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모든 목숨 붙은 것들이 지닌 생명의 경중을 판단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목숨이 동물보다 중하다 할 수 없듯, 인외종이나 외계 생명체의 목숨이 인간보다 중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도 나 자신이 중하지 않은데, 누가 나를 중하게 여기지도 않는데, 내가 왜 이를 판단해야 하나. ”
『언더 더 독』 pp.85-86, 황모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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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1. SF적인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이번 장을 읽으며 생각나는 영화가 있을까요?
주인공 한정민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서 노아를 만났어요. 신체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한 상태에서 노아를 만나 1장에서 이른바 ‘통 속의 뇌‘가 되잖아요. 2장은 한정민이 스스로 사고할 권리를 포기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고를 포기하고 자아를 지울 단계가 되어서야 쫓겨나듯 3장으로 밀려나게 되는거죠.
1장이 주인공의 신체를 지워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2장은 인간과 그 외 존재의 자유의지를 지우는 단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장을 읽으면서 ‘데이빗‘ 생각이 참 많이 났어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프로메테우스]의 등장인물 데이빗은 8세대 인공지능 로봇이에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최초의 모델이죠. 표정과 몸짓, 어투에 감정을 담는 그야말로 인간 같은 뛰어난 인공지능 로봇. 영화 속 인간들은 그의 바로 그 지점을 역겨워해요. 진짜를 느끼지도 못하고 흉내나 낸다는거죠. 아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말이 사실과 다른 억지 주장(억까!)에 가깝다는걸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데이빗은 인공지능이잖아요. 입력 된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해서 적용하는 것이 데이빗의 일이죠. 데이빗은 정말 느꼈기 때문에 표현했을 뿐이에요.
인간과 보다 원활히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인간이 그렇게 시스템을 디자인했더니 되려 인간이 그를 더 미워하게 된 아이러니함. 더 큰 아이러니는 프로메테우스의 다음 작품인 [에이리언:커버넌트]에서 나타나요. 커버넌트에서는 데이빗의 다음 모델, 8세대 모델에서 자유의지를 제외한 모델이 등장해요. 인간과 강점적 상호작용은 가능하되 보다 인간 의존적으로 개편한 버전의 인공지능. 모든 존재가 보다 인간 의존적이게 된다는 점에서 언더 더 독이 말하는 다운그레이드와 비슷한 것 같아요.
언더 더 독의 다운그레이드는 말 그대로 ‘등급을 낮춤‘. 즉, ‘인간 이하로 등급을 낮춤‘이라는 말처럼 들려요. 인간 이하의 등급을 규정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사고를 위탁하는 존재를 뜻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남에게 판단을 맡기는, 혹은 맡길 수 밖에 없는 존재. 하달 된 업무를 해내는 것에만 의의를 두는 존재. 2장의 한정민은 반복적인 노동 속에서도 그 나름의 의미를 찾지만 결국엔 그를 빼앗기고 나중에는 ‘트라우마 치료‘라는 명목으로 의미를 찾을 기억조차 빼앗기잖아요. 경험을 빼앗겨 매순간이 미숙한 처음일 수 밖에 없는 존재. 메모리칩과 다를 바 없는 통 속의 뇌.
하금
생각 정리가 어려워서 글이 횡설수설하네요!ㅎㅎ 기간 중에 시간이 되면 또 다시 답해볼게요. 그 외에 떠올랐던 작품이 있어서 같이 적어놔요.
넷플릭스 러브데스로봇 시리즈 중 ‘얼음‘, 그리고 ‘팝 스쿼드‘. 각 20분 내외로 짧은 단편이에요. 전자는 신체 개조인과 비개조인 형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후자는 자본으로 영생에 가까운 수명을 획득한 기득권이 한정된 자원 보존과 본인들의 안락한 향략을 위해 비기득권의 출산을 금지하는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언더 더 독이 떠올랐어요.
현대문학
🍅: 하금님 안녕하세요!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를 봤는데.. 분명 봤는데! 질문을 만들면서 생각해보지 못한 영화예요. 그리고 설명해주시는 부분이 너무나 흥미롭네요. 😊 에이리언을 다시 봐야할 것 같아요.. !!
