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요 모로 가도 고라고.. 백지로 내느니 죄다 찍어보는 노력이라도 해야지 할말이라도 하죠 ㅎㅎㅎ
그래서 백치에서 나온 그 말이 좋았어요. "문제는 끊임없이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게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헛된 노력일지도 모르지만 확답이라고 자만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런 삶이 공허와 무의미 속에서 반항하는 걸지도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D-29
borumis
오도니안
제 생각에 스피노자의 철학과 뇌과학 과 진화론을 종합하면 대략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윤곽은 나온다고 보는데, 그렇게 어떤 답을 가진 듯한 느낌이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1과 2 사이의 긴장 속에서 뭔가 창의적인 것도 나오고 다른 사람들과의 깊은 공감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도를 깨달은 장자의 도인들은 마음이 편하긴 하겠지만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만한 일을 이루거나 세속의 범인들이 공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요. 다만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마지막 부분엔 신비주의 비슷하게 끝나듯이 언어와 논리로 다 해명되고 이해되지 않는 의미의 영역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도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산자들에 나오는 '음악의 가격'이 생각나네요. 다른 단편들도 그렇지만 이 작품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borumis
저도 에티카를 읽으면서 막판에 제3의 지식 부분에서 갑자기 신비주의로 빠지는가 하고 제일 혼란스러웠던 부분이어서 마치 노자의 도덕경을 해독하는 기분이었어요;; 뭔가 제가 알고 있는 논리로는 커버 안되는;;
오도니안
저도 그런 편이었는데, 뭔가 논리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스피노자가 얘기하고 싶었다는 느낌이 요즘 들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 그믐 독서모임에서 다시 읽은 테드 창의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랑 제가 올해의 책에 넣었던 <오늘의 법칙> 중의 마지막 장 영향인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만, 신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내리는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그것이 단지 기독교 중심 사회에서 무신론을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신론의 논리만으로는 포착이 안되는 일종의 직관과 감성, 삶에 대한 자세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요즘 생각을 좀 해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번 마오주의는 천천히 혼자 읽어봐야겠어요. 지금 에드가 스노우 편을 읽는데 옛정이 남아서인지 좀 불공정하게 스노우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진도가 늦어서 이야기는 나눌 수 없게 되었지만 더 계속 읽어보려구요.
다음 독서 모임에서들 봬요~
장맥주
신곡 천국편 정말 지루하죠. 지옥편의 압도적인 매력에 비하면 너무 시시하죠. 근데 도스토옙스키에 따르면 무신론자는 지옥에 가기 전에 현생에서 공허와 무의미에 빠지게 됩니다. 카뮈는 거기에 반항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CTL
그믐에는 북마크 기능이 왜 없나요?
이 정성스러운 글은 꼭 나중에 다시 찾아 읽을텐데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만 유일하게 완독했지만 기회가 되면 더 읽고 싶어요.
자세한 의견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도니안
작가님 글 읽으면서 생각이 났는데, 이렇게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것이 서구 문화의 한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인간 공통의 질문이긴 한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런 질문을 파고드는 강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약하다는 느낌이거든요. 나는 자연인이다 나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르신들 보면,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별수 있어, 하는 체념 내지는 달관이 보이구, 어쩌면 무신론자로서는 본질적으로 그와 다른 해답을 내놓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우리 선조들도 열심히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를 위해 힘쓰다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힘에 부치거나 강제로 은퇴를 당하거나 할 때 가끔 인생만사 분주하나 한낱 꿈이로다 하고 읊조리는 정도 이상 큰 고민은 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생각을 해 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이문열씨 소설 제목처럼 높이 날아오르려는 사람들이 깊은 절망을 느끼는 것일까 싶기도 합니다.
장맥주
네, 저도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서양사상사에 회의주의라는 강력한 철학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 전통을 아주 좋아하고 또 과학의 성립에 꼭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동양사상에는 그런 분위기가 부족해 보입니다. 문외한의 인상 비평입니다만.
소피아
아니, 어디 지면에서 나올 만한 이런 글을 게시판에서 읽기가 너무 죄송할 지경이네요. 진지하게 각잡고 2번 정독했습니다. 어설프고 뜬금없는 질문에 명확하고 자세한 답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래 줄줄이 달린 답변들 보니 다들 궁금하셨던듯? ^^ @YG 님 소설 벽돌책 한 번 여셔야 겠어요.
