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책증정] 황모과의 파멸 SF 소설 <언더 더 독> 함께 읽어요.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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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6. 태어날 때부터 예정된 주인공의 고난과 역경, 자기 자신의 돌봄에 대한 절망과 타인의 착취……. 이런 소재 구상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생각하는 ‘삶의 태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요! 그믐 모임을 통해 이런 좋은 글을 읽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
그믐 모임을 통해 너무 우울한 글을 읽게 해드려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를 본 게 출발이었어요. 혹시 그 영화를 보실 기회가 있다면 어떤 장면에서 <언더 더 독> 구상을 했는지 한번 비교해서 봐주셔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영화에서 착상했던 요소는 딱 하나뿐이었고요. 최악의 밑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바닥이 있는 상황들을 다섯 가지 정도 나열해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보았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태도’란 음… 타자와의 관계성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사람들과 다 잘 지내는 편도 아니고 타인의 평가에도 그리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긴 하지만, 제 생각엔 나(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타자들인 것 같거든요. 이번 소설 <언더 더 독>에서도 반복해 묘사했지만 인간은 참 약한 존재입니다. 사실 저도 저 자신을 잘 믿지 않아요. 물론 좋은 사람이고 싶고, 멋진 사람이고 싶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위선적으로라도 노력하며 살고는 있지만, 만약 다른 사람의 눈이 없다면 저의 선택과 행동은 꽤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인도에서 살았다면? 혹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제게 생존 자원이 넉넉했다면? 아마 저는 아주 쉽게 나에겐 게으르고 남에겐 폭력적인 인간이 되었을 겁니다. 공부하지도, 노력하지도, 성장하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저는 20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요. 이민자로 살면서 저의 억압은 외적/내적으로 더욱 강화되었어요. 그 바람에 저를 알던 가족과 친구들은 예전에 비해 제가 많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환경과 무관하게 줏대 있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이미 글렀습니다. (흑흑) 주변 상황이 결국 저라는 자아를 구성한 것이죠. 우린 이토록 쉽게 지배받고 굴복하며 유연해집니다. (생존을 위해서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굴복했다고 남에게 폭력적이어선 안되겠지만요.) 그래서인지 저에게 있어 삶의 태도는 내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걸 누군가 전언해줄 때 비로소 확정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 위선도 떨고, 좋은 사람인 척도 하고, 멋진 척도 해야 저라는 허술하고 얄팍한 존재가 간신히 사탕발림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우울하다뇨!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읽을 수 있다니~제가 옥타비아 버틀러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울고 갈만큼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었어요. 현대핀 시리즈는 이 책으로 격이 한층 올라갔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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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7. 작가님에게 주인공 정민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일까요?
애착보다는 애증의 존재입니다. 작가의 말에 남긴 것처럼 저로선 정민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욕도 하고 싶고 미워죽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내 모습의 일부인 것 같아 차마 미워할 수 없달까요. 어떻게든 욕도 하면서 만나다, 또 내심 포기했다가도, 싸우고 화해하면서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해요. 그리고 어쩌면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정민 같은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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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8. 마지막의 발문을 보면 ‘CCR5’라는 유전자를 제거한 실제 쌍둥이의 예시가 나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여기서 처음 알고 새삼 작품 전체가 무척 실감 나게 느껴져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이 이야기를 구상하실 때 실제 이 사례를 알아보시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작품을 쓰실 때 이 같은 요소를 먼저 접하고 이야기가 떠오르시는 편인지, 아니면 이야기의 얼개는 미리 잡아놓고 이 같은 요소를 찾으시는 편인지…… 같은 집필 과정이 알고 싶습니다.
