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D-29
올해가 다 가기 전 서머싯 몸 전작 독파하기, 두번째 책 <인간의 굴레에서> 에 도전!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기 댓글에 기록
[DAY 1] 1-8장, 56쪽까지 읽음. -번역이 너무 오래되었다. 외국어 발음 표기도 아쉽다. -고아가 된 필립이 안그래도 불쌍한데, 현대적인 시각으로 얼핏 봤을 때는 큰아버지는 매정하고 큰어머니는 엄마의 역할이 서툴어서, 과연 이 집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 당시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 집도 실은 아주 평범한, 또는 훌륭하기까지 한 가정의 모습이었는지도, 필립도 나름 이 집에서 꽤나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서 식구들 한사람 한사람과 친밀도가 쌓이며 가족의 일부가 되어감을 보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사제의 아내,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무 의미없이 씌어지는 굴레들이 사실상 오늘날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사제 가족 뿐 아니라 어차피 대부분의 여성과 아이가 멸시받았으며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이 만연했고 그런 분위기가 당연시되던 시대였으니 뭐 그렇다 쳐도, 오늘날 성직자의 가족들에게 200년 전과 같은 수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되려 얼마나 구시대적인가. 또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사제의 모습을 보며, 다른 내용들처럼 “시대상”을 탓하며 그땐 그게 당연했어 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 없고, 이것만은 오늘날까지 대다수의 성직자들의 변함없는 이미지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5장에서 필립의 죽은 어머니 사진을 보고 “저 아이가 큰 다음에 나를 기억하도록 뭘 좀 남기고 싶었어요” “그렇다 해도 왜 여남은 장씩이나 찍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 두 장이면 되었을 텐데” 등 큰아버지가 왜 이 일로 "몹시 언짢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사진을 두 장보다 더 많이 여러장 찍은 것이 왜 큰아버지에게 언짢을 일인가? 돈을 많이 썼다는 뜻일까?
18쪽. 세상에 하나뿐인 진정한 헌신적 사랑, 그 사랑을 빼앗겨버린 이 아이가 측은하게만 느껴졌다. 이 아이를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19쪽. 그는 울고 있었지만,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뭔가 슬퍼하고 있는 것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관심을 끌고 있다는 느낌이 싫지 않아 그 자리에 좀더 있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30쪽. 너무 푹신한 의자는 싫다고 했다. 늘 할 일이 많은 사람이 팔걸이 의자에 앉으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48-49쪽. 케어리 씨는 저녁에는 걸어서 교회에 갔다. 필립도 절룩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어둠 속에서 시골길을 걷노라니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불을 밝힌 교회가 먼 곳에서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정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백부가 서먹서먹하게 느껴졌으나 차츰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슬쩍 백부의 손을 쥐기도 했는데 그러면 든든한 기분이 들어 걷기도 더 수월했다. 49쪽. 사제관의 생활이 외롭다고는 하나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54쪽. 자기도 모를 자기 안의 어떤 힘이 반성의 말을 막고 있었다. 55-56쪽. “싫어요.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케어리 부인은 숨이 콱 막혔다. 그 무지막지한 말에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친구도 없는 이 절름발이 아이를 사랑해 주고 싶고, 아이도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생각하노라니 (…) 눈물이 솟구쳐 올라 한 방울 한 방울 천천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필립은 백모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울고 있다는 걸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말없이 다가가서 입을 맞추었다. (…) 그러자 이 가련한 (…) 여인은 아이를 무릎으로 당겨 두 팔로 끌어안고서 가슴이 터져라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얼마간 행복한 눈물이기도 했다. 