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그렇게 쓸 수는 없어. 그건 보답이 아니야. 이용하는 거지.」
「맞아. 나는 쓰이기에는 평범하지.」
「아니야. 너는 내가 감히 다루지 못할 진실이야.」
친구가 잠시 망설이다가 시선을 돌리며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쓰이지 않는다는 것도 진실이야.」
<냉담>속의 대화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요. <냉담>에서의 대화에 초점을 맞춰
그믐에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왜 이런 것을 물어봤을까?
왜 이렇게 대답했을까?
도서 <냉담>에서 나온 대화를 곱씹어 봅니다.
더 자세한 책소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270990
냉담 작가노트 무료 받아보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825097
• 매주 정해진 분량을 읽고,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과 자유로운 감상을 공유합니다.
• 편집자가 1주에 한 번 질문을 하고 그에 답하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 어떤 질문이든 환영합니다! 편집자가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 모임 기간: 11/11(월)~12/9(월) 총 4주
─1주 차 11/11~11/17 1부_대화 읽기
─2주 차 11/18~11/24 벽의 틈새_대화 읽기
─3주 차 11/25~12/1 2부_대화 읽기
─4주 차 12/2~12/9 도래한 미래_대화 읽기
◨ 재단 소개
소전문화재단
우리의 일(業)은 사람들이 책을 읽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정신적 작업인 문학을 통해 인간다운 삶에 대한 성찰과 자각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독서를 통하여 사람들이 지극히 좋은 상태(至善)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책 읽기를 통하여 그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독서 장려>를 재단의 업(業)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누구나 인문학과 문학을 곁에 두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담론에 쉽게 참여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 문학과 친구들이란?
문학과친구들은 장편소설 집필 후원 및 출판을 위한 사업입니다.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문학 작품의 탄생을 기대하며 재능 있는 작가들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다립니다.
https://www.instagram.com/sojeonfdn/
✅ 꼭 읽어봐주세요 ✅
- 북클럽에서 나눈 이야기는 소전서가 홍보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재단 애뉴얼북 등)
<냉담>속의 대화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D-29
소전서가모임지기의 말
라아비현
또 참여 합니다
소전서가
@라아비현 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poiein
일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는데 함께 읽을 시간을 다시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전서가
안녕하세요! @poiein 님, 반갑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안녕하세요. <냉담>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냉담> 발행 후 6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호기심과 진지한 관심 덕에 이렇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 발행 이후, <어렵다>는 독자분들의 솔직한 고백(! ^^;;)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쉽거나 익숙한 소설적 흐름이나 스토리 라인이 아니라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모자이크처럼 중첩되고, 문장들은 무겁고, 어찌 보면 괴롭기도하여 쉽게 소화되지 않는 것이죠. 이런 지점에서 독자의 성향이 갈리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독자로서 <설명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상황과 문장을 만나길 즐깁니다. <이래서 내가 소설을 읽는다>라고 느낍니다. 남들이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부분, 쉽게 지나치는 부분 들을 들춰 그 존재를 확인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나만의 개별적인 의문과 감상>들을 한번씩 짚어 봅니다. 그런 순간이 쌓여서 나만의 개별적인 감성과 시선이 생겨 나갑니다. 그런 시선들이 나의 일상적 삶과 연결될 때는 기쁨을 느낍니다.(다독하는 스타일은 아...니죠.... ㅠ_ㅠ)
여기 모이신 분들도 그런 독서 취향들이 아니실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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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냉담> 읽기 모임을 연 결정적 계기는, 독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 <문장이 좋다>라는 감상평 때문이었습니다. 심연으로의 길을 여는 문장들과 그 맥락들의 매력을 알아채 주신 독자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대화>와 <문장>에 집중한 읽기를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차례대로 읽으면서 각자의 감상을 말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소수라서 좋습니다!!> 여기에 들어오신 분들, 저희로서는 정말 특별한 독자분들입니다. poiein, 율리안나J, Greengable, 라아비현, 숀경호 님들의 <냉담>이 궁금합니다.
매주 몇 개의 질문과 (제가 생각하는) 감상 포인트를 제안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과 본인만의 시점을 나눠주시면, 이 모임이 더 풍부해지겠네요. 감사합니다.
P.S.
어제 어떤 독자님께서 <냉담>이 생각난다면서 이 비디오 작품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관계와 대화에 대한 기괴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상직적인 이미지와 움직임들입니다.
