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

D-29
원나라의 통치자들은 한 가지 중대한 변화를 도입했다. 송대의 철학자 주희가 유학 고전을 해석한 주석, 즉 성리학을 과거 시험의 커리큘럼으로 채택한 것이다. (......) 채택된 그가 각색한 성리학은 텍스트가 매우 빡빡하고, 지극히 보수적이며, 명료하고 단호한 서술이 특징이었다. 과거 시험 응시자들은 더는 자유롭게 사서오경을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미리 설정된 언어와 지침을 따라야만 했다. 성리학은 본래의 유교와 비교해도 대놓고 독재적이 통제적이었다. 성리학은 인간 욕망의 제거와 자아의 완전한 정복을 찬양했다. 역사가들의 공통된 견해를 요약한 피터 볼에 따르면 성리학은 "통치자의 외부 권위를 추구하는 데 정당성을 제공"했으며 황제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책임이 있는 존재라 규정했다. 놀랍게도 성리학은 도덕성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대신 통치자에 대한 -그 통치자가 아무리 멍청하거나 비도덕적이더라도 개의치 않고-절대적이고 무조건적 복종을 강조했다.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p.79-80 1장.,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과거 시험은 하버드에서 SAT가 한 일을 중국 제국에서 해냈다. 제국 관료제의 접근성을 높이고, 채용을 무지막지하게 치열하게 만들었으며,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구축한 지표에 따라 획일화된 관료들을 뽑았다. 그 효과는 놀랍고도 의미심장했다.
중국필패 -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 p.98 1장., 야성 황 지음, 박누리 옮김
평소 좋아하던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소년이 온다』(창비)를 가장 좋아하고, 호오가 갈리는 『채식주의자』(창비)도 단편 발표할 때부터 정신 없이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에요. 한강 작가가 가장 먼저 읽기를 권했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도 좋았습니다. 괜히 기뻐서 올리는 메모입니다. :)
소년이 온다섬세한 감수성과 치밀한 문장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온 작가 한강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를 통해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980년 5월을 새롭게 조명한다.
채식주의자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입지를 한단계 확장시킨 한강의 장편소설.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 상상력의 강렬한 결합을 정교한 구성과 흡인력 있는 문체로 보여주며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한강만의 방식으로 완성한 역작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장편소설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의 5년 만의 장편소설.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전반부를 연재하며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 10월 11일부터 이번 주말까지는 2장 '중국의 조직화-그리고 중국 공산당'을 읽습니다. 이렇게 각 부마다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데, 저는 이게 또 꿀잼이라더라고요. 여러분도 재미있게 읽으세요. (저는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웠습니다.)
1. 2장을 읽으면서는 사실, 공산당 자체에 대해서 보다는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중국의 지방통치제도에 대해 더 많이 찾아보게 되었어요. 이 책에서는 U-form vs M-form으로 나누지만, 사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대비잖아요? 그래서 진시황이 실시한 '군현제'의 의미와 드라마 '초한지'를 보면서 가졌던 '왜 한 고조는 자신을 도운 개국공신들을 못 죽여서 안달이었나' 하는 질문에 해답을 얻은 '군국제', 그리고 늘 위협적인 '봉건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군현제에 대한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2. 역시 과거제도로 중국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입장에 대해 수긍이 가지 않는 또 한가지는, 공산당 행정가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부분을 과거제도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관료로 키우기 위한 인재를 '선출'하는 제도와 관료의 업무수행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을 비교한다? 그거야 말로 오렌지와 사과를 비교하는 거 아닌가요?
저도 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과거제도의 역사에 이어지는 부분이니까 현대 중국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관료들의 승진과 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서로 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과거제도라는 키워드 대신 그냥 관료제라고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게요.. 저도 중국 역사나 사회에 대해 잘 몰라서..;; 작가가 중국 출신이어서 어떤 부분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조금 디테일하게 다루어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저도 설명이 생략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설명하는 한 문장정도가 필요하고. 그런 부분에 걸려서 잠시 생각하느라 쉽게 읽히지 않고 있어요.
