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내 다리와 등의 모양, 털빛, 눈과 귀의 각도 등을 따져가며 품평하거나 우쭐거리는 인간도 있지만 나는 내 친구의 그런 부족함도 인정한다. 그게 친구니까.
그림을 삼킨 개 p.7, 최경화 지음
이 문장 너무 좋아서 저도 표시해 놨어요. 부족함도 인정한다, 그게 친구니까.. 참 좋더라구요.
표지의 색 배합이나 도형의 구성이 아기자기해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한껏 들떠 막 풀으려고 하는 선물 상자의 포장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표지의 주인공인 흰 털 개의 검은 눈동자에 (화가만이 아니라) 저도 눈맞춤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대각선 윗쪽의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손에 시선이 머물게 되네요. 그 개를 의자에 앉힌 손이 아닐까 상상하면서요. 첫 페이지의 '머리부터'를 보고 '발끝까지'로 끝이 나겠구나 했는데, 아차차 '꼬리까지'군요. 개형 인간이 아닌지라, 인간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개의 시선이 되는 게 저에겐 익숙하지 않네요. ㅎㅎ 개가 주어가 되는 '나는 개'를 읽으며, 개와 인간의 관계가 '친구'인 건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반려견을 자녀처럼 대하는 사람들만 보아온 탓이겠죠. 친구 관계로서의 개와 인간, 가족 관계로서의 개와 인간은 사뭇 다를 것 같다는 짐작도 해보게 됩니다. '차례'의 구성이 도판을 보는 듯하여,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의자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나중에 나옵니다. 좀 안쓰런 얘기가 있어요. 저는 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개엄마나 개언니, 개누나 꼭 그런 관계명이 있어야만 가족은 아닐테지요)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리고 호모사피엔스라는 형제 없는 종에게 개처럼 가까운 사이가 또 있을까요? 그래서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썼습니다.
저절로 명상 상태가 된다는 것이 개와 시간 보내기와 그림 들여다보기의 공통점이다. 순간을 즐기게 된다.
그림을 삼킨 개 5쪽, 최경화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림을 삼킨 개> 두번째 날은 1장, <기억하는 개 아르고스> 입니다. 망각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럼에도 기다린다는 것, 기다리는 마음을 읽은 조각가, 망각의 대상이 된 존재를 불러냈지만 자신도 망각의 대상이 된 조각가, 등을 이야기하면서 어쩌면 잊는게 디폴트고 기억한다는 게 매우 독특한 활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헐렁한 미술사학자로서의 마음은, 아, 언제까지 다빈치와 피카소와 반고흐 타령만 할 건가? 이런 삐딱한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이번 책에선 개가 등장하는 그림 다룬다는 핑계로 많이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룰 수 있어서 내심 기뻤어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저처럼 미술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면, 덜 알려진 그림도 많이 소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진 않아요. 내가 왜 그런 그림까지 봐야하냐, 하는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죠. 본인이 아는 그림이 나올 때 더 신나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편집자 선생님의 "유명한 그림이 더 있어야 됩니다!"라는 말씀에 반항 많이 안하고 유명한 그림도 추가했답니다.
"오디세이아"라는 책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그 책에서 "아르고스"라는 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책도 그리고 조각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아르고스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의 작품은 기회가 되면 정말 실제로 보고 싶어요. 볼 수 있는 날이 모두에게 오기를
엄청난 분량의 오디세이아에서 아르고스 얘기가 너무 짧죠. 오디세이아가 구전되던 시절에도 그렇게 주인을 기다리다가 죽어버린 개들 얘기가 심심찮게 있었으니까 이렇게 시인의 이야기 풀 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딱히 스토리에 영향 주지 않는 이야기니까 어쩌면 구전되면서 덧붙여진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처음 구전에 아르고스 이야기를 넣은 음유시인은 저같은 개과 사람은 아닐까 또 상상의 나래를.
