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너희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거지?" 라는 연극 속 레베제프의 일갈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때로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과연 우리 무신론자들의 새 시대 윤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시대는 어떠한 사상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인권, 과학 그 다음엔...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D-29

김새섬

수북강녕
그믐의 슬로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우리는 독서와 모임으로 이 시대를 구원하려는 역 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김새섬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아멘~~~

조반니
[4부 미션]
구원이 실패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끊임없이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뽈리뜨의 연설에서 처럼,
백치는 과정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소설이라,
결말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말미에서 주요인물들이 파국을 맞지만, 미쉬낀 공작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했던 4명(예브게니, 베라, 꼴랴 그리고 아그라야)은 작품 속에서 공작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죠.
여기서 아그라야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어요.
신실한 종교인이었던 도선생님 입장에서 가장 최악의 결말 안겨준 인물이 ‘아그라야‘이긴 해요.
하지만 아직 어리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세상을 몰랐던 아글라야가 소설 속 결말과 같은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 좀 더 성숙해진다면…
그때는 미쉬낀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아글라야는 ‘위대한 유산’ 속 ‘에스텔라’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에스텔라가 오랜 후에 핍을 만났을 때 건네는 말처럼요.
[“시련이 나에게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교훈을 주었어, 그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지금 이 순간 내가, 핍 너의 심정이 나를 향한 마음으로 한때 어땠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대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위대한 유산(하)

borumis
아, 약간 저도 아글라야를 처음 접했을 때 약간 위대한 유산의 에스텔라나 김유정의 봄봄 또는 기타 만화책에서 많이 보는 소위 '츤데레' 캐릭터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ㅋ 바보같은 남주 주변을 맴돌면서 놀리면서도 계속 이끌어가는 여주.
저도 아글라야는 어찌보면 더 성숙해질 가능성의 여지를 남긴 것 같지만.. 결말에서 다소 사이비 종교, 그것도 거기 완전 빠진 광신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더라구요. 그만큼 생각만 있고 마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없는 맹신에 대한 경고를 한 걸까요? 리자베타가 1부에서 아글라야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요: "가슴은 있으나 머리가 없는 바보는, 머리는 있으나 가슴이 없는 바보와 똑같은 법이다. 옛말 이 진리다. 나는 가슴은 있고 머리가 없는 바보고, 너는 머리는 있으나 가슴이 없는 바보야. 그래서 우리 둘은 불행하기도 하고 고통을 받기도 하는 거다" 실로 아글라야는 리자베타를 가장 똑닮았죠. 그래서 가장 걱정하고 그녀의 걱정은 실로 묵시록처럼 미래를 예지하게 되었죠.

조반니
어쩌면.. 리자베타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아그라야가 소설 말미에 겪고 있는 모든 시련을 이겨낸 후의 모습
다시말해 흑화되지 않은 나스따시야(아글라야)의 미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보고니 리자베타도 엘리자베따의 애칭이군요ㅋㅋㅋ

borumis
개인적으로는 미쉬킨 같은 답답할 정도로 선한 사람을 보면 이폴리트만큼 열정적으로 싫어하지는 않아도 아마 예판친 부인처럼 환장하겠다고 팔딱팔딱 뛸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ㅋㅋㅋ
참 미쉬킨의 이름은 러시아어 '생쥐'에서 나오고 레브는 '사자'란 뜻이라네요. 겉으로 볼 땐 생쥐같이 초라하고 약해보이지만 실은 사자처럼 왕족의 기품을 갖고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는 모습을 의미하는 걸까요? 가장 로고진의 이름은 '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네요. 딱 성격 나오죠? 죄와 벌에서도 그렇고 도스토옙스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을 때 나름 신경쓰더라구요.

수북강녕
후반부에서는 확실히 이폴리트가 흥미로운 인물, 맞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늘 등장시키는 작품 속 작품,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 자살과 결투 소동, 시도, 성공? 을 구현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백치>의 앞부분, 주된 서사는 나스타시아를 중심으로 한 통속 로맨스라 읽기 쉬운 반면, 뒷부분에는 종교와 삶에 대한 깊고 지리한 은유들이 계속되어 눈을 크게 뜨고 뇌를 쉼없이 가동해 읽지 않으면 그저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듯해요

김새섬
그저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1인 뜨끔!

