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증정]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D-29
1-1. 청년 시절엔 일, 관계, 건강 등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요새는 그 어떤 단정적인 말도 하기 어렵습니다. 저자가 말했듯 불운도 행운도 운이고 우연에 가깝다는 것에 동감입니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연적인지 매순간 느끼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어요. 사회가 정한 몇 안되는 기준에 맞추어야 하지요. 저자가 말하는 환자 역할까지 포함해서요. 우리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기 두려워 합니다. 사람들은 ‘정상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것을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정상성의 기준 자체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으니까요.
아직 초반밖에 안 읽었지만, 이 책도 올해의 책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사유가 제가 살면서 생각했던/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세밀하게 짚어주시더라고요. 이 책도 가능하면 꼭 제가 하는 독서모임에서 모임책으로 추천하려고요.
올해의 책! 입소문 부탁드립니다ㅎㅎ
투병중인 애인에게 조금씩 읽어주고 있어요. 일반적인 책들은 함께 조금 읽어도 시큰둥해하거나 울기도 해서 요즘은 저 혼자만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애인이 평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게 많아 공감가는게 많을 것 같아 조금 읽어줘봤는데 무척 좋아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잘 썼지, 서로 감탄을 쏟아내면서 조금씩 읽어가는 중입니다. 어찌 이리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은지 ㅜㅜ 나중에 다른 사람 병문안 갈 일이 생기면 꼭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을 찾았다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어요. ㅎㅎ 암환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통제하려는 책이 아니고, 극복서사도 아니면서도 환자라는 당사자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보기드문 귀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애인도 일하는 곳에는 암걸렸다는 걸 밝히지 않았어요. 친한 언니가 절대 밝히지 말라고 했다 하더라구요. 배려해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고요. 전 너무 지나친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러길 잘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 언니가 정말 현명했구나 감사해하고 있는데, 그 정도로 직업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하는게 맞더라구요 ㅠㅠ 그런데 역설적으로 놀라운게 정말 암 경험자가 사회에 많다는 거였어요. 가발을 쓰거나 두건을 쓰고 다니면 경험자끼리는 다 알아보게 되더라구요, 얼마전 놀란 건 새로운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전해주러 온 분이 애인을 보고는 갑자기 자신도 대장암에 걸려 오래 투병했었다며 힘내라고 말을 해주고 가시는데, 뭔지모를 찡함이 있더라구요. 이렇게 경험자들은 서로서로 알아보고 배려해주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태도가 있지만 사회에서는 왜 불리하게 작용하는게 남아있는지 ㅜㅠ
비밀을품어요님이 애인분께 책을 읽어주시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혼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들려주신 에피소드에 저도 무척 공감을 했는데요, ‘병자는 병자를 알아본다’는 사실이요! 저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빡빡머리인 채로 이사를 왔는데요. 이웃분들이 말씀은 안하셔도 다 알아보시더라고요. 오며가며 마주칠 때마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하며 건네주시는 인사가 참 좋았는데, 대체로 암경험이 있거나 암경험이 있는 지인을 둔 분들이셨어요. 아프고나니 동병상련이라는 사자성어가 그렇게 가슴에 폭 박힐 수가 없는데요, 진부하고 두루뭉술한 표현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고 아마도 실현불가능하긴 하지만) ‘동병상련을 위한 시도’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아픈 사람이 사회에서 충분히 지지받으며 회복하고 일하고, 또 일하지 않을 수 있는 문화적/제도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밑불은 어쩌면 소박한 진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보호주의는 요보호 대상을 보호하지 않는다. 대상자를 선별하고 통제한다. 아픈 몸을 보호한다는 논리는 정말로 아픈 몸을 지켜준다고 할 수 있을까. 암환자는 암환자에게 덧붙은 수많은 염려와 금기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실제로 받고 있을까.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1부 지 쪼대로 아플 자유 p.94-95, 김도미 지음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어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이 던지는 말이 주인공에게는 통제로 여겨지는 장면을 보면서 한 사회 이슈가 떠올랐어요.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잔소리/조언/충고, 본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수행되는 연인의 충고를 빙자한 가스라이팅 등 친밀한 애정 관계에 있는 사람 간의 통제가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행해지는 통제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죠. 이전에 비해 통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식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널 위해서야 쪽의 편을 더 들어주고 있는 사회 풍토에 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한 잔의 자유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됩니다. 학교 폭력이 이슈가 되었을 때 학교 폭력의 기준을 정의해준 말이 있어요. “당하는 사람도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장난이다.” 이 말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듣는 사람이 간섭이라고 생각하면 간섭이고, 통제라고 생각하면 통제인 것이죠.
