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쉽습니다. 다음 번 연뮤클럽에선 꼭 뵐 수 있기를!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D-29
김새섬
따비
2부 미션
러시아적인 것은 무엇일까? 작품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통해 연결되는 지점이 저는 ‘성과 속의 공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물들은 아주 통속적이라고 할 만큼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추구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면서 인간 감정의 여러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숭고한 마음, 신에 대한 의문과 추구, 신의와 사랑과도 같은 성스러운 면모를 같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러시아적인 것은 아주 성스러운 것과 아주 속된 것이 도선생의 작품을 통해 극단적으로 잘 대비되어 드러나며, 이 두가지는 양극이 아니라 오히려 한 인간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2부에서 미쉬낀과 로고진이 러시아 사람에 대한 대화에서 “어떤 사람은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우기고, 또 어떤 사람은 기도를 올리며 사람들에게 칼질을 할 정도로 믿고 있다니.”(p.342)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신론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말은 그 문제에서 비껴나가 있고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거지요.
속된 사람들이 서서히 성스러워지는 변화나 단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냥 이 두가지가 공존하여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다소 과장되게, 혹은 기이하게, 혹은 광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인간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둘 중 어느 부분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느냐,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느냐가 인물의 캐릭터가 되는 것 같구요.
따비
우리는 구걸을 하는 게 아니라 요구를 하는 겁니다. 그 어떤 감사의 말도 우리에게 들을 생각을 하지 마시오. 당신은 양심의 만족을 위해 돈을 주려는 거요.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p.440 독또렌꼬의 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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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비
그런데 자네는 공작이 빠블리쉬체프에게 가지고 있는 고마운 마음만을 염두에 두고 있어…뭘 믿고 공작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건가? 어떻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는 거지? 미친사람들이야!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p.440 돈을 받으러 온 부르도프스끼 일당들에게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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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저는 열린 책들 이북으로 보고 있는데요(최종 리뉴얼 2023년 2월 20일)
오타 발견해서 알려드려요~
나스따시야 생일에서 프티죄 게임 말미에 또쯔끼 차례 끝나고 다리야 알렉세예브나가 얘기하는 부분에서 찾아냈어요
["누가 당신에게 이런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지 말라고 그랬나요? 이렇게 현명한 사람들에게서 배워 보라고요!"
약간은 의기양양해진 다리야 알렉세예브나(또쯔끼의 충실한 오랜 지기)가 끼어들었다.]
여기서 또쯔끼의 충실한 오랜 지기를 나스따시야의 충실한 오랜 지기로 바꿔야하지 않나요??
그리고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백치' 종이책으로 봤는데요, 문장 사이 간격이 너무 촘촘하던데 최신 판본도 그런가요??
이북으로 볼때는 조절이 가능해서 느끼지 못했는데,,, 종이책으로 보고 간격이 너무 좁아서 놀람요ㅎㅎㅎ
김새섬
다리야 알렉세예브나가 또쯔끼의 부탁으로 나스따시야를 키워주지 않았나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만약 그렇다면 또쯔기의 충실한 오랜 지기라고 해도 될 것 같기도 해서요.
