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그게 바로 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쉽게 돈을 벌면 거기서 헤어나와 옷가게 종업원을 해도 금방 다시 노래방으로 돌아가기 쉽다. 그게 더 그에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계속 쓰면 그애게 그게 습관으로 달라붙고 그것은 곧 그의 인생이 된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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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다. 11월 날씨가 이럽게 덥다니. 기후 위기가 큰일이다. 다 인간들의 자업자득이다. 욕망에만 충실하고 절제를 몰라 이렇게 된 것이다.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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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파악과 대안
나는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들이 살면서 만들어놓은 세상에 대해서도 흥미가 많다.
그리고는 대안으로 그들, 아니 인간은 나도 포함되니
뭘 하라고(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바람직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의 대안을 제시하려면 현상을 정확히 통찰해야 한다.
현상을 정확히 진단한 다음에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이게 순서다.
인간과 그들이 꾸미는 세상에 대해
관심과 흥미가 넘치니 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도 썼고 그에 대한 것을 더 깊이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 관련된 책을 끝없이 팔 것이다.
지금은 그걸 하고 싶다.
아마 지금 같아선 계속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먼저 1951년 4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나 향년 66세로
2017년 9월에 타계한 연세대 국문과 교수인
마광수의 『인간에 대하여』를 먼저 읽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주류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데
나는 이런 지식인의 반골 기질을 아주 좋아한다.
아마도 내가 그런 성향이 강해 그럴 것이다.
인간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게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나와 비슷해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저서를 많이 읽고 인간과 세상의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동으로 내 나름대로
대안이 도출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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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가 아닌 남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씩은 다 갖고 있다고 본다. 사회가 있기 때문에 참는 것뿐이다. 각자의 성적 취향이 달라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게 이상한 성적인 욕구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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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좋아했던 여자가 자기 때문에 상처를 바다 망가지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엄청나게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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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 여자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평생을 증오로 살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도 같이 망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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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는 인간도 있고 저렇게 사는 인간도 있다. 하지만 그게 자기가 가진 것의 인생인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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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것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즐겨 읽으면서 그가
늘 자기 글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상실과 고독과 허무에 대해.
그걸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면.
상실(喪失),
자기 판에서 놀지 못하고 남이 만든 판에서 조종당하며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어, 식물처럼 살아간다는 느낌.
침대의 크기에 내 몸이 부자연스럽게 맞춰지는 꼴이다.
내가 진정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뭔지 그걸
점점 잃어가고 있다.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가장 후회스러운 게
하고 싶었던 걸 못 한 거라 하잖은가.
그래 버킷리스트도 만들어 하나하나 지워가지만 과연
그것도 진정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자신부터 아는 것인데.
자기만의 고유한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
자기를 남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정체성의 망실이다.
중요한 것은 내팽개치고 엉뚱한 짓만 하는 것이다.
꿈을 잃어가고-아니면 꿈이 같고-획일화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아무나 중 하나다.
그리하여 쉽게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
고도 자본주의에서 자신은 주체로 산다고 하지만
실은 그 무지막지한 체제에서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어
본래의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자기 실존(實存)이 점점 희미해진다.
고독(孤獨),
실존이 상실된 삶을 갈구하고 실제 거기에 묻혀 사니
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닌데.”라며,
주류에서 벗어나려 할 즈음 고독이 나를 엄습한다.
유쾌하지 않은 외로움이다.
고독도 깨달아야 찾아온다.
자신이 그런 것에, 이미 포위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사회학자 리스먼이 말한 것처럼 현재는 ‘군중 속의 고독’이다.
파편화되어 있고 각자도생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주류에 편입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소외되어
밀려난 개인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그들은 자신이 만든 이상(세계)으로 나아가는데
고독은 필연적이고 그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전자는 수동적이고, 후자는 자발적인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고독은 후자다.
고립되지만 나름 평안한 세계로 가는 과정에 고독은 필수다.
고통스럽지 않다.
뭔가 고통 속의 희열 같은 곳이고 안정된 곳이다.
발목을 약간 삐었을 때 파스를 바르고, 나른하고 노곤한
몸에서 오는 작은 희열 속에 달콤한 잠에 빠지는 그런 세계.
고통이 작은 희열과 쾌락을 낳는다.
이것만이 가장 긍정적이다.
허무의 고독에 살면 어느 정도는 나를 잃는 상실에서
벗어날 것 같은, 어떤 작은 불빛이
내 앞에서 저만치 어른거린다.
기대만 부푼 눈부신 현실이 아니라
다소 어둑한 삶 속에서의 고독이다.
거기엔 적어도 희망 고문은 자리 잡지 못한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 속이진 않는다.
그런 건 과장되게 주장하는 사람만이 튼튼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 있어야 자신에 대한 성찰도 가능하다.
그걸 찾아내 다른 게 아니라 그걸 향해 노력하는 거다.
