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앗 주종혁 배우, 구교환 배우 .... 유의태 배우님은 작품을 본 적이 없네요 (배우님께 죄송)
헉 노아 역에 전종서 배우! (꺅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매칭해주시니 이미지가 한층 더 강렬해지네요!
[현대문학/책증정] 황모과의 파멸 SF 소설 <언더 더 독> 함께 읽어요.
D-29
황모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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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벌써 3주차 독서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아요. 🥲
3주 동안 『언더 더 독』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독자분들의 깊고 있고 재미있는 답변을 읽으며, 여러 번 읽은 책이었지만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답니다.
이제 다음 주, 4주차만 남았습니다.
4주차는 독자분들이 보내주신 질문지에 황모과 작가님께서 답변을 해드릴 거예요.
아직 질문지를 쓰지 않았다면, 늦기 전에 꼭 질문을 남겨주세요.
📫 https://forms.gle/kw8WE5s5SkBXGwHu5
📍 12월 2일까지, 꼭꼭 질문 남기기 잊지 말아주세요!
4주차 이후, 우수 참여자를 세 분 선정하여, 핀 시리즈 중 한 권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마지막까지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현대문학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어제까지 모아주신 소중한 질문들 잘 받아보았어요 😊
매 장 준비해서 드렸던 질문들과 또 다르게,
'이런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는구나!' 하고 의문과 감정의 결에 놀라워하며 미리 읽어나갔답니다 ✨
여러분이 남겨주신 질문에 황모과 작가님께서 목요일과 금요일에 걸쳐 직접 답변을 해주실 거예요.
작가님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JiEum
다 읽고 필사까지 해놓고 "스포가 될까봐" 라는 핑계로 게으름부리고 있었어요.
siouxsie
필사라니...그것도 이렇게 정갈한 글씨로~너무 대단하세요!
현대문학
🐰 : 지난번에도 생각했지만 필사 넘 멋져요 😭😭 감동입니다~!
현대문학
🍅 : 필사 너무 대단해요!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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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1.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노파는 정말로 주인공 정민의 어머니인가요?
siouxsie
악! 끝에 그런 반전이 지금 읽다가 들어왔는데~
그 앞 반전? 반전이 넘 많아 몇 번째 반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의 반전도 충격이었는데 말입니다
황모과입니다
역시 이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네요! :) 저의 답변은....
사실 여러분께는 실망스러운 답일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그가 정민의 어머니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민은 사육장으로 돌아온 뒤 비로소 주변을 지켜보기 시작하는데요. 자신과의 관련성을 생각하면서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노파가 우리 어머니 같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그 정도의 감정 이입도 사실 전에는 쉽지 않았으니까요.
저의 의도는 이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민의 어머니가 어떻게든 살아남길 바라는 독자님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저자의 의도와 다른 방식의 열린 독해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siouxsie
저도 어머니일 거란 생각은 안했지만 주인공이 투영하는 노파의 모습에서 어머니에 대한 비참함이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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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2. 만약 살아남은 어머니라면 노파도 정민을 자기 아들이라 알아보고 있을까요?
황모과입니다
만약 노파가 살아남은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늙어버린 정민을 아들이라고 알아봤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자신과 타자를 인지하는 인간의 방식은 실제로도 매우 뻔하고 단선적이잖아요. 상대의 시간이 급속 노화했다는 것을 염두해 상대를 보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의 노동/삶이 가능해진 지금, 뻔한 인지 방식을 버려야 그나마 사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저 역시 SF를 쓰면서 언제나 생각하는 지점이에요. 이전 프레임을 버려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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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3. 만약 어머니가 아니라면, 어머니는 정말로 아버지에 동의해서 목숨을 끊은 것일까요? 아니면 정민의 예감대로 강제였던 것일까요?