말씀하신 것처럼 열린책들 종이책 읽기가 쉽지 않아요. 글자가 너무 붙어 있어서 가독성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수북강녕
휙휙! 읽어나가야 하건만, 뒤로 갈수록 문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고, 곱씹고 재독해도 헷갈리는 것은 저뿐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는 나아갑니다
11.25~11.30 (6일) 4부 및 역자 해설/작품 평론 & 연보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면 ??? 싶고 믿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꼭 이렇게 맺었어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 4부 미션
▶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는 듯한 <백치>의 결말에 만족하셨나요?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고 동의하신다면 그 까닭을 적어 주세요 혹시 다른 결말을 원하신다면 내용과 이유를 들려 주셔도 좋습니다
▶ 이거다! 싶은 좋은 문장을 나눠 봅니다 다양한 판본으로 읽으시는 모임 회원들과 함께, 서로 다른 번역의 묘미를 느껴 보아요
이번에는 엽서 카드 외에 꽤 고급진 북파우치를 만들었어요 미션에 성실히 답해 주신 분께 드리려고요~! ♡
선경서재
4-1. <백치는> 미완으로 남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비해 확실한 결말이지요. 어제 음악극을 보고 와서는 나스타시야와 아글라야에 대한 느낌이 소설을 읽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라 재독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타락한 천사 '나스타시야'의 구원자를 자처하는 '미시킨'이라는 구조 속에서 저는 예수도 한 명의 인간이며, 구원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결국 나스타시야가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막지 못했고, 스스로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범인(凡人) 아글라야와 로고진을 통해 구원자와 인간의 연결로 바라본다면 또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2. 오로지 그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 여인이 만나는 것도, 이 만남의 이상스러움도, 자기 모르게 만나야 하는 이유도, 이 사건에서 느껴지는 석연찮음도 아니었다. 그의 두려움의 대상은 다름 아닌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였다. p478
수북강녕
어제 음악극을 보고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현장 질문은 가볍게 드렸지만 (ㅎㅎ) 궁금한 점이 무궁무진했습니다
@선경서재 님 글을 보고 궁금증 중 하나를 풀어봐요
어제 극의 후반에서,,, 나스타샤에게 "미쉬낀이 아닌 로고진이" 물로 씻김(세례)을 주는데요 그 정화 행위 덕분에 나스타샤가 미쉬낀과 결혼할 수 있게 되는 듯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쓰죠
세례를 주는 행위를 범인(凡人) 로고진이 하고, 그 결과로 오히려 나스타샤와 미쉬낀이 혼인을 약속하는 부분에서 범과 비범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어요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가 싶었고요 물론 결말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세속적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미쉬낀은 (자기 말처럼) 나스타샤를 긍휼히 여기고 구원하기보다 오히려 계속 두려워하잖아요 '공포'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요 문득, 영화 <귀여운 여인> 마지막에 줄리아 로버츠가 리차드 기어에게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왕자가 공주를 구한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냐고 묻는 리차드에게, 다시 공주가 왕자를 구한다고 했죠 (너무 갔네요 ㅎㅎ)
borumis
그쵸 저도 그런 부분들 등 궁금한 게 많았는데 웬지 깊은 질문을 하면 너무 긴 답변이 돌아올 듯하고;; 배우분들도 관객분들도 다들 너무 배고프고 지친 것 같아서..ㅋㅋㅋ
저번에 올린 제 원픽 노래 중 하나 'What if God was one of us?'의 가사에 대한 저의 답변은 저는 일단 무신론자여서 예수라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아주 독특하고 오리지널하지만 결국 인간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라고 해서 니힐리스트가 아니고 나름 어떤 규범이 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념이 있듯이 그가 신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또 인간으로서 그의 고뇌에 대해 연민을 느낄 것 같습니다.
의사든 변호사든 종교인이든 정치인이든 교사든 부모든 저는 타인에게 우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 한계가 있고 구원은 더더욱 넘사벽이지만 우리가 다른 인간에게 제한되지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으로 그의 인생이 획기적으로 확연한 변화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구원, 희망, 빛, 촛불, 횃불 등에서 떠올리는 변화가 실은 Revolution이 아닌 점진적 변화의 누적이 쌓여 evolution이 되는 가능성을 우리는 간과할 때가 많은 게 아닐까..합니다.
또한 어제 이폴리트 배우 안성채님의 말에서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가능하단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안그래도 최근에 읽은 독특한 좀비 미스터리 <살아 있는 시체들의 죽음>에서도 그런 비슷한 얘기가 있었어요. 죽음이 있어야 생명이 가능하다는.. 미쉬낀, 나스타샤, 아글라야 외의 배우들을 좀비처럼 분장한 것도 어쩌면 그런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비극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그 비극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싹트고 죽음도 결국 차츰차츰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되고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답을 계속 찾아가는 여정에서 행복이 있기에 어찌보면 이 작품이 과연 비극일까?하고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새섬
배우분들도 관객분들도 다들 너무 배고프고 지친 것 같아서..
=> 그러니까요. 연극 GV 가 영화 GV 와 다른 점이 그것이더군요. 온 몸을 내던져서 연기를 한 직후에 다시 무대에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소모가 다 되어서...
어제 박근수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 같은 조명 눈부심도 있을테고요.