<대화의 가능성>(1983, 체코, 11min 15sec)
연출: 얀 슈반크마예르
https://www.youtube.com/watch?v=L-gGpWpra-g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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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1부 기시감>
● 기간: 11월 11일(월)부터 11월 17일(다음주 월)까지
● 범위: 1부(7~126면)를 읽어 주세요.
● 방식: 모든 답글에 제가 댓글을 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글뿐 아니라 다른 독자님들의 글에 자유롭게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제안 3: 아래의 제안 중 <두 개 이상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1. 인상적인 <대화>나 <문장 또는 문단>, <장면>을 짤막하게 공유하고, 어떤 지점이 끌렸는지 알려 주세요.
2. 이해나 공감이 어려운 장면도 공유해 주세요.
3. 본인이 발견한 상징성이 강한 무언가를 소개해 주세요.
예) 초반부에서 언급되는 <기시감>은 내 삶에 중요한 어떤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을 때 내 몸의 감각이 일깨워주는 신호. 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화자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 채 찾아 헤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 도서관에서 흐르는 <쇼팽의 야상곡>은, 낭만적으로 보여도, 실제로 들어보면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 속 구태의연하고 뻔한 구조와 관계가 지배하는 도서관의 모습을, 사회 구조 안에서 편의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곡을 선택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4. 소설 속 내용과 내 일상 속 비슷한 경험이나 인물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poiein
1주차
1. "사무실에 도착하면 복수심에 지쳐 기진맥진해 있다. 누구를 더는 미워하기 지친 그때 슬픔이 찾아온다. 사무실 일은 슬프다. 모든 일이 그렇다. 누구나 일의 보람이나 분노, 슬픔 따위를 이야기해도 유독 슬픔에 관해서는, 그 비통함이 못된 상사나 거래처 탓이 아니라 애초 태생적인 감정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일의 슬픔은 정말이지 태생적이다. 사무실에 있던 자들, 동료이고 사수이고 상사이던 자들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도, 아는 것이 없으며 그리 좋게 말할 마음도 안 들지만 상기만으로도 애틋함이 자동적으로 솟는다. 누구에게도 전달 못 할 애틋함이. "(p.49)
재독하면서 일전에 붙여둔 플레그들 중에서도 이 문단에서 번져나는 일의 괴로움이 새삼스러웠어요. 사무실에서 함께 있던 그들을 떠올리자니 갑갑함이 솟았구요. 좋아서 하는 일과 관련된 단톡방에 이 문단을 공유했을 때 너도나도 내놓던 속내들, 속이 속이 아닌 것에 서로 다독였던 다정한 흔적들이 단톡방에 있습니다:)
2. 코로나 시절에 기관이 폐쇄되고 직원들끼리 지낼 때 '나'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면 조직 차원에서 징계가 있었을텐데요, 굴속에서 도서관으로 출근한 '나'를 저 역시도 사무실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대했을 거예요. 해서 굴속에서 나온 '나'가 그런 행색으로 출근한 행동은 이해나 공감을 떠나 '내가 같은 사무실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혐오의 시선으로 그를 볼 만큼 이해도 공감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3. 94쪽의 '굴'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간 '굴'이 연상되었고, 굴속으로 간 '나'가 굴 밖으로 나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오리무중인 '그녀'가 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더군요.
4. 기관이 폐쇄되고 매일매일 회의를 하던 코로나 시절에 지방의 60대 남성의 동선이 공개된 적이 있었죠. 그가 성 구매한 업소명이 공개되었고, 식당과 노래방 등 모든 동선의 노출이 강제된 기사를 접하고, 회의석상애서 그 기사(코로나 감염 이전 동선)를 조롱하고 혐오의 발언들을 목격하면서 그가 감당했을 수치심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냉담」 속 '나'가 직장에서 감내했을 수치심이 크게 와 닿았던 것도 그때의 기억이 환기되었기 때문이었어요.