네, CCR5 유전자 이야기는 유전자 편집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사례인데, 가까운 미래에 에이즈가 완치되면 그땐 뭘로 정당화하려고 하나? 하는 마음으로 N-CCR5로 변형해 차용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이 알아보지 않으셔도 될 뒷단의 설정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발문을 써주신 김희선 작가님께서 CCR5 유전자를 설명해주셔서 리얼리티가 배가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김희선 작가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를……! 저의 집필 방식은 (약간의 영업 비밀이기도 한데요) 이야기의 얼개를 미리 잡아놓고 디테일한 요소를 찾아다닌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엔…… (소근소근) 이상한 생물이나 연구나 개념이 많기 때문에 (속닥속닥) 제가 구상한 얼개를 보강해줄 요소가 무궁무진합니다. 찾으면 또 다 나옵니다! 하하 물론 소재를 먼저 접하고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엔 유사한 시기, 유사 소재로 유사 발상을 한 다른 작가의 이야기와 겹칠 수 있어 독창성이 떨어져 보일 리스크가 있습니다. 반면 이야기의 얼개나 구도와 완결성은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특정 소재가 아닌 지점에서 이야기를 출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도 합니다. (이상, 비밀은 아닌 영업 비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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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9. [🐰&🍅] 그믐을 진행하면서 매 장 밸런스 게임을 살짝 던져보았어요. 매주 독자들이 남겨주신 답변이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황모과 작가님의 답변도 궁금해서 밸런스 게임을 드려봅니다.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한다면 작가님은 어떤 쪽을 택하실 건지요? - 먼 미래의 수명을 팔아 안락한 현재를 살기 vs. 현재가 고달플지라도 먼 미래를 기대해보기 - 죽을 만큼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쓸모 있는 나 vs. 고통은 없지만 패배자로 무기력한 나 - 가속노화가 되었지만 평생 부자로 살기 vs. 젊음을 유지하지만 개 사육장에서 평생 비-편집인으로 살기
와 이거 너무 어렵고 재밌는 질문이네요! (1) 먼 미래의 수명을 팔아 안락한 현재를 살기 vs. 현재가 고달플지라도 먼 미래를 기대해보기 저는 안락한 현재를 고르겠습니다! 굵고 짧게 살고 싶습니다! (2) 죽을 만큼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쓸모 있는 나 vs. 고통은 없지만 패배자로 무기력한 나 후, 이거 정말 어렵다. 저는 (머리를 뜯으며) 전자를 고르겠습니다. 엄청난 고통이라니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쓸모가 있음을 확인하는 약간의 기쁨이 수반된다면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하면서 견딜 수 있을 것도 같아요. 그리고 후자도 고통이 없을 수가 없어요. 패배감과 무기력함도 얼마나 큰 고통인데요! (3) 가속노화가 되었지만 평생 부자로 살기 vs. 젊음을 유지하지만 개 사육장에서 평생 비-편집인으로 살기 크흑 이것도 어렵네요. 저는 (저자의 집필 의도에 근거해) 개 사육장, 비-편집인을 고르겠습니다! 정민이 힘든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뒤, 개 사육장에서 머물렀던 젊고 무기력했던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을 겁니다. 젊었을 땐 그곳이 완전한 패배의 상징이라 생각했겠지만 가속 노화되어 돌아온 뒤에는 달리 보였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내가 놓인 현실이 개 사육장일지언정 이곳에서도 자신이 새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분명히,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비-편집인도 사실 누군가가 구획해놓은 기준일 뿐, 어떤 기준 속에 놓았을 땐 그저 무의미한 선일 수도 있으니까요. 비강화된 피부로 바깥을 돌아다닐 수 없는 순간에도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 누군가의 구획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작가님의 밸런스 게임+_+ "지금 내가 놓인 현실이 개 사육장일지언정 이곳에서도 자신이 새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분명히, 충분히 있습니다" 묘한 감동을 받았어요. 소설을 읽는 내내 지독하리 싶게 가혹한 삶이라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완전히 어둡다고 생각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작가님의 생각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 부분에 정민이 나름의 평안을 얻었다고 생각해서 참 다행이었고 좋았어요.)