김새섬
저는 "너희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거지?" 라는 연극 속 레베제프의 일갈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때로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과연 우리 무신론자들의 새 시대 윤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시대는 어떠한 사상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인권, 과학 그 다음엔...
수북강녕
그믐의 슬로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우리는 독서와 모임으로 이 시대를 구원하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김새섬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아멘~~~
조반니
[4부 미션]
구원이 실패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끊임없이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뽈리뜨의 연설에서 처럼,
백치는 과정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소설이라,
결말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말미에서 주요인물들이 파국을 맞지만, 미쉬낀 공작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했던 4명(예브게니, 베라, 꼴랴 그리고 아그라야)은 작품 속에서 공작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죠.
여기서 아그라야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어요.
신실한 종교인이었던 도선생님 입장에서 가장 최악의 결말 안겨준 인물이 ‘아그라야‘이긴 해요.
하지만 아직 어리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세상을 몰랐던 아글라야가 소설 속 결말과 같은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 좀 더 성숙해진다면…
그때는 미쉬낀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아글라야는 ‘위대한 유산’ 속 ‘에스텔라’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에스텔라가 오랜 후에 핍을 만났을 때 건네는 말처럼요.
[“시련이 나에게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교훈을 주었어, 그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지금 이 순간 내가, 핍 너의 심정이 나를 향한 마음으로 한때 어땠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대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위대한 유산(하)
borumis
아, 약간 저도 아글라야를 처음 접했을 때 약간 위대한 유산의 에스텔라나 김유정의 봄봄 또는 기타 만화책에서 많이 보는 소위 '츤데레' 캐릭터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ㅋ 바보같은 남주 주변을 맴돌면서 놀리면서도 계속 이끌어가는 여주.
저도 아글라야는 어찌보면 더 성숙해질 가능성의 여지를 남긴 것 같지만.. 결말에서 다소 사이비 종교, 그것도 거기 완전 빠진 광신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더라구요. 그만큼 생각만 있고 마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없는 맹신에 대한 경고를 한 걸까요? 리자베타가 1부에서 아글라야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요: "가슴은 있으나 머리가 없는 바보는, 머리는 있으나 가슴이 없는 바보와 똑같은 법이다. 옛말 이 진리다. 나는 가슴은 있고 머리가 없는 바보고, 너는 머리는 있으나 가슴이 없는 바보야. 그래서 우리 둘은 불행하기도 하고 고통을 받기도 하는 거다" 실로 아글라야는 리자베타를 가장 똑닮았죠. 그래서 가장 걱정하고 그녀의 걱정은 실로 묵시록처럼 미래를 예지하게 되었죠.
조반니
어쩌면.. 리자베타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아그라야가 소설 말미에 겪고 있는 모든 시련을 이겨낸 후의 모습
다시말해 흑화되지 않은 나스따시야(아글라야)의 미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보고니 리자베타도 엘리자베따의 애칭이군요ㅋㅋㅋ
borumis
개인적으로는 미쉬킨 같은 답답할 정도로 선한 사람을 보면 이폴리트만큼 열정적으로 싫어하지는 않아도 아마 예판친 부인처럼 환장하겠다고 팔딱팔딱 뛸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ㅋㅋㅋ
참 미쉬킨의 이름은 러시아어 '생쥐'에서 나오고 레브는 '사자'란 뜻이라네요. 겉으로 볼 땐 생쥐같이 초라하고 약해보이지만 실은 사자처럼 왕족의 기품을 갖고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는 모습을 의미하는 걸까요? 가장 로고진의 이름은 '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네요. 딱 성격 나오죠? 죄와 벌에서도 그렇고 도스토옙스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을 때 나름 신경쓰더라구요.
수북강녕
후반부에서는 확실히 이폴리트가 흥미로운 인물, 맞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늘 등장시키는 작품 속 작품,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 자살과 결투 소동, 시도, 성공? 을 구현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백치>의 앞부분, 주된 서사는 나스타시아를 중심으로 한 통속 로맨스라 읽기 쉬운 반면, 뒷부분에는 종교와 삶에 대한 깊고 지리한 은유들이 계속되어 눈을 크게 뜨고 뇌를 쉼없이 가동해 읽지 않으면 그저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듯해요
김새섬
그저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1인 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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