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D-29
나는 전체 주제도 보지만 그 문장 자체에서 묻어나는 걸 살피는 것이 있다. 나는 그런 문장을 다시 카페에 올린다. 그리고 거거서 얻어지는 강령한 영감으로 내 진짜 글을 쓴다.
여자 작가들의 한 문장에는 여러 의미가 많이 들어있다. 그것도 쉽게 쓰지 않고 은유적으로 쓴다. 그래 읽기 더 어려운 것이다. 이러고 싶어 그러는 것인지 독자가 자기를 더 높게 평가하기를 바라 그러는 것인지 따져보고 싶을 정도다. 왜 글을 좀 쉽게 쓰지 못하나.
한글을 무조건 줄이려고 하는데 줄이면 안 되는 글자도 있다.
자기가 사람을 알은 체하는 것보다 그걸 받는 게 더 피곤하다.
40대 남자하고 싸우면 그 부류의 나이대 인간들이 싫고 20대 여자하고 싸우면 그 부류 여자 전체가 몽땅 다 싫어진다.
시비붙이려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인간들에게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이름이 알려는 작가들이 그게 팔리거나 말거나 그냥 자기 생각을 두서없이 한다. 이제 정궤도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소년으로 남아야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그 틀에 갇히기 쉽다. 그걸 경계해야 한다. 누구나가 다 어린애의 말을 더 잘 듣고 믿는다. 그들이 더 있는 그대로 말하고 뭔가 재면서 말하지 않아 진실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선진국도 선진국으로 누린 모습이 있고 자기들도 그걸 알아 거기에 맞게 글을 쓰려고 한다. 이것도 한 틀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본도 그렇기에 영화 <어느 가족>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자기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라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왜 그렇게 안 좋은 면을 굳이 드러내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예술적으로는 대단한 흠결이다. 국가가 예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행위다. 그런 말 자체가 안 나오는 사회가 예술적 토양이 비옥한 사회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그런 틀이 생기지 않아서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 나올 수 있던 것이다. 우리의 상처를 드러내는데 아직은 거침이 없다. 실은 인간이 꾸려가는 사회엔 상처가 없을 수 없다. 그걸 가린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누구나 겪는 보편성을 가감 없이 다뤘기에 2024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다. 주렁주렁 달린 게 없고 지킬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체면 구길 일이 별로 없다. 유명 배우가 잘나갈 때는 아무 작품에나 출연하지 못한다. “내가 가오가 있지. 거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다. 자타가 공히 만들어낸 연기의 틀 안에 안주한다. 운신의 폭이 좁다. 리즈시절이 지나 불러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을 때 다 내려놓고 망가지는 작품에도 출연하는데, 의외로 그게 장기 인기 비결을 창출하기도 한다. 자기의 숨었던 끼가 발산되어 연기의 정점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틀을 걷어내고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기 연기에만 몰입했기 때문이다. 곁가지는 걷어내고 핵심에만 전념한 결과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아 감투를 쓰고 그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으면 그때부터 오히려 자유로운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도 흔하다. 그것보다는 더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글을 함부로 내놓지 못하고 그 안의 일정한 문법 체제 내에서 써야 한다는 울타리가 쳐져 자기 글의 방향을 미리 잡아놓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꾸 자기와 주변을 살피면서 쓰게 된다. 이건 사회가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에게 이보다 더 척박한 집필 환경도 없다. 작가가 틀에 갇히는 건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며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몸부림쳤던 거 아니겠나. 자기 생각의 확장을 방해하는 종교(보호막, 실은 장애물)라는 껍데기를 걷어내려고. 작가에게 틀에 둘러쳐지거나 스스로 틀을 만들면 그는 그 안에서밖에 생각을 못 해 항상 그런 글만 생산한다. 아무것도 의식 안 하고 붓 가는 대로 쓰는 예술가가 가장 행복하고 그런 가운데-클리셰 없는- 세상에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걸작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그걸 잣대로 현상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그 틀에 갇힌 것이다. 세상의 평가가 작가의 상상력을 침해하기도 하고 자기 사상을 훼손하기도 한다. 