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D-29
공작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도 수치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는 <누군가 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 인간다운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백치 - 상 476쪽 ,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수치스럽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제가 받아들이기로는 수치스러움보다 안타깝다는 표현이 지금 우리 시대에는 더 정확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I'm sorry 도 미안하다 이외에 안타깝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것처럼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미쉬낀 공작입니다.
제가 지금 옥스포드판으로 읽고 있는데 여기서 Alan Myers는 The prince at length felt not so much sorry for him as conscience-stricken.이라고 번역했어요. 그리고 Pevear & Volokhonsky 번역에서는 The prince finally began to feel not so much sorry as a bit ashamed.라고 번역했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번역되는 것 같습니다. P&V 번역가의 영역은 러시아어 본문에 가장 충실하다보니 다소 직역체같다는 평을 받아서 아마 ashamed 수치스럽다는 표현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뭔가 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수동적인 자기 모습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예전에 건강했던 중학생이 급성뇌수막염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내과선생님들 모두 너무 안타깝기도 하지만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의사로서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꼈다고 하던데요. 요즘 자주 보이는 국경없는 의사회 광고에서도 그런 걸 느낍니다. 단지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데서 느끼는 불쌍하거나 안타까운 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데서 느끼는 수치감이랄까요?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중 <백치>가 가장 오역이 많은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치스럽다는 표현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좋네요 이폴리트의 <해명>에 대해서도 끝없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잘 되네요. 내가 무엇인가 더 해줄 수 있는데 못 했다, 응당 더 해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는 나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섞인 감정... 요즘 시대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뭐 맡겨 놓은 것 마냥 행동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일단 저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되겠어요. .TT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연뮤클럽의 뒤풀이 추진위원장인 김새섬입니다. 12월 1일 단체 관람 안내드립니다. 이 날 연극은 각자 예매하신 자리에서 편하게 관람하여 주세요. 극단 피악에 따르면 공연이 6시에 끝난 뒤 약 10분 뒤부터 공연장에서 스페셜 GV 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연출자, 배우와 함께 이야기하는 GV 는 약 3,40분 정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GV 가 끝난 뒤 저희는 근처 분위기 좋은 곳으로 옮겨 간단한 식사와 음료, 술을 즐길 예정입니다. 장소는 경의선 숲길 쪽에 '자무쉬(구 하숙바)'라는 멋스러운 한옥카페 겸 바입니다. @수북강녕 님께서 감사하게도 미리 사전조사까지 다녀오셨어요. 사람 없는 일요일 저녁이라 우리 연뮤클럽만의 오붓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크게 기대됩니다. 그럼 모두 곧 만나요~
우리끼리 오붓하게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은 룸이 있어요 커피 드실 분, 맥주 드실 분, 감튀나 피자 드실 분, 모두 드실 분, 다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멋진 장소랍니다 ^^
실은 제 밑에 있는 직원 중 한 명이 간질로 근무 중 발작하고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곁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이전에 환자를 본 적 있어서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했는데 그때 다음에 어떻게 그런 발작이 일어나는 걸 예방할 지, 그리고 발작이 일어나기 전의 다소 멍해지거나 기타 전조 증상을 알아차리면 바로 보고하고 쉬도록 하고 발작이 일어나면 주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려주고 교육했는데 2부에서 이걸 읽으면서 그때가 생각났네요.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간질을 앓아서 자세히 써줬네요.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많이 참고한다는데 신경과에서도 좋은 참조가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도스토옙스키의 글 자체가 약간 간질발작처럼 어떤 전조현상이 있다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어오르는 양상을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 건 저만 그럴까요?
자기만의 심각한 빌드업을 하다가 급발진! 동의합니다 폭풍처럼 몰아치죠 저는 10대 때 <죄와 벌> 읽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진지x스러움에 읭? 했었어요 이 사람 왤케 화가 많지... 싶어서요 ㅎㅎ
<독창성 따윈 없어도 좋으니 그저 평범하고 행복하게만 살아 다오.> 모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얼러 주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백치 - 하 503쪽 ,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백치 - 하
이 문장은, 미쉬낀 공작이 가냐를 평범하다고 평했을 때 가냐가 발끈하는 장면과 상당히 상반되는걸요?! (미쉬낀) "당신은 악당이 아닐뿐더러 당신을 특별히 타락한 사람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제 잘 압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저 어디든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 그저 성격이 무척 나약할 뿐 남들과 조금도 색다를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p.222 (가냐) "우리 시대, 우리 같은 족속의 인간에겐, 남들과 조금도 색다른 점이 없고 의지박약에 별다른 재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보다 더 모욕적인 게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버젓한 악당으로조차 인정해주지 않았죠. 아십니까. 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당신을 물어뜯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예판친보다 더 심하게 나를 모욕했어요!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태도에 격분해서 부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큰돈을 모으면 나는 최고로 색다른 독창적인 사람이 돼 있을 테니, 잘 알아두시죠. 돈이 무엇보다 비열하고 증오스러운 것은, 그게 재능까지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부여할 거고요." p.225
수북강녕님 예리하십니다.. ㅎㅎㅎ 자기가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죠..
