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Wolf Hall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그렇게 반응이 좋지 않더라구요. 너무 두꺼운 건지 영국사가 낯설어서 그런지 번역의 문제인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
D-29
borumis
CTL
이 책의 첫 부분이 영어로도 아주 낯설죠.
분명히 3인청 'He'인데 내용은 1인칭 관점에서 보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엄청 당황스럽고 낯설고 헷갈리는데 일단 3인칭이지만 '나'로 생각하면 된다는 걸 알고나면 Hillary Mantle의 심리묘사의 묘미에 푹 빠지게 되죠.
그래서 그걸 한글로 어떻게 번역하나..... 가 큰 골칫거리였을 것 같습니다.
품절인 책이니 결과를 확 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 인칭 문제는 반영을 했든 안했든 묘미가 사라졌을테고,
영국 왕실 정치싸움이니 인물이나 정치적 배경이 너무 복잡해서 덜 흥미로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이 책도 벽돌책인데...후후... 절판이니 아쉽네요.
소피아
힐러리 맨틀의 울프홀은 하도 명성이 자자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읽어볼 생각은 못했어요. 이 분 최근에 돌아가셨죠? 제 전자책 서재 깊은 곳 어딘가에 이 분의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이 있는데 지금보니 구매 후 다운로드도 안 한 상태 ㅠㅠ
저도 헨리 8세와 앤 불린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으로 보았는데, 영국 역사 소설가 필리파 그레고리가 쓴 헨리 8세 여인들 시리즈 한창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 중에 몇 권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본으로 나왔고, 앤 불린 이야기 <The Other Boleyn Girl>은 <천 일의 스캔들>이란 영화로도 유명하죠. (영화가 소설보다 너무너무 별로였어요) 영화로는 우연히 채널 돌리다가 만난 리처드 버튼이 헨리 8세로 나온 고전 영화 <천 일의 앤>이 최고였던 것 같아요. 앤이 처형을 앞두고 “I have a little neck”이라고 했던 대사랑 마지막 씬에 여자 아이가 (엘리자베스 1세) 혼자 놀고 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나요.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2009년, 2012년 맨부커 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 힐러리 맨틀의 우아하고 비정한, 예리하고 혹독한 정수가 집약된 소설집. 힐러리 맨틀이 <울프 홀>(2009년), <브링 업 더 바디스>(2012년)로 두 차례나 맨부커 상을 받은 이후 2014년에 처음 발표한 단편집이다.
천일의 스캔들 1나탈리 포트먼,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 '천일의 스캔들'의 원작. 권력을 향한 집착에 사로잡힌 암투, 금지된 사랑, 그리고 가문의 영예를 위해 욕망의 재물이 된 세 남매와 야망에 눈이 멀어 혈육을 파멸로 내몬 한 가문의 흥망사를 그렸다. 수십 명의 등장인물로 치밀하게 전개해 나가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천일의 앤16세기의 영국 튜더 왕조의 국왕인 헨리 8세(King Henry VIII: 리차드 버튼 분)는 자신의 왕후인 앤 볼린(Anne Boleyn: 제네비에브 부졸드 분)을 처형하기 위해 재상 크롬웰(Thomas Cromwell: 존 콜리코스 분)이 가지고 온 문서에 서명을 하려고 한다. 영화는 서명을 하려는 헨리 8세가 자신이 앤과 결혼하기 위해 해왔던 일들을 회상하는데서 시작된다.
