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

D-29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의 바닥이 파헤쳐지기 전에 왔어야 했다. 공사 중인 도청 건물 바깥으로 가림막이 설치되기 전에 왔어야 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은행나무들의 상당수가 뽑혀나가고, 백오십년 된 회화나무가 말라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왔다. 어쩔 수 없다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p. 200, 한강 지음
소름이 돋은 순간이었습니다... 이 순간 설마 서술자가 한강 작가님 본인인가 싶어 나무위키를 뒤져봤는데, 실제로 한강 작가님께서 중흥동에서 태어났고, 남동생과 오빠가 있고 ㅎ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이 사람은 진짜 미쳤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희영이 고모가 무사했던 것처럼 나는 무사했다. 일가친척 중 누구도 다치거나 죽거나 끌려가지 않았다. 다만 그해 가을 나는 생각했다. 차가운 장판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숙제를 하던 방, 그 부엌머리 방을 그 중학생이 쓰지 않았을까.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p. 208, 한강 지음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 라는 표현이 뭔가 강렬히 다가왔습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며 한강 작가님의 심정이 제게 직구로 꽂히는?느낌이었습니다.
다들 11월 22일까지 6장, 에필로그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도 남겨주세요!!
아니제. 그럴 수 없는 것을 내가 알제.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p.181<꽃 핀 쪽으로>, 한강 지음
동호의 어머니는 어느 날 동호의 환영을 봅니다. 한 중학생의 뒷모습에 동호라고 착각하고 한 참을 쫓아가봅니다. 부르지 못한 채 뒤를 밟다가... 정신이 들어 말하는 장면이네요. 여기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땅에서 대한민국의 군인에게 총맞아 죽은 어린 아들을 묻은 어머니는 울지도 못한 어머니의 슬픔을 묘사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이렇게 고통을 묘사하는데, 눈물 한방울 허투루 보여주지 않아서였을까요? 독자인 제가 대신 한참을 울었습니다. 같은 페이지의 아래 인용문을 읽으며 평평 울고 통곡하다가 책을 읽기 힘들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정말 이런 일이 인간사회에 있을 수 있냐고 강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느이 형들이 입술을 꽉 물고서 울고 섰던 것도 아슴아슴 떠오른다이. ... 그때 내가 울지도 않고 뗏장 옆에 풀을 한움큼 끊어서 삼켰다든디. 삼키고는 쪼그려앉아서 토하고, 다 토하면 또 풀을 한움큼 끊어다 씹었다든지. 근디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야.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p.181, 한강 지음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p.211, 한강 지음
동호의 형을 찾아가 동호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한 작가가 형에게서 동생이 죽은지 30년만에 동생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작가에게 당부한 말입니다. 책속의 '나'는 작가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강님이 518을 소설로 쓰기 위해 만난 유가족들이었겠네요. 생존자들에게도 감정 이입하는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대로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소설도 여러번 읽겠다고 다짐합니다. 아프지만, 그래서 더욱더 제대로 분노하고 성찰하리라 다짐해봅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합니다.' 심장을 누르듯 가슴 왼편에 오른손을 얹고 나는 걷는다. 캄캄한 도로 가운데에서 얼굴들이 어슴푸레 빛난다. 살해된 사람들의 얼굴. 내 가슴에 대검을 박아넣은 살인자의 공허한 얼굴.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p.211, 한강 지음
책 읽은 후 서평 남깁니다! ''' 너무너무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소설 중에서는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었는데, 내 인생 소설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인상 깊게 읽었다.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도 인상 깊었지만, 이 작품이 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공감이나 이입이 많이 됐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아니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좀 더 친숙해서인지, 이 작품의 표현들이 더 섬세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는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쓰는 사람이다. 본인이 직접 겪지 않은 사건이라도, 그 사건을 겪은 여러 등장인물들을 상상하고 각 등장인물에 이입해 그 사건과 감정을 묘사한다. 옛날에 학교 역사 시간에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했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권력 누수의 기간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획책하는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여 일어난 시민봉기",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권 투쟁" 이런 투쟁의 시기를 한참 지나 2000년에 태어난 나는 저런 묘사들을 들어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실제로 '역사'에서는 어떤 사건을 겪은 개별 인물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이나 사건과 사실, 그 사건의 의의 등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개인)의 입장에서는 그 사건에 몰입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한 명 한 명에 집중한다. 정대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동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아픔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가는 은숙, 도저히 과거의 아픈 기억과 마주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선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동호를 잃은 후 남겨진 동호의 가족들. 너무나도 나 같은,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서술하고, 또 서술되는 이 소설은 그 어떤 기사나 역사책보다도 광주민주화운동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왜 그 운동이 위대했는지, 우리는 어떻게 지금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 사회가 더 따뜻한 사회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왔다. 