“노력 없이는 이루어지는 게 없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향한 끝없는 노력.
그래야만 좀 허무의 고독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허무 속의 고독이면 그런대로 괜찮다.
허무(虛無),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현실에선 그걸 구현하기
만만치 않지만, 인간은 그 태생이, 아니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소멸하고
새로운 것이 반드시 그걸 대체하며 소생하는,
끝없이 고정된 건 없고 늘 변화가 오고 그것만이
세상의 진리라는 그런 뼈아픈 현실이 있고야 마는
진리를 깨달을 때 비로소 오는, 다 부질없음과
의미와 가치 없음의 허무.
내가 살아 있어 의식이 있는 동안만은 그게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되지만 결국 전체로 보면 하나의
망망대해의 작은 물결과 티끌, 먼지에 불과하다는 진리.
때가 되면 나는 반드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모래에 불과하고 남는 건 흔적 없는 사막뿐.
영겁의 시간 속에 나는 한낱 찰나에 불과하다.
이걸 생각하면 한없이 초라한 존재이고 그래
결국 부질없는 것이고, 세계에 대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 허무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낼 수밖에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어찌 보면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의 사명을.
그 속에서 작은 희열의 고독을 즐기며.
티끌 같은 유한 속에서, 내 한계 내에서 나름대로
가장 밝은 빛을 내보이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래도 그나마 허무를 극복하는 한 방법은
자기 상상력을, 자기만의 생각을 남기라고, 그게 결국
모두 사라지고 마는 허무를 조금은 견디는 방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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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이 몸에 좋다고 비싼 게 아니다. 구하기 힘들면 그냥 더 비싼 것이다. 얼굴팩도 얼굴을 더 윤기나게 한다고 비싼 게 아니라 그 재료를 구하기 힘든 게 대개는 더 비싼 경우가 많다. 다 자기들 입장인 것이다, 손님 입장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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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는 여자들만 나온다. 남역도 여자다. 그들은 서로 시기하면서도 뭔가를 향해 간다. 남자들만 전부 다 어리석고 바보스럽게 나온다. 여자들을 위한 드라마다. 여자들의 의리와 우정 같은 거, 그리고 주체성 회복. 우리 고유이 것(판소리)을 고수하고 그게 엄청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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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은 사히적으로 잘 사는 사람에게 다가가려 한다.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에겐 안 그런다.
오히려 그가 내게 다가올까 겁을 낸다.
그리고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옛 친구나 동료들이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좀 사회에서 비켜난 사람들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실은 그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들인데.
이것도 인간의 자기중심주의가 작용해서 그런 것 같다.
자기가 얻을 게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만
다가가는 것이다.
자기가 내 줄 것 같은 사람은 피하면서.
인간은 이렇게 우선은 다 속물이다.
이런 걸 벗어난,
순수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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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라는 걸 언제나 알아야 한다.
사회적 인간보단 동물적 인간이 한 85% 이상은 될 것이다.
동물인데 인간이기 때문에 제도나 법, 관습 같은 것으로
가려진 것에 불과하다.
그거 벗겨지는 순간, 다시 85% 이상인 동물로 언제나
쉽게 환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임을 언제나 깨닫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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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어하는 옛 친구를 만나면 거의 다는 실망을 한다. 그때의 것이 그동안 좋게만 각색되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에다 거품이 많이 낀 것이다. 대개는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이 큰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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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다른 사람을 좋아해
여자들은 같은 여자가 솔직하고 털털하고 약간 개성이 강한
걸크러시 같은 여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자신이 여자라 그걸 가지고 있는 여자를
롤모텔로 생각해 그런 것 같다.
반대로 여자는 여자만의 장점이 있는데
그런 걸 가진 여자를 남자들이 더 좋아한다.
남자 같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다운 여자를.
남자는 그런 걸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는 너무 여성스럽기만 한 여자를 별로로 여기고
그 반대를 좋아하는 것도, 자기에겐 그런 게 없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없는 걸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한 건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진리 같기도 하다.
미지에 대한 어떤 판타지.
이런 걸 보면서 새삼 생각한다.
자기 고유의 것을 무시 말고 차라리 잘 갈고 닦으라고,
그래야만 자신도 그 속에서 행복하고, 남도 자기를 더
매력적으로 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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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수준이 그러니까 배우자도 거기에 맞는 거고 책사라는 것도 그 수준에 딱 맞게 그런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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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 같은 가까이 있는 인간이 더 많이 진실을 알고 있을 수 있다. 이들의 증언은 너무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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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를 모르면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 물론 문맥으로 그 말의 뜻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정확한 뉘앙스를 가진 뜻은 모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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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는 형부가 처제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섹스를 해도 그것에 대헌 대중의 발표에선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로 반드시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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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 게 재미가 없고 심심할 때 정말 미치게 몸이 나른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낮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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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재능이 있거나 그것에 대해 끝없은 열정이 없으면 끝까지 그걸 갖고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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