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11월 26일 화요일과 내일 11월 27일 수요일에는 이틀간 11장 '네팔: 권력을 장악한 마오주의자'를 읽습니다. 네팔의 마오주의자는 무장 투쟁에서 선거 참여로 전략을 수정하고 나서 실제로 권력을 잡은 사례입니다. 2024년 현재에도 네팔의 연립 내각에 참여하는 정당 가운데 마오주의 정당이 있으니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장입니다.
569쪽 게릴라 반란에 직면한 전 세계 정규군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황군 역시 거의 모든 민간인을 잠재적 반란분자로 간주했다. 583쪽 하지만 1,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총이 그다지 평등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더 큰 총을 가진 이들이 항상 승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권세를 지닌 이들일수록 더 많고 더 큰 총을 가질 수 있으며, 더욱 많은 이들이 총기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오주의 - 전 세계를 휩쓴 역사 11장 네팔: 권력을 장악한 마오주의자, 줄리아 로벨 지음, 심규호 옮김
569쪽의 저 문장대로 우리나라에서의 불행한 사태 때도 그렇고 이 책에서 다룬 여러나라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육도 저런 인식을 원인으로 악순환이 되면서 지옥이 되어 간 듯 합니다. 양 측이 모두 그렇게 생각한거고 의도된 바도 있었구요.
페루, 인도, 네팔에서의 마오주의의 영향에 대해 읽어내기는 사실 좀 쉽지 않았네요. 너무 먼 나라들의 이야기같기도 하고, 논지의 흐름이 거의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네팔 이야기로 가서는 몰입도가 많이 떨어지더군요. 그래도 내친 김에 책을 끝내기는 했습니다. 12장 현재 중국에서의 마오의 위치가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고, 특히, 결말에서 저자의 요점을 아주 잘 정리해 주어서 만족스러웠어요. 후반부에는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전세계에 걸친 마오주의의 영향을 훑어본 후 전체적으로 돌아보는 결말의 흐름을 수긍할 수 있어서 다 읽기 잘했다 싶었습니다. 워낙 광대한 범위의 내용을 짧은 시간에 허덕이며 읽느라 내용이 머리에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후에 세계 뉴스를 따라가면서 궁금한 내용을 다시 뒤적여보게 될 많은 자료를 얻었다고 생각되네요. 꼼꼼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로 이 방대한 내용을 이렇게 정연하게 책으로 묶어낸 저자의 역량이 대단합니다.
저도 끝으로 갈수록 줄리아 로벨의 역량이 너무 놀라워요. 이 한 권 쓰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걸까 싶기도 하고요.
그쵸 이 방대한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 분 중국사 교수이기도 하지만 루쉰 한사오궁 장애령 등 중국문학을 번역하기도 했다고.. 남편분이 여행 및 문화 관련 책 저자로 유명한 Robert MacFarlane인데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했을 것 같네요.
줄리아 로벨이 성실한 논픽션 작가이자 학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영어 사용자라는 것도 조금 어드밴티지가 됐을 거 같습니다. 중국이나 인도뿐 아니라 캄보디아, 페루, 네팔, 기니, 카메룬, 탄자니아, 수단, 짐바브웨 같은 나라에 흩어진 마오주의 관련 사료들은 그 나라 언어와 영어 정도로만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비영어권 저자라면 이런 작업을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거 같아요.
영어 어드밴티지 분명히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또다른 어드밴티지를 떠올렸어요. 줄리아 로벨이 마지막 장에 썼듯이, 베이지 올림픽 전후로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자료 공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지금은 다시 비공개되었다고도 하는 데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중국이나 북한 관련 책을 읽을 때 2010년 이후에 출간된 책이 좀 더 정확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듯해요. 실제로 2010년 이후 나온 프랑크 드쾨터 3부작이나 필립 쇼트의 마오쩌둥 평전이나 줄리아 로벨의 이 책도 어느 정도 이상은 그 자료 공개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어요.
