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D-29
2장 한참 읽는 중에 문득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저자인 줄리아 로벨은 이 책을 영어로 썼겠죠? 한국어 번역자인 심규호 교수는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중문학 박사 학위를 얻은 분이시던데, 중국어 전공자가 영어 책을 번역한 걸까요? 중국에 대한 책이고, 심 교수님이 영어를 못하지도 않으실 테니까 그 편이 나으리라고 출판사가 판단한 걸까요?
네, 그리고 심규호 교수님의 여러 권의 묵직한 영어 역서가 있어서 충분히 맡겨볼 만하다고 판단하신 듯해요. 저는 원서 전자책으로 사놓고서 원문 대조까지는 안 해 봤는데 굳이 그렇게 할 정도로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어요. 읽다가 갸우뚱해지는 부분 말씀해 주시면 원문 올려볼게요! 또 @CTL @그러믄요 님 등 원서로 읽고 계시는 분도 있으시고요.
저도 @장맥주 님처럼 중간에 번역자 찾아보고 이상하다 싶었어요. 첫 장부터 동사 시제가 좀 헷갈리네? 싶었고 (최근에~라고 시작한 문장 동사 시제가 최근이 아닌 경우), 중간중간에 묘하게 불편한 문장들이 나타나서, 중국어스러운 표현인가? 넘어가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마오쩌둥 동지는 그것에 대한 필리포프 동지(스탈린)의 개인적인 설명에 즉각 감사할 것이다!" 나, “마오쩌둥이 한반도에서의 위험한 충돌에 대해 그다지 흥취를 지니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이런 문장들이요. 즉각 감사? 흥취를 지니다?
이런 의견 즉각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
이럴 줄 알았으면 이상했던 표현 죄다 모아둘 걸 그랬다 싶네요. 이런 어설픈 표현 완전 좋아하는 데 ㅎㅎ
'줄리아 로벨은 이 책을 영어로 썼겠죠?' 하시는 질문 너무 재밌었습니다. 번역하신 분이 중국어 전문가이시군요. 출판사에서 참 재밌는 선택을 했네요. 줄리아 로벨이 워낙 스토리를 잘 만드는 저자이니 서사보다는 전문적인 내용 전달 면에 있어서는 중국전문가를 번역자로 선택하는 게 더 영리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군요. 중국 관련해서는 중국어 원작 - 한국어 번역이 제일 이해하기 쉬운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영어 번역본이 더 빨리 나오거나 구하기 쉬운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맞아요 저도 가격;;(도서관에서 4만원 넘는다고 신청 반려되었어요;;)때문에 영어원서로 읽고 있는데 특히 북한 관련해서 이걸 한글 번역으로 읽어도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중국필패>를 함께 읽을 때 언급했었던 <용과 독수리의 제국>도 특이한 경우입니다. 저자인 어우양잉즈는 영어로 책을 썼고, 그걸 중국어로 번역한 중국어 판본이 뒤에 나왔어요. 그런데 한국 출판사는 영어 원서가 아닌 중국어 판본을 번역하는 걸 택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중역판인 셈이죠. 중국어 판본이 영어 원서보다 더 내용이 구체적이었다고 하네요. 번역은 중국어 번역가가 맡았습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쪽에 있는 진(秦)·한(漢)제국과 로마제국의 발전 과정을 비교한 책. 두 제국의 흥망성쇠를 실마리로 삼아, 양대 제국의 정치·경제·군사·민족·사상·관습 등 다방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총체적으로 탐구했다.
흥미로운 책이네요. 작가가 중국문화의 근본을 잃어버리도록 자식을 키운 걸 후회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후 쓴 책이라는 점도요. 어찌보면 비전문가가 이렇게 큰 주제를 건드리고 책까지 출간할 수 있는지 싶은데, 또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올 수도 있는 거겠지요. 작가가 영어로 책을 쓴 걸 보면 목표한 독자는 영어권 독자였을 것 같은데, 그걸 또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어 판본을 원전으로 번역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결정이네요.
