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Xsam] 24.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답해요

D-29
저는 완강한 무관심stubborn incuriosity이라는 개념을 좋아해요. 완강한 무관심을 계발하려면 어떤 분야의 지식에 자신을 한정해야 하지요. 전적으로 모든 분야에 탐욕스러울 수는 없어요. 모든 걸 다 배우려고 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1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91p,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저는 '장미의 이름'을 읽고나서 다음 책으로 '바우돌리노'를 읽었는데요, 장미의 이름보다는 손에 잡는 긴장감이 덜하지만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더 쉬워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에코가 이 인터뷰에서 많이 언급했듯이 종교의 힘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만들어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바우돌리노를 읽고나면 유럽 성당이나 박물관에 화려하게 전시되어있는 성물들이나 성인들의 무덤에 무조건 탄복하게 되지는 않게 되요.
바우돌리노 - 상에코 하면 딱 떠오르는 키워드인 '중세, 종교, 언어' 등등의 요소는 여전하지만,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읽기 즐겁다. 이현경씨의 번역이 깔끔하다.
소설가는 터키에서 엄청나게 특권적인 전통 속에 위치한 시인과 달리 사무원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군요. 시인이 되면 인기를 누리고 존경을 받는답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124p,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움베르토 에코를 끝내고 오르한 파묵으로 넘어왔습니다. --------‐----------------- '시'가 아주 높은 가치로 인정받게되는 문화의 특징은 뭘까요? 언뜻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문화권으로는 근대 이전 중국이 그러했었고요, 터키도 이렇게 소설가와 시인의 지위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지 몰랐어요. 왜 그럴까요? 터키의 경우에는 종교적 이유도 있겠지요. 그런데 언어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중국어는 일반적인 구어나 서술조차도 시적인 요소가 아주 강한 언어인데 비해서 현대 한국어는 시의 운율을 살리기에는 아주 어색한 언어같거든요. 산문에 편중된 글읽기만 해왔던 터라서, '시인' 이 저렇게 대접받는 문화의 이야기를 들으면 늘 참 신기합니다.
[ 오르한 파묵] 정신분열은 사람을 지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현실과의 관계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정신분열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허구를 쓰는 작가이므로 그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죽이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을 많이 하면 하나의 영혼만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분열되어서 아픈 것보다 더 문제이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1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153p. 오르한 파묵,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음... 지금껏 읽은 예술가 인터뷰 중에 제일 돌은자 같은 말인데요. 역시 예술은 미쳐야하나봅니다.
1권은 오래 전에 읽어 거의 기억에 없는데 이번에 다시 들춰보니 에코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진지한 학자들 중에서 텔리비전 보는 걸 즐기자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단지 자신은 그걸 고백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순간 웃었습니다. 우리나라나 남의 나라나 점잖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한결 같구나 해서. 왠지 tv를 즐겨보면 가벼워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에코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tv를 본 것을 자신의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려고 애쓴다고 하죠. 그렇다고 아무거나 다 보는 건 아니고 주로 드라마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쓰레기 같은 프로는 싫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데 새삼 에코가 좋아지더군요. 솔직히 저도 tv 드라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엔 어떤 드라마가 좋다고 드러내놓기가 꺼려질 때도 있더군요. 괜히 tv 중독자로 오해 받지 않을까 싶어서. 에코가 자신의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려고 애쓴다니 (비록 고인이 됐지만) 앞으론 떳떳히 봐되 되겠다 싶기도 해요. ㅎㅎ 참고로 저는 <장미의 이름>을 영화로 봤습니다. 듣기론 <장미의 이름>과 <바우돌리노> 정도만 읽기가 수월하고 다른 소설은 좀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영상화물의 원작이 늘 그렇듯 <장미의 이름> 영화는 소설의 살인사건 관련의 줄거리만 건져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추리 자체가 너무나도 손에 땀을 쥐게하지만 소설에서 거기 빠져들기 위해서는 지루한 앞부분을 통과해야해요. 에코가 자신의 소설관에 대해서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장미의 이름>을 처음 읽은 친구들과 편집자들은 처음 100 펭이지 정도를 잘라버리고 요약하자고 했답니다. 에코는 그 첫 100페이지가 자신의 세계로 들어오기위한 '속죄의 행위 ( penance)' 또는 '입단식 (initiation)' 이고, 그걸 못 읽어내는 사람들은 어차피 책을 다 못 끝낼 사람들이라 처음이 읽기어려운 건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미의 이름>도 결코 읽기 쉬운 건 아니지요. 저는 에코의 이런 자기 소설의 세계관에 대한 자신감이 작가로써의 매력이고 <장미의 이름>이나 <바우돌리노>에 빠져들게 된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 저변에는 학자로써의 경력과 자신감이 정립되어있었기에 가능한 거였을 거고요.
그렇군요. 말씀 고맙습니다.
우리는 가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짜 세계에서 실제를 찾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P137,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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