이제 그들 사이에 남남의 느낌이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이로 인해 받은 괴로움 때문에 그녀는 이제 새로운 애정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굴레에서 1 1-8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2] 9-16장, 110쪽까지 읽음. -라이스 선생의 다정한 배려에 힘을 얻는 장면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등장한 어른들이 모두 (각각의 크고 작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다행이고 안심이 된다. -자의식 발달과 “사회적 동물의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격한 공감. -필립이 슬픈 사연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당장은 기억나지 않는데, 다른 성장소설들에서 이런 캐릭터를 더러 본 적이 있고, 나 또한 누구보다 그런 습관의 의도나 마음에 대해 아주 잘 알아서일까. 독서습관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언급되었던 “비현실의 세계를 만들어냄으로서 나날의 현실 세계를 쓰라린 실망의 근원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지어 볼 수 있겠다. 과연 필립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거짓말하는 버릇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다리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한 에피소드를 보면 작가가 정말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녹여낸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58쪽. 이 아이에 대해 늘 감탄했던 것은 아주 침착하다는 점이었다. 우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침착성이란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수치스러워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숨어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58쪽. “여보, 아이를 가슴 아프게 하지 맙시다. 다 우리 잘못이 아닐까요? 애들을 키워 봤으면 어찌할 줄 알 수 있었을 텐데” 59쪽. 케어리 씨의 유일한 열정은 책 모으는 데 있었다. 터캔버리에 갈 때면 어김없이 헌책방에서 한 두 시간씩은 보냈다. 곰팡내 나는 책 너더댓 권씩은 꼭 사들고 돌아왔다. 책 읽는 습관을 잃은 지가 벌써 오래되어 사온 책을 읽는 법은 없었지만 책장을 넘긴다든가, 삽화가 들어 있는 책은 삽화를 본다든가, 떨어진 책장을 붙인다든가 하기를 좋아했다. 59쪽. 필립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주기 위해 문 앞에서 흠흠 하고 기침소리를 냈다. 울고 있을 때 들이닥치면 부끄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ㄹ부러 문의 손잡이를 잡고 소리를 냈다. 62쪽. 처음에는 삽화에 사로잡혔다가 다음엔 마법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다른 이야기들도 마저 읽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읽고 또 읽었다. 딴 생각은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주변의 생활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사람들이 두세 차례 불러야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필립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독서 습관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62쪽.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럼으로써 필립은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의 세계를 만들어냄으로써 나날의 현실 세계를 쓰라린 실망의 근원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63쪽. 필립은 성직자가 될 사람이다. 오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그녀는 필립에게서 어린 사무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인간의 굴레에서 1 9-16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69쪽. 아이는 흘깃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부적당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수줍어서 사과도 하지 못하고 필립을 어색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73쪽. 더 이상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76쪽. 그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베개를 깨물고 있었다. 그가 지금 울고 있는 것은 팔이 아파서도 아니었고, 아이들이 발을 보고 말아 굴욕스러웠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발을 보여주고 만 제 자신에 대해 분통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76쪽. 필립은 자신의 삶이 아무래도 비참하다고 여겨졌다. 어린 마음에도 이러한 불행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77쪽. 남들이 노는 데 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생활은 여전히 낯선 것으로 남아 있었다. 남들이 하는 일은 밖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남들과 자기 사이에 어떤 벽이 있다고 느꼈다. 79쪽. 하지만 겁이 나는 가운데에도 어떤 희열이 느껴졌다. 여태껏 한번도 회초리를 맞아본 적이 없었다. 아프긴 하겠지만 맞고 나서는 자랑거리가 된다.
