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 분량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이유는요?
[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CTL
CTL
중국인 이야기의 대장정이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을 거친 인물들 이야기로 시작되는게 흥미롭네요. 그만큼 지금의 중국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이기 때문이겠죠. 린뱌오란 인물은 대단한 전략가인 군인이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엄청 독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물도 싫어하고, 늘 아프고, 병약한 이미지라 의외예요. 그런데도 마오가 2인자로 낙점했다는게 놀랍네요.
그리고 공산당 인물들이 자유연애를 중시하고, 그리고 이혼과 결혼을 아무꺼리낌 없이 했다는 점도 신기하고요. 아마 봉건주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표와 공산주의의 '평등' 지향이 맞물려서 그런가싶기도 해요. 가끔 공산당 드라마에서도 보면 동지들끼리 연애하고 이어주는 장면이 뜬금없이 나오는 걸 보면요.
저녁집
류샤오치가 사는 푸루쥐(福祿居)와 마오쩌둥의 거처 쥐샹수우(菊香書屋)는 오솔길 하나로 통해 있었다. 평소 류샤오치는 이 길을 유난히 좋아했다. 매일 저녁, 부인 왕광메이와 호수로 산책 나가다 보면 어김없이 마오쩌둥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류샤오치는 창 밖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마오쩌둥은 창 밖으로 고개를 빼든 채 온갖 싱거운 소리 나누다 헤어지곤 했다. 보통 한 시간 정도였지만 남 흉보거나 옛날에 사귀던 여자 이야기라도 나오는 날에는 어찌나 재미있던지 두 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많았다. 베이징 골목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정경이었다.
이 장면 읽으면서 당황, 아니 황당했어요. '남 흉보거나 옛날에 사귀던 여자 이야기'하는 두 공산당 지도자라니...
CTL
저는 대화의 주제보다는 격변기의 정권 1, 2인자가 저녁먹고 집 주위를 한 시간씩 산책하면서 수다떨 여유가 있었다는 게 참 신기했어요. 게다가 저녁 먹고 부부가 동네를 거닐면서 한 두시간 수다 떠는게 베이징 골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정경이었다니, 한국의 저녁 풍경에 비하면 참 소박했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CTL
저는 '두부와 혁명' 편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프랑스에 유학한 중국인이 참 많은 것도 신기했는데 '근공검학'이라는 운동때문에 그랬다는 것도 신기하고, 거기서 두부를 만들어 판 것이랑, 프랑스 유학왔다가 공부 포기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인이 많았다는 것도 나중에 나오는데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중국인들이 유럽에 그렇게 많이 나갔다니 참 놀라와요.
저우언라이는 여기서도 중재자로써 활약을 보여서 주먹질 일보 직전까지 가는 싸움도 '프랑스는 병원비가 비싸다'면서 말리고, 얼마나 잘 생겼으면 대학교 2학년 때 텐진 사진관에 독사진이 걸리기도 하고요. 그 시대의 얼짱에 엄친아였네요. 이 장에 참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어요.
테이블
이제 1주 차 분량을 다 읽었네요. 옛날에 읽은 중국 혁명 관련 책이나 글에 이름 정도만 봤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름 뒤의 얼굴을 생생하게 보는 재미가 있는데요.
문화 혁명으로 실각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류사오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진부한 말이 있지만, 역사의 한 분기점에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부는 제가 좋아하는 식재료인데, 중국 두부와 두부 요리의 프랑스 진출과 중국 혁명은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이네요. 장선푸의 이야기에 나오는 검법의 달인 류칭양은 중국 무협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CTL
저도 류사오치 부분이 참 인상적인게, 주로 문화혁명 시기에 체포된 사람들을 공개심판하는 장면에 제일 많이 나오는 사진이 류사오치 사진이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부정적으로만 알려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공산당에 의해 선전되지 않은 그의 다른 모습을 많이 알게 해 주었어요.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인물이 나와서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함께 읽으니 다시 찾아보게 되는 묘미를 다시 발견하네요. '장선푸' 이야기는 사실 좀 인상적이지는 않았는데 '류칭양'이라는 인물, 정말 흥미로와요.