🍅님 그믐 모임을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독하리 싶게 가혹한 삶을 살면서도 막막한 어둠 속에서 끝끝내 희망을 찾아내려는 게 또 삶인 모양입니다. 오늘 내일 국회 탄핵 표결과 촛불 행동이 이어질 터인데 시대의 어둠 속에서 함께 빛을 밝히길....! 새로운 세계가 열리길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밸런스 게임> 제가 젊었을 때였다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어차피 아름다움을 누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도 인간은 늙게 되어 있잖아요. ^^;; 제가 중학교 때 댕기라는 만화 잡지에서 읽은 신일숙 작가님의 어떤 단편이 있었어요. 주인공인 젊은 여성은 백화점에서 매일 힘들게 일하고 단칸방에 돌아와 삶에 지쳐 있습니다. 그러던 중 낯선 여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요. 자기와 인생을 바꾸지 않겠냐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지 들려주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여성은 굉장한 부자이고 남편도 외모가 멋진 남성이고 부인에게 지극정성이었죠. 그런 그녀가 왜 인생을 바꾸고 싶느냐고 묻자, 본인은 몸이 너무 약하고 병들어 있어, 힘들게 살아도 주인공 여성처럼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당연히 피곤한 삶에 지친 주인공은 인생을 바꾸자고 하고요. 헉....대부호였던 여성은 '할머니'였고, 젊은 남편 또한 할머니의 죽을 날짜만 기다리며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란....결말 그 당시 댕기에서 신일숙 작가님이 연재하던 모든 단편들이 반전이 있었고, 정말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는 건 거의 완벽하게 기억...컥 단 두편만 기억하고 있네요. 어쨌든 위의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다면 젊음을 택했겠지만, 개 사육장에서 살아야 한다면 단 1년을 살아도 우아한 할머니로 안락하게 살다 죽을래요~~ 심지어 그 개철장이란 게, 철장이 바닥이 아니고 그냥 철사로 엮인 거라 발이 거의 떠 있는 상태로 살아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언더 더 독>을 쓴 황모과 작가입니다. 요 며칠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오프라인 행사를 치르고 어젯밤엔 일찍 푹 자고 일어났는데요.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에… 나라가 한순간에… 기이한 평행세계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것 같은 아침을 맞았습니다. 제가 소속된 과학소설작가연대 작가님들과 함께 밤새 마음 졸이고 분노하며 성명서를 쓰고 문화예술인 연대체에 이름을 올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랬어요. 여러분도 국회 앞이나 거리에서, 또는 현장에 가진 못하지만 마음을 보태며 우리가 사는 세계가 누군가의 횡포에 간단히 휘둘리지 않길 기도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하루를 보내셨든 몸과 마음의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고작 한 사람의 무능으로 세계가 폭망하는 걸 보자니 무력감과 절망이 오늘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았지만 그래도 동시에 이 허술한 세계를 지탱해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음을 떠올립니다. 맨손으로 장갑차 앞에 서 계셨던 분들, 국회를 에워싸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직접 지켜내셨던 분들, 만에 하나 계엄군이 발포하기라도 한다면 젊은 사람들 앞에 나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노년의 시민분들, 불복종을 상상하지도 못하고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일갈하던 여성 정치인… 혼자일 땐 무기력해지지만 무기력한 마음까지 부끄러워지는 누군가의 모습을 일부러 찾아내어 봅니다. 그래서 개인는 무력하지만 우리는 강하다고 말하나 봐요. <언더 더 독> 그믐 모임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노동 시장과 자영업 현장 등 소박한 일상이 파탄난 시대, 우리는 어쩜 이렇게 취약한 존재일까, 하는 뼈아픈 마음으로... 2024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자 썼습니다. 다만 위로보다는 아픈 현실을 도드라지게 그렸기에 힘든 시기에 독자님들께 힘든 이야기를 안겨드려 송구한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책을 펼쳐드는 분들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했다고도 생각해요. 자신이 정치적 획책에 완전히 지배받고 있는데도 그런 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읽었으면 하는 마음도 컸답니다. 근데 그런 분들을 독자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잠재적 독자로 전제되지는 않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자발적으로 억압당하는 인물을 지나치게 냉소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려낼 수 있길 바라며 썼답니다. 보내주신 소중한 질문들, 저도 내일부터 하나씩 남겨보겠습니다. 남은 일정도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따뜻한 밤 되세요!
돈이 없는 자들은 교환 가능한 노동으로 값(빚)을 책정하기도 했다. 죽으러 가는 길도 비쌌다. 목숨을 다 쏟아도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살아남을수록 적자다.
언더 더 독 134p, 황모과 지음
얼마 전 사육장에 새로 유입된 사람이었다. 세상 누구보다 절망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덜 절망한 사람이었다.
언더 더 독 129p, 황모과 지음
이들을 지배할 수도 있고 복종시킬 수도 있다. 지배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건 내가 일찌감치 복종했었기 때문이다.
언더 더 독 126p, 황모과 지음
현대문학 핀시리즈는 지난 번 조예은 작가님의 '적산가옥의 유령' 이후로 두 번째인데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의 개성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깊은 울림이 있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언더더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해보고 제 삶의 의욕적인 부분을 성찰해 볼 수 좋은 기회였습니다. 황모과 작가님의 앞으로의 여정을 응원하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주신 현대문학 관계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생각하니 예외적인 일들이야말로 지극히 예사로웠다. 예외를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특수함이 예사롭다는 사실을 확인해왔다. 예외만이 기준의 무의미함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예외야말로 그저 평범한 일이다. 예외가 근원이고 고유함이며 본질이다. 예외가 이 세계의 본질이었다.
언더 더 독 112p, 황모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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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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