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가장 놀라우면서도 좋았던 부분은 '불결하고 불경한 몸' 이었어요. 관련된 여러 책들을 그래도 많이 읽어왔다고 여기는데, 섹스에 대해서 이렇게 솔직하면서도 정면으로 부딪히며 소리내는 책은 사통맥자가 처음이자 유일하지 않나 싶어요. (막상 저희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어서 아주 반갑게 읽었음에도 겨우 이런 댓글에서조차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러하네요)
심지어 해외도서들에서도 섹스에 대한 부분은 평소처럼 해도 된다는 말과 너무 건조해서 통증이 있다면 윤활제를 같이 사용하라는 말 정도로 짧은 챕터로만 나와있는게 전부였었거든요. 그래서 무척이나 소중하면서도 암의 세계에 진입한 사람들에게 꼭 읽히게 해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욕망을 과감히 표출'함으로써 '자유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부분이란 느낌이었어요. '서로를 오염시키고 오염당하'는 위험을 넘어서 함께 상처와 기쁨과 쾌락을 누리며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다는 선언같은 말은 굉장했습니다. 우리도 욕망하는 동일한 인간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도서 증정]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비밀을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동아시아
1-2. 인상 깊은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우주먼지밍
애초에 인과율과 합리성, 각 잡힌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려고 운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p30,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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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먼지밍
여전히 고통으로 사람이 성숙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망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고통은 삶을 바라보는 렌즈의 곡률을 바꾼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p55,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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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00
보호주의는 요보호 대상을 보호하지 않는다. 대상자를 선별하고 통제한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1부 지 쪼대로 아플 자유 p.94,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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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품어요
“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건강한 데다 말까지 많은 그들은 병자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알려주고, 무얼 해보라거나 먹어보라는 이야기도 잘한다. 무얼 하지 말라거나 먹지 말라는 말도 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다른 병자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염려인지 핀잔인지도 섞어가면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여러 풍문을 중언부언 늘어놓다가 사라진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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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품어요
“ 내 잘못도 남의 잘못도 없이 이 질병이 내 앞에 그저 도착했다면, 그 질병 또한 이유 없이도 자연스러운 내 몫 아닐까.
엄습하는 공포로 잠이 오지 않았던 진단일 밤, 나는 왜 하필 나냐는 의문 대신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죽음을 떠올렸다. 동생과 나는 서로의 등을 눈물로 적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치료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의 최후를 상상하고 눈물짓는 식의 감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새로운 일상이 도래했고, 죽음이 묵음 처리되는 하루에 익숙해졌고, 그래서 바빠졌다.
”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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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품어요
“ 앞으로 어떻게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실의에 잠긴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서랍론을 이야기하곤 했다. 없어질 일은 아니지만, 잘 정리해 둘 날이 올 것이며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
어쩌면 서랍론은 가끔 의미 있게 꺼내볼 정도가 된 내 폭력 피해 경험에 국한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치료를 마치고 병이 낫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계속 잘 닫히지도 않는 서랍을 이고 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절망 너머의 삶은, 깔끔하게 정돈된 일상과 난처하고 곤궁한 처지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편이 맞았던 것 같다. 헤벌레 열려 있는 서랍도 내 모양이려니, 덜그럭거리는 소음을 견디면서.
”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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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품어요
서랍론이 무척 흥미로우면서 '없어질 일은 아니지만 잘 정리해둘 날이 올 것이며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라는 문장에서 시큰해져서 몇 번이나 밑줄 그었던 부분입니다.
서랍론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었는데, 어떻게 서랍으로 연관시켜서 말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도미 작가님의 지금 서랍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치료 마치고 난 서랍은 어떤 모양일까요.
