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E열부터 앞쪽까지 군데군데 앉아 있었던 그믐인들을 발견하셨다면 인사 나누실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다음 기수에도 또 참여해 주시고 엽서 카드도 받아 가세요 ^^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D-29

수북강녕

김새섬
저도 겨우겨우 읽었어요. 이런 책은 정말 함께 읽기 아니면 못 읽습니다. T.T
현장에서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 아쉽네요.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프렐류드
저도 못읽은 부분 열심히 읽고 듣고 있습니다. 혼자 읽을 때보다 외롭지 않아서 쑥쑥 잘 읽히네요.

수북강녕
연극을 보고 결말을 알고 나니 오히려 더 잘 읽히지 않나요? 이폴리트의 '나의 필요 불가결한 해명'은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들어보라고 하신 안성채 배우님 답변에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를 듣고 있어요 ㅋㅋ
https://youtu.be/PgVVIbsyGnw?si=o4knaLs276rX_l5z

김새섬
대한민국 1호 이뽈리뜨 안성채 배우님, 그 자부심이 너무 멋지셨어요.

수북강녕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에서 그레고리 역에 관극 유의사항 안내까지 겸하셨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연출도 겸하신 것 같아요!


김새섬
오! 책의 판권 페이지는 저도 유심히 보는 편인데요, 연극은 이런 정보를 잘 훑어보지 않았네요. T.T
그러고 보니 장다경 배우님 이름도 있네요. 배우님들 정말 능력자시군요.

borumis
저두요!! 개인적으로 나현희 배우님과 안성채 배우님이 이번 연극에서 저의 원픽! 둘이 뒤섞여서 표현한 이뽈리뜨의 독백이 정말 멋졌어요

김새섬
저도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책, 영화와 다른 연극만의 매력이 이런 걸까 싶었습니다.
현장에서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죠. 어떻게 표현하시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의 질문도 나왔고.

수북강녕
저부터도 늦었지만;;; 3부와 4부 미션에 답변해 봅니다
📝 3부 미션
▶ 3부에서는 레베제프나 이폴리트가 의견과 주장을 피력하는 등, 많은 사람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가 그대로 또는 반어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원하는가?"에 대해서도 조롱이 오가는데요 이 주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작품 속 장면, 인물의 주장을 언급해 주셔도 좋습니다 ^^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 말이 옳아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당신은 온갖 고통을 겪었고 그런 지옥으로부터 순결한 사람이 되어 빠져나왔으니,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나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죽어도 좋습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p.297 (열린책들 1권)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원 시도는 미쉬낀이 나스타시야를 구원하는 것인데요 그가 과연 구원에 성공했는가 아닌가, 그 자신조차도 구원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하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 대사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미쉬낀은 이미 나스타시야를 구원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나스타시야에게 진심을 다해 대한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 자체가 구원이 아닐까요?!
또한 미쉬낀은 이폴리트 역시 구원합니다 이폴리트는 시한부 인생에서 가장 자기주도적인 선택으로 혐오감에서 촉발된 자살을 결심하지만,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공작의 눈을 보고 그를 껴안으며 평안을 찾고자 합니다 사형수보다 더 불확실한 시한부라는 입장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앞에 두고 공작에게 의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하나의 구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느닷없이 공작을 껴안았다. "아마도 당신은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이상하게 웃으며 그는 공작을 바라보았다. "지금, 지금 곧 가겠습니다. 잠시만 아무 말씀 마시고 가만히 계셔 주세요... 전 당신의 눈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서 계셔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볼 수 있게요. 저는 인간과 작별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 순간 이폴리트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쏜다. p.294 (지식을만드는지식)