와.... 이거 진짜 뭘 읽을지 고민되는 경우네요 ㅎㅎ 아마 중국판이 더 자세해서 고민끝에 중역을 선택한 거겠지요? 조금 다른 경우지만 저도 파친코를 저자가 영어로 썼으니 당연히(!)하고 영어로 읽었지만 한국이 배경이라 사투리랑 이런걸 다 살려서 번역할 수 있었어서 번역본이 더 좋았다는 평들도 많더라고요 신기하고 고민이 깊어지는 경우들!!!
말씀해주신 김에 좀 사견을 덧붙이자면, 전 우리 사회가 평가 과잉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한 평가들을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강요하고 싶어하거나, 자신의 평가가 사회의 주류 의견이라는 걸 확인해야 좀 안심이 되는 성향인데, 저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의 예를 들어보자면 공산주의가 악마의 사상이라서 그런 재난들을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난 번 읽은 중국필패가 언급했던 것과 같은 역사적 경로도 있고 공산당을 자신들의 해방을 이끌어줄 주체로 여기며 스스로와 동일시한 중국 대중의 열망도 있었던 것이겠죠. 이런 여러가지가 함께 작용하여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있게 하는 것이고 특정 진영이나 개인의 선악에 대한 평가는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니 역사교육도 특정 평가를 후세대에 주입시키려는 의도에 집착하기보다 폭넓고 다양한 관점과 그 기반을 이루는 지식들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도 영웅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고 왜 했는지에 대해 더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면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승만의 경우 보도연맹사건의 책임자로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전쟁범죄자인 동시에 어쨌든 공산화를 막은 공로도 있는 것이겠지요. 북한의 경우도 김정은이 얼마나 사악한 인간이고 그 체제가 얼마나 참담한지보다 그들이 처한 형편이 무엇이고 통치자들 입장에서 어떤 대안들을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정작 그런 노력들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정보와 지식이 평가보다 의미있고, 정보와 지식은 충분한 수준에서 항상 한참 모자르겠지만 그 부족함을 전제로 각자가 코끼리 뒷다리 만지듯이 나름의 평가를 내리면서 열린 소통을 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관점으로는 생각 못해봤는데,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양 진영이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과하게 민감하게 매달리는 이유가 현재 자신들의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들의 구체적인 주장 체계가 없기 때문에 아버지들의 서사에 의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요. 후진타오 사상도 트럼피즘도 제대로 된 담론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사이비 사상조차 없는, 무슨무슨 주의라고 내세울 게 없는 황무지 같아요.
평가 과잉의 사회이고 무담론의 세대라는 것 모두에 공감합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본주의 극단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고, 정리되지 않은 역사가 또 다른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들구요. 예전에 본 영화에서 정조가 즉위하면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이야기하니, 신하들이 벌벌떨고, 피바람이 불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아침부터 횡설수설하는 중입니다~
정조도 자기 관점에서 역사 수정 전쟁을 개인적으로 벌였죠. ^^
사상가들 입장에선 광활한 미개척지네요. ^^
그런데 지금 사상가들이라 할 만한 인물이 지금 있기는 있나 궁금해요. 한참 아래 급으로 ‘논객’이라 불렀던 자리를 차지할 인물조차 사라진 거 같습니다.
