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합류해봅니다^^;
冷淡으로 覃(깊어질 담)甦(깨어날 소)
담소 나누며 깊게 숨겨진 저를 깨워보고 싶습니다~♡
<냉담>속의 대화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D-29
신나는아름쌤
소전서가
반갑습니다. 의미 있는 <담소>를 기대합니다.
소전서가
모두들 앞부분 읽고 계신가요?
사실 이 소설 전체에서는 명확히 대화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추측할 뿐이죠. 제가 읽었던 인상적인 <대화> 장면 세 곳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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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 고백해요, 무엇이든지.>
저는 이 말이, 마치 뮤즈 여신의 명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의 서사시(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첫 문장에서 뮤즈를 소환하고선 시작하는 것처럼요. <뮤즈여 말해 주소서. ___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은 화자가 영감을 가져다준다는 <뮤즈의 힘을 빌리는 행위>이죠. 곧 자신이 알고 있는 허례를 버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대로 즉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빌려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화자의 바람입니다.
<냉담>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여인은 화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마디를 합니다, <무엇이든 고백>하라고. 이것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도 효력이 있는 한마디였습니다. 실은 이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게 아닐까요? 화자는 그녀의 눈길에 사로잡힌 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강력한 주문이, 바로 죽음을 바라는 절망에 빠진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마술적인 힘을 부린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독자의 바람>과 <작가의 열망>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뮤즈의 여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 게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2.
<왜 당신은 층계참으로 향했습니까?>
<늦지 않으려고.>
<당신은 그 정도로 직장을, 일을 사랑했던 것입니까?>
이 대화는 저에게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소통 불능의 단면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사회 속 다양한 압박에 대한 몸부림에 대한 이유를 단순한 표면적인 이유로 갈음해 버리는 그런 방식의 대화가, 늘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렇고 아마도 내일도 그렇겠죠. 그렇게 우리는 슬픔과 절망을 느낍니다.
3.
<여기 상사 있어요?>
<요즘 세상에 상사가 어딨어요? 다 개인 사업자예요.>
이 말도 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심지어 상사가 있는데요.. 왜 저 개인 사업자의 심드렁한 말에 공감을 하는 것일까요.
이 소설에서는 개인들의 허약함을 보여 주는 장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화자가 직장에서 당하는 일들(개인VS회사/ 개인vs국가)이 그렇죠. 이 장면은 화자가 지하 굴에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들인데요 그들도 아마 화자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레하고 학대당한 것 같은 이들은 사회의 음지에 있습니다. <굴속으로>는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부실한 그들의 삶의 물리적, 정신적 기반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 줍니다. 그들은 정당한 출구로도 나갈 수 없고, 오히려 더욱 깊숙이 숨어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비상구로 나가면 잡혀요. 굴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어릴 때는 무작정 <개인 사업자>는 돈 많이 버는 줄 알았는데요^^;; 아득합니다. 코로나 때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소설 속에서 이렇게 변모하여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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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벽의 틈새>
● 기간: 11월 18일(월)부터 11월 25일(다음주 월)까지
● 범위: 1부와, <벽의 틈새>(7~147면)를 읽어 주세요.
● 방식: 모든 답글에 댓글을 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글뿐 아니라 다른 독자님들의 글에 자유롭게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제안: 아래의 제안 중 <한 개 이상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1주차의 제안을 선택하여 이야기해 주셔도 좋습니다.
1. 인상적인 <대화>나 <문장 또는 문단>, <장면>을 짤막하게 공유하고, 어떤 지점이 끌렸는지 알려 주세요.
2. 이 소설은 코로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현실이, 영화도 연극도 아닌 <소설>이 된다면 당신은 독자로서 어떤 것을 기대하나요?
3. <벽의 틈새>를 보고 이 <소설>에서만 표현될 수 있 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공유해 주세요.
4. 아름답다고 느낀 이미지(한 장면)을 공유해 주세요.
poiein
2주차
1. 2주간 격리 공간을 배경으로 혼잣말을 하는 '건넛방의 남자'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게 안쓰러웠어요. 아내에게 닥달당하고, 딸아이에게 소설을 읽어주고, 원격수업을 받는 딸의 거짓말에 무력한 남자는 역병이 창궐한 곳의 격리된 사람들의 모습이었겠죠. 그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온 자로서 <벽의 틈새>를 읽는 내내 일종의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2. 현실이 소설이 된다면, 아주 사소하더라도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됩니다. 스티로폼 벽의 틈새로 건네진 알약같은, 익명의 호의가 곁들인 그런 해피엔딩요!