특히 소설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겪은, 나와는 다른 타인의 심리 묘사가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소설을 많이 읽으면 현실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타인의 그 사연을 헤아릴 수 있으면 다툼이나 증오가 훨씬 적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는 나의 그 막연한 믿음을 직접 체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하게 만들어준 한강 작가님의 재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상상'과 '표현'.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그토록 섬세하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렇게 길지 않은 문장인데도, 군더더기 없이 가슴에 내리꽂는 '표현'. 한강 작가님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부단히 노력하셨을 그 열정과 신념.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실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강의 작품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추천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 위원은 『소년이 온다』를 꼽았다고 한다. 모두가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의 역할은 무엇인지, 소설가의 소명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
이 소설에는 다양한 서술자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공감 가거나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저는 선주에게 가장 공감이 갔습니다. 5장에서 인터뷰를 위해 녹음을 할지 말지 수십 번 고뇌하는 장면이나 "나라면 너처럼 숨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는 성희 언니를 미워한 그 마음들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공감이 갔습니다 ㅠ 그럼에도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에필로그' 속 작가에게 공감합니다. 저는 9살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전라도 출신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지만,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일었났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지금 나이가 제법 많지요? 한강작가와는 학번이 같습니다. 89학번... 더욱더 공감하게 됩니다. 대학에서 광주를 제대로 접하고 진심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들었음에도 대학에서 접한 진실은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망월동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지만, 정말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묵직한 침묵이 묘지 전체를 압도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래 전 기억, 다시 찾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망월동을 다시 방문해야겠어요. 올 겨울 그곳을 가봐야 할 것 같네요. 함께 읽을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
망월동 방문을 응원하겠습니다... ㅠㅠ 독서모임에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감상평] '80년 5월 광주'를 세계가 읽고 기억해야할 역사로 기록해 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 역사를 우리 삶의 일부로 단단히 기억하게 만들어줄 문학의 힘을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편적 물음을 던진 <소년이 온다>가 세계문학 고전작품의 일부가 되었음이 선포된 2024년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80년 5월 광주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10일 동안 그곳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양심의 이름으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음을 기억합니다.
6장 동호 어머니의 독백을 읽으며 쌓아두었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12년전 보았던 영화 "26년"이 떠올랐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올 때 자리를 뜨지 못하고 펑펑 울었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꽃같은 인생을 복수 하나에 걸었던 그 무게감이, 서러움이 느껴져 한참을 자리에 앉아 울었습니다. 한강 작가처럼 제 마음에 영혼이 조금은 깨어졌던 것일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광주의 일을 모르고 살아가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이상 아름다운 우리들의 영혼이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고 공감이 되었던 것은 5장의 선주라는 인물 이야기였습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고, 누군가를 대표하거나 나서지 않았지만 잔인한 세월의 풍파를 빗겨갈 수 없었던 사람. 밤길과 기억의 미궁 속에서 복잡한 감정의 교차를 느끼는 가여운 사람. 그 여운이 너무 진해서 인간성에 대한 회의와 집단 광기에 대한 공포가 짙은 안개처럼 감싸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종종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가를 고민하고 반성하곤했습니다만 이 책을 덮고 삶의 위협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파도를 피하는 눈과 운이 모두 필요하다. 가슴 아픈 역사를 반추함으로써 다다른 생각치고는 부끄럽긴 합니다만 지켜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막을까. 말해준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휴대폰을 쥐고 어쩔 줄 모르며 길 가운데 서 있었다. 어디에 전화를 걸어 알려야 할까. 누구에게 알리면 그걸 막을 수 있을까. 이걸 왜 하필 나에게, 아무런 힘도 없는 나에게 알려줬을까. 빨리 택시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자고 해야 할까. 어디로 가서 어떻게……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Ebook p.376/398, 한강 지음
일정들로 인해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에필로그에서 이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떠한 사실(진실)의 심각성을 알고 있을 때, 그것을 누구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알릴 수 있을지? 마주해야만 하는 진실을 반드시 알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작가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소설 <카산드라(크리스타 볼프)>의 주인공 카산드라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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