기억하는 개 아르고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유명한? 일본의 개가 떠올랐어요. 하치이야기, 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개의 이야기요.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마음에 대해서도 상상해보고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내가 개 였다면 어땠을까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 기다리는 개로는 에딘버러의 보비도 유명하죠.. 주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나중에 주인하고 같은 공동묘지에 묻혔는데(당시 풍습으로 안될 일이었는데-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워낙 그 동네 사람들이 보비 사연을 다 알아서 특별히 거기 매장해줬다고 하더라구요), 거기 가보면 보비 묘비석 앞엔 사람들이 갖다놓은 나무 작대기들이 쌓여있어요 ^^
인트로가 꽤나 강렬했어요 뭔가 애잔함을 두는 아르고스 이야기인데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에 넣으셨네요 1장을 읽고 나니 정말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르고스였네요 20년간 주인을 기다리고 알아보는 아르고스와 재회를 예상하지 못한 인간의 자괴감에 뭔가 숙연해졌어요
말랑하고 애잔한 이야기일수록 앞에 넣어야죠 ^^ 우리 아르고스 짠하죠? ㅠㅠ
하루 한편씩 읽게 되는 진행이 참 좋군요. 아침일찍 한편을 천천히 읽게 되니 감동이 더합니다. 작품 제목에 대한 페이지에서는 울컥한 느낌이 들더군요. 개들도 분명 자신의 삶에 주인공 일텐데, 사람만이 남는 것은 개의 입장에서 억울한 일 같습니다. 아르고스가 눈이 셋 달린 거인 괴물로 알고 있었는데 개의 이름이라고 해서 다시 찾아보니, 눈이 많이 있어서 잘 지킨다는 의미로 목동의 수호자나 소치기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아르고스는 동명이인, 동명이견 등 꽤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일 많이 알려진 게 말씀하신 눈 여럿 달린 괴물이지만요.
방 닫힌 그믐에 가서 눈팅을 하거나, 벽돌 책 읽기를 하다가 분량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중도탈락한 경험이 있어요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그믐모임은 거의 처음인데 자고 일어나서 커다란 선물을 받은 크리스마스날 아침 같아요 여러 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는것도 재밌고 책에 없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신나요 줌 미팅이나 현장 북토크가 아닌 한템포 느린 그믐시스템도 재미가 있네요. 20년 만에 만난 친구의 체취를 기억한 아르고스의 모습이 먹먹하게 해요 또 아는척 할수없어서 멈칫하는 오디세우스를 보니 예전에 읽었던 [곰탕]이 생각났어요 뒤로 갈수록 황당한 전개에 좀 힘이 빠졌지만... 얼굴이 바뀐.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아버지와 만난 두사람이야기 였는데 서로 아는척 할수 없어서 마음아파하는 장면이 한동안 마음에 있었거든요 감정을 드러낼수 없을때 제일 힘든거 같아요. 작가님의 말씀대로 잊혀진 개와 잊혀진 화가를 짝지어 준것도 , 그들에게 한 페이지 내준것도 마음 따뜻하게 해주네요
방 닫힌 그믐 방에서의 눈팅이라.. 뭔가 애잔해요 ㅎㅎㅎ 곰탕 재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 못읽었거든요, 궁금합니다~
~우리가 동물을 바라보는 가장 상냥한 시선이 대리석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사냥하는 거친 야수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 개와 연약하면서도 장난꾸러기인 강아지의 다정한 순간을 조각해놓으면 누구라도 이들에게 인간적인 특성을 대입하게 되니 말이다.
그림을 삼킨 개 p19, 최경화 지음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조지프 고트의 대리석상 사진을 보며 다시 오뒷세이아를 들춰봅니다. “ 그때 개 한 마리가 누워 있다가 머리를 들고 귀를 쫑긋 세우니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의 개 아르고스였다. (…) 지금 그 개는 오뒷세우스가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꼬리치며 두 귀를 내렸으나 주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힘이 없었다. (…) 이십 년 만에 주인 오뒷세우스를 다시 보는 바로 그 순간 검은 죽음의 운명이 그 개를 덮쳤다.
고트가 구현한 노견 아르고스의 복실복실한 털에 그저 감탄하게 됩니다. 이러한 섬세함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힘과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기다리는 자가 있기에 돌아온다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기다리는 자가 있으니까 돌아오는 게 가능하다. 오... 시적이에요.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만났지만 우리 아르고스는 ㅠㅠ 제가 또 개 신파에 빠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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