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나라의 통치자들은 한 가지 중대한 변화를 도입했다. 송대의 철학자 주희가 유학 고전을 해석한 주석, 즉 성리학을 과거 시험의 커리큘럼으로 채택한 것이다. (......) 채택된 그가 각색한 성리학은 텍스트가 매우 빡빡하고, 지극히 보수적이며, 명료하고 단호한 서술이 특징이었다. 과거 시험 응시자들은 더는 자유롭게 사서오경을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미리 설정된 언어와 지침을 따라야만 했다. 성리학은 본래의 유교와 비교해도 대놓고 독재적이 통제적이었다. 성리학은 인간 욕망의 제거와 자아의 완전한 정복을 찬양했다. 역사가들의 공통된 견해를 요약한 피터 볼에 따르면 성리학은 "통치자의 외부 권위를 추구하는 데 정당성을 제공"했으며 황제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책임이 있는 존재라 규정했다. 놀랍게도 성리학은 도덕성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대신 통치자에 대한 -그 통치자가 아무리 멍청하거나 비도덕적이더라도 개의치 않고-절대적이고 무조건적 복종을 강조했다. ”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p.79-80 1장.,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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