"톈진의 미식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혓바닥 요리사’의 딸이었던 류칭양은 어릴 때부터 검객이 꿈이었다. 부모가 인형을 사주면 던져버리고 칼을 잡을 정도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베이징을 자주 왕래하더니 리다자오와 친분을 쌓았고 5·4운동 당일에는 외교부장 차오루린(曹汝霖)의 집 방화에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장선푸는 새것을 접하면 지난 것을 까먹는 사람이었다. 망각이 인생의 최종 목표였다. 중국에 두 번째 부인이 있었지만 류칭양과 결혼했다."
'류칭양'의 이야기는 정말 마치 무협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검술도 잘 하고, 남자보다 더 적극적인 여자 주인공 모습 그대로네요. 아버지는 칼로 요리를 하고, 딸은 집에서도 검술 연습을 하고...집안 풍경 참 재밌었을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CTL
1주차 분량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댓글의 "문장 수집" 기능을 이용하여 나누어 주세요.
저녁집
“ 류샤오치의 자본가 옹호는 마오쩌둥의 연합정부론에 근거한 경제정책이었지만 수십 년간 풍파가 그치지 않았다. 발단은 마오쩌둥이었다. 류샤오치의 주장이 정책(政策)적이었다면 마오쩌둥의 주장은 책략(策略)적 성격이 강했다. 류샤오치는 이 점을 간과했다. ”
『중국인 이야기 1(김명호)』 김명호
문장모음 보기
저녁집
맨 앞부분의 '참새 소탕전의 추억'을 읽으면서 아, 이게 중국인의 모습이구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원래 중국인의 모습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놓은 기괴한 중국인의 모습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위화의 에세이들도 생각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류사오치와 마오의 각축전은 정말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군요. 이걸 단순히 시대가 만들어놓은 인물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마오라는 인물은 정말 문제적 인물이네요.
CTL
'동물 학자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 참새의 편을 들었다간 기상천외한 봉변을 당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너무 웃기지 않나요... 정작 '궈모뤄'같은 글쓰는 사람들이 나서고 전문가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요.
그런데, 참새만큼은 아니지만 예전에 6,70년대에 했다던 쥐잡기 운동 포스터도 생각나기는 해요.
저녁집
오늘은 린뱌오 부분을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며느리 간택 이야기를 읽다 린뱌오의 아들과 딸이 40년대생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린뱌오의 말년도 궁금했구요. 게다가 린뱌오의 딸 사진 밑에 앞뒤 맥락없이 들어간 듯한 한 문장이 계속 신경쓰였거든요.
"1971년 9월 13일 새벽, 부모와 남동생이 몽골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자 4인방에 의해 혹독한 격리심사를 받았다. 마오쩌둥의 지시로 풀려났을 때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린뱌오의 아들이 기도한 마오쩌둥 암살계획이 실패하자 가족 모두 소련으로 가려고 했으나 딸이 상부에 보고하여 발각되고 린뱌오 부부와 아들은 사망했나보군요. 린뱌오의 아들 린리궈가 생전에 했다는 말이 마오쩌둥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제 읽는 류샤오치부분에서도 느꼈던 것이거든요.
"그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일해 온 정치세력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그의 전직 비서들은 자살했거나 체포되었다. 그와 가까운 그소수의 전우들이나 신뢰할만한 참모들 또한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감옥에 보냈다. (...) 그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디스트다. 누군가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그의 소신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거나 일단 시작하면 철두철미하거나 둘 중 하나다. 누군가를 제거할 때마다 그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일단 상처를 주기 시작하면 끝까지 상처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쁜 일에 대해서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린다."(나무위키)
류샤오치의 이야기도, 린뱌오의 이야기도 결국은 마오쩌둥으로 귀결되는군요. 이 문제적 인물이 더 궁금해집니다.
CTL
저는 다른 책에서 린뱌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참 허무하고 비극적이라 인상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제가 상상한 린뱌오는 약삭빠른 전략가의 이미지였는데 <중국인 이야기>에서 아주 병약한 모습이었다니 놀랬고요.
류샤오치는 문화혁명 이야기에서 흔히 홍위병에 끌려나가 수모를 당하는 사진으로 많이 기억이 되는데 마오가 견제해야할 존재로 여겼던 모습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새로이 배운 면이고요.