그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한 사르트르는 그게 자기 실존을 훼손한다고 보고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거 아니겠나. 인간의 눈에 안 보인다고 그게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독수리의 눈엔 그게 너무 잘 보인다.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실존을 망원경과 현미경을 들고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좀 익숙하다 싶으면 그것에 이름까지 부여한다. 그런 것들은 인간이 발견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 사람은 만들어진 틀에서 나오기 쉽지 않고 평생 그 말밖에 할 수 있고 그걸 듣는 상대는 상당히 못마땅하다. 왜 자기도 나오지 못하는 틀을 남에게 씌우려 하나. 그는 그게 진리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철이 들고 세상 물정을 알면 자기를 감싸는 틀을 고려하고 의식하며 말하기 때문에 진실과 거리가 멀 수 있다. 사회적으로 가진 게 많은 사람은 거기서 놓여나기 쉽지 않다.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세상 때 묻지 않은 아이가 그래서 더 믿음이 가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 궤적을 남겨 그 틀에 아직은 안 갇힌 작가가 더 자유롭게 글을 맘대로 쓸 수 있어 그 글이 더 순수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은 틀에 갇히지 않은 청년의 글이 더 진실되기 때문에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확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뭔가를 고려하는, 자기 검열의 속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런 소년의 글이 그래서 더 귀하고 가치 있다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청년으로 요절한 이상문학상을 가장 알아주고 일본에선 세상의 고뇌를 짊어지고 청년으로 자살한 아쿠타가와상을 그래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여기는 거 아니겠나. 오직 순전히 문학만 생각한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기려 그런 상을 만든 것 아니겠나. 상을 받는 후배 작가들에게 그 정신을 오래도록 간직하라고. 청년 시절의 글이 더 순수와 진실에 가깝고 표현의 한계, 아니, 아예 기성 틀에 아직은 갇히지 않았기에. 위에 언급한 내용에 대해 거듭 부연하자면,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장 폴 사르트르는 거부한 것이 마치 모순되는 논리 같은데 그건 아니다. 받게 된 것은 사회의 틀 안에서 요구하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 무난한 내용의 글에 맞서 글을 내놓아 -인류가 추구하는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보편성을 획득해 수상한 거고, 거부한 건 자기 사상의 일관성과 신념 때문에 그랬다는 점에서 사회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그걸 벗어나려고 했기에 둘은 다르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사회가 만든 틀을 벗어나 거기에 갇히지 않았다.
현실에 너무 기대를 걸지 마라 현실에서의 큰 기대는 절대 금물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게 현실에서 거의 진리에 가깝다. 그저 인간 사이에서 기본과 상식선에서 그저 가볍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뭔가 특별히 열정을 바칠 것도 없다.
상처를 그냥 두지 말자 남의 말이나 표정으로 상처를 받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힘들어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대개는 돌아온다. 그러나 그게 평생 안 잊혀지는 것도 있다. 아마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면 다 그럴 것 같다. 타고난 기질로 좀 심하기도 하고 그냥 가볍게 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 이렇게 되면 상처를 받아 위축된다. 삶에 대해 깊이는 아니더라도 회의가 될 때도 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다시 원래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것에서 파생되는 분노나 원망, 상대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러다가 대개는 만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 힘이 대단하다. 이 힘으로 나를 발전하는 데 쓰면 어떨까. 엄청난 힘을 발휘할 때도 있으니. 왜냐면 나는 뭐든 부정적인 것엔 긍정적인 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게 반복된다. 좋을 때와 평생 시로 돌아왔다가 다시 남의 그런 것에 의해 상처를 받아 확 하고 에너지가 폭발한다. 그것으로 그를 공격하고 싶은 것이다. 긍정적인 것과 반복되는 그 힘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활용하자. 나는 자아실현, 즉 내 책에 대한 것에 써먹을 생각이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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