왕의 무도회. 프랑스에서 이제 막 돌아온 볼린가의 막내딸인 앤도 약혼자인 퍼쉬(Harry Percy: 테렌스 윌톤 분)와 무도회에 참석했다. 울지 추기경(Cardinal Wolsey: 안소니 쿼일 분)은 이 젊은 남녀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왕에게 간청하지만 아름다운 앤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린 왕은 허락은 커녕 앤과 퍼쉬를 떨어뜨려 놓고 자신이 앤을 차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앤은 이미 왕에게 농락당해 아이를 가지고 있던 언니(Mary Boleyn: 발레리 거론 분)의 모습을 보곤 절대 왕의 여자가 되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까지 말하고 왕에게도 냉랭한 태도를 갖는다. 앤의 이런 싸늘한 태도에 왕은 더욱 더 매력을 느끼고 앤의 집에 머물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결국 앤의 안위를 걱정한 퍼쉬는 다른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앤은 괴로워한다. 앤의 계속되는 냉담한 반응에 왕은 캐서린 왕비의 시종으로 앤을 궁궐로 불러들이고 궁으로 옮긴 앤은 점점 권력과 사치의 맛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왕의 애타는 사랑은 여전히 앤을 떠나지 않는다. 권력의 맛을 느끼게 된 앤은 왕에게 자신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주는 대신 자신이 영국의 왕비이여야 하며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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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아, 힐러리 맨틀이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을 썼었군요. 저도 추천만 많이 받고 아직 손을 못 댄책이네요. 저는 헨리 8세 이야기는 HBO인가? 드라마로 열심히 봤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책을 몇 권 찾아 봤었네요.
소피아
튜더스 보셨나봐요? 전 그 드라마에 나온 헨리8세가 너무 가벼운 인상이라 패스 ㅋㅋ
<중국필패> 자체는 재미있어서 쭉쭉 읽어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중간중간에 야성 황 선생님이랑 내적 싸움도 일어나고요 ㅎ 결정적으로 무심코 시작한 드라마와 소설에 빠져서 이 책은 아직도 5장 끝부분 읽고 있습니다..또르르륵..
아 맞다! 중간에 앨버트 허시먼 등장! 오, 아는 사람!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오, 아는 책! 막 이랬답니다?!
borumis
전 거기서 헨리8세가 넘 젊은 야성의 짐승남같아서;; 제 이미지에 안 맞아서 패스했어요;;;ㅋ
YG
아, 맞아요. <튜더스>. 헨리 8세가 가벼운 인상이긴 했죠!
소피아
중국 황실을 견제할만한 귀족, 지식인, 종교, 상인등등의 세력 부재 —>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없었을까 하고 ,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청나라 말기에 군벌들이 난립했을때가 그나마 견제세력에 가까운 무리가 등장한 시기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바닥을 친 때라, 어쩌면 일반 국민들에게는 황제 (최고 권력)가 도전받으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진다라는 학습 효과로 남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dezxc12
중세유럽에 카톨릭의 역할에 대한 책의 소개글을 가져와 봅니다.
https://www.amazon.com/Sacred-Foundations-Religious-Medieval-European/dp/0691245088
"가톨릭 교회는 중세 군주들과 경쟁하여 통치 기관, 법치, 의회에 중요한 템플릿을 제공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중세 시대에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며 가장 잘 조직된 정치 행위자였습니다. 11세기부터 교황청은 교회의 자율성을 위해 싸웠고, 유럽 통치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사람, 영토, 군주 모두에 대한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교황청과의 갈등은 앞으로 수세기 동안 유럽에서 영토 권한을 분열시켜 도시의 자치와 주권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조직적 이점과 인적 자본 덕분에 교회는 위기와 과세부터 법원과 의회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의 통치자들이 채택한 제도적 선례도 발전시켰습니다. 교회의 혁신은 법치주의와 의회의 대표성을 모두 가능하게 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정치학자인 저자의 글을 읽어보면 중세에는 카톨릭 교회가 세속권력과 경쟁하며 유럽사회의 발전을 주도했지만, 중세가 끝나고 결국 세속권력의 발전에 밀려서 카톨릭 교회는 권력을 상실하고 도태되었으며, 현재의 교회는 사회의 진보를 거스르는 보수적인 성향의 세력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저자의 트위터를 보면 정치성향이 상당히 강경한 진보이시던데 그래서 그렇게 보시는거 같고요.), 아무튼 위의 책소개글에 나오는것처럼 종교조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추구하고 강력한 세속권력이 나오는것을 경계하고 세속권력을 견제하고 분열을 유도한게 중세 카톨릭 교회의 특징이 아닌가 싶고요.