3. 새로 등장한 '남자'가 발산하는 사건의 전개와 전말이 가슴 답답하게(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 덮쳐 오는 그런 갑갑함) 전달되더군요. 바깥과 차단된 남자가 발작적으로 충돌하는 일종의 벌레가 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딸의 등장으로 숨을 돌렸어요
4. 딸에게 오엽송을 다정하게 알려주고,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딸의 소질을 자랑하는 장면(p.141)이 좋았습니다. 건넛방의 남자에게 딸과 단둘이 보낸 며칠이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을텐데, 그 행복이 격리 공간이라는 게 비극적으로 다가왔어요. 종종 비극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대목에서 그러했습니다.
poiein
여기에 있으면 지난날이 다 떠오르는 법이다. 잊고 싶은 것들, 잊은 것들, 잊지 못했지만 괜찮다고 믿었던 것들.
『냉담』 p.139, 김갑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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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서가
2주차
1. 2주간 격리 공간을 배경으로 혼잣말을 하는 '건넛방의 남자'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게 안쓰러웠어요. 아내에게 닥달당하고, 딸아이에게 소설을 읽어주고, 원격수업을 받는 딸의 거짓말에 무력한 남자는 역병이 창궐한 곳의 격리된 사람들의 모습이었겠죠. 그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온 자로서 <벽의 틈새>를 읽는 내내 일종의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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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은 정말 리얼했던 것 같아요. 남자가 사랑하는 딸과 오직 둘이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이라는 아이러니가 소설 곳곳에 애틋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2. 현실이 소설이 된다면, 아주 사소하더라도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됩니다. 스티로폼 벽의 틈새로 건네진 알약같은, 익명의 호의가 곁들인 그런 해피엔딩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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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을 손목 스냅으로 건네기 전, <건넛방의 조용하던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빛이 상상이 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요.
3. 새로 등장한 '남자'가 발산하는 사건의 전개와 전말이 가슴 답답하게(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 덮쳐 오는 그런 갑갑함) 전달되더군요. 바깥과 차단된 남자가 발작적으로 충돌하는 일종의 벌레가 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딸의 등장으로 숨을 돌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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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이 남자의 전부인 것 같았죠. 이 소설에서 이 남자의 등장은 현실 속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징적인 한 개인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서, 현실 속 아버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요. 실제로 코로나 초기에 격리되었던 어떤 분의 이야기가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4. 딸에게 오엽송을 다정하게 알려주고,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딸의 소질을 자랑하는 장면(p.141)이 좋았습니다. 건넛방의 남자에게 딸과 단둘이 보낸 며칠이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을텐데, 그 행복이 격리 공간이라는 게 비극적으로 다가왔어요. 종종 비극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대목에서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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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서의 아름다움. 문학에서만 그것을 은근하고도 길게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reengable
저는 아이의 입시가 있어서 따라가질 못했습니다.다시 냉담을 오픈해주셔서 반가웠습니다
부지런히 읽고 따라가보겠습니다
근데 쉽진 않더라구요 ㅎ 문장들을 곱씹어보며 읽고있습니다
소전서가
안녕하세요! 주말을 지내고 오니 반가운 글이 하나 있네요. 쉽지 않은 소설, 곱씹으면서 즐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잘 살펴봐주시고, 떠오르는 감상이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소전서가
2주차: <벽의 틈새>
1. 인상적인 <대화>나 <문장 또는 문단>, <장면>을 짤막하게 공유하고, 어떤 지점이 끌렸는지 알려 주세요.
146면
<오늘 당신의 선행을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잊지 않겠지만 절대 당신을 모르겠습니다. 모를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영원히 모를겠습니다. 약속할게요.>
잊지 않고 영원히 모를, 타인의 선행. 뉴노멀의 상황에서 벌어진, 극단적인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이 문장을 위해 앞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전서가
오늘 당신의 선행을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잊지 않겠지만 절대 당신을 모르겠습니다. 모를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영원히 모르겠습니다. 약속할게요
『냉담』 146면, 김갑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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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서가
2주차: <벽의 틈새>
4. 아름답다고 느낀 이미지(한 장면)을 공유해 주세요.
<벽의 틈새>의 147면의 마지막 문단의 장면이 멋졌습니다.
그마저 떠나고, 방이 모두 비었다.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는 샌드위치 패널 벽은 철거되고 새로 한 가족이 격리되었다. 그 가족은 매우 깔끔한 편으로 매일 같이 방을 청소하고 자기 집처럼 청결히 유지했으나 도대체 어디에 숨었다 나오는지 끝없이 치우고 치워도 스티로폼 알갱이 몇 알이 바닥을 굴러다니기 마련이었다.
