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213쪽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심지어 창작자마저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오덕질은 인생의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몇 안 되는 즐거움”이자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준 덕질에 몰입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수가 점점 늘어간다는 것은 이성 중심 사회에서 감정이 억압되어도 선호하는 대상에 쏟을 감정적 에너지만큼은 여전히 보존된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건강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맹목적인 애정 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거대하고 확실한 불행이 끊임없이 개인을 위협한다는 징후이기도 해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선전하면서도 어딘가에 열광하는 '감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다소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이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무언가에 열광하지 않고는 현 시스템의 부작용으로써의 고통을 (그러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고통으로 간주되고 마는 고통을) 견뎌낼 수 없게 만드는 현실과 그에 맞서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고민해 보면서 한병철 작가의 <고통 없는 사회>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사회적 고통을 약학이나 의학의 차원에서만 논의되게끔 만들고 개인 단위의 행복 추구나 힐링(?) 등으로 이겨낼 수 있는 가벼운 시련으로 간주하는 이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는 책이라 추천해 보아요! 가독성이 좋은 책이라 쉽게 읽을 수 있어요.
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고통을 밀어낼수록 고통에 더 예민해지고, 죽음을 몰아내려 할수록 좋은 삶에 관한 감각을 상실하는 역설, 생존이 절대화된 생존사회, 고통공포에 포획되어 만성 마취에 빠진 진통사회에 대한 비타협적인 분석. “예리한 산문으로 현대인의 몸에 사유의 칼날을 찔러 넣는” 비수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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