borumis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이전까지 가톨릭이 왕권과 대립하는 위치에서 왕권은 군주들과 교황 등 여기저기 치이는 위치였다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신교에 의해 구교가 위축되며 왕권이 강화된 것 같았는데... 헨리8세 외에 킹제임스 성경을 펴낸 제임스1세도 청교도 세력의 지지로 권력을 쥔 왕이었죠. 생각해보면 문해력이 원리적으로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장려해도 그것이 결국 또다른 종교가 아닌 또 다른 권력의 중앙집권화에 이용되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는 없네요. 생각해보면 프랑스혁명도 실은 왕실과 귀족에서 부르주아지 등 다른 계층으로 권력이 넘어가기 위한 구실이나 과정으로도 볼 수 있어서..;; 마냥 자유로 향한 똑바른 진전이나 진보로만 보기 는 어려운 점이 있었죠.
모시모시
책 읽는것 보다 다들 읽고 남기신 의견을 읽는게 더 재밌습니다. ㅎㅎ
goodboy
“ 서구에서 관료제는 정치적 거버넌스의 전반적인 틀이 갖춰진 후에 탄생했으며, 정책 문제를 해결하고 각각의 영역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테크노크라시 성격의 도구였다. 즉, 관료제는 전쟁, 세금 징수, 의료 운영, 산림 관리와 같은 업무별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생겨났지 전반적인 거버넌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한 기능은 의회, 권리장전, 삼권분립과 같은 다양한 제도와 사상과 합의를 통해 제공되었다. 관료제는 나중에 이러한 제도들에 더해진 것이었으며, 그중 일부일 뿐이지 결코 그 전부가 아니었다.
반면, 왕조 시대 중국의 관료제는 사회가 막 태동하여 힘겹게 헤쳐나가야 하는 연약한 시기에 생겨났다. 과거 제도의 확장은 사회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확립했다. 이 지배는 행정적이고 관념적인 지배였다. ”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p.149 3장 사회 없는 국가,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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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다들 즐겁게 읽고 계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수요일 10월 16일과 내일 목요일 10월 17일은 2부 4장 '권위주의적 평균으로의 회귀'를 읽습니다. 중국의 1980년대 개혁 개방과 중국에서 회랑이 넓어질 수 있었던 가능성이 어떻게 축소되었는지를 서술하는 장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세요.
오도니안
2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려고 하는데요, 위에서 몇 분이 말씀해 주신 내용을 받아 만력제와 헨리8세의 비교와 관련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얼마나 뜻대로 할 수 있었느냐를 떠나서 고려해야 할 권력 주체의 범위가 얼마나 다양했었느냐의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도 그런 차원에서 두 사람을 비교한 것이 아닐까 해요.
후계자 승계 문제 같은 것에 있어서 황제가 온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유교적 가치기준을 갖고 사대부와 황제가 대립하는 비교적 단순한 구도입니다. 하지만 유럽은 다양한 권력 주체들이 있어 서로 대립하고 연대하고 견제하기 때문에 게임이 복잡해집니다. 권력이 일원화된 체제에서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따라 일이 처리되지만, 다원화된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통제는 불가능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제한하게 됩니다.
헨리8세는 교황도 상대하고, 국내의 카톨릭교도, 스페인 등의 외국, 유력한 귀족가문 등을 고려하면서 권한을 행사해야 했습니다. 바로 앞세대에서 수십년에 걸친 내전을 겪은 나라의 왕이 자기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부치기만 하면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었겠죠. 결과적으로 선대왕들보다 훨씬 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그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던 절대군주이긴 하지만 그가 뜻한 바를 하기 위해서는 생각도 많이 하고 사전작업도 많이 거쳐야 했을 것입니다.
