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에는 예쁘지 않은 여자들이 니온다. 그러나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들은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이 많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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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을 읽다가 영감을 얻는다. 그건 가장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많이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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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성찰
누구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사실 인간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내면이 마치 어리석음과 상관없는 식으로
내면만 파는 글도 있다.
그 인간 내면의 진실을 깊이 파고 계속 그것을
나열하고만 있는 사람도 있다.
그는 평생 그것만 한다.
그렇다고 그 어리석음이 치료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이건 이래서 이렇다. 그걸 알면 혹시 그 원인이 개선되는데
조금은 노력이라는 걸 할지도 몰라서.
인가의 개선은 어디서 일어나나 그 현상을 그대로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펼쳐놓고
개선 가능성을 탐문 보는 것이다.
자기의 성철이다.
이것이 있어야 개선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을 파헤치고 그걸 펼쳐놓고
그것의 바람직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현상을 파헤치고 그 원인을 파악하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걸 궁리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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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에 드는 자는 상대를 우연의 인연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맘에 안 드는 상대는 그 우연을 인 연으로 생각 안 하려고 발버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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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일수록 그것은 상징과 은유가 주로 들어 있어 더 어려운 것이다. 마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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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떨어진 일부 글
동떨어진 어느 문구가 있다.
앞뒤 문맥을 물론 모르는 문구다.
그 글을 읽고 나 혼자의 경험 비추어 그 글을
그냥 읽어버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글만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해
그것만으로 그냥 해석해 버린다.
그 글의 앞뒤가 없는 내용과 내 경험과
그 글로 인해 내가 바로 느낌 느낌만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실은 엄청, 의미 있고 깊은 내용이지만
그 문구만 보고는 해석이 잘 안 되고 그래서
내게 와닿거나 흥미롭지도 않다.
어떤 감동을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의 앞뒤에 해당하는 전체 글을 본 후에
그 내용은 다시 보면 그 내용이 더 흥미 있어지면서
그 글은 이제 전체 문맥에 맞게 바르게 해석된다.
전보다는 좀더 정확히 해석되는 것이다.
그 글만 봤을 때와는 다르게 해석됨을 깨닫는다.
이렇게 문맥 없이 단 한 줄만 꺼내놓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악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글쓴이를 비난하기 위해
그 작가의 의도를 폄훼하고 그 가치를 저급하게 만들기 위해
그것만 따로 떼어내 외부에 노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떼어놓은 글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면
전체의 글을 읽은 다음에 다시 봐야 한다.
그 진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손수 내가 찾아내
전체 글을 읽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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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한 사람끼리는 10년 만에 만났어도,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서먹한 게 없다.
세월의 격의(隔意)가 서로에겐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그들이 서로에 대해 계속 잊지 않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는 끊어졌지만, 마음의 끈은 이어져 온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시간과 장소의 유리(遊離)를 이긴 것이다.
그래 상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 무람없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물 흐르듯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마치 헤어질 때 끊어졌던 대화를 다시 잇듯이.
다른 건 이미 다 알아 그 대화의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
그들 사이엔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하는
그런 건 따로 할 필요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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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상황을 무시하지 말라
인간이 느끼는 것엔 그 당시에 실제는
복합적, 양가적으로 느끼겠지만
그 당시의 가장 강한 느낌을 글로 적을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인간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면
글에 임팩트가 사라져 글을 너무 무미건조하게 만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마침 심리학이나 심리상담사가 피상담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무난하게 가장 평균적으로 사는 것을
권하는, 누구나 상식선에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그런
뻔한 말을 그 피상담자에게 하는 것처럼 지극히
식상하고 상투적인 것이라 너무나
재미없는 그런 것하고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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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해보고 싶은 것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가 생각해 왔던 이상형의
여자와 단둘이만 있는 것을 가끔 상상하곤 한다.
물론 그녀와 거기서-아무도 없어, 그래 방해받지 않고-
자고 싶은 것도 있다.
그 외에도 내 생각을 그녀에게 털어놓고
그녀의 생각도 같이 공유하고 싶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이다.
이상형의 여자와 단 30분만 이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
늘 궁리하곤 했으니까.
그게 내 소원이었으니까.
실은 내 이상형이라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내 흥미를
안 끄는 게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다 흡수하고 싶다.
이제 우리 둘 다 나이가 들어,
내 고향 땅을 그녀와 같이 여행을,
아니 방문하고 싶다.