바꿔 말하자면, 구스만은 마오쩌둥이 집착했던 것, 즉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는 ‘백지’를 갈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루 사회는 결코 ‘백지’가 아니었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결국 좌절된 만남이 빛나닌 글의 잔학성을 낳았다. 빛나는 길의 목표는 당을 대신할 모든 대안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마오주의 - 전 세계를 휩쓴 역사 475쪽, 줄리아 로벨 지음, 심규호 옮김
페루와 인도 장을 마치고 이제 네팔로 넘어가는 중인데요.. 하아.. 뭔가 가슴이 갑갑해집니다. 예전에 국제학교에서 인도에서 갓 전학 온 친구(그녀는 당연히 브라만)와 이야기를 하다가 untouchable에 대해 얘기가 나왔는데 평소엔 너무나도 순딩이같던 그녀가 그들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고 충격받은 기억이 있는데요.. 그 untouchable보다도 더 낮은 계급도 있다는 게 기가 막히고 페루의 인디언들도 그렇고 인도의 인디언들 중 Ayudavi 부족도 그렇고.. 참 짐승만도 못한 취급받고 너무 끔찍한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정작 가장 피해는 크고.. 자기들의 사리사욕이나 명예욕 만을 노리는 정부나 공산당이나 실제 그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거죠.. 정작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싸우자는 그들은 기득권의 교육받은 남성들.. 그리고 정부를 뒤집어 엎을 생각만 앞서지 뒤집어 엎은 후 어떻게 힘든 이들을 위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지 아무 생각도 없다는;;; 앞에서 나온 중국공산당이든 Senderista든 결국 남자들 중심의 여성을 하대하고 이용해먹는 집단 속에서도 그나마 지금의 억압받는 삶보다는 나아서, 그나마 자신의 자리가 있어서 여성들을 끌어들인 걸까요? 지금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공산당이 이루고자 하는 혁명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키지 않는다. 부유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이 무시되고 멸시당한다고 느낄 때 모순된 제도를 타도하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킨다."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프랑스 혁명은 가장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왜 영국이나 미국처럼 순조롭게 시민 혁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피로 얼룩진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를 한 세기나 되풀이해야 했을까? 이 책은 혁명의 전범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프랑스 혁명사 100년의 과정을 명쾌하게 풀어낸 입문서이자 격동의 1980~90년대 한국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했던 혁명사의 고전.
레미제라블 원어로 읽으시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책 추천해주시는 김에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아니면 전반적인 프랑스 역사 입문서라도 괜찮고요, 관련된 책 생각나시는게 있으시면 추천해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전에 메리와 메리를 읽으면서 yg님이 추천해주신 주명철의 프랑스 대혁명 시리즈도 괜찮은데 지금 읽고 있는 레미저라블과 시기가 살짝 어긋나는 것 같고 너무 많아서 이건 아직 안 읽어봤구요. 지금 참고하고 있는 책은 위에서 말한 노명식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그리고 막스 갈로의 '프랑스 대혁명', 알렉시 드 토크빌의 '앙시엥 레짐과 프랑스 혁명'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에요.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프랑스 혁명은 가장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왜 영국이나 미국처럼 순조롭게 시민 혁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피로 얼룩진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를 한 세기나 되풀이해야 했을까? 이 책은 혁명의 전범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프랑스 혁명사 100년의 과정을 명쾌하게 풀어낸 입문서이자 격동의 1980~90년대 한국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했던 혁명사의 고전.
프랑스 대혁명 1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소설가 막스 갈로가 실제 역사 기록을 토대로 혁명을 시작부터 끝까지 재구성해 낸 책.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등 거대한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들을 중심으로 혁명을 주의 깊게 추적한다.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로 세인의 주목을 받은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56년에 불후의 역작을 또 한 권 내놓았다. 바로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이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 개정판1789년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촉발된 프랑스혁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책이다. 영국의 저술가이자 정치가였던 버크는 이 책을 통해 혁명의 원리를 밝히고 그것의 오류와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혼란이 곧 군사독재로 귀결될 것을 예견했다.
여러 책 추천 감사합니다. 찬찬히 살펴봐야겠네요.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가 혁명들이 많이 일어난 시기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제일 관심이 가긴 합니다. 사실 유명한 건 1789년 혁명이지만 그 뒤에 1800년대 전반까지 크고 작은 혁명의 연속이었으니 1871년까지 다루고 있는 이 책이 폭넓은 시각일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빅토르 위고와 톨스토이는 소설의 신이라고 생각해요. 아, 아니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의 교황, 톨스토이는 소설의 신.
오오.. 소피아님의 표현이 정말 찰떡이네요. 도스토옙스키는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벌>만 읽었어요. 카라마조프로 넘어가지 못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가 그 책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거슨 바로바로 장.광.설.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요 ㅠㅠ
<죄와 벌>의 장광설은 <악령>에 비하면 약과입니다(근데 저는 그 장광설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막상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는 유명한 장광설 몇 개가 아예 극중극 형태가 되어서 나름 읽기 수월합니다. 도스토옙스키 5대 장편소설 중 정말 힘든 작품은 <미성년>인데 저는 추천하지는 않아요. 장광설 싫으시면 <백치> 추천합니다. 도스토옙스키 본인은 <백치>를 가장 아꼈다고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매력에 빠지면 톨스토이와 위고에 대한 평가가 좀 바뀌실지도...? ㅎㅎㅎ 저한테는 도스토옙스키 >> 톨스토이, 위고거든요.)
미성년 - 상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한 청년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방황을 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성장 소설. 삶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아버지 세대의 부재로 인해 온갖 불의와 도덕적 타락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진, 위험하고 불완전한 상황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자식들에 대한 작가적 문제 의식에서 씌어졌다.