황모과입니다
저는 정민의 예감대로 강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민도 이를 예감하면서도 똑똑히 직시하지는 못하는데요. 그것 역시 자신의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면피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직시한다면 그때 어머니를 도망치게 했어야했다고 뒤늦은 후회와 책임감이 따라올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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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4. “존엄을 확보받지 못한 환경에서 생명은 성장을 멈추고 관계를 멈추고 생육과 번성을 멈춘다.” (『언더 더 독』 140쪽)
완독 이후 기계들의 동시 소멸 선언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고립되는 2030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초저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수많은 뉴스 기사가 떠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이 부분을 쓰실 때 염두에 두고 계셨던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황모과입니다
우선은 현 시점 거대자본에 의해 챗GPT 및 AI가 완전히 잠식당한 상황을 제일 먼저 떠올렸어요. 인간의 집단지성인 자료들과, 서적과 같은 인류의 자산, 그리고 창작자들의 피땀 어린 결과물을 완전히 통합해 쓰레기(할루시네이션이라 부르는 열화된 정보)를 빚어내고 있는 상황에 가장 큰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대기업의 이윤 추구를 ‘인류의 새로운 성취’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에도 평소 반발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요. 이때 자원을 독점한 소수 상위 계층 인간들이 말하는 ‘인류’라는 표현 속 인간은 누구인가? 권력과 자원 없는 대부분의 인간은 그 표현 안에 포함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SF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설정되는 것처럼 정말로 인간의 인지 방식을 재현하는 인공뇌나 인공지능이 가능하다면 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로봇보다는 비도덕적 선택을 하는 로봇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리석고 무의미한 선택, 불리하고 비합리적인 선택, 심지어 살인이나 죄악, 또는 반자본적 선택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 끝에 <언더 더 독>에서도 집단 소멸을 선택하는 인공지능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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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모과 작가님께 도착한 질문
5. 핏불테리어 ‘테리’가 정민의 어떠한 면을 비추는 장치인지 궁금했습니다.
테리가 만난 세상은 ‘비-편집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만, 정민과 정민의 일상에서 긁어온 부품들도 만들어낸 세상이잖아요. 개 중에서 사육장에 갇혀 인간을 증오하는 테리가 연우를 물어뜯어 정민의 마음을 무너트리는 전개가 너무 충격적이라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사육장에 갇히고 인간을 증오하다 결국엔 가장 연약한 인간을 죽여버린 테리가…… 노아가 조작한 비극일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이 행복이 진실일 수 없다고 의심하던 정민이 초래한 비극일지……, 작가님은 테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황모과입니다
와, 정말 재밌는 질문을 주셨네요! 사실 이 책에서 <개만도 못한 삶>이라는 표현이 반복해 등장하는데 실은 저는 어떤 때엔 개가 인간보다 훨씬 낫다고도 생각합니다. 인간을 비하하기 위해 다른 종을 끌어들이는 것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일부러 위악적인 표현이라 생각하며 차용했습니다.
사실 테리처럼 상처 입은 개(동물)가 인간의 자의적인 한 두 번의 호의에 간단히 트라우마를 극복할 리가 없죠. 심지어 테리는 목줄이 채워져 정민의 뒷마당 철창 안에 여전히 갇혀있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참 제멋대로인 존재라, 자신이 1 정도의 호의를 베풀면 동물이든 인간이든 상대가 100으로 느껴주길 바랍니다. 저도 길고양이에게 츄르를 먹여준 뒤 할큄을 당했을 때 얼마나 서운하던지요!
저는 철창에 갇힌 테리, 혹은 갇히기 전부터 고통당했던 테리가 상대를 물어뜯어 죽일 만큼 분노에 휩싸인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일종의 저항이라고도 봤습니다. 같은 상황이었던 정민은 분노를 표출하거나 이빨을 드러낸 적도 없으니까요. 억압과 울분이라는 면에서 정민과 테리를 비슷한 선상에 두고 비교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정민(인간)이라면 가까운 곳의 가장 연약한 다른 인간을 죽여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를 만들어낸 존재들로 자신을 울분을 향해야 하겠지요. 이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요.
(나머지 질문지에 대한 답변은 내일 이어가겠습니다!)
하금
한 두 번의 호의로 한평생 지속 된 트라우마가 극복 될 수 없다는 말은 듣고나면 참 당연한말인데, 아직 제 무의식 시스템에는 심겨지지 않은 코드 같아요. 어쩌면 남의 호의에는 무조건 응해야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한 반작용이지만, 그 반작용의 에너지가 향하는 곳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말도 비슷한 것 같아요. 머리로는 쉽게 이해하는데, 행동으로 옮기기는 너무 까다로운 과정으로 느껴져요. 언제나 ‘왜?‘라고 질문하되 질문이 개인이 아닌 시스템을 향하도록 연습하다 보면 이 번거로움도 무의식 시스템에 안착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질문에 생각거리 가득한 답변이라 읽는 내내 즐거 웠습니다! 다음 답변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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