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② <올리버 트위스트>

D-29
올리버 트위스트는 초기 작품이군요. 전 2부 4장을 읽고 있는 중인데 올리버에게 언제나 좋은 날이 올지 걱정을 하며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이 아동이라서 아동용 소설로 분류를 했나 봅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읽다보면 인물의 묘사가 참 흥미롭게 되어있던데 <위대한 유산>은 각 인물 뿐 아니라 신사란 개념과 당시 사회상 속에서 주인공의 한계와 이에 따른 고뇌와 성장이 느껴졌다면 <올리버 트위스터>에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이 나열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신기한 점은 소제목이 서사적인데, 당시 문학작품들의 특징일까요? 찰스 디킨즈의 특징일까요? 배우가 꿈인 디킨즈의 낭독이 실감났다니 신기합니다. 설민석이란 강사분이 강연할 때 강연 장 사람들의 집중력이 아주 좋던데 그 분의 전공도 대학시절에는 연영과셨더라구요. 자신의 작품을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읽어주다니 참 멋진 능력인거 같습니다. 저도 지금 올리버 트위스터도 재미있지만 위대한 유산이 좀 더 작품이 깊이가 있는 듯 느껴집니다. 전 주인공들의 인물간의 단편적 모습보다는 사회 속에서 주인공의 한계와 고뇌가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20장까지 읽었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로 느끼고 있었어요. 위대한 유산은 1인칭이고, 되도록 사실주의적으로 쓰려는 의도가 느껴진 거에 비해서, 올리버 트위스트는 디킨즈가 막 인기를 끌게 되면서 자기 스타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생생한 인물 커리커쳐와 냉소, 비판 그리고 구체적인 런던 묘사로 펄펄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나저나, 소매치기들이 사용하는 은어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았는지 신기하기도 해요. 그 당시 출판물 중에 그런 은어를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을까요? 디킨즈가 아무리 공장에서 일했어도 소매치기 은어까지 쓸 정도는 아니였을 것 같은데요..
디킨스의 낭독회에 너무 가보고 싶네요. 작가 연보를 보니 과도한 낭독회 일정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낭독회 일정을 소화하던 중 마비 증세로 쓰러지기도 했다는데, 낭독회에서 어지간히 에너지를 쏟아부었나봐요... 저는 3분의 2 정도 읽은 지금까지는 '위대한 유산'보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더 재미있어요. 올리버가 너무 사기캐인 느낌이 있지만(잘생기고 엄청 착하고 그렇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애가 순수하기 이를 데 없고, 내용 흐름상 집안도 좋을 거 같음), '위대한 유산'의 복잡한 인물들에 비해 '올리버 트위스트' 속 인물들은 다 지나치게 전형적인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왠지 더 술술 읽혀서 말이지요. 사건의 전개나 묘사도 왠지 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ㅎㅎ 소설의 깊이라는 면에서는 @거북별85 님 말씀대로 '위대한 유산'이 한 수 위인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위대한 유산'의 핍이나 에스텔라가 썩 매력적 인물이 아니었거든요. 에스텔라 자체가 그리 중요한 인물로 다뤄지지 않은 면도 있지만요. (생각해보면 에스텔라는 핍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만 의미를 지니는 듯 그려져서.. 그게 참 아쉽네요.) 여튼 얼른 끝까지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CTL 님 글을 읽으니 또 생각이 달라지네요. ^^ 초기작의 미숙함으로 봐야 할지 아닐지를 차치하고, <위대한 유산>과 비교하면 <올리버 트위스트>가 약간 판소리극이나 옛날 한국 또는 홍콩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딘지 다들 익살스러운 데가 있고 호들갑스럽고 개성은 있지만 평면적이라는 면에서요. 서술자가 변사 내지 해설자 역할을 가끔 맡는다는 점도 눈에 띄네요. ㅎㅎ
저는 (아직) 21장까지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올리버의 기구한 삶이 너무 안쓰러워요. 어쩜 이렇게 사사건건 험난한 일들만 가득한 거죠(작가님 나빠요ㅠㅠ). 중간중간 삽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축처진 눈매처럼, 곁에 있다면 토닥여주고 싶어요. 앞서 읽었던『위대한 유산』과 비교해보자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싫고 나쁘네요...(흠) 『위대한 유산』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기 등장인물들은 뭔가 선이 없달까. 무서워요. 아이들을 도구처럼 대하는 것도 화가 나고요. 하지만 읽는 재미는 역시나 쫄깃합니다(쿨럭).