저는 톨스토이에 대한 세간의 해석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어요. 사람들은 톨스토이가 신에 의한 구원을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톨스토이는 (신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인간의 의지를 힘주어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borumis
요즘 그믐의 또다른 모임 연뮤클럽에서 백치를 읽고 어제 백치 연극을 보고 왔는데.. 전 책은 조금씩조금씩 꾸준히 읽으니 아무리 벽돌책이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연극/영화는 한 자리에서 한번에 보니 매우 피곤하더라구요..;;; 게다가 그렇게 길었는데 소설에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제대로 다 못 담아서 좀 아쉬웠어요;; 혹시 백치를 소설 외에 영상으로 보실 거면 영어자막이지만 2003년도 나온 10부작의 드라마로 추천합니다. https://www.dailymotion.com/video/x3xinaq
borumis
Charu Nazumdar (단체 사진에서는 한가운데) 진짜 뼈밖에 없긴 하네요.
borumis
Joan Robinson과 Arundhati Roy
이들이 과연 마오이스트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을까요?
borumis
정부의 폭력에도 공산당의 폭력에도 맞서는 이들과 그들의 저서
Dilip Simeon : "Revolution Highway"
Rahul Pandita: "Hello Bastar: The Untold Story of India's Maoist Movement"
borumis
Alpa Shah : 이분 책이 그나마 아마존에 제일 많네요.
The Incarcerations: BK16 and the Search for Democracy in India
Nightmarch: Among India's Revolutionary Guerrillas
In the Shadows of the State: Indigenous Politics, Environmentalism, and Insurgency in Jharkhand, India
Nandini Sundar:
The Burning Forest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11월 28일 목요일과 내일 29일 금요일에는 12장 '마오주의자들의 중국'을 읽습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 마오쩌둥 재조명 움직임과 그것을 주도했던 보시라이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진핑이 마오쩌둥을 따라서 하려는 동향도 나오고요. 이 장은 10월에 읽었던 『중국필패』의 보론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밥심
중국필패와 마오주의를 연이어 읽었더니 중국을 보는 시야가 확 넓어진 듯 합니다. 그 동안 옆 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몰랐다는 반성도 조금 하게 되네요.
YG
@밥심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분이 좋습니다. :) 벽돌 책 함께 읽기의 매력이죠!
CTL
12장 내용이 참 흥미로왔습니다. 12장을 읽기 위해서 그 전 인도, 네팔 내용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마오'라는 대단한 인물을 시진핑이 과연 대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거든요. '중국필패'를 읽었기 때문에 12장 내용이 더 이해가 잘 갔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책이 마오주의 자체를 다루는 게 목적이 아니고 세계에 퍼진 그 영향을 다루는 책이긴 합니다만, 정작 마오주의가 시작한 중국에서 현재 마오에 대한 입장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 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거든요.
그리고 정작 보시라이가 불러일으킨 마오의 인기를 시진핑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참 아이러니 하네요.
작년에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광표'라는 드라마가 하도 화제라서 봤는데, 보시라이 사건의 배경을 더 자세히 알고 나니 바로 그 이야기더라고요. 지금은 또 시진핑 아버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가 경이적인 시청률을 달성하고 있으니 드라마 등의 여러 선전도구를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조작하는 공산당의 전방위에 걸친 장악이 참 견고하다 싶습니다. 그러니 '마오' 독재시대의 단점은 덮고, 그 시대의 향수만 불러와서 이용하는 게 가능한 거겠지요. 어차피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늙고 사라질 테고, 기억은 언제나 조작이 가능하니까요.
천안문 광장에 걸린 마오 사진이 내려질 때가 올까요?
그 자리에는 누군가의 사진이 또 대신 올려질까요? 아니면 함께 걸릴까요?
소피아
CTL님이 던져주신 마지막 질문을 좀 생각해봤습니다..
음- 저는 천안문 광장의 마오 사진이 내려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자리 매김 되었으니까요. 책에도 나오듯이 마오쩌둥 무덤도 있고.. 코로나 전후로 중국 이야기 한창 관심깊게 읽고 듣고 했었는데요, 마오쩌둥과 덩 샤오핑은 나름 굳건한 업적으로 기억되는 듯해요. 현재 시진핑이 마오쩌둥의 위치에 도달하려는 데, 딱 하나로 요약되는 업적이 없어서 결국 다음 임기 전에 (5-7년 사이) 하나의 중국 통일을 위해 무리수 둘 거라는 전망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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