토머스 모어만 하더라도 왕의 명을 거역한 이후 15개월 동안 재판을 거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었고 죽은 뒤에도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도 왕조마다 분위기 차이는 있었지만 명나라의 주원장은 승상을 포함해 10만에 가까운 이들을 역모죄로 처형했는데, 이를 비판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은 미미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헨리2세 시대에 사사건건 왕에게 맞서던 캔터베리 대주교가 왕을 따르던 기사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건을 읽고 이게 뭐 대단한 역사적 사건일까 의아해 했던 적이 있습니다. 왕이 주교 정도 마음대로 처형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죠. 하지만 왕에게 적대하던 주교의 죽음은 자신이 직접 명령한 것이 아님에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되었고 왕은 당황해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변명해야 했습니다. 그 일이 수백년 후의 외국 역사교과서에 나올 만큼 유명한 스캔들이 된 것이죠.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유럽의 봉건주의가 뭔가 체감이 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도니안
4장을 읽다 보니, 얼마 전 읽은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자주 연상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보수주의의 고전이라서, 보수든 진보든 학습 내지 비판의 관점으로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현대 우파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표현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책을 직접 읽으면 느낌의 깊이가 다르지만, 제가 나름대로 중심 메시지를 표현해 보자면 "사회주의의 본질은 맹목적인 시장이 아니라 합리적인 계획에 의해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믿음에 있는데, 사회를 인위적인 계획의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특정의 목적과 계획들을 사회에 강요하기 위해 일원화된 권력에 의한 지시와 통제의 길로 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권위주의와 독재이다. 그것이 나치즘 등장 전후의 독일이 걸은 길이었고, 영국 등 다른 서구 국가들도 그런 길로 나아가게 될 수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 공산당은 중앙집권적인 계획 경제를 시도하다가 문화대혁명 등의 충격으로 파탄이 난 다음에 일사분란한 통제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고 결정하는 권력의 일부를 다른 주체들, 예를 들어 지방정부나 민간금융 등에 양도하고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를 통해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은 중앙 공산당 지도부의 적극적 의도 속에 이루어졌다기보다는 통제를 할 역량이 약화된 상태에서 통제 밖의 영역들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방기 내지는 사후승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인 것 같습니다.
중국의 개혁과 눈부신 경제적 성장이 중앙 정부의 일관된 정책 덕분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원화된 권력의 통제가 약해지고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많아진 것, 즉 좁게 제한되었던 "범위"가 "규모"의 성장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수준을 일부 되찾으면서 이루어진 성과라고 하는 주장이 아닐까 합니다.
himjin
“ 국가의 권력은 가장 중요했고 지금도 동일하며, 중국의 시스템은 물 샐 틈도 없다. 틈 없는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설계, 시민사회의 부재, 뿌리 깊은 가치와 규범들 덕분에 전제 정치 체제는 중국에 깊게 뿌리 내렸다. 이것은 과거 제도가 지닌, 사회를 질식시키는 능력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제도는 중국의 정치를 그 자리에 못 박았다. ”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3장, 150쪽,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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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jin
족쇄가 채워진 사회에는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정당성, 지위, 자원이 없다.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3장, 157쪽,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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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jin
“ 서양과 중국에서 나타난 관료제의 또 다른 커다란 차이점은 바로 관료제의 발전 시기이다. 중국의 관료제는 정치보다 앞서 발전했고 정치의 발전을 저해했다. 반면 서양에서는 정치가 먼저 발전하고 성숙하여 관료제를 제한했다. ”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3장, 164쪽,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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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jin
“ 과거 시험의 문해력은 낯선 담론을 강요해 토론 민주주의를 막았다. 유교 텍스트는 방대하고 어려웠다. 고전 문헌의 언어를 암기하고 그 안에 담긴 권위주의적 가치관을 흡수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자연 현상을 탐색하고, 수학을 탐구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조직하고, 자유주의와 과학적 회의주의의 발전에 중대한 발자취를 남기는 등 다른 일을 할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었다. 과거 제도는 인간의 능력을 이미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3장, 187쪽,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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