인간의 굴레에서 1 9-16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82쪽.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자신을 완전하고 독립적인 개성으로서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대체로 사춘기에 오지만, 그렇다고 자기와 남들의 차이를 분명히 의식할 정도까지 발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인생의 행운아는 오히려 벌통 속의 벌처럼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 같은 활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 같은 즐거움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복하다. (…)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건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필립은 제 불구의 발이 불러일으키는 조롱을 통해 순진한 유년을 거쳐 쓰라린 자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83쪽.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서러움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일까. 사실 그 펜대는 지난 방학 때 블랙스터블에서 일 실링 이 펜스를 주고 산 것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그처럼 슬픈 이야기를 지어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거짓 이야기가 정말인 것처럼 하염없이 슬프기만 했다. 88쪽. 그래서 오늘 밤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불구의 발을 온전하게 만들어달라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기도한다. 산을 움직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느님이 하시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리라. 그 점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인간의 굴레에서 1 9-16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3] 17-24장, 165쪽까지 읽음. -자존심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는 주인공의 학창시절과 불건강한 교우관계 속에서 나의 어렸을 적 모습을 상당부분 발견한다. 그런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퍼킨즈 교장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 역시 필립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독일로 오니 갑자기 사람들이 밥상머리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해 대화한다. 워튼 선생이 추구했던 “생각과 행동의 자유”도 그렇고... 당시 영국의 눈에 비친 전형적인 독일의 이미지였을까.
117쪽. “네 어깨가 특별히 강하여 사랑의 표시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러면 그게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127쪽. 필립은 워낙 예민하였기 때문에 남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때에도 그들이 비웃고 있고,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145쪽. 누구든 그의 속마음을 캐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싫었다. 145쪽. “그야 학교란 보통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거지. 구멍이란 둥근 법인데, 마개 모양은 갖가지야. 하지만 모양이 어떻든 다 구멍 속에 집어넣어야 해. 보통 이상의 존재에게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지.” 150쪽. 이제 학창생활은 끝났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격렬한 환희는 느낄 수 없었다. (…) 필립은 자신이 못마땅했고, 자신의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풀이 죽은 채로 그는 혼자 물었다. 사람이란 고집대로 하고 나면 언제나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굴레에서 1 17-24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4] 25-32장, 227쪽까지 읽음. 필립이 좋게 평가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전부 처음부터 맘에 안들었다. 헤이워드를 좋아하는 것이 영 찜찜했었는데 다행히도 이후에 그것을 스스로 깨닫더니… 이제는 또 어딘가 찜찜한 데가 있는 미스 윌킨슨과 가까이 지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시기에는 (나도 그랬고) 누구나 아직 불완전하고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인간관계의 실수를 반복하면서 사람보는 눈을 키우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을 둘러싼 가치관의 전부였던 신앙을 버리고 그 세계를 깨고 나오는 부분도 그렇고, 전형적인 성장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자신만의 자아를 구축해 나가며 성장하고 있는 필립을 응원하게 된다.
179쪽. 필립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 192쪽. 그러고 보면 혼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모두 다 자기네가 옳다고 생각할 테니까. 193쪽. “사람은 자기 시대가 믿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지.” (…) “성인들이 과거에 믿었던 것이 틀리다면, 지금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것도 틀리지 말란 법이 있나요?” 200-201쪽. 필립은 인생의 나그네가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그전에 메마르고 험준한 세상을 얼마나 넓게 돌아다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젊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것은 젊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환상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진실 없는 이상들만 가득 차 있어 현실에 접촉할 때마다 멍들고 상처받기 때문이다. (…)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인생의 십자가에 그들을 때려박는 못이 된다.
인간의 굴레에서 1 25-32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5] 33-40장, 303쪽까지 읽음. - 런던에서 필립이 느끼는 고독은 지금껏 내가 이해한 필립 캐릭터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필립같은 성향이라면 오히려 대도시에서의 고독을 즐기며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할 것 같은데, 그러기에 필립은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인가보다. - 라보엠을 읽으며 파리의 거리를 꿈꾸는 부분은 너무 근사하다. 몸 자신이 젊은 시절 보엠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인지, 찰떡같이 표현해 놓았다. 필립이 실제로 파리에 간 이후로는 라보엠을 떠올리며 얼마나 황홀하게 라탱 구를 걸었을지도 상상하게 된다. - 케어리 부인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렇게 복잡미묘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어 냈을까. 필립을 파리로 보내기로 결심하고 자기 남은 전재산을 건네주며 대화하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났다. - 파리로 가서 미술공부를 한다니,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와 약간 겹치는 부분이다. 헤이워드 캐릭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몸은 정말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컸었나보다.