또 글을 읽다보니 “아픈 사람에게 걱정을 표하는 언어를 어떻게 바꿔야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태까지 제가 봐온 걱정의 말들은 책에서 언급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사실 그 사람도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을 텐데 말이에요. 어쩌면 저보다 더 간절하게, 제가 제시한 방법을 저보다 먼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고민 끝에 찾은 답은 “그냥 지켜봐주기”에요. 어린 자녀가 걷는 법을 익히기 위해 수없이 넘어졌을 때 다그치지 않고 그저 옆에서 바라보며 응원해주었던 우리의 부모님들처럼. 환자가 된 내 지인이 스스로 병을 이겨내거나 같이 살아가기 위해 시행착오들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봐주면 어떨까 싶어요. 그저 그렇게 있다가 지쳐서 응원이 필요할 때 그때 나서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환자가 되기 전 그랬던 것처럼.
1부에서 가장 놀라우면서도 좋았던 부분은 '불결하고 불경한 몸' 이었어요. 관련된 여러 책들을 그래도 많이 읽어왔다고 여기는데, 섹스에 대해서 이렇게 솔직하면서도 정면으로 부딪히며 소리내는 책은 사통맥자가 처음이자 유일하지 않나 싶어요. (막상 저희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어서 아주 반갑게 읽었음에도 겨우 이런 댓글에서조차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러하네요) 심지어 해외도서들에서도 섹스에 대한 부분은 평소처럼 해도 된다는 말과 너무 건조해서 통증이 있다면 윤활제를 같이 사용하라는 말 정도로 짧은 챕터로만 나와있는게 전부였었거든요. 그래서 무척이나 소중하면서도 암의 세계에 진입한 사람들에게 꼭 읽히게 해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욕망을 과감히 표출'함으로써 '자유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부분이란 느낌이었어요. '서로를 오염시키고 오염당하'는 위험을 넘어서 함께 상처와 기쁨과 쾌락을 누리며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다는 선언같은 말은 굉장했습니다. 우리도 욕망하는 동일한 인간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1-2. 인상 깊은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애초에 인과율과 합리성, 각 잡힌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려고 운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p30, 김도미 지음
여전히 고통으로 사람이 성숙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망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고통은 삶을 바라보는 렌즈의 곡률을 바꾼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p55, 김도미 지음
보호주의는 요보호 대상을 보호하지 않는다. 대상자를 선별하고 통제한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1부 지 쪼대로 아플 자유 p.94, 김도미 지음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건강한 데다 말까지 많은 그들은 병자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알려주고, 무얼 해보라거나 먹어보라는 이야기도 잘한다. 무얼 하지 말라거나 먹지 말라는 말도 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다른 병자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염려인지 핀잔인지도 섞어가면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여러 풍문을 중언부언 늘어놓다가 사라진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내 잘못도 남의 잘못도 없이 이 질병이 내 앞에 그저 도착했다면, 그 질병 또한 이유 없이도 자연스러운 내 몫 아닐까. 엄습하는 공포로 잠이 오지 않았던 진단일 밤, 나는 왜 하필 나냐는 의문 대신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죽음을 떠올렸다. 동생과 나는 서로의 등을 눈물로 적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치료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의 최후를 상상하고 눈물짓는 식의 감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새로운 일상이 도래했고, 죽음이 묵음 처리되는 하루에 익숙해졌고, 그래서 바빠졌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앞으로 어떻게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실의에 잠긴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서랍론을 이야기하곤 했다. 없어질 일은 아니지만, 잘 정리해 둘 날이 올 것이며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 어쩌면 서랍론은 가끔 의미 있게 꺼내볼 정도가 된 내 폭력 피해 경험에 국한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치료를 마치고 병이 낫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계속 잘 닫히지도 않는 서랍을 이고 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절망 너머의 삶은, 깔끔하게 정돈된 일상과 난처하고 곤궁한 처지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편이 맞았던 것 같다. 헤벌레 열려 있는 서랍도 내 모양이려니, 덜그럭거리는 소음을 견디면서.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서랍론이 무척 흥미로우면서 '없어질 일은 아니지만 잘 정리해둘 날이 올 것이며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라는 문장에서 시큰해져서 몇 번이나 밑줄 그었던 부분입니다. 서랍론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었는데, 어떻게 서랍으로 연관시켜서 말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도미 작가님의 지금 서랍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치료 마치고 난 서랍은 어떤 모양일까요.
엄연히 있었던 사건이 사라지지는 않지요, 외면을 할 수는 있지만요. 결국 회복한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위협한 그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인생의 한페이지로 통합해 넣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서랍에 물건을 정리해 넣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피해자가 비난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성주의 인식론은 매우 중요하지요. 성폭력과 같은 젠더 기반 폭력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하게 ‘몸’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질병의 경우에도 제 해석의 도구는 같았습니다. 질병과 관련하여 저의 서랍은… 표준치료를 마쳤을 뿐, (사통맥자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암경험과 항암 문화의 자장이란 치료 종결과 함께 똑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요. 잘 닫힌 것 같다가 스르르 나왔다가 덜그럭 거렸다가 또 닫혔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3.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건넨 말들이 오히려 지나친 간섭이나 통제로 느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질병과 관련된 경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워밍업 질문에 답하신 분이 많지 않아서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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