류샤오치나 린뱌오를 보면 마오의 후계자로 선택받는게 아주 위험한 일이었네요. 그러고보면 저우은라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고요. 물론 그의 말로도 아주 고통스러웠던 것 같습니다만요.
저녁집
오늘은 '전쟁을 하면서도 학문과 자유를 키운 시난연합대학 '까지 읽었습니다.
캉성의 처세술이 굉장히 인상깊네요. 굴곡진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씁쓸한 면이 있습니다. 칼날 위에 서있는 삶이 아니었나 싶구요. 당시 권력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지...
"그의 문화 수준은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지만 드러낸 적이 없고, 남들이 알아주기도 바라지 않았다. 문을 닫아 걸고 혼자서만 즐겼다. 이유도 분명했다.
“재능이 알려지면 세상살이만 복잡해진다.” "
CTL
저는 1주차 범위에서 '시난연합대학' 관련 부분이 가장 인상깊고 흥미로왔습니다.
특이 창사에서 쿤밍으로 68일동안 '보행단'을 조직해서 걸어서 대장정을 한 부분과 쿤밍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나중에 핵전문가가 된 교수가 비누를 팔고, 시인이 도장을 깎아 판다든지 하며 대학을 유지한 점을 보면 중국인들이 '학문'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가 느껴집니다.
특히, 류원덴과 선충원 이야기가 재밌었어요. 저는 선충원 이름이 마치 사당이름같다고 생각하며 계속 읽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제가 재밌게 읽은 소설 '변성'의 저자 '심종문'의 보통화 발음이더라구요. 원래 1988년에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였는데 5개월을 앞두고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더군요. 괴짜긴 하지만 '류원덴'같은 학자들이 많다면 세상이 참 재밌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름달을 좋아해서 달밤에 야외에서 수업하기를 즐겼다니.... 학생들은 싫었을까요? 전시에 수도에서 피난와서 일년내내 봄날씨라는 쿤밍에서 달밤에 고전과 장자를 논하면, 저절로 글이 쓰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중국인 이야기>를 읽는 재미는 정치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시대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경탄하고 감동받는 것이라고 여겨지네요.
저녁집
선충원의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나오지 않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였는지 실감이 안나더라구요. 단편선에 실린 단편과 <변성>만이 번역되어 있네요. 현재는 중국에서도 그다지 읽히지 않는 분인가봐요. 우리나라에서만 루쉰에게 압도당해 그런건지 , 중국에서도 잘 안읽히는지 모르겠군요. 창비에서 나온 단편선에는 '천충원'으로 되어 있어서 헷갈리네요.
CTL
저도 한국어 번역으로 <변성>만 읽었는데 아주 서정적인 이야기였어요. 다작을 한 작가였다고 하는데 한국어 번역은 거의 없네요. 중국고전에 능통했다고 하니 글쓰는 스타일이 궁금한데 번역으로는 그 묘미가 사라질테니 중국어 문외한으로써는 그의 매력을 알 길이 없네요.
저녁집
'우리 가슴에 대나무 한 그루씩을 심자'까지 읽었습니다.
추안핑이라는 사람, 꽤 인상적입니다. 읽으면서 대쪽같네 했는데 이런 사람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각축을 벌이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이용하던 시기에 정말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군요.
"국민당 통치하에서의 자유는 많고 적고의 문제이지만, 공산당이 집권한다면 자유는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 상황판단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풍랑 속에 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과 정부를 감시해라. 기사의 분석과 해결은 그들의 몫이다. 우리 모두 가슴에 대나무를 한 그루씩 심자. 독자들이 우리를 감시한다." 언론의 역할과 지향점에 대해서도 명확한 자기만의 주장이 있는 분이었네요. 이런 사람은 문혁시기를 통과할 수 없었겠죠... 스스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CTL
저는 이 분, 말년에 아들이 중앙음악학원에 붙어서 수박이랑 사이다 구해 찾아갔는데, 자신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는 부분이 너무 마음 아팠어요. 그러다가 문화혁명 초기에 행방불명..... 그래도 아직까지 '추안핑의 품격'을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다시 재조명 되길 빕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CTL
2주차 분량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에 대한 평을 나누어주세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