다행인 건 생각보다는 고생하는 기간이 길지 않답니다~ 조금만 더 읽으면 돼요!!
책 속의 무시무시한 묘사들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생생해서 허연 책장들이 핏물로 붉게 물드는 것만 같았고, 책에 적힌 말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공허하게 중얼거리는 속삭임처럼 들렸다.
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돌바닥은 진흙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거리엔 검은 안개가 자욱했으며,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사방이 차갑고 끈적끈적했다. 유대인 노인이 돌아다니기에는 딱 맞는 밤 날씨 같았다. 이 추악한 노인이 벽과 문간 아래로 숨어서 미끄러지듯 걸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진흙과 어둠에서 만들어진 징그러운 파충류가 밤에 먹이를 찾아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유대인 노인에 대한 묘사가 섬뜩합니다. 글만 읽어도 선입견 생길듯요!!^^;;
전체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곳에서 오로지 선술집들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술집들 안에서는 아일랜드 하층민들이 온갖 열성을 다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큰길에서 여기저기로 갈라져 나온 포장한 샛길이나 마당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술에 취한 남녀들이 오물더미에서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 집 문 앞에서는 굉장히 인상 나쁜 녀석들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는데, 외견상 결코 호의적이거나 무해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쭉쭉 읽어서 막 3부 3장을 마쳤습니다. 조연인데 낸시라는 인물에 참 마음이 쓰이네요. 이 작품에서 가장 복합적이고 또 연민이 가는 캐릭터입니다. (올리버는 보는 사람 심리를 조종하는 외모라는 수퍼파워를 지녔기에 제 마음은 덜 가는군요. 그거 엄청난 능력인데. 허허.)
2부 1장 재밌네요. 범블씨와 코니 부인 썸타는 이야기. 아주 간질간질하게 범블씨가 키스에 성공하는 과정을 긴장감있게 잘 그린 걸 보면 본격적인 연애 로맨스 소설도 잘 썼을 것 같은데요. 왜 <위대한 유산>에서는 에스텔라와 핍 간에 이런 긴장감이 느껴지는 순간은 없었을까요.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는 두 인물의 썸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그린 아이러니함이 2부 첫 시작부터 이 소설의 재미를 확 끌어올려주는군요.
완독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좀 읭? 스러운 부분이 있네요. 너무 갑자기 사건이 후루룩 해결되는 느낌. (몽크스 왜... 아무 증거도 없는데...)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페이긴의 심리 묘사는 정말 압권입니다...! '위대한 유산'도 술술 읽히긴 했지만 그렇게 재밌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주변 인물 몇몇이 매우 흥미로웠지만요), '올리버 트위스트'는 개연성이 좀 부족해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두 도시 이야기'도 벌써 기대되네요. 저는 시공사 책으로 읽었는데 황소연 번역가가 말미에 수록한 작품 해설을 읽으니 작품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되었어요. 몇몇 부분만 옮겨 봅니다. 신사 이야기도 나와서 '위대한 유산'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네요. * 1830년대는 과거의 낭만적 전통 속에서 공리주의와 합리주의가 득세한 시기였다.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빈민의 양산 같은 급격한 도시화의 부작용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17세기부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빈민법이 시행 중이었는데, 공리주의적 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의 위정자들은 사회적 공리를 위해서는 개인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믿음하에 기존의 빈민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1834년 신빈민법을 제정했다. 이전의 빈민법은 누구나 정부의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했으나 신빈민법은 빈민의 이기성을 부각하고 이들을 억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원외 구호는 폐지되었고, 구빈원에 수용되면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남녀를 구분하는 원칙에 따라 남편과 아내는 같이 지낼 수 없었다. 