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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에 빠져들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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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이 책의 1부를 다 읽었어요. 1부까지 읽고 나니 '빈센트에 빠져들기' 여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빈센트, 제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빈센트를 저자가 확인시켜줘서 더욱 행복한 독서가 계속되고 있네요.
먼저, 빈센트는 흔히 '광기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작가는 빈센트가 아팠던 시간보다 건강했던 시간이 훨씬 길었고, "빈센트의 편지를 보면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정황이 압도적으로 많다"(p. 75)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회고를 빌어, 빈센트가 건강하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보기 좋은 미소를 띤 당당한 풍채의 남자였음을 알려주지요. 저자는 "빈센트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복한 삶보다 예술의 광기를 선택했다는 시각도 선입견"(p. 76)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빈센트가 "행복한 삶과 위대한 예술 사이에서 양자택일을"(p. 76) 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행복을 꿈꾸는 소박한 사람이었음을,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려줍니다.
오해와 무지, 의심의 시선이 빈센트를 감옥의 쇠창살처럼 휘감고 있었지만, 빈센트는 2년간 무전 여행을 하면서 가난하고 비천한 노동자들의 삶을 접하고 "가장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p. 78) 그들에게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뜨거운 감동과 비장미를 느끼고 이들의 삶을 진정한 자신만의 색채로 그려냅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 중 대표적인 작품이 <감자 먹는 사람들>인데요, 저는 20대 때 이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도 그랬던 듯 이 그림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자칫 칙칙하고 어둡게만 느껴질 수 있는 사물들 안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포착해내는 날카로운 관찰력, 화려한 인공적인 색감이 아니라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는 소박한 색감 속에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능력, 정지된 단 하나의 장면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그린 서사적 힘까지. 이 그림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몸짓 속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의 파란만장한 굴곡까지 녹여내는 야심찬 기획이 담겨있다"(p. 86)고 합니다. 그리고 "희미한 등불 아래 감자와 차 한잔으로 저녁 한 끼를 해결하는 가난한 가족의 모습은 '무엇이 이 세상을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가온다"(p. 86)고 합니다. 저자가 이처럼 명징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한 해석을 풀어내니, 제가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느꼈던 충격과 감동의 실체가 이제야 손에 잡히는 듯합니다. 빈센트의 흔적을 따라가는 작가의 여정을 함께하면서 저도 다음 발걸음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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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tato Eaters>, 1885, oil on canvas, 82 x 114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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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2부: 관계의 상처에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다 읽었습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다른 이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늘 실패하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상처 받았던 빈센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적 원근법은 물론 사회적 원근법, 심리적 원근법 조절에도 유난히 서툴렀던"(p. 95) 빈센트가 오히려 이 서툶으로 인해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대상과 하나가 되려는 듯이 맹렬히 침투해 들어가는"(p. 95) 자신만의 시선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대상과 주체가 합일되는 엄청난 '가까움'"(p. 96)으로 빈센트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해바라기의 영혼 깊숙이 침투할 것 같은 시선, 붓꽃의 꽃술 속으로 뚫어갈 것 같은 강렬한 시선"(p. 95)을 느낄 수 있는 <해바라기>나 <붓꽃>,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울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묘사하며 "한 사람의 슬픔을 넘어 '슬픔 자체의 맨 얼굴을 눈부시게 그려낸"(p. 99) <영원의 문>, "한 여인의 고통받는 육체를 그림으로써 누드가 아닌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를 그린"(p. 103) <슬픔> 등을 그 예로 듭니다. 그러면서 빈센트를 "한 사람의 고뇌와 영혼까지 그려내는 마음의 눈"(p. 100)을 가진 화가로 묘사합니다.
이어, 저자는 돈이 없어 모델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을 인물화의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던 빈센트가 그렸던 수많은 자화상에서 "무언가 간절히 호소하는 눈빛, 내 마음을 반드시 전하고야 말겠다는 절실한 눈빛"(p. 139)을 읽어내고, "비록 하염없는 갈망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자의 간절함. 빈센트의 자화상은 바로 그런 격정과 견딤의 몸짓을 담고 있다"(p. 139)고 씁니다. 그리고 빈센트가 고갱과의 결별 이후 귀에 붕대를 감은 채 그린 자화상에 대해서는 "'잡지 못할 것은 내버려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는 듯한 성숙함과 여유로움", "지극한 고통 뒤에 찾아오는 뜻밖의 해탈 같은 자유로움"(p. 153)이 배어 있다고 씁니다. 그러면서 이 챕터는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소통의 불빛'을 찾지 못한 빈센트의 처절한 외로움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됩니다.