김새섬
공작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도 수치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는 <누군가 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 인간다운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백치 - 상』 476쪽 ,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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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
수치스럽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제가 받아들이기로는 수치스러움보다 안타깝다는 표현이 지금 우리 시대에는 더 정확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I'm sorry 도 미안하다 이외에 안타깝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것처럼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미쉬낀 공작입니다.

borumis
제가 지금 옥스포드판으로 읽고 있는데 여기서 Alan Myers는
The prince at length felt not so much sorry for him as conscience-stricken.이라고 번역했어요.
그리고 Pevear & Volokhonsky 번역에서는
The prince finally began to feel not so much sorry as a bit ashamed.라고 번역했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번역되는 것 같습니다. P&V 번역가의 영역은 러시아어 본문에 가장 충실하다보니 다소 직역체같다는 평을 받아서 아마 ashamed 수치스럽다는 표현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뭔가 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수동적인 자기 모습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예전에 건강했던 중학생이 급성뇌수막염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내과선생님들 모두 너무 안타깝기도 하지만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의사로서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꼈다고 하던데요. 요즘 자주 보이는 국경없는 의사회 광고에서도 그런 걸 느낍니다. 단지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데서 느끼는 불쌍하거나 안타까운 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데서 느끼는 수치감이랄까요?

수북강녕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중 <백치>가 가장 오역이 많은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치스럽다는 표현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좋네요
이폴리트의 <해명>에 대해서도 끝없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새섬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잘 되네요. 내가 무엇인가 더 해줄 수 있는데 못 했다, 응당 더 해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는 나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섞인 감정...
요즘 시대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뭐 맡겨 놓은 것 마냥 행동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일단 저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되겠어요. .TT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새섬
@모임 안녕하세요. 연뮤클럽의 뒤풀이 추진위원장인 김새섬입니다.
12월 1일 단체 관람 안내드립니다. 이 날 연극은 각자 예매하신 자리에서 편하게 관람하여 주세요. 극단 피악에 따르면 공연이 6시에 끝난 뒤 약 10분 뒤부터 공연장에서 스페셜 GV 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연출자, 배우와 함께 이야기하는 GV 는 약 3,40분 정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GV 가 끝난 뒤 저희는 근처 분위기 좋은 곳으로 옮겨 간단한 식사와 음료, 술을 즐길 예정입니다. 장소는 경의선 숲길 쪽에 '자무쉬(구 하숙바)'라는 멋스러운 한옥카페 겸 바입니다. @수북강녕 님께서 감사하게도 미리 사전조사까지 다녀오셨어요. 사람 없는 일요일 저녁이라 우리 연뮤클럽만의 오붓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 을 것 같아 크게 기대됩니다. 그럼 모두 곧 만나요~




수북강녕
우리끼리 오붓하게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은 룸이 있어요
커피 드실 분, 맥주 드실 분, 감튀나 피자 드실 분, 모두 드실 분, 다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멋진 장소랍니다 ^^

borumis
실은 제 밑에 있는 직원 중 한 명이 간질로 근무 중 발작하고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곁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이전에 환자를 본 적 있어서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했는데 그때 다음에 어떻게 그런 발작이 일어나는 걸 예방할 지, 그리고 발작이 일어나기 전의 다소 멍해지거나 기타 전조 증상을 알아차리면 바로 보고하고 쉬도록 하고 발작이 일어나면 주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려주고 교육했는데 2부에서 이걸 읽으면서 그때가 생각났네요.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간질을 앓아서 자세히 써줬네요.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많이 참고한다는데 신경과에서도 좋은 참조가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도스토옙스키의 글 자체가 약간 간질발작처럼 어떤 전조현상이 있다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어오르는 양상을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 건 저만 그럴까요?

수북강녕
자기만의 심각한 빌드업을 하다가 급발진! 동의합니다 폭풍처럼 몰아치죠
저는 10대 때 <죄와 벌> 읽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진지x스러움에 읭? 했었어요 이 사람 왤케 화가 많지... 싶어서요 ㅎㅎ

김새섬
<독창성 따윈 없어도 좋으니 그저 평범하고 행복하게만 살아 다오.> 모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얼러 주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백치 - 하』 503쪽 ,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백치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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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이 문장은, 미쉬낀 공작이 가냐를 평범하다고 평했을 때 가냐가 발끈하는 장면과 상당히 상반되는걸요?!
(미쉬낀) "당신은 악당이 아닐뿐더러 당신을 특별히 타락한 사람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제 잘 압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저 어디든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 그저 성격이 무척 나약할 뿐 남들과 조금도 색다를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p.222
(가냐) "우리 시대, 우리 같은 족속의 인간에겐, 남들과 조금도 색다른 점이 없고 의지박약에 별다른 재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보다 더 모욕적인 게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버젓한 악당으로조차 인정해주지 않았죠. 아십니까. 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당신을 물어뜯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예판친보다 더 심하게 나를 모욕했어요!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태도에 격분해서 부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큰돈을 모으면 나는 최고로 색다른 독창적인 사람이 돼 있을 테니, 잘 알아두시죠. 돈이 무엇보다 비열하고 증오스러운 것은, 그게 재능까지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부여할 거고요."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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