다른 한편으로 자네의 모든 사상, 자네가 던진 모든 씨앗들, 그것들은 자네에게서 이미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형체를 얻게 되어 쑥쑥 자라나게 될 거라네. 자네에게서 베풂을 받은 자는 제3자에게 그대로 <베풂>을 전해 주기 때문이라네. 자네가 미래에 인간의 운명을 해결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아는가? 만약 이러한 작업으로 보낸 평생의 삶과 지식 덕분에 마침내 자네가 엄청난 씨앗을 던져, 이 세상에 거대한 사상을 유산으로 남겨 줄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
백치 - 하 623쪽,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라는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문장인 것 같아요.
적어 주신 문단의 앞부분도 적어 봅니다 "<자선과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자네 개성의 일부를 타인에게 내주는 동시에 타인 개성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걸세. 자네는 상호 교류를 하고 있는 거라네. 타인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자네에게 거는 보상은 가장 예기치 않았던 발견이 될 걸세.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네. 결국 반드시 자네는 과학을 바라보듯이 자네의 행위를 바라보게 될 걸세. 그것은 자네의 모든 삶을 휘어잡아 삶 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되는 거지. p.622"
오늘 수북강녕 책방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서울 은평구 평생학습관의 동네배움터 사업 월례회에 갔는데요 11년차 활동가 분께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공생이라는 가치를 생각합니다. 공생해야 한다. 더불어 함께 하면 아름다운 불빛을 밝힐 수 있다. 공생하게 하는 연결 지점을 만드는 사람이 활동가입니다. 연결 지점에 서서 움직이게 하고 연계하는 사람. 연계하는 것은 빈틈을 메꾸는 것입니다. 나의 일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지만 노력하며 배우면서 같이 연결하고 움직이게 하는 활동가의 삶을 위해 계속해서 갈고 닦고 살아갑니다." 미쉬낀 공작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니, 왜, 벌써, 진도가 4부인가요? 열심히 읽고 있는데 진도가 안나가는건 왜죠ㅠㅠ 진도 안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름들이 너무 길어서!!!!인 것 같아요...내일 모레면 공연을 보러가야하는데, 흑흑. 그믐에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연말이라 뭔가 약속도 많고 모임도 많다는 핑계를 대며^^ 쌓인 글들 찬찬히 읽으며 오프모임 기대하겠습니다^^
천천히 읽으실수록 진한 맛이 나는 책입니다 진도가 안 나가는 게 제게는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이름도 이랬다 저랬다, 한몫 합니다 ㅎ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임 드디어 단체 관극이 d-2 로 다가왔습니다 공지해 드렸다시피, 3시간에 달하는 공연이 끝나면 배우, 스탭 분들과 exclusive한 GV 시간을 갖게 됩니다 지난 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관극 후 진행되었던 GV를 기억해 보면, ① 이제 막 공연을 마치고 분장조차 다 지우지 않은 배우들, ② 소품도 그대로 남아 있는 무대 ③ 감동과 흥분이 가시지 않은 관객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극을 보시기 전이지만, 이 방대하고 복잡다단한 작품이 무대예술로 펼쳐질 것을 예상 및 기대하며, 당일 GV에서 나눌 "사전 질문"을 먼저 받겠습니다 함께 읽으며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 해소되지 않은 질문들, 우선 남겨 주시면 극단에 전달하도록 할게요 # 사전 질문을 남겨 주신 분께는 수북강녕에서 제작한 멋진 북파우치를 당일에 선물로 드립니다 # 모임은 관극 이후에도 이어지니 천천히, 한줄 한줄 곱씹으며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극을 보신 후 책을 펼치시면 또 다른 느낌으로 읽힐 것 같기도 하고요 ^^
<사전 질문> 공연 트레일러 영상부터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는데요, ‘백치’ 속 주요 인물인 ‘미쉬낀’, ‘나스따시야’, ‘로고진’, 그리고 ‘이뽈리뜨’ 모두 이 작품을 보았고 그에 따른 의미심장한 감상평을 각자 남겼습니다. 그럼 여기 계신 배우님들은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을 처음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그리고 극을 이끌어가면서 이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 라는 작품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나요? 위에 언급 드린 인물 중 누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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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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