소전서가
@poiein 님, 공유해 주신 내용 잘 읽었습니다. 저도 더 생각이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1. 인상적인 <대화>나 <문장 또는 문단>, <장면>
"사무실에 도착하면 복수심에 지쳐 기진맥진해 있다. 누구를 더는 미워하기 지친 그때 슬픔이 찾아온다. 사무실 일은 슬프다. 모든 일이 그렇다. 누구나 일의 보람이나 분노, 슬픔 따위를 이야기해도 유독 슬픔에 관해서는, 그 비통함이 못된 상사나 거래처 탓이 아니라 애초 태생적인 감정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일의 슬픔은 정말이지 태생적이다. 사무실에 있던 자들, 동료이고 사수이고 상사이던 자들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도, 아는 것이 없으며 그리 좋게 말할 마음도 안 들지만 상기만으로도 애틋함이 자동적으로 솟는다. 누구에게도 전달 못 할 애틋함이. "(p.49)
재독하면서 일전에 붙여둔 플레그들 중에서도 이 문단에서 번져나는 일의 괴로움이 새삼스러웠어요. 사무실에서 함께 있던 그들을 떠올리자니 갑갑함이 솟았구요. 좋아서 하는 일과 관련된 단톡방에 이 문단을 공유했을 때 너도나도 내놓던 속내들, 속이 속이 아닌 것에 서로 다독였던 다정한 흔적들이 단톡방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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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같은 업계의 동료들과 나누셨군요. 사회인이라면 감내해야 하는, 공감이 충분히 가는 부분이네요. <애초 태생적인 감정임>이라는 것은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우리는 왜 살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더라고요. 그 슬픔이 어디서 올까를 생각해보면,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에 늘 마주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타인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해낸다는 것, 모두가 겪는 일이지겠만 그것이 나의 욕구나 상황과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당시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처럼 여기게 되고, 슬퍼지게 되지 않나요. 그래서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지만 그것 역시 곧 한계가 드러나게 되고 외려 인간에 대한 처량한 회의감을 가져오죠.
인간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공동체에 대해서, 끊임없이 <왜> 그랬을까를 고민하면서 맴도는 그 생각들은,,,, 원래가 멈추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소전서가
@poiein 님의 두 번째 답변
2. 이해나 공감이 어려운 장면도 공유해 주세요.
: 코로나 시절에 기관이 폐쇄되고 직원들끼리 지낼 때 '나'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면 조직 차원에서 징계가 있었을텐데요, 굴속에서 도서관으로 출근한 '나'를 저 역시도 사무실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대했을 거예요. 해서 굴속에서 나온 '나'가 그런 행색으로 출근한 행동은 이해나 공감을 떠나 '내가 같은 사무실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혐오의 시선으로 그를 볼 만큼 이해도 공감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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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딩장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 한 직원이 그런 행색이라면..... ㅠ-ㅠ 정말 어렵네요. 왜 그런 모습인지 묻기조차 두려울 것 같아요. 줄곧 소설 속 <나>에게만 이입을 했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되어 보니, 거리를 두고 싶고 꺼리고, 애초부터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한편 복잡한 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그 자연스럽고 표면적인 감정의 이면을 더 파고들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소설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네요.
소전서가
@poiein 님의 세 번째 답변
3. 본인이 발견한 상징성이 강한 무언가를 소개해 주세요.
94쪽의 '굴'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간 '굴'이 연상되었고, 굴속으로 간 '나'가 굴 밖으로 나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오리무중인 '그녀'가 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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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저에게는 이 굴이 너무 어렵고, 너무나 상징성이 강해서 어렵게 느껴진 장면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존재도 그렇고요. 실제로 교수님이라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굴 속에서의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까요? 현실과 닮은 듯하면서도 매우 이질적인 그 분위기가,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는 특색 있는 장치로서 오히려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이 소설의 한 특징을 이룬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수님 닮은 남자의..... 알 수 없는 이야기요. 다음에는 밝은 대낮에 오라는 그 말이 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여지를 남긴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리고 정말 다시 만나죠.... 그런데 알아채기가 좀 어렵기도 했어요. 아마도 공간 때문에?!