269쪽. 길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친구가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저들은 행복한데 나는 비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부러움은 증오로 변하기도 했다. 대도시에서 그처럼 고독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291쪽. 왠지 알 수 없지만 그 엄청난 사랑의 모습을 보니 야릇하게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무심하고, 그처럼 이기적이고, 그처럼 욕심스럽게 살아온 사내에 대해 그처럼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필립은 그녀가 속으로는 남편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죽여 가면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인간의 굴레에서 1 33-40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6] 41-48장, 390쪽까지 읽음. - 책 속에서 상상으로만 만나보던 장소에 직접 존재해 보고 거닐어 본다는 것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다행히도 나는 파리를 무지하게 싫어해서, 이 책을 읽으며 파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지는 않는다. - 잠시 스트릭랜드로 (사실 고갱이겠지만) 추정되는 인물이 언급되는 것이 몸 소설의 세계관을 이어주는 듯 해서 재미있다. 여기 등장하는 필립의 파리 친구들이 전부 당시 특정 예술가를 모티브로 그린 캐릭터들일지 궁금해진다. - 크론쇼라는 인물은 꽤나 흥미로운데, 이 인물과의 대화에서 서술되는 어떤 삶의 방식에 대한 이론이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상당부분 캐릭터화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패니 프라이스는 정말 불쌍하다. 물론 필립에게 그녀를 사랑해야 할 의무는 없었겠지만, 또 필립 입장에서는 단지 그녀의 외모만 보고 싫어했던 것도 아니라서, 필립이 잘못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주변인물들 중 누구 하나라도 그녀에게 따뜻한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안타깝지만 필립도 너무 어리고 미성숙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 “그는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라는 구절로 미스 윌킨슨과의 연애가 설명되고 필립도 깨닫는 듯 하다. “대상을 향유하고 사랑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 이라니…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표현해 낸 것일까, 몸이 너무너무 대단하다.
304쪽. 필립은 넋을 잃고 말았다. 책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니 한없이 가슴이 설레었다. 고전적인 장소랄까. 옛 스페인 기사가 미소짓는 스파르타 평원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 느꼈을 외포감과 기쁨을 그도 느낄 수 있었다. 339쪽. 브르타뉴에서 한 화가를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아무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주식중개인을 하다 중년에 그림을 시작하였다는 기인이었는데, 클러튼은 이 사람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인상주의에 등을 돌리고, 사물을 그리는 수법뿐만 아니라 보는 방법에서도 자기 나름의 개성적인 방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필립은 그에게 뭔가 독창적인 것이 있음을 느꼈다. 348쪽. 인생이란 쓰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있는 것이니까. 내 목표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네. 삶의 순간순간에서 그 순간의 정서를 음미하면서 말야. 난 내 글쓰기를 말이지, 존재로부터 기쁨을 흡수한다기보다 거기에 기쁨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행위라고 보네. 353-354쪽. 세상을 살 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일은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사람은 인생에서 단 한가지를 추구하지. 그건 자기 자신의 쾌락이야. (…) 자넨 가치에 등급을 두고 있어. 쾌락을 맨 아래 두고, 의무라든가, 자비, 진실 같은 말을 할 때는 짜릿한 자기 만족까지 느끼지. (…) 내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자넨 놀라지 않았을 거야. 그 말은 덜 충격적이니까. 378-379쪽. 그는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 도무지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언제나 대상이 없을 때만 사랑을 하고, 막상 기회가 주어지면 대상의 역겨운 점을 더 과장해서 바라보는 불구적 시각을 가진 인간일까? 그래서 그 때문에 결국은 대상을 향유하고 사랑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일까?