내 초등학교 교사를 구경시켜주고 그 당시 나는 여기서
무엇을 했고 이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러면 그녀도 자기 초등학교 시절을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는 고향 주변의, 그 당신엔 어려 꺼려졌던 곳을
그녀와 방문하고 싶다.
교정을 같이 거닐면서 저 변소에선 무슨 귀신이 나왔고
이 학교는 실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곳인데 공동묘지를
깎아 지은 곳이란 얘기가 전해지는데,
한번은 새로 부임한 젊은 선생이 숙직할 때 일어난 일인데
강당 저쪽 어둑한 곳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점점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약간 높은 산 뒤의 무서운 거기에
꺼려졌던 그곳을 이상향의 여자와 다시 방문하며
그 당시 감행하지 못했던 것을, 그녀와 직접 이젠 체험해
보고 싶다.
“여기가 사람이 죽으면 메고 가는 상여를 넣어둔
곳집이었는데... 이곳 오동나무 관에 낮에 서리한 닭을
쟁여 놓고 자정을 지나 그걸 꺼내러 갔는데...”
그녀가 무서워하면 괜찮다며 안아주고 싶다.
그녀의 가녀린 허리와 등을 다독이면서.
이 두 가지를 그녀와 단둘이
소곤거리며 같이 해보고 싶다.
그 흐릿하고 몽롱한 세계를 내가 항상 영원히 좋아하는
그녀와 직접 해보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너도 이성형이 있다면 같이 무얼 하고 싶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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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그리고 보편과 특수
그게,
국내에선 수능 금지곡이고, B급 술자리 게임과
곁들여진 중독성으로 계속 따라 부르게 되어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콜라보한
<아파트>가 전 지구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언론에서도 제2의 <강남 스타일>이라며 굳이
흥분을 감추지 않고 연일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덩달아 윤수일의 1982년 <아파트>도 한창 역주행하고 있다.
나는 윤수일의 <사람만은 않겠어요>를 노래방에서
즐겨 부른다.
그걸 부른 후 <아파트>를 부른다.
이게 정해진, 내 18번 레퍼토리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연예인이 있고
더럽고 냄새나는 노숙자가 동시에 상존하는 게
또한 세상의 진실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예인의 화려함만 보려 하고
노숙자의 불결함은 애써 외면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덮으려 한다.
그러나 그건 진짜(Truth)가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모두가 우리 세상이고 그걸 인정하면서
보듬어야 한다.
이걸 대비해서 일러주는 작가나 예술가가 필요하다.
인간의 겉과 속, 인간 사회의 진실을.
우리는 우리와 남이 만들어준 화려한 틀을 걷어차고
그 겉과 속의 진실을 모두에게, 전 지구인에게
그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보편성(Universality)을, 그 적나라한 날것의 모습을.
그런 걸 곡에 담아야만
K뮤직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우리 K컬처가 꾸준히 인기를 끌 추진 동력이다.
인간은 유사하기 때문에 자기 속마음을 대신
말해줄 사람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것으로 공감하고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있지만 외면해서 찜찜했던 것을 손수 드러내 주었기에.
이렇게 예술을 접하며 카타르시스를 체감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Catharsis)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한국 예술가들이
아주 가감 없이 드러내야 한다.
선진국에선 체면 때문에, 후진국에선 그럴 능력이 못 되어
못 하면 우리라고 끝없이 노출시켜야 한다.
인간의 진실과 보편을.
인류 보편성과 함께,
우리 특유의 한 번에 확 번지는 쏠림 현상과
2002년 월드컵 같이, 함께 어울리는 흥 문화가
세계인의 눈을 우리에게 쏠리게 하고 있다.
보편성으로 세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뭔가 신선하면서도 낯설고 특이함이 가미되어야 한다.
익숙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해야 한다.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모르는 세계에
대한 설렘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같이 향하지만
그 디테일에선 한국만의 특수성(Locality)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강이 한국의 특수상황인 광주 5.18과 제주 4.3을
가지고 폭력에 맞서는 인류 보편성을 글에 담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것처럼.
한국인은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그걸 문화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게, 노래면 노래, 드라마면 드라마, 음식이면 음식
문학이면 문학으로.
그러나 아직 한국 정치는 갈 길이 멀다.
이제 세계적 위상이 있다며, 자만해
나라 격에 맞게 너무 조심한다든가 방해를 해서
우리 고유의 독자적 문화를 잃게 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게 K-로 시작하는 콘텐츠를 새롭게 창조해 내고
유지해나갈 수 있는 비결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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