수북강녕
📝 4부 미션
▶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는 듯한 <백치>의 결말에 만족하셨나요?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고 동의하신다면 그 까닭을 적어 주세요 혹시 다른 결말을 원하신다면 내용과 이유를 들려 주셔도 좋습니다
"남보다 더 고뇌를 겪을 수 있는 사람은 의당 그 고뇌를 겪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거요." p.800 (열린책들 2권)
이 책이 200년 후 지금 우리의, 또한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난 후 인간의 운명을 해결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던져진 씨앗이 이 세상에 거대한 사상을 유산으로 남겨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열린책들 2권 p.623 에서 유사 내용 발췌)
흔한 사이다식 해피엔딩으로 가정한다면, 미쉬낀의 성정에 감읍한 로고진이 집착과 음욕을 버리고 나스타시야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나스타시야는 그 덕분에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글라야는 철이 들어 미쉬낀의 현숙한 부인이 되고, 예빤친과 또쯔끼는 그럭저럭 시베리아 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출세 가도에 문제 생기고, 이런 정도일 텐데요,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향기를 풍기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지 않은' 엔딩일 것입니다 ^^

김새섬
<백치>의 결말을 얘기하면 나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꾹 참겠습니다. ^^ 저는 파국을 좋아하는 편이라 '만만세' 로 끝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결말보다는 <백치>가 훨 낫더라고요. 그런데 연극을 볼 때는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결말이 조금 급작스럽게 느껴질 것 같았어요. 다들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수북강녕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었대! ㅋㅋㅋ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
사실 저같은 경우는 작년 봄, 도스토옙스키 3대 장편 읽기 후에 <백치> 내용을 전부 요약해 주는 유튜브를 보았었거든요? 그런데 누가 누군지, 뭐가 어쨌다는 건지 들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읽을 때도 전혀 예측 못하고 노베 상태로 퓨어하게 읽어나갔답니다 후훗~