활자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아팠어요. 사람이 뭔가 대단해야만 사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
인류는 거대한 목표를 두고 거기에 닿기위해 현재를 사랑하지못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1.태어날때부터 그랬을까요. 아님 편집된 인류의 유전자의 혜택(?)이 였을까요.더 나은
후손을 남기기위해, 더 오래살기위해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일까요.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부터 바로 서고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인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요.
2.제가 본 영화 가타카, 아일랜드, 네버 랫 미고 등이 생각났어요. 이 모든 영화들은 각각
유전조작, 유전 선택, 그 유전자 조작과 카피로 인간성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죠.
3. 기계의 몸이라... 현재 실제 부분적으로 인공관절로 대체하고 있죠. 곧 인류는 로봇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기술이 발전되어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제 영혼과 정신을 옮길 기회가 온다해도
별로 바꾸고 싶지않아요. 그냥 늙고 싶어요. 자서전 같은, 동료같은 이 노구랑 같이 관에 눕고 싶어요.
4. 존엄이라는 것, 내 스스로 선택한 삶이 인정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제 삶의 방식이 다른이의 삶에 피해를
주지않는 선에서요.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소설 속 사회자체가 이미 존엄이 없는 곳이에요.
시작부터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해도 인간이 인간이 아닌 개와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선택조차도 할 수 없게 만든 사회의 문제가 눈에 들어왔어요.
아. 슬픈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 사회도 만만치 않다는 거에요. 유전자를 편집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다른 시작이네요. 그럼에도 책보다 현실에 기대를 조금해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고 손내밀어서 같이 가는게 인간의 존엄성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늘 모든것은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고 믿어요.
현대문학
🍅: 활자님 안녕하세요! 활자님이 남겨주신 '소설 속 사회 자체가 이미 존엄이 없는 곳'이라는 말에 무한 공감합니다. 정민이 너무나 안타까우면서 활자님 말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아서 무척 슬펐답니다. 🥲 '다른 이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고 하신 말이 인상적이여요. 언제부턴가 혐오가 만연한 세상이 되어버렸지요. 비난하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활자님 말씀처럼 우리가 조금더 서로를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황모과입니다
활자님 많이 아픈 소설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함께 읽어주시고 의견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이 뭔가 대단해야만 사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 인류는 거대한 목표를 두고 거기에 닿기위해 현재를 사랑하지못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100프로 찬성하는 의견입니다.
"소설 속 사회자체가 이미 존엄이 없는 곳"이고, 현실의 "우리 사회도 만만치 않다는 거에요. 유전자를 편집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다른 시작"이라는 말씀도 저의 집필 의도와 완전히 겹쳐집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라는 말씀처럼 제도적/구도적 문제를 바꿔나가는 것에도 가장 약한 자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 그리고 사랑이 전제되길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2024/12/6 이후 탄핵 표결과 촛불 행동이 이어질 예정인데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정치 세력을 단호히 처벌하고 세계를 회복시킬 때 그저 계엄 이전으로(만) 돌아가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혐 오로 세워진 힘이기에 힘을 무너트리면서 혐오가 함께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요.
하금
2. 누군가 독자님에게 새로운 몸을 준다고 한다면, 그게 기계의 몸이라도 받아들일 건가요?
아무 이유 없디 대뜸 기계 몸을 준다고하면 고민은 해보더라도 결국은 거절할 것 같아요. 한 평생 같이 살아온 이 몸과 친해지기까지도 너무 어려웠는데, 기계 몸은 이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쉬울 것 같진 않아요. 몸이 아프다는 감각이 들 때는 병원을 가야할까, 아니면 가까운 자동차 정비소로 가야할까? 그 고민부터 해야할 것 같은데... 제 건강보험은 그럼 어떻게 되는걸까요?