백치 1도스토옙스키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진실로 아름답고 선한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은 작가가 만들어낸 그리스도적 이상에 가까운 인물로, 사회의 규범이 아닌 선한 인간성을 따르기에 속물적인 사회에서 그는 ‘백치’일 수밖에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읽어볼까 생각은 자주 해요. <가난한 사람들>, <백야>,<백치> - 이 순서로 장광설은 피하고 보려는 로드맵도 가지고 있어요 ㅎㅎ 장맥주님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애정이 흥미로워서 한 가지 질문 드립니다 (갑분 작가와의 만남 모드). 제가 읽은 장맥주 님의 작품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어떤 작가보다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서서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느껴졌거든요? 현실지상주의? 그런 면에서 장맥주님의 작품 세계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톨스토이나 빅토르 위고 쪽에 가깝지 않을 까 싶은데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보다 존재론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에 천착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좀 더 형이상학적이라고나 할까요? 저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질문은 이 삶이 끝날때까지 해답을 칮을 수 없는 것이라면, 톨스토이나 빅토르 위고의 질문은 지금 여기서 방향을 찾아 나아가면 해답의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작품세계와 좋아하는 작가는 다를 수 있고요, 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많이 읽지 못해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장맥주님의 작품을 오독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 질문 드립니다. 답을 안하셔도 괜찮아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제 정체성이 당대를 다루는 리얼리즘 소설가라고 생각하고, 계속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소설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인생의 의미라는 질문에 무척 매달리고 있습니다. 세상과 삶에 의미를 부여해줄 신이 없고, 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허무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압니다. 제 나름대로 의미를 찾는 방법이 소설이고, 그때 제가 걷는 길이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 소설이나 논픽션, 혹은 현실적인 근미래 SF들이고요. 도스토옙스키는 세상과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존재로서의 신, 그리고 그런 신을 거부하는 무신론의 문제를 가장 깊이 파헤친 작가입니다. 무신론자의 삶에 대해서 가장 깊이 성찰한 작가이기도 하지요. 이반 카라마조프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악령>의 키릴로프는 인간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인신사상’을 주장하며 논리적 자살을 실행하게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무신론을 반박하려고 그런 탐구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무신론자들이 좋아하는 소설가가 됐지요. 대표적으로 니체와 카뮈가 도스토옙스키의 팬이었고, 카뮈의 경우에는 도스토옙스키의 탐구를 이어 받았습니다(<시지프 신화>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제 경우 무신론자로 살다가 도스토옙스키를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를 읽다가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계속 신의 부재, 그리고 의미의 발명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소피아 님이 거론하신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위고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그런데 톨스토이, 위고와 도스토옙스키는 달랐습니다. 톨스토이와 위고는 자기 작품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로 인한 구원을 보여주고 싶어 했죠. <레 미제라블>은 문자 그대로 뮈리엘 주교로 시작해서 뮈리엘 주교로 끝납니다. 뮈리엘 주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화시킨 사람이 바로 장발장이며, 장발장은 숱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원받습니다. 톨스토이는 <부활>의 네흘류도프, <전쟁과 평화>의 베주코프, <안나 카레니나>의 료빈, 그리고 말기의 우화소설들을 통해 구원과 낙원에 대한 희망을 말합니다. 반면 도스토옙스키 소설에는 신기하게도 그런 게 없습니다. 가장 역설적인 사례가 바로 <백치>일 텐데,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사람을 그리겠다는 목표로 쓰기 시작한 이 소설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뮈시낀 공작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은 모두 파멸합니다. <악령>은 이보다 더한 파국이 없을 것 같은 파국이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역시 뭔가 희망을 2부에서 말하겠다는 듯이 끝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그 2부를 쓰지 못했죠.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의 문제를 다룬 소설들 중에서 그나마 희망적으로 끝나는 게 <죄와 벌>인데, 여기서도 잘 보시면 라스콜니코프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성경을 펼치지 않습니다. 즉 도스토옙스키는 자기 작품에서 무신론자를 비판하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질문은 이 삶이 끝날때까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라면, 톨스토이나 빅토르 위고의 질문은 지금 여기서 방향을 찾아 나아가면 해답의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씀에 저도 공감하는데, 저는 그래서 도스토옙스키가 더 좋네요. 삶의 의미라는 질문에 대해 저희가 끝내 대답을 할 수 없다고 믿거든요(카뮈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저한테는 '구원'이라는 말 자체가 기만적으로 느껴집니다. 톨스토이나 위고나 대가들이니까 뭔가 구원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를 쓸 수는 있었지만, 그게 구원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답 없는 문제를 향한 도스토옙스키의 그런 공격성이 좋네요. 톨스토이나 위고가 말한 사랑과 구원을 뛰어넘는 어떤 정직함이 느껴집니다(제 또 다른 인생 작가는 조지 오웰인데, 오웰도 해답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려는 공격적이고 정직한 소설가였습니다). 제가 그 옆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저 역시 답변보다 질문에 관심이 훨씬 더 큽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문학은 구원이나 천국을 묘사하는 데에는 전혀 적합한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파국과 지옥을 묘사하는 데 적합한 도구이며, 그런 때 문학이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고요.
참, <가난한 사람들>는 짠내 나면서 다소 코믹한 소품이고, <백야>는 ‘엥,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것도 썼어?’ 싶은, 은은한 수채화 같은 단편입니다. 좋은 소설들이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왜 거장인지는 설명해줄 수 없는 작품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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