borumis
3부와 4부의 답변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요..
"남보다 더 고뇌를 겪을 수 있는 사람은 의당 그 고뇌를 겪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거요."
제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시절 저희 친정엄마가 비슷한 얘기를 하신 적 있죠. 흔히 너무 힘들 때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나름 위로를 해주려고 한 말이었지만 그때 저는 그런 말을 하는 엄마도 그리고 만약 신이 있다면 그런 새디스틱한 신도 저주할 것이라고 욕했습니다.
그 후에 Viktor Frankl의 Man's Search for Meaning에서 다음 문장을 읽었는데요. 그제서야 그 당시에는 단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고뇌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어요. 결국 비슷한 메시지를 다르게 풀어 쓴 것 같지만 어쩌면 기독교인인 엄마처럼 무조건 신에게 의존하거나 나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뭔가 제가 수용할 만한 좀더 능동적인 자세처럼 제시해서 그런 것 같아요.
Those who have a "why" to live can bear almost any "how."
- '왜' 사는 지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실은 아버지나 저나 아이나 선천적 질환이나 어떤 '상태'로 자기 자신도 힘들었고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왜?라고 끊임없이 묻는다고 해서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것은 아니지만.. 왜? 또는 적어도 어떻게? 살아갈 지 추구하다보면 삶을 버티고 살아나가게 되더라구요..;; 너무나도 두려운 데도 불구하고 미쉬낀이 결혼식 전 며칠 동안 계속 잡다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며 두려운 생각을 떨쳐내다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도 의미 없는 카드들에 신경 쓰다가 그 카드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현자타임이 오는 순간 전 그때가 제일 비극의 클라이맥스처럼 느껴졌습니다.
"공작은 갑자기 깨달았다. 이 순간과 더불어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 왔고,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으며, 반갑게 받아 쥔 이 카드가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 4부 11장
우리는 '어떻게?'처럼 다소 부질없는 것이든 '왜?'라는 질문처럼 중요한 것이든 무언가 신경 쓰고 집착할 때 오히려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빅토르 프랑클의 책만큼 스토아 철학을 제가 좋아해서 그런데 삶의 고통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그 어떤 고통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제가 궁금해했지만 과연 신이라는 존재는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인간은 신과 악마 사이에서 영향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존재지만 과연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 또는 악마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뽈리뜨가 4부 5장에서 미쉬낀에게 말한 게 진실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없는 분이니까요!" 저는 예전부터 질서는 결국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고 너무 깨끗한 것은 더렵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실은 가장 질서정연하고 가장 선하고 깨끗한 상태가 가장 취약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요. 신은 일부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어도 신 자체는 구원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어요.
반면 4부5장에서 이폴리트와의 대화 속에 이폴리트가 말했던 '아무 것도 모르고 행복한 것보다는 알아야 될 건 알고 나서 불행한 편이 낫습니다.'라고 대답한 게 생각나요. 이폴리트는 실은 그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보다 끝으로 갈 수록 능동적이고 분주하게 탐구하고 겱국 '격렬한 흥분' 속에서 죽었고 니꼴라이 또한 '나이에 걸맞게 사색적'인 남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결말에서 '약간은 변했으나 예나 다름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선 특별히 전해 줄 말이 없다'고 하죠. 이 말대로 전 우주적인 구원은 커녕 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범용의 변화는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있다 하더라도 미미하겠죠. 하지만 전 오히려 revolution보다 점차적 미미한 변화의 축적인 evolution의 여파가 장기적으로 더 크다고 보는 진화론자여서 그런지 다소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고 봅니다.
또한 신은 구원할 수 없다고 봤는데 이건 제가 왜 아글라야가 아닌 나스타샤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인데요: 응급실의 환자들을 분류할 때 다른 아픈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제일 극심한 상태의 환자부터 돌봐야하는 triage 개념에서 보면 나스타샤는 아글라야보다 더 안 좋은 상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스타샤가 사라지자 그 후에는 남겨진 로고진이 심한 상태였고.. (아 마지막에 로고진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장면은 ㅜㅜ정말..) 실은 응급실에서도 제일 안 좋은 환자를 치료하면 바로 이어서 거의 그만큼 나쁜 환자들이 줄줄이 밀려옵니다. 그러다가 의료진은 누군가 바통터치를 해주지 않는 한 번아웃하게 되죠. 저는 전지전능하다는 구약의 신에서 신약의 예수를 만든 것은 그런 의미를 담은 것도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넘쳐나는 자애가 있을지라도 인간은 한계가 있고 번아웃됩니다. 그 넘쳐나고 고질병 수준으로 바뀌지 못하는 자애는 그의 가장 취약점이 되죠. 하지만 바통터치를 해줄 다른 사람이 오면 그는 쉴 수가 있듯이 그를 대신하여 세상에 씨앗을 심을 사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콜리야, 예브게니, 베라 그리고 어쩌면 리자베따 (그녀 또한 미쉬낀이 '아이들'같다고 했다는 인물이죠) 등 마지막 장에 나온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신약에서 Revelation에 오게 될 약속된 구원은 그런 아이들같은 사람들이 심을 씨앗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을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면서 결국 인간이 개개인이 아닌 협동의 힘으로 신을 구하고 스스로를 구하는 메시지를 남긴 것 같아서 저도 결말 자체는 까라마조프(물론 미완결이어서 그렇겠지만) 형제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수북강녕
관극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기괴한 시국의 격분으로 이어지는 시기인데요
미쉬낀 공작은, 또는 예수님은, 그 시절 그 상황에서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믐연뮤클럽] 4기는 이번 주 토요일인 12/7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더 읽고 보시고, 자유롭게 감상이나 필사를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모임 마무리 총평도 부탁드리구요
📝 마무리 미션
▶ 도스토옙스키의 대작, <백치>를 읽으신 소감은 어떠신지, 쉽지 않지만 한줄 요약 부탁드립니다
▶ 3시간짜리 음악극, <백치>를 관람하신 소감은 어떠셨는지, 극단과의 대화, 뒤풀이를 비롯해 전반적인 연뮤클럽 후기를 부탁드립니다
모임 마지막 날에는 [그믐연뮤클럽] 5기 기대평을 나눌 예정입니다 ^^

선경서재
5-1.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내면을 세심하게 관찰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문체가 가득한 책. 찌질한 인간 내면의 본성을 들여다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5-2. 원작소설을 먼저 읽은 경우 되도록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는다. 내가 상상한 세계는 영상에 의해 너무 빨리 휘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은 조금 달랐다. 나의 세계와 무대가 어우러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음악극 <백치> 좋았다!