인간의 굴레에서 1 41-48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7] 49-56장, 457쪽까지 읽음. - 죽은 패니의 오빠와 죽은 루이저의 남편. 그들이 죽은 가족을 대하는 태도란. 죽은 큰어머니에 대한 필립의 진짜 속마음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 - “인생이란 그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야 할 대상”이라는 구절에서 학부 때 교수님이 생각났다. 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한가. 여전히 예술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살아내야 할 나만의 인생을 찾은 것인가. 훗날 필립은 지금의 선택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게 되지는 않을까. 부분적으로 내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거지만 인간의 내면을 “언어”로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리고 밀드레드와의 요상한 관계가 시작되는데, 필립의 감정이 어떤 류의 것인지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방식의 감정의 발현, 관계의 발전까지 세세하게 이야기로, 언어로 써낼 수 있었는지 대단하다.
404쪽.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건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그림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건,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야. 411쪽. 진정한 화가나 작가, 음악가에게는 자기의 일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삶을 예술에 종속시키게 된다는 것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어떤 힘에 굴복하여,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본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느라 그들의 인생은 살아보지도 못한 채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필립에게는, 인생이란 그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야 할 대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삶의 다양한 체험을 추구하고, 삶의 매 순간이 주는 모든 감동을 향유하고 싶었다. 427-428쪽. 그의 심성이 경박스러워졌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만이 진정하게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온 사람치고는 잘 성장한 셈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인내와 관용을 가지고 대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이제 자제력을 갖추게 되어 자랑스러웠다. (…) 그에게는 냉정한 태도와,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의연한 태도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더러 무감정하다고 했다. 하지만 필립은 자신이 감정의 노예임을 알고 있었다. 우연한 친절에도 쉽게 감격해 버렸고, 때로는 목소리가 떨려나올까봐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통스러웠던 학교 생활, 참아내야만 했던 그 굴욕, 창피스러운 꼴을 당하지 않으려는 병적인 강박 관념을 낳게 한 학우들의 조롱이 떠올랐다. 그뒤로 세상과 부딪혀 살면서 겪었던 외로움,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세상에 기대했던 것과 실제로 겪은 현실의 격차가 주었던 환멸과 실망도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즐겁게 미소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내가 경박해지기라도 않았다면 자살이라도 했을 것이다” 429쪽. 철저한 정신의 자유, 그것이 파리 생활에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는 완전한 자유를 얻었음을 느꼈다.
인간의 굴레에서 1 49-56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DAY 8] 57-64장, 518쪽까지 읽음. (완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밀드레드를 향한 필립의 끊임없는 구애. 이런 류의 남녀관계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필립이 이성을 잃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무엇에 눈이 멀었나? 정말로 밀드레드를 사랑한 것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또 이전에 “사랑을 사랑하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본인도 그저 육체적인 충족을 바라고 있다고 잠시 고백하기도 하는 걸 보면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 소유 내지는 독점하고자 하는 마음이 무조건 진실한 사랑과 상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듯, 우리가 평소 “순수한, 진실한 사랑”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 무언가의 경계선이 참 모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립은 정말로 밀드레드를 사랑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밀드레드가 결혼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필립의 “찐 슬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왜 밀드레드를 향한 사랑은 “아름답지” 못했나. 왜 그녀를 사랑하는 기간동안 필립은 “아름다움에 굶주려”야만 했을까. 오히려 사랑에 빠지면 보통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나? 왜 그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걸까. 하여간 밀드레드는 희한한 사랑이었다. 나는 그런 고통스러운 사랑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면서도, 동시에 도무지 필립을 이해할 수 없다.
514쪽. 전에는 그저 책에서 읽었을 뿐이었지만 필립은 이제 예술이 고통으로부터 영혼을 해방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518쪽. 지난 육 개월 동안 하도 아름다움에 굶주려 와서 말예요.
인간의 굴레에서 1 64장,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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