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리님의 대화: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오늘까지 4부를 다 읽었어요. 4부의 다섯 번째 글 “행복한 풍경 어디에도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는 제목처럼 이 지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느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 빈센트의 외로운 운명을 서술하고 있어서 특히나 가슴 아픈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저자는 빈센트가 먼발치서 다정한 연인, 부부, 동행자들 등을 관찰하고 그려낸 그림들에 대해 “유독 애잔한 감수성을 풍기는 테마”(p. 261)라고 말합니다. 빈센트는 “자신이 평생 가질 수 없던 반려자를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 (...) 그들만이 느끼는 안정감, 홀로 있기보다는 함께 있기에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의 감정”(p. 261)을 그 같은 테마의 그림들에 녹여냈지요. 저자는 이에 대해 “‘두 사람이 있는 풍경’을 그릴 때마다 빈센트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자각하며 뼈아픈 결핍을 (...) 너무 부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p. 262)을 느꼈을 것이라고 씁니다. 이런 해석을 읽고 난 뒤에 빈센트가 그린 ‘두 사람이 있는 풍경’을 보게 되면, 화폭 너머에서 빈센트가 느꼈을 고독과 소외감이 떠올라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네요.
그 다음 글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희미하게”에서는 저자는 빈센트가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큰 감명을 받은 샤를 도비니의 저택과 빈센트가 그 저택을 그린 그림을 소개합니다. 도비니가 아내와 자신의 절친한 벗 오노레 도미에와 함께 살면서 많은 화가들을 초대하곤 했던 저택이 빈센트의 새로운 이상향이 되었고 빈센트는 테오 가족과도 바로 그런 공동체를 꾸려나가기를 꿈꾸었지만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 무렵 빈센트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외롭게 살아가겠지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늘 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희미하게만 느껴졌을 뿐이에요.”(p. 275)라고 썼습니다. 저자는 빈센트가 이런 상황에서 “오직 그림 속에서 최후의 구원을 꿈꾸고 있었다”(p. 275)고 말합니다. 그리고 빈센트가 그려낸 소용돌이 이미지는 “한없이 회오리치는 슬픔의 얼굴 같기도 하고, 벗어나려고 기를 쓰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처럼 보이기도 하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지라도 기필코 벗어나려는 인간의 안간힘처럼 보이기도 한다”(p. 277)고 씁니다. 빈센트의 소용돌이 그림을 이보다 더 탁월하게 풀이할 수 있을까요? 빈센트의 그림이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고 그토록 감동을 주는 것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유한한 존재이지만 빈센트의 그림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그와 함께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예술이란 그런 ‘발버둥’의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