어쩌면 큰 사상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아닐까요? 우파 쪽 입장에선 신자유주의가 있으니까 새로운 사상이 별 필요 없을 것 같고, 좌파 쪽 입장에선 이를 극복할 만한 뭔가가 필요하긴 한데, 설득력 있는 방향을 잘 못찾고 있는 것 같구요. 예를 들어, '산자들'에서 다룬 상황들, 예를 들어 자영업자들의 경쟁이 서로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거나, 경영 실적이 부진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묘사들이 저한테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우파적 입장은 단순하죠.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경쟁력이 부족하면 시장에서 도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좌파는 그런 결과로 힘들어지는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만, 정작 시장에 어떤 식으로 간섭해야 하느냐, 누구는 보호하고 누구는 보호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들을 일관된 기준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체계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왜 대기업 정규직은 보호를 받는데 비정규직은 아무 때나 해고를 당해야 하느냐, 자영업자는 왜 보호를 받지 못하느냐 하고 물어보면, 그런 건 갈라치기고 대기업 노동자가 권리를 보장받아야 전체 노동자나 서민의 권리도 함께 보장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긴가민가 하죠. 혁명이나 아주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동력은 별로 없는 것 같고 시장질서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크게 딴지 거는 사람이 없는데 우파쪽은 그 원칙을 밀어부치려는 간결하고 확고한 입장을 갖춘 반면 좌파쪽은 뭔가 확고한 거대 담론이 갖춰지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다만, 거대 사상 차원은 아니더라도 각론 차원에서, 예를 들자면 노동법이나 상법, 조세와 재정규모, 복지 등 각 분야별로는 많은 주장과 담론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분야마다 보면 열심히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논의되지 못하고, 제가 보기엔 지엽적인 이슈들에 너무 많은 담론들이 집중되고 노출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큰 사상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한 적이 있었어요. 사실 제가 생각해낸 게 아니라 후쿠야마가 그런 주장을 먼저 펼쳤고, 거기에 제가 넘어갔던 거고요. 지금은 저는 세상에 큰 사상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인간은 원래 큰 사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언젠가 필멸인 존재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음으로써 죽음을 이기려 하는 거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 대신 ‘무의미’라는 말을 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가 그 사상의 역할을 하지요. 종교도 사상의 일종이고요. 둘째로는 지금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전지구적 위기들이 엄연히 여러 종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빈부격차, AI, 소셜미디어 등등. 이런 위기들에 대응하려면 그 위기가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설명해주는 서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말씀해주신 담론 수준을 넘어선 사상이요. 이에 대해 저는 말씀하신 대로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 역시 자신들의 주장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좌파인가, 무엇이 우파인가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해야 하는 때라면, 그 답하는 과정이 바로 거대한 사상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라는 한 분야에서의 접근법일 뿐이고, 그나도 그렇게 작동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거 같습니다. 트럼프는 우파이지만, 신자유주의자는 아니지요. 트럼프 지지자들도 대부분 그럴 겁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정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 전체를 체계적인 논리로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좌파에 대해서는... 며칠 전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 이런 글이 실렸더라고요. 미국 민주당이 뭘 주장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자기가 어릴 때에는 노동자와 소시민을 위하는 정당이 민주당이었는데 지금은 공화당이 그런 당이라고. 예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정당이 민주당이었는데 지금은 공화당이 그런 주장을 한다고. 뼈 때리는 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엽적인 이슈에 너무 많은 담론이 나온다는 말씀에도 저는 비슷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냥 ‘강단 업계’의 일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정도일 뿐인 담론도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트럼피즘의 승리가 주는 의미에 대해 김누리 교수님의 칼럼을 읽고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7142.html
평가 evaluation은 value를 어느 정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어느 정도 폐쇄된 '결론'을 내리는 반면 분석analysis는 객관적으로 정보를 검토하고 오히려 더 많은 질문으로 향해 갈 수 있는 '개방된' 방식이기 때문에 골치 아프고 찜찜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든 소설이든 만화든 개방된 결말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또 분석하는 류의 추리소설 SF를 싫어하고 논픽션은 더 싫어하더라구요. 제가 고딩 아들이 질문할 때 수학 문제를 풀어주면서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 수록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엄만 확실히 변태같아..;;;'하는 걸 보면 질문하고 탐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확정된 답을 즉각적으로 알아야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마 일반적으로 공통적인 것 같은데.. 예전에 대니얼 카너먼의 책 Thinking Fast and Slow에서도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오래 걸리는 사고보다 바로 판단하기 쉬운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개인도 그렇지만 집단이 커지면 커질 수록 그 경향이 커지지 않나 싶네요. 그래서 어찌보면 전 보수든 진보든 독재정치든 민주정치든 거대 집단의 가치 판단이나 결론 내린 주장은 주의해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3장 '세뇌'를 읽으니 그런 섣부른 판단에 의한 비극들이 많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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