수북강녕
'나의 세계와 무대가 어우러지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상상하신 내용이 눈앞에 펼쳐지셨나요?! 책속 인물과 무대 위 배우님의 싱크로율이나, 공간에 대한 표현 등, 어떤 점을 특히 그렇게 느끼셨을지!
"말 많고 장황하고 지루한" 도스토옙스키를 3시간에 그려내기 참 쉽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 (연출님이 이 댓글 보시면 다음에는 7시간짜리로 만드실지도요 ㅎㅎ)

borumis
아아악..;;; 전 그러면 간식과 음료 두둑히 챙겨갈 거에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거 간신히 참았어요;;

borumis
5-1. 도스토옙스키는 항상 미쳐 날뛰는 듯한 사람들 속에서 어떤 냉철하고 진지한 논리를 발견하고 암울하고 출구가 안 보이는 듯한 현실 속에서도 그 미로 속을 짚어가는 여정 자체에서 희열을 맛보게 한다. 신이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어쩌면 예수도 인류도 동시에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을 제시한 이 작품을 '왜?'든 '어떻게?'든 삶을 향한 그 어떤 질문도 거부하고 싶어질 만큼 고통받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5-2. 솔직히 이 작품에 대한 연출 (특히 결말)에 대해 소설을 읽고 나서 그런지 다소 아쉽고 의아했던 점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교 때 연극동아리에서 주로 스태프(무대, 의상, 음향 등)로 활동하면서 연극이 종합예술이고 협동 프로젝트라는 것이 정말 와닿았는데, 이는 연출이 아무리 어떤 구상을 갖고 있더라도 말을 잘 안 듣는 무대감독이나 배우들은 또 각자 나름의 생각을 갖고 이에 따라 참여하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행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듯 연극 공연 후 GV에서 나현희 배우님이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매일 매일 로고진과 미쉬낀의 대사 연습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떤 키워드를 받고 이에 맞춰 그 날의 키워드에 맞춘 안무를 즉흥적으로 구상한다는 얘길 듣고 다들 그렇게 매일 새로운 안무가 가능하다니!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실은 배우분들이 매우 지쳤을 텐데도 자꾸 질문을 많이 하게 된 것도 관객도 연극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연극 GV가 참 참신하고도 귀중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연극 공연만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수북강녕
<백치> 예매처인 인터파크 관람후기에 몇 줄 남기고 왔습니다 ^^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15897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는 우리말 번역본 기준 1,200쪽에 달하는 작품입니다 책을 완독한 후 이 방대한 내용이 무대에 어떻게 구현되었을지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하였습니다 1회차 관람으로는 어려운 부분도 있어, n차 관람한다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단 피악의 전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를 2차례에 걸쳐 관람했는데, 무대 위에서 핸드폰으로 배우를 클로즈업해 촬영하는 모습과 영상을 무대 위 모니터로 그대로 송출한다든지, 배우에게 물이나 물감을 부어 오염?이나 씻김?을 표현한다든지 하는 연출이 유사해 흥미로웠습니다 러시아어로 대사하는 나스타샤를 그대로 등장시킨 것이 다소 생경했으나, 언어적 오해나 소통의 단절이라는 측면을 생각하며, 외국 배우가 무대에 함께 있다는 점, 그 역할이 특히 나스타샤라는 점을 이해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이뽈리뜨 역을 맡으신 안성채 배우님의 ''나의 필요 불가결한 해명''은, 공연 종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안해 주신 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함께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조심스럽게 제언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물로 씻김 받은 나스타샤가 미쉬낀과 혼약하고 백색의 웨딩드레스를 걸친 후부터, 미쉬낀이 나스타샤에게 경어 대신 반말로 대사를 하는데요 결혼하기로 한 여자, 소유하게 된 여자라 반말로 바뀐 것인가 싶어 다소 의아하고 불편하였습니다 재연 때 이 부분 조정될 수 있다면 대단히 기쁘겠습니다
연출님 말씀처럼,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신 배우님들 눈빛에서도 알 수 있듯, 이같은 인문학 고전을 공연예술로 올리기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 올려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극단 피악의 공연은 널리 알리고 꼭 보려고 합니다 여운이 길게 남는 관극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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