암튼 그 장면은 주인공 내면 속의 두려움과 외로움, 혼란(영문을 알 수 없음) 그리고 처절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poiein님의 말대로, 이런 고난을 헤쳐 나오면 주인공에게 약간의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요. 그가 바라던 그녀를 만나는 것 같은 상황 말이죠. 그러나 그렇지 않았죠. 그래서 주인공은 더욱 <죽음>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죽음을 맞이한 듯이요. 소설이 이대로 끝난 것만 같았고요. ㅠ_ㅠ 여기까지 읽고나서 좀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러다가 다음의 <벽의 틈새>에서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소전서가
@poiein 님의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4. 소설 속 내용과 내 일상 속 비슷한 경험이나 인물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 기관이 폐쇄되고 매일매일 회의를 하던 코로나 시절에 지방의 60대 남성의 동선이 공개된 적이 있었죠. 그가 성 구매한 업소명이 공개되었고, 식당과 노래방 등 모든 동선의 노출이 강제된 기사를 접하고, 회의석상애서 그 기사(코로나 감염 이전 동선)를 조롱하고 혐오의 발언들을 목격하면서 그가 감당했을 수치심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냉담」 속 '나'가 직장에서 감내했을 수치심이 크게 와 닿았던 것도 그때의 기억이 환기되었기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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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74면의 역학조사관과의 대화 내용을 보면서 저도 당시 에 개인들의 동선을 낱낱이 파헤치는 뉴스에 대한 충격적인 인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코로나 당시의 강력한 감정들을 통해, 인간 삶에 대한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수치심.... 으로 보여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나에 대해서 이렇게 잘난 척하는 듯, 전지전능한(실제로는 어떠한 자격도 없는데요) 듯 나에 대해 재단하는 역학 조사관의 말에서요.
<잘 알지 못하는가보데, 이러한 태도는 모두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 당신 하나로 끝이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 하나로 끝난다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구는군요.>
신나는아름쌤
뒤늦게 합류해봅니다^^;
冷淡으로 覃(깊어질 담)甦(깨어날 소)
담소 나누며 깊게 숨겨진 저를 깨워보고 싶습니다~♡
소전서가
반갑습니다. 의미 있는 <담소>를 기대합니다.
소전서가
모두들 앞부분 읽고 계신가요?
사실 이 소설 전체에서는 명확히 대화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추측할 뿐이죠. 제가 읽었던 인상적인 <대화> 장면 세 곳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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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 고백해요, 무엇이든지.>
저는 이 말이, 마치 뮤즈 여신의 명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의 서사시(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첫 문장에서 뮤즈를 소환하고선 시작하는 것처럼요. <뮤즈여 말해 주소서. ___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은 화자가 영감을 가져다준다는 <뮤즈의 힘을 빌리는 행위>이죠. 곧 자신이 알고 있는 허례를 버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대로 즉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빌려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화자의 바람입니다.
<냉담>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여인은 화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마디를 합니다, <무엇이든 고백>하라고. 이것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도 효력이 있는 한마디였습니다. 실은 이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게 아닐까요? 화자는 그녀의 눈길에 사로잡힌 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강력한 주문이, 바로 죽음을 바라는 절망에 빠진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마술적인 힘을 부린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독자의 바람>과 <작가의 열망>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뮤즈의 여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 게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2.
<왜 당신은 층계참으로 향했습니까?>
<늦지 않으려고.>
<당신은 그 정도로 직장을, 일을 사랑했던 것입니까?>
이 대화는 저에게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소통 불능의 단면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사회 속 다양한 압박에 대한 몸부림에 대한 이유를 단순한 표면적인 이유로 갈음해 버리는 그런 방식의 대화가, 늘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렇고 아마도 내일도 그렇겠죠. 그렇게 우리는 슬픔과 절망을 느낍니다.
3.
<여기 상사 있어요?>
<요즘 세상에 상사가 어딨어요? 다 개인 사업자예요.>
이 말도 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심지어 상사가 있는데요.. 왜 저 개인 사업자의 심드렁한 말에 공감을 하는 것일까요.
이 소설에서는 개인들의 허약함을 보여 주는 장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화자가 직장에서 당하는 일들(개인VS회사/ 개인vs국가)이 그렇죠. 이 장면은 화자가 지하 굴에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들인데요 그들도 아마 화자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레하고 학대당한 것 같은 이들은 사회의 음지에 있습니다. <굴속으로>는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부실한 그들의 삶의 물리적, 정신적 기반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 줍니다. 그들은 정당한 출구로도 나갈 수 없고, 오히려 더욱 깊숙이 숨어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비상구로 나가면 잡혀요. 굴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어릴 때는 무작정 <개인 사업자>는 돈 많이 버는 줄 알았는데요^^;; 아득합니다. 코로나 때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소설 속에서 이렇게 변모하여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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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벽의 틈새>
● 기간: 11월 18일(월)부터 11월 25일(다음주 월)까지
● 범위: 1부와, <벽의 틈새>(7~147면)를 읽어 주세요.
● 방식: 모든 답글에 댓글을 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글뿐 아니라 다른 독자님들의 글에 자유롭게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제안: 아래의 제안 중 <한 개 이상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1주차의 제안을 선택하여 이야기해 주셔도 좋습니다.