2부를 다 읽고 나니, 그토록 이해받길 원했으나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빈센트의 고독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돈 맥클린은 자신의 노래 <빈센트>에서 "Now I understand / What you tried to say to me"라고 노래했죠. 천국에 있을 빈센트에게 "당신을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을 이제는 알겠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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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Eternity's Gate (Sorrowing Old Man)>, 1890, oil on canvas, 81 x 65 cm,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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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3부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길"의 반까지 읽었어요. 빈센트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에는 늘 조건이 붙어 있었다고 해요. 저자는 "어린 빈센트에게 인생은 어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비밀이 열리는 신비와 미궁의 세계"(p. 163)였지만, 빈센트의 부모는 빈센트의 창조성을 긍정하지 않았고 "빈센트가 '버려진 아이'라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빈센트를 정서적으로 고립시켰다"(p. 163)고 씁니다. 특히, 결벽주의적 심성을 지닌 어머니 아나는 자식들이 다른 계급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집에서만 놀게 할 정도로, 자식들에게 좀처럼 자유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는 원리 원칙에만 충실할 뿐 예술적 열정이나 예측 불가능한 삶을 싫어하고 낮게 평가하는 사람이었죠. 결국 빈센트의 부모는 다른 자식들과 달리 "끊임없이 어머니가 주의 깊게 쌓아둔 금지의 벽을"(p. 163) 뛰어넘는 빈센트를 열한 살 나이에 기숙학교에 버리다시피하고 방치하지요. 빈센트는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이 같은 뼈아픈 고립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빈센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듬다 보면, 가만히 어린 시절의 빈센트에게 다가가 붉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p. 164)고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도 마찬가지 충동을 느꼈어요. 운 나쁘게도 조건없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빈센트는 평생 마음에 큰 구멍을 안고 살면서도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갈구하면서 이해받지 못한다는 절망과 고립감으로 고통 받았지요. 빈센트처럼 남들보다 예민하고 열정적인 감수성을 타고난 아이를 부모가 냉정하게 양육했을 때 아이가 평생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가는 정말 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입니다.
빈센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서술 다음에는 빈센트가 책읽기를 무척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읽은 책에 대해 쓴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저자는 "빈센트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지식을 키웠고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길렀다"(p. 179)고 쓰지요. 그래서 빈센트의 작품들이 이미지를 넘어서 그토록 서사적 감동을 주나 봅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빈센트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더욱 더 빈센트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빈센트에 빠져드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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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es of French Novels>, 1887, oil on canvas, 54.4 x 73.6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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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3부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길"을 다 읽었어요. 이 부분에서 저자는 사회생활에 서툴렀던 빈센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빈센트는 신학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규칙에 순응하거나 윗사람에게 복종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파리 시절에는 유행에 타협하지 않았으며 누구의 논평에도 순응하지 않았고 어떤 학파나 예술 사조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지요. 하지만 빈센트는 쓰라린 외로움 속에서 자신만의 창조성을 꽃피웁니다. 아카데미 미술다운 차분함이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순간적인 직관이 흘러넘치는, 빈센트 특유의 “물감이 뚝뚝 흘러내리는”(p. 201) 개성적인 그림을 그려내지요. 파리에서 빈센트는 “다른 화가나 유행에 따르지 않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나만의 차이와 개별성을 발견”(p. 205)한 것입니다. 특히, 이 시절 그린 <탕기 영감의 초상>에서 볼 수 있듯이 빈센트는 “자연의 색채가 아니라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격정을 표현하는 색채를”(p. 203) 발견해 냈습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나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어울리는 색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p. 212)라고 말합니다.
결국 빈센트는 유명한 화가들, 대단한 평론가들이 와글대는 파리를 떠나 아를과 생레미를 비롯한 프로방스의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사람과 사물의 실루엣과 색채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p. 219)하고 “붉은색과 초록색, 노란색과 파란색 등의 보색대비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내면의 빛을 드러내는 사물들을”(p. 220) 그려내며 "지난날의 집착과 부담으로부터 벗어나"(p. 212)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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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4부 “내게 보이는 색깔로 세상을 그리는 일”의 네 번째 글까지 읽었어요. 이 부분에서 저자는 빈센트가 어떻게 천신만고 끝에 아를에 정착해 자신이 숭앙하고 모사하던 화가 밀레를 넘어서는 자신만의, “가장 빈세트적인” 농촌화를 그려내게 되었는지 말해줍니다. 아를에서 빈센트는 “도시에서 ‘화가로서의 자신’을 매번 증명해야 하는 고통”(p. 229)에서 벗어나, 도시에는 없고 농촌에는 있는 것, 바로 “자신이 뿌린 씨앗을 자신의 힘으로 가꾸고, 보살피고, 마침내 거두는 농부의 헌신적인 삶”(p. 229)을 발견해내고 이를 화폭에 옮깁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씨 뿌리는 사람>이죠. 이 작품에 대해 저자는 “<씨 뿌리는 사람>의 자세는 밀레에게서 빌려왔지만, 그것 외에 특히 ‘색채’는 가히 ‘빈센트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향한 노스탤지어, 농촌의 소박한 삶을 바라보며 느낀 감동과 경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매일 투철하게 고민하며 마치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 이 모든 감정과 열망, 이상이 이 그림에 녹아있다.”(p. 231)고 씁니다. 