김도미
엄연히 있었던 사건이 사라지지는 않지요, 외면을 할 수는 있지만요. 결국 회복한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위협한 그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인생의 한페이지로 통합해 넣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서랍에 물건을 정리해 넣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피해자가 비난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성주의 인식론은 매우 중요하지요. 성폭력과 같은 젠더 기반 폭력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하게 ‘몸’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질병의 경우에도 제 해석의 도구는 같았습니다. 질병과 관련하여 저의 서랍은… 표준치료를 마쳤을 뿐, (사통맥자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암경험과 항암 문화의 자장이란 치료 종결과 함께 똑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요. 잘 닫힌 것 같다가 스르르 나왔다가 덜그럭 거렸다가 또 닫혔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동아시아
1-3.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건넨 말들이 오히려 지나친 간섭이나 통제로 느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질병과 관련된 경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워밍업 질문에 답하신 분이 많지 않아서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주먼지밍
1-3.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들은 대부분 나를 위한 의도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말들을 들었던 시절엔 그 의도를 무조건 순수하게만 여기고 고맙게 여겼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보니 꼭 저를 위했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여전히 타인의 말에 휘둘리고 저는 제 스스로의 감정을 절대시 하지 않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타인들의 말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들으려고는 합니다.
비밀을품어요
1-3 조금 민감할 수 있지만 전 간병하면서 환자와 함께 제일 싫어했던 말이 종교와 관련된 말들이었어요. 예전 동생 간호할때는 천주교를 굳게 믿고 있었음에도 종교라는 탈을 쓰고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믿음에 대한 강요와 말들은 볼쾌할 정도였거든요. 그 분의 마음이 또 그런 의도까지는 아닌걸 아니까 그냥 흘려듣는 식으로 넘기기는 했지만 그런게 또 지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더라구요. 지금도 그런 말들을 자주 듣게 되는데, 환자는 누가 기도해준다 하면 이제 진저리를 치더라구요, 병과 믿음을 연결시키는 건 환자 입장에서는 잔혹하게만 들려요 ㅠㅠ
Eins
“ 자신의 수치를 스스로 숨기지 못하는 타인의 무방비와 불능을 목격하는 순간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치료 절차에 따르는 환자라서, 즉 환자 역할을 잘 수행하는 환자라서 쓸데없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잘 갖추어진 의료 시스템과 이웃들의 조력을 받더라도, 타인의 불능을 목격하면서 수치스러워하고 타인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저것이 나의 미래가 되지 않을지 점치는 일은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 또한 환자 역할에 해당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p.55,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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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s
대상으로 말해지는, 내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말해지는 돌 봄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가 말하는 돌봄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생각을 했어요. 돌봄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권력차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환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그 최초의 필요성이랄지, 발생 계기랄지, 그들과 환자 자신이 어떻게 관계맺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Comes
“ 많은 피해 생존자가 자신을 고립시키고 억누르는 세간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 실은 폭력으로 쌓아 올린 성체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선과 에너지로 사건 이후를 살아나간다(32p), '그 일'을 한 덕분에 극복 서사로 환원되지도 않고, 극복 서사가 될 수도 없는 회복을 목격할 수 있었다.(33p) ”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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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s
환자에게도 이상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우리 사회에서 저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써내려 간 원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1장을 읽어내려 갔는데요, 저자가 활동가로서 만난 사람들/그들을 도운 경험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동아시아
이후의 내용에서 어느 정도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궁금하신 점은 작가님께 질문하셔도 좋고요!
김도미
말씀하신 대로 활동가로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 내밀하고 낙인 찍히기 쉬운 이야기의 청자로 머물렀던 경험, 연대의 의미를 배운 경험들이 질병 해석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집단은 평소에 사회에서 남/타 집단은 받지 않는 지시와 질문을 많이 받는 이들이잖아요. 왜 이걸 안해? 왜 저걸 해? 이거 해, 저거 해. 그럴 때에 되돌려 질문하는 것의 힘을 배워나간 시간이 활동가로 일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Comes
1-3.저는...상대방이 나를 응원, 위 로하는 말들은 그냥 흘려듣는 편입니다. 어떠한 고통이든 타인이 진정 공감할 수 없다 여기기에 그들의 선한 마음(이라 믿고)을 고마워할 뿐 이젠 그런 말을 들어도 어떠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타인의 상황에도 어설픈 위로나 조언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요. 어찌 보면 방어 기제일 수도, 소통에 서툴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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