하지만, 반대로 현대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을 갖게 되었다면 대뜸 제안 받은 그 기계의 몸을 선택 할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라도 삶을 연장하고 싶은 욕망이 아직은 커요.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아쉬워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하는 공포에 질려서 기계 몸으로 절 이식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선 상황과 달리 나의 생명을 연장할 이유로 선택한 기계의 몸이라면 되려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목숨은 연장했으니, 기계몸이 되고서 겪을 정체성의 혼란은 나중의 문제로 치부할 것 같은데... 그런 주제로 강연을 하는 사람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서 인공 관절이나 장기로 신체를 대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테니 저와 공감하는 관객들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현대문학
🍅: 저번부터 느꼈지만 하금님.. infp 이실까요? 기계 몸을 갖고 강연하는 상상까지 어떻게 하시는 걸까요? ㅎㅎ
하금
앗, 들켰다! infp예요ㅎㅎㅎㅎ 남겨주신 질문들이 너무 좋아서 답변을 타이핑하는 동안에 온갖 상상을 하게 되더라구요.. 너무 즐거운 독서 중이에요📖🤍
현대문학
“ 몸을 잃고 의지를 잃고도 생을 완전히 정지하지 않을 이유, 삶의 마지막 이유만큼은 스스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신이 장난을 부린대도, 내게 환각을 안겨준 사람들이 있대도 마지막 선택은 온전히 내 거라고 믿었는데 노아는 그마저 부정하고 있었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기꺼이 선택하지 않았다고 믿어왔다. 그마저 착각일 뿐이었다. 다 노아가 만든 설정이었다. ”
『언더 더 독』 p.66, 황모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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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3. ‘존엄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삶’. 독자님이 생각하는 존엄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존엄을 '천부인권을 제약 없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하늘이 내린 권리'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저는 '절대적인 권리로 타인이 간섭하거나 박탈 할 수 없는 것' 정도로 받아들였어요.
제 나름대로 존엄의 정의를 언더 더 독의 사회에 보다 알맞게 변형하자면 "개인을 소속 된 범주가 아닌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상태"라고 하고 싶고요. 비-편집인과 편집인, 중산층과 저소득층 등 출생 이후 결정지어지는 후천적 요건의 간섭 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 봤을 때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상태가 존엄을 누리는 상태이지 않을까요?
당연할 질문일 수록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답을 쓰는데 정말 한참 걸렸는데 맘에 완벽하게 들지는 않네요ㅎㅎ 이 질문도 시간 날 때 보충할 수 있으면 보충하고 싶어요.
현대문학
🐰 : 하금 님, 안녕하세요! 뭔가 이번 책과 함께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어쩐지 뿌듯한 마음입니다 ... <언더 더 독>에서 존엄이 "개인을 소속된 범주가 아닌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하신 부분을 보면서 밑줄을 빡빡 그었어요. 주인공이 내내 바라오던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었고요.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언젠가 폭등할 것이라는 믿음)과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의 강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왜 유전자 편집을 받지 못하고 태어났는지, 왜 태어나면서부터 막장의 삶을 살았어야 했는지... 한 인간의 삶에서 정말로 그 인간 자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은 몇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을 모두 제쳐놓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꿈을 모두가 꾸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하금
📌밸런스 게임
죽을 만큼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쓸모 있는 나 VS 고통은 없지만 패배자로 무기력한 나
아! 무기력에 고통이 없다면 당연히 후자를 골랐을텐데.. 쓸모 있는 상태에서 겪는 고통이라면 보람이 있는 상태이지 않을까요? 보람이 있다면 ‘정신승리‘ 가능한 상황이라고 믿고 전자를 고를래요.
죽을 만큼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내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종류의 일일까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상황에서의 쓸모라면 감수하고 싶어요. [언더 더 독]을 읽고 나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약자와 제가 정의하는 존엄성이 같은 의미라고 못 박아두고 시작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첫 직장을 그만두고 약 6개월간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꿈 많은 무직 상태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무기력함을 느꼈어요. 나름 활동을하고 있는데도 직장에 다니 때처럼 당장 손에 잡히는 노동의 증거가 없으니까 정말 속수무책으로 우울감에 휩쓸리더라구요. 월급의 유무도 중요하지만 한 단체에 소속 되어서 나의 업무를 이해하는 타인과 소통하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는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느꼈어요.