치워도 치워도 스티로폼 알갱이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그 장면. 모든 것이 말끔하게 처리(!)되어도,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작은, 존재감이 없는 그것들이 결국엔 폭풍 같은 한 인간이 이 사회에서 겪는 처절한 고통과 몸부림의 증거입니다. 하얀 알갱이들은 마치 소설의 입장 같습니다. 문학의 입장 같아요.
소전서가
“ 그마저 떠나고, 방이 모두 비었다.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는 샌드위치 패널 벽은 철거되고 새로 한 가족이 격리되었다. 그 가족은 매우 깔끔한 편으로 매일 같이 방을 청소하고 자기 집처럼 청결히 유지했으나 도대체 어디에 숨었다 나오는지 끝없이 치우고 치워도 스티로폼 알갱이 몇 알이 바닥을 굴러다니기 마련이었다. ”
『냉담』 147면, 김갑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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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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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2부
● 기간: 11월 25일(월)부터 12월 2일(다음주 월)까지
● 범위: 1부와, <벽의 틈새>, 2부 를(7~290면)를 읽어 주세요.
● 방식: 모든 답글에 댓글을 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글뿐 아니라 다른 독자님들의 글에 자유롭게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제안: 아래의 제안 중 <한 개 이상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1~2주차의 제안을 선택하여 이야기해 주셔도 (너무) 좋습니다.
1. 인상적인 <대화>나 <문장 또는 문단>, <장면>을 짤막하게 공유하고, 어떤 지점이 끌렸는지 알려 주세요.
2. 본인 취향에 재밌게, 또는 기이하게 느껴지는 상징적인 장면이나 이미지를 하나 이상 공유해 주세요.
3. 이 소설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다면?
poiein
3주차
1. 2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에서 '가족을 빠져나갈 길 없는 장애물'(p.153)이라고 표현했는데, "가족은 트라우마의 유적지"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화자가 대부분의 관계에서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가족을 조우하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과 주검에 대한 묘사, 그런 아버지를 대하는 다른 가족의 모습, 그 가족 앞에서 완벽한 타인으로 비치는 화자를 보면서 착잡해지더군요.
2. 산책로의 2인용 그네에 앉은 친구와의 대화는 뭐랄까, '서로 겹쳐지지 않는'(p.163) 근본적인 외로움이 느껴졌어요.
3. 우리는 수풀이 아니야. 저렇게 자라는 데만 급급하지 않아. 이름이 없지 않아. 그래서 이름 모를 수풀이 더 높은 위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는 사실이 외로운 거야.(p.162)
이 적품의 인물들은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습니다. 그녀, 상사, 나와 너, 선생님, 교수님 등으로 명멸합니다. 고양이도요. 불특정 개인이라 독자는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자신을 대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소전서가
고유명사,가 없는 것이 이 소설의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름이 있어서 그 캐릭터의 생생함을 갖추는 것이 오히려 거리감을 주고, 방해(부자연스움)가 된다는 듯이 말이죠.
소전서가
사는 건 괴롭히고 괴롭힘당하는 거야. 어느 사람이든,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되기 마련이지. 너 누구를 괴롭히는 건 아니겠지.
『냉담』 159면. 엄마의 말, 김갑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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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서가
소설 전체에서 엄마의 존재가 희미해요, 실제로 주인공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미미했습니다만... 저는 이 문장, 개인 존재에 대한 슬픔을 너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이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외부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는 주인공에게, 개인의 서글픔을 더욱 시리게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정작 이 말을 하는 엄마조차, 아들에게.. 타인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아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가족이라는 개념을 좀 깨준 사례 같았어요. 가족이라도 <타인>이다! 라는 입장을. 오롯이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를. 이런 엄마나 다른 가족의 모습으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들 부모님, 가족과 친하신가요....ㅠ_ㅠ
슝슝
사실 소설 읽고 작가님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투영되었나 싶었어요. 그래서 혹시 관련 인터뷰가 있나 찾아보기도 했지만 딱히 근거를 찾진 못했어요. 성장하면서 작가님 자신에게 미친 어머니의 영향이 미미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고,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보단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냉담>에서 가족의 양태를 재조명해 주었기에 좀 더 빠져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소전서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 같진 않습니다. 환상적인 요 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여동생과 엄마가 아빠의 몸에 숲을 조성하는 이야기가 아주 괴이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에 대한 한 독자의 서평 <읽는사람> 웹페이지에 달렸는데, 슝슝님 재밌게 보실 것 같아서 공유드립니다. 여동생의 입장에서, 테라리움(Terrarium, 아쿠아리움의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행위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소설적 상상력을 좀 더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https://www.the-reader.or.kr/fo/produce/detail?smfcId=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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