중국의 행정체계에 대해서 잘 정리한 내용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블로그는 많지만 자료나 출처가 믿을만한 글을 찾기 힘들었는데, 토지주택박물관 싸이트에 강의자료로 올라와 있는 글이면 괜찮겠지요? '秦·漢, 통일제국의 형성과 고대문화 기틀마련'이라는 제목의 서울대 역사과 김병준 교수 글입니다. 11페이지 분량으로 진, 한의 통치제도에 대해서 잘 정리되어있어요. 관심있으신 분은 검색을 통해 다운로드 받아서 읽어보시길.... 책으로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같은 저자의 아래 책이 있네요. 97년 출판이지만 아직도 판매 중인 듯 합니다. 제가 진, 한 시대 군현제를 자꾸 찾아본 이유는, 공산당을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행정제도의 기반도 이미 2000년 전에 무수히 시도되고 갖추어진 중앙과 지방의 권력균형을 이루고자하는 제도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어서예요. '선거'라는 말이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오던 '과거'의 연장선으로 바로 인식이 되는 것처럼, 중국인들에게는 중앙에서부터 오는 하나의 권력이 통치하는게 당연하고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무의식적인 공감이 뿌리박혀있는 거지요. 그 이름이 황제이건 주석이건 공산당이건 간에요.... 그래서 어쩌면 중국인들에게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반드시 추구해야할 이상이라는 주장이 충분히 의구심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0년에 걸쳐 중앙의 권력을 공고히 한 제도가 군현제였고, 그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게 유교/성리학이고, 과거제도를 통해 그 사상의 주입을 현실적으로 공고히 한 거지요. 공산당 집권하에서도 당의 지배하에 지방과 중앙의 권력 견제와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고 계속 통제된 언론을 통해서 사상교육을 주입하고 있으니, 현재의 '공자' 숭배의 분위기도 과거의 통치이념으로써의 유교/성리학의 역할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중국고대 지역문화와 군현지배은주시대 사천 서부평원에서의 청동문명의 형성과 발 전부터 전국시대 사천 서부고원의 문화와 파촉문화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대 지역문화와 군현지배의 실상을 고찰한 연구논문.
오우 감사합니다..(그나저나 토지주택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하긴 워낙 유구한 역사를 잘 이어왔는데 이제 와서 다른 체제를 택하라니 반발심이 들만 하죠. 전 궁금한게 현대 공산주의 중국에서도 유교사상 교육이 강력히 주입되고 있나요?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다른 얼굴로만 주입될까요? 현 중국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몰라서;; 생각해보니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저랑 다른 사람들은 불만 가득이었는데 저희 집에서 근무하시던 조선족 이모님은 한국 (본인을 한국인으로 안 생각하시고 중국인으로 생각하셔서) 사람들은 왜 이리 불평불만이 많고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안 따르냐고 이상하게 여기시더라구요..^^;;
@CTL @오도니안 네, 두 분의 말씀이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 다른 포인트를 짚고 싶은데요. 저는 저자가 2장에서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 과거제로 상징되는 과거의 관료제(능력주의) 시스템과 달라지면서 '성과'가 나타나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읽었거든요. 예를 들어, 한국어판 102쪽에서 (원서 보시는 @CTL 님께는 죄송합니다) 중국 공산당과 옛 중국 제국의 능력주의 사이에서 세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지점을 강조하고 2장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연장 선상에서 중국의 지방 자치가 공산당의 성과로 이어지는 부분을 강조하는 대목도 그렇고요.
그러고보니 저는 당연히 meritocracy가 Michael Young이 말했던 그 능력주의를 생각했는데 Weber의 meritocracy에 더 가깝다고 해서 놀랐어요. 제가 아직 베버 작품을 다 못 읽어서 그런데.. 아마 제가 알고 있던 결과 중심의 능력주의보다 '과정'에 중점을 주는 능력주의같은데.. 어떤 차이인지 좀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YG @CTL 그런데, 제가 약간 의아한 부분은, 과거 중국에서 과거를 통해 관료로 채용된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승진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 같고, 현대 중국에서는 처음에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할 때 우리나라 공무원 시험처럼 시험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는지, 그런 내용이 별로 없어서 서로 매칭이 잘 안되는 느낌이 들어요. CTL 님 말씀처럼 오렌지와 사과를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과거 중국에서도 과거에 합격해서 관료로 입성을 한 다음에는 다른 종류의 기준들로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요? 권력자와의 연줄이 중요했는지, 관료로서의 처세가 중요했는지, 현대 중국에서처럼 KPI 비슷한 게 있어서 그걸로 평가받았는지, 아니면 승진 시험 같은 게 중요했는지 그런 게 궁금하더라구요. 현대 중국에서도 과거제가 유학을 사회 전반에 강요했듯 어떤 특정 사상으로 획일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제도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으면 현대 중국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더 분명했을 것 같습니다. 주인-대리인 문제 같은 것은 중국 고유의 특성이라기보다 대기업과 같이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항상 따를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 같아요. 대기업에서도 사업부별로 자율경영을 시키느냐, 중앙집권을 강화하느냐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 어떻게 주인의식을 갖고 기업의 목적에 맞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느냐가 기업 운영의 핵심적인 난제인 것처럼, 중국의 능력주의라고 하는 것도 커다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일반적인 수단인 것이지 그 자체가 중국적인 무엇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중국적인 특징이라면, 오랜 역사 동안 거대한 국가가 이렇게 체계적인 정부조직에 의해 통치되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지, 과거제도나 능력주의는 그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한 통치가 가능했던 주요 수단이 과거제도와 능력주의였다라는 얘기라면, 뭐 그것이 중국의 핵심적인 특징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보는 관점의 문제인 것 같긴 합니다.