이 작품은 힘겨웠던 제 젊은 날에 제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 그림이었기에 저는 이 책에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자가 “빈센트가 그린 <씨 뿌리는 사람>처럼 내 손으로 가꾸고, 내 손으로 거둘 수 있는 꿈에만 집중하고 싶어진다.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을 정도의 꿈만을 내 영혼의 밭에 뿌리고 싶어진다.”(p. 233)고 쓴 문장에 공감, 또 공감하면서요. 이 부분에서 제 영혼이 빈센트와 저자의 영혼에 공명(resonance)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저자가 <씨 뿌리는 사람>을 보고 느낀 대로, 저도 이제 “내 손으로 가꾸고, 내 손으로 거둘 수 있는 꿈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20대 때 제 자취방 한 벽면을 차지했던 <씨 뿌리는 사람> 아트포스터를 다시 꺼내 걸고 바라보면서 빈센트의 영혼을 불러내서 접신하는 주술을 해봐야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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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wer at Sunset>, 1888, oil on canvas, 64 x 80.5cm,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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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4부를 다 읽었어요. 4부의 다섯 번째 글 “행복한 풍경 어디에도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는 제목처럼 이 지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느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 빈센트의 외로운 운명을 서술하고 있어서 특히나 가슴 아픈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저자는 빈센트가 먼발치서 다정한 연인, 부부, 동행자들 등을 관찰하고 그려낸 그림들에 대해 “유독 애잔한 감수성을 풍기는 테마”(p. 261)라고 말합니다. 빈센트는 “자신이 평생 가질 수 없던 반려자를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 (...) 그들만이 느끼는 안정감, 홀로 있기보다는 함께 있기에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의 감정”(p. 261)을 그 같은 테마의 그림들에 녹여냈지요. 저자는 이에 대해 “‘두 사람이 있는 풍경’을 그릴 때마다 빈센트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자각하며 뼈아픈 결핍을 (...) 너무 부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p. 262)을 느꼈을 것이라고 씁니다. 이런 해석을 읽고 난 뒤에 빈센트가 그린 ‘두 사람이 있는 풍경’을 보게 되면, 화폭 너머에서 빈센트가 느꼈을 고독과 소외감이 떠올라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네요.
그 다음 글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희미하게”에서는 저자는 빈센트가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큰 감명을 받은 샤를 도비니의 저택과 빈센트가 그 저택을 그린 그림을 소개합니다. 도비니가 아내와 자신의 절친한 벗 오노레 도미에와 함께 살면서 많은 화가들을 초대하곤 했던 저택이 빈센트의 새로운 이상향이 되었고 빈센트는 테오 가족과도 바로 그런 공동체를 꾸려나가기를 꿈꾸었지만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 무렵 빈센트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외롭게 살아가겠지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늘 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희미하게만 느껴졌을 뿐이에요.”(p. 275)라고 썼습니다. 저자는 빈센트가 이런 상황에서 “오직 그림 속에서 최후의 구원을 꿈꾸고 있었다”(p. 275)고 말합니다. 그리고 빈센트가 그려낸 소용돌이 이미지는 “한없이 회오리치는 슬픔의 얼굴 같기도 하고, 벗어나려고 기를 쓰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처럼 보이기도 하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지라도 기필코 벗어나려는 인간의 안간힘처럼 보이기도 한다”(p. 277)고 씁니다. 빈센트의 소용돌이 그림을 이보다 더 탁월하게 풀이할 수 있을까요? 빈센트의 그림이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고 그토록 감동을 주는 것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유한한 존재이지만 빈센트의 그림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그와 함께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예술이란 그런 ‘발버둥’의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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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73.7 x 92.1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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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5부의 세 번째 글 "아무 조건 없이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것"까지 읽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오베르쉬르우아즈에 정착한 빈센트가 자신의 병을 치유해줄 거라 믿었던 의사 가셰와도 사이가 틀어지고, 새로 가정을 꾸리게 된 동생 테오와도 갈등을 겪으면서 더욱더 외로움과 불안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890년 7월 6일 파리에서 테오의 가족과 한바탕 말다툼을 벌인 뒤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돌아온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네게 짐이 되는 것이, 네가 나를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 느끼는 것이 정말 무서웠어"(p. 292). 가슴 아프게도 이 다툼의 시간이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일까요? 이 시절 빈센트가 그린 그림에서는 "점점 더 멀리 사라져가는 듯한 사람들의 아스라한 뒷모습이"(p. 293) 두드러진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극에 달한 고립감 속에서 "빈센트는 틈날 때마다 이상적인 모자상을 그리기 위해 분투"(p. 310)했다고 합니다. 특히, 빈센트가 룰랭 부인과 아기 마르셀을 그린 그림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따스한 위로의 이미지를 그림에 새겨 넣고"(p. 307) 싶었던 것이라며, 그 "이면에는 한 번도 그런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깊은 좌절감 또한 애잔한 슬픔과 함께 짙게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p. 311)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그림은 빈센트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을 수"(p. 307)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지요. '예술이 우리의 심리적 결핍을 채워주고 우리를 치유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이 빈센트에게도 딱 들어맞네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되었던 빈센트가 그림을 통해서라도,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에만큼은 위로 받았길 바라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 우리를 위로해주는 수많은 작품을 남긴 빈센트에게 새삼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Merci beaucoup, Vinc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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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Madame Augustine Roulin and Baby Marcelle>, 1888, oil on canvas, 92.4 x 73.5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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