적입니다. 특히, <랩에서 생긴 일> 코멘트 중 진형의 마지막 한마디가 ‘행복을 꿈꾸는 건 헛된 짓이었구나’라는 말조차도, 욕심을 부리다 망한 자의 합리화같다고 느꼈습니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학부생 성적 조작 비리와 감당할 수 없는 사치 위법행동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행태 등은 본인 손으로 이끌어낸 파멸엔딩임이 자명해보입니다. 갑질•권력 등을 논하기 전에도요. 편집자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보려고 하지 않아서 안보인다 치부하듯, 저 역시도 피로도가 상당한 ‘불편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이 기회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어떠한 입장인가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절망편...이기에 혹시 이 이야기들, 이 세계관들에도 희망은 있는지 작가님께 여쭙고 싶어요. 상황이나 사람이 개선될 여지가 있을지, 자정작용이 가능한 세계일지. 그런 암시가 있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행복할 가능성이 존재했으면 좋겠는 제 이기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요.
<랩에서 생긴 일>의 진형의 결말에 대해서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진형 역시 충분히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여겼거든요. 성적 조작과 연구비 횡령 같은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핑계 댈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깐요. 진형 역시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갑질과 권력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학부생 성적 가지고 장난치는 대학원생이니깐요. 제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를 꼽자면 ‘중첩’인 것 같아요. 우리 삶이 그러하듯 적지 않은 인물들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중첩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거든요. 작품 세계관에는 분명 희망이 있기는 합니다. <이언사>에서는 “둘 사이에 중요한 건 말이 아닌 체온이 맺어주는 관계였다”라는 결말 부분 문장처럼 ‘관계’의 소중함이 혐오와 증오를 이길 힘이라는 메시지가 던져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니의 역>에서 다은이가 마지막에 제니의 가슴에 있던 구체를 들고 “넌 뭐였니?”라고 묻는 건 새 세계를 향한 각성,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엄마는 제니의 조력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에 패했지만 다은이는 저항할 각오를 다지게 된 것이지요. 물론 독자에 따라서는 결말을 정반대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을 수 있고요. 아무튼 이렇게 표제작과 당선작의 세계관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좀 흐릿하게 보였다면 저 역시 아직 잘 모르겠지만 최이아식 희망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분들은 결말을 먼저 써 놓고 앞으로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구조를 짜놓기는 하나 쓰다 보면 처음 생각한 결말과 다른 결말로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글의 흐름이 제가 명확히 자각하지 못하는, 일관성이 엿보이는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 건가 봐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글이 나오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막 첫 책을 낸 신인 작가인 데다, 이런 공간 덕에 독자들과 소통하고 관계하면서 성장(?)하는 중이기에 앞으로는 또 어떤 글이 어떻게 나오게 될지는 저 역시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없어서 좋아요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20p, 최이아 지음
언어가 사라졌다. 이윽고, 평온이 찾아왔다.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50p, 최이아 지음
대가없는 쾌락을 누리려 하다니,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가. 이게 도둑놈 심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환희는 고통이 따라야 진정 완성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외면하려 할까...(중략)...사라져야 할 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아니라 대가없는 쾌락을 바라는, 그걸 위해 주변에 독을 뿌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164p, 최이아 지음
"나도 나가." 엄마가 소리쳤다. 조문객들이 엄마를 쳐다봤다. "나도 선거 나간다고." 엄마는 안주머니에서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접은 종이를 펴더니 말했다. "후보 등록할 거야. 우리도 다 할 수 있어."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256p, 최이아 지음
해로운 건 술의 독성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심보다. 사라져야 할 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아니라 대가없는 쾌락을 바라는, 그걸 위해 주변에 독을 뿌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p.164, 최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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