@오도니안 님은 연구자 정체성이 확고하신데요? 앞에서 언급하신 그런 연구를 야성 황이 실제로 하고 서술합니다. 저는 약간 사족 같았고, 그런 방법론의 타당성도 고개를 갸우뚱했는데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연구도 관료제 진입(과거 시험)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도 같네요. 그 부분에서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네요.
직접 연구할 능력은 없지만 딴지에 특화된..^^ 이 책이 완전 대중서도 아니고 연구서와 대중서의 중간 성격을 갖고 있어서 저자가 논문이나 기존 연구에서 객관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다 보니 자유롭게 쭉쭉 나가는 느낌은 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도니안 주인-대리인 문제를 놓고서 하신 지적은 저도 공감해요. 저도 다시 살펴보고 의견을 덧붙일게요.
그쵸, 솔직히 우리나라도 서양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 대부분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지 그냥 단기 알바생처럼 일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지는 공통 난제죠. 예전에는 성리학의 사상적인 주입식 교육에 의한 게 있었지만 지금은 성리학 경전을 시험보는 능력이 아니라 결국 GDP같은 성과에 크게 좌지우지될 된다는데 그렇다면 다른 성과 중심의 서양 또는 다른 동양 기업들과 어떻게 다른지... 결국 능력이 있어도 인사 결정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체제에 잘 따르고 눈치보는 것도 필요한 중용의 미덕을 갖춰야하는 건지..;; (근데 이것도 중앙부처를 주주로 바꾸면 어느 정도 유사하진 않을까요?) 전 2장에서 전통 중국에 비해 현대 중국이 서양 자본주의에 비해 어떻게 다른 점을 보이는지 더 깊게 다룰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소련의 계획경제와 비교해서 의외였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가장 정부 고위층이 실무에 능한 전문가가 아닌 문외한의 일반 행정가들로 차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군요;; 결국 너무 혼자 잘나도 안되고 모나지 않아야 한다는 건가..;;
YG님 지적하신 부분 읽으니 저자 입장이 더 분명히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과거 황제 통치 하의 중국의 통치제도를 공고히 해주는 제도가 '과거'제도 였다면 공산당은 단지 관리선발제도인 과거 제도보다 더 포괄적인 관료 관리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황제 통치 - 과거제도> 대비 <공산당 통치 - 공산당 관료 관리 제도>라는 관점이 확실히 들어오기에는 '과거'만큼 이름붙여진 어떤 특정한 시스템 이름이 있는게 아니니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즉, '과거'에 비교할 만한 구제척이고 직관적인 한 가지 제도를 꼽으려는게 아니라 공산당 관료관리 전반을 비교하고 있는 거군요.
127쪽 주인 대리인 이론부분 읽고 있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ㅎ 오늘 남편과 고려아연 영풍mbk 공개매수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이 주인 principal 대리인 agent 이론이 경제학에 있다면서 그 관계로 설명해주었거든요. 중국이라는 국가를 조직의 관점애서 주인 대리인 관계로 설명한다는 것도 낯설기는 합니다
2장은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전문 분야이고 좀더 한정된 범위를 다루어서인지 1장에 비해 설명이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회사원 경험에 비추어 피상적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M 대 U, 자율과 통제의 문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 이상이라면 일정 정도 경험해 본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기도 하고요. 능력주의를 베버의 관료제로 설명하는 데서 좀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저자의 주장을 중국이 큰 규모의 중앙집권적 국가(이걸 벼농사 시스템에서 설명하기도 할텐데요)를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온 제도적 유산들을 개혁개방기에 어떻게 활용했고, 시진핑에 이르러 어떻게 악용 하는지로 본다면(책의 부제인 "시험, 독재, 안정, 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를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너무 단순하고 피상적인 이해하는 것이겠지만, 우선 2장까지 독서에서는 잠정적으로는 그 정도로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M형 경제에서 지방에의 위임과 지방(제너럴리스트) 대 중앙(스페셜리스트)의 대비, GDP라는 단일 성과지표라는 주제는 지금까지 중국에 대해 알고 있던 것과 잘 모르던 것을 통합적으로, 또 개인적으로는 꽤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혹은 오해일 수 있지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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