1. 인상적인 <대화>나 <문장 또는 문단>, <장면>을 짤막하게 공유하고, 어떤 지점이 끌렸는지 알려 주세요.
2. 이 소설은 코로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현실이, 영화도 연극도 아닌 <소설>이 된다면 당신은 독자로서 어떤 것을 기대하나요?
3. <벽의 틈새>를 보고 이 <소설>에서만 표현될 수 있 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공유해 주세요.
4. 아름답다고 느낀 이미지(한 장면)을 공유해 주세요.
poiein
2주차
1. 2주간 격리 공간을 배경으로 혼잣말을 하는 '건넛방의 남자'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게 안쓰러웠어요. 아내에게 닥달당하고, 딸아이에게 소설을 읽어주고, 원격수업을 받는 딸의 거짓말에 무력한 남자는 역병이 창궐한 곳의 격리된 사람들의 모습이었겠죠. 그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온 자로서 <벽의 틈새>를 읽는 내내 일종의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2. 현실이 소설이 된다면, 아주 사소하더라도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됩니다. 스티로폼 벽의 틈새로 건네진 알약같은, 익명의 호의가 곁들인 그런 해피엔딩요!
3. 새로 등장한 '남자'가 발산하는 사건의 전개와 전말이 가슴 답답하게(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 덮쳐 오는 그런 갑갑함) 전달되더군요. 바깥과 차단된 남자가 발작적으로 충돌하는 일종의 벌레가 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딸의 등장으로 숨을 돌렸어요
4. 딸에게 오엽송을 다정하게 알려주고,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딸의 소질을 자랑하는 장면(p.141)이 좋았습니다. 건넛방의 남자에게 딸과 단둘이 보낸 며칠이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을텐데, 그 행복이 격리 공간이라는 게 비극적으로 다가왔어요. 종종 비극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대목에서 그러했습니다.
poiein
여기에 있으면 지난날이 다 떠오르는 법이다. 잊고 싶은 것들, 잊은 것들, 잊지 못했지만 괜찮다고 믿었던 것들.
『냉담』 p.139, 김갑용 지음
문장모음 보기
소전서가
2주차
1. 2주간 격리 공간을 배경으로 혼잣말을 하는 '건넛방의 남자'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게 안쓰러웠어요. 아내에게 닥달당하고, 딸아이에게 소설을 읽어주고, 원격수업을 받는 딸의 거짓말에 무력한 남자는 역병이 창궐한 곳의 격리된 사람들의 모습이었겠죠. 그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온 자로서 <벽의 틈새>를 읽는 내내 일종의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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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은 정말 리얼했던 것 같아요. 남자가 사랑하는 딸과 오직 둘이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이라는 아이러니가 소설 곳곳에 애틋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2. 현실이 소설이 된다면, 아주 사소하더라도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됩니다. 스티로폼 벽의 틈새로 건네진 알약같은, 익명의 호의가 곁들인 그런 해피엔딩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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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을 손목 스냅으로 건네기 전, <건넛방의 조용하던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빛이 상상이 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요.
3. 새로 등장한 '남자'가 발산하는 사건의 전개와 전말이 가슴 답답하게(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 덮쳐 오는 그런 갑갑함) 전달되더군요. 바깥과 차단된 남자가 발작적으로 충돌하는 일종의 벌레가 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딸의 등장으로 숨을 돌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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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이 남자의 전부인 것 같았죠. 이 소설에서 이 남자의 등장은 현실 속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징적인 한 개인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서, 현실 속 아버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요. 실제로 코로나 초기에 격리되었던 어떤 분의 이야기가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4. 딸에게 오엽송을 다정하게 알려주고,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딸의 소질을 자랑하는 장면(p.141)이 좋았습니다. 건넛방의 남자에게 딸과 단둘이 보낸 며칠이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을텐데, 그 행복이 격리 공간이라는 게 비극적으로 다가왔어요. 종종 비극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대목에서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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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서의 아름다움. 문학에서만 그것을 은근하고도 길게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reengable
저는 아이의 입시가 있어서 따라가질 못했습니다.다시 냉담을 오픈해주셔서 반가웠습니다
부지런히 읽고 따라가보겠습니다
근데 쉽진 않더라구요 ㅎ 문장들을 곱씹어보며 읽고있습니다
소전서가
안녕하세요! 주말을 지내고 오니 반가운 글이 하나 있네요. 쉽지 않은 소설, 곱씹으면서 즐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잘 살펴봐주시고, 떠오르는 감상이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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