그래서 후자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외부에서 가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고통이 없는데도 내가 나를 자진해서 갉아먹는 상태로 존재하기. 통 속의 뇌가 된 정민 씨의 상황이 딱 이런거겠죠? 그 고통을 외부의 개입 없이 벗어나는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언더 더 독]이사회복지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부터 개입해야 개인을 구제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대문학
🐰 : 앗 ... 정신승리도 승리다 ...! (ㅎㅎㅎ) 하금 님께서 "외부에서 가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고통이 없는데도 내가 나를 자진해서 갉아먹는 상태"로 설명해주는 부분이 무척 와닿아요. 이미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데 외부 개입 없이 벗어난다는 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요 ㅠㅠ 흔히들 구원은 셀프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구원이 셀프일 수 있을까, 나조차 내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구원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사회 복지 서비스로 연결되는 점도 생각지 못했는데 그 이유에서 사회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 이유에서 존재해야지 사회가..., 인간의 존엄 자체를 앞서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사회 가 사회로서 존재하기 위해 몇 인간의 존엄이 희생되는 일이 의외로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현대문학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2주차 독서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
둘째 주에는 2장 더티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독자님들이 질문에 맞춰 생각의 폭을 펼치시는 걸 보니,
새삼 하나의 이야기가 백만 가지의 감상으로 이어지는구나 하고 감탄했답니다.
더티워크는 많은 이가 꺼려 하는 노동을 뜻하는 말인데요,
여러분이 이야기해주신 ‘존엄’의 기준에 대해 공감하며 언젠가 그것이 지켜질 날이 오길 바라보기도 했어요. 😌
3주차 독서 안내해드립니다.
드디어 종막입니다! 🐚🌱
📌 3주차 (11/22~11/28): 3장. 언더 더 바텀
1. 죽음의 문턱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삶을 쥐여주는 ‘노아’는 악인일까요?
2. 주인공과 노아, 그리고 아내와 아이, 다시 만나게 된 유진 등을 가상 캐스팅해본다면?
3.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면 독자님은 그 돈을 어떻게 쓰실 건가요?
📌 밸런스 게임
가속노화가 되었지만 평생 부자로 살기 VS 젊음을 유지하지만 개 사육장에서 평생 비-편집인으로 살기
📍 마음에 든 '문장 수집'하기
📍 읽으면서 궁금한 점을 질문함에 적어주세요. 다음 주에 황모과 작가님이 답변을 해드립니다.
📫 https://forms.gle/kw8WE5s5SkBXGwHu5
3주차도 자유롭게 독자님들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편집자 🐰와 마케터 🍅도 열심히 독자님들과 마지막까지 계속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Henry
네가 나를 온종일 기다리지 않더라도, 나를 기다릴 사람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
『언더 더 독』 P.124, 황모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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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기대와 욕심, 희망과 꿈. 이런 것들에 경도되어 이래저래 휘둘리는 삶도 어쩌면 이런 단순하고 소박한 결론이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어지러웠습니다.
현대문학
🐰 : Henry 님 말씀대로 사실 이런저런 것들에 휘둘리다 보면 가장 단순한 것이야말로 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따스해지는 것을 보면요 😊
Henry
1. 죽음의 문턱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삶을 쥐여주는 ‘노아’는 악인일까요?
> 케바케일듯 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류의 질문들이 누군가에겐 그저 재미있는 상상일테지만, 또 누군가에겐 치가 떨리는 폭력일수도 있을테니… 노아의 그러함은 선악의 경계 어디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2. 주인공과 노아, 그리고 아내와 아이, 다시 만나게 된 유진 등을 가상 캐스팅해본다면?
> 정말 영상화되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조현철
노아: 엄태구
아내: 서현진
아이: 이레
유진: 김민하
3.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면 독자님은 그 돈을 어떻게 쓰실 건가요?
> 유산의 10%만 나 스스로를 위한 여행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특별목적의 재단을 만들어 지역사회 공동체에게 경영을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