사실상 이 법은 빈민 구제가 목적이 아니라 재정 부담을 덜려는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중략) 사정이 이러하니 구빈원은 낙오자 낙인이나 다름없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구빈원 수용자들에 대한 교구 관리들의 멸시나 올리버를 무시하는 자선학교 학생 노아의 태도는 결코 극적 과장이 아니다. * 빅토리아 시대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도덕적 엄숙주의다. 엄격한 매너와 절제가 강조된 시대였는데, 고상하지만 방탕하고 음란했던 직전의 조지 왕조에 대한 반발이었다. 성실, 품위, 절약이 미덕인 사회였다. 이 작품의 교구 관리 범블과 구빈원 총무 코니 부인도 예외가 아니다. 두 사람은 점잖고 은근한 연애 기술을 발휘해 결혼이라는 실리를 취한다. 체면치레와 내숭의 향연이 펼쳐지고 나서야 범블 씨는 코니 부인을 품에 안는다. * 대규모 토지와 작위를 동시에 소유한 귀족들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영국 사회의 실질적 지배층은 작위는 없으나 토지 임대 수익으로 살아가는 신사 계층, 즉 젠트리였다. 신사 계층 아래에는 신사 계층으로의 편입을 꿈꾸는 중산층이 있었다. 상인, 상점 주인, 장인, 전문 직업인 등이 이에 속했다. 그 밑으로 하급 노동자와 빈민이 하류층을 구성했다. (중략) 빅토리아 시대 서민들의 꿈은 한마디로 '신사gentleman'가 되는 것이었다. 신사 계층은 원래 토지의 임대 수입으로 살아가는 유한층을 뜻했지만 이들을 보좌하는 사람들도 신사를 자처했다. 산업화의 확대로 인한 계층의 유동화로 직업에 상관없이 재력을 가진 중산층이면 토지를 매입해 신사 계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오! 아주 흥미로운 설명들입니다 위 글을 읽으니 신빈민법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보장보다는 그냥 생색내기용 빈민구제법인듯 합니다~ <더 파이브>란 책에 보면 연쇄살인범 잭더리퍼의 피해여성들이 집에서 부당하게 쫓겨나도 구빈원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던데 이런 부당한 대우들이 있어서였나봐요 도덕적 엄숙함의 빅토리아 시대와 대비되는 조지왕조에 대해서도 문득 궁금해지네요 시기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방탕하고 음란한 시대였다니 신기합니다
제가 생략한 부분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신빈민법이 제정된 이유에 대해 ‘빈민들은 교구별로 관리되고 있었고 교구의 유력자들이 교구 위원회를 맡아 빈민세를 부담했으나 빈민의 증가로 세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라고… 소설에 나오는 교구위원회와 범블 씨가 떠오르더라고요. 거북별 님 글을 보니 갑자기 조지 왕조 시대 배경 소설은 뭐가 있나 궁금해집니다. 혹시 아시는 분…? ㅎㅎㅎ
저도 그 도덕적 엄숙함 부분은 확 와닿지는 않네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조지시대때 처음으로 소설 이라는 장르가 헨리 필딩 톰존스 같은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들었어요. 제인 오스틴이 조지 시대 대표 작가 아닐까요?
제인 오스틴이 대표 작가 맞습니다.^^
아, 제인 오스틴이군요! 흠… 뭐 그렇게 엄청 자유분방한가? 영 감이 안 오네요. 제인 오스틴은 좋아해서 거의 다 읽었지만요. 하긴, ‘오만과 편견’에서 막내가 위컴이랑 사랑의 도주를 하고, ’맨스필드 파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죠(심지어 여긴 유부녀). 생각해 보니 오스틴 소설에서 그런 내용이 빠지질 않네요. 여튼 조지 시대 대표 소설가를 알게 되어 속시원합니다. 알려주신 두 분 감사해요. (영국 역사에 대해 잘 몰라 조지 시대 어쩌고 떠들고 있지만 뭐가뭔지 모르겠어요 ㅎㅎ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얻은 내 지식 다 어디갔니…)
모임에 참가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꼭 듣고 싶었어요! 특히, 공리주의, 빈민구제법, 도덕적 엄격주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디킨즈가 작중화자로 나서서 단 코멘트의 많은 부분이 이해가 확 됩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지만 상당히 도움되는 작품 해설이었어요. 반가워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시공사 책 표지도 예뻐요. (예쁜 책 좋아해서 두 도시 이야기도 시공사 걸로 읽을 예정입니다ㅋ) 기회 되면 한 번 들춰보셔도 좋을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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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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