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위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저의 부모님 같은 경우는 제가 추구하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셔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걷게 되었어요. 가끔 만약 부모님께서 나의 길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요.
2. 저는 맥시멀리스트 스타일을 듣고 싶어요! 예전에 수어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수어를 할 때 표정의 중요성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표정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크더라고요! 음성도 똑같이 않을까 싶습니다!
3. 저는 읽어주는 것보다는 제가 읽는 걸 선호하는 것 같아요. 되게 단순한 이유이긴 한데, 남이 읽어주는 걸 듣다보면 중간 중간 멍을 때려서 놓쳐버릴 것 같거든요...ㅎ 그래도 어렸을 땐 책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게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도서 증정/리딩가이드]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함께 읽어요 ☺️
D-29
밍묭
어크로스
오, 가고 싶으셨던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궁금해지는걸요!
하뭇
1. 저의 성장을 막은 건 역시 부모님인 것 같네요.
친정아버지는 전형적인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이라 딸을 대학에 보낸다는 거 자체를 이해 못하셨지만, 친정엄마가 본인이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기 위해 고집 부려 대학을 보내주긴 하셨는데.
대학을 보내놓고 너무 당신들의 세계에 가둬 키웠어요. 대학생이면 성인인데 키운다는 표현도 웃기지만 매우 억압적인 가정 분위기여서... 자신들의 생각의 한계 안에 둘 거면 왜 대학에 보냈는지도 이해가 안 되는데. 대학을 선택할 때부터 대학 문턱에도 못 가본 친정엄마의 고집과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저는 제 인생이 틀어진 것 같아요.
어크로스
에고, 많이 힘드셨겠어요. 대학에서 배움의 즐거움으로 조금 숨통이 트일 수 있었을까요?
하뭇
2. 지금의 저라면 요약본을 듣고 싶은데, 앞을 볼 수 없는 저라면 상세한 설명까지 듣고 싶을 거 같아요.
지금의 저는 영상의 런닝타임을 견디기 힘들어해서 핵심만 들으면 되는데.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면 모든 게 다 궁금할 테니까요.
어크로스
그쵸? 저도 지금의 저라면 요약본을 보고 싶긴한데.. 보이지 않는다면 선택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볼 것이 너무 많이 쌓여있는 건 시각장애이인이건 아니건 요즘 시대라면 다 같을 것 같아서, 요약본을 추구할 것 같기도 하고요! 결국 콘텐츠에 따라 다르겠죠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크로스
268페이지까지 잘 읽어보셨나요?
그럼 한번 생각해볼까요?
🟣 저자는 "사랑이란 애초부터, 언제나, 자립을 내려놓는 행위였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 나의 주체성을 의탁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떠올려봅시다.
🟣 멋진 문장을 뽑아봤어요. 필사하면서 한번 더 곱씹어보시길 바랄게요.
"그날은 내 시각장애에도 아랑곳없이 멋졌던 날이라거나, 내 시각장애 덕분에 멋졌던 날이 아니었다. 다만, 내 시각장애와 함께 멋진 날이었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의 행위다. 그리고 사랑이란 애초부터, 언제나, 자립을 내려놓는 행위였다.
독립과 개인의 자유,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멋지게 보여지는 세상 속에서 '사랑'을 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의탁하고, 주체성을 포기하는 일도 생기니까요. 여러분은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우주먼지밍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애초부터, 언제나, 자립을 내려놓는 행위였다”에 굵은 밑줄을 그었어요.
더구나 이 문장을 북미의 백인 남성이 썼다고 생각하니..더 깊게 느껴졌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엔가…제 책장에선 ‘돌봄’에 관한 책들이 한 권 두 권 많이 꽂히기 시작했어요. 대략 세어도 10권은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모든 책들은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돌봄을 제공하는 글들이었는데… 이 책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는 백인 남성이 돌봄의 대상이 되어 쓴 글이라 이 책의 출간 때부터 궁금했었어요.
책의 초반부에 본인이 북미 사회에서 백인 이성애자 남성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회적 문화적 가치로 독립, 자유, 남성성, 능력 등을 평생 주입을 받았을텐데…시력을 잃어가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이윽고 성숙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말 뭉클했어요.
몇 년 전부터 만나는 글마다 수없이 반복되는 사회에 대한 기술들은
‘자비없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 오로지 나 밖에 없는 사회, 스스로 본인을 일으키고 책임져야 한다는 이 ‘사회없음‘의 사회’ 였어요.
그래서 또 온갖 글들에서 우리는 모두 연루되어 있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일상적인 말로는 ‘서로에게 좀 적당히 폐를 끼치고들 살자’고 말이에요.
사랑이란 늘 언제나 자립을 내려놓는 행위다. 이 문장으로 나아가는 과정들 하나하나를 따라 읽으면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그 모든 과정을 겪고…여기에 이르러 이 문장을 썼다는 걸 의식하니 코끝이 찡했어요 ㅠㅠ
어크로스
저희도 회의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나 기득권인 '백인 남성'이었는데, 그 백인 남성이 돌봄의 대상이 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이 또 큰 의미를 가지네요. '서로에게 적당히 폐를 끼치고들 살자' 넘 좋네요! 그럼 포용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아요.
밍묭
1. 가족인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나름대로 꿋꿋하게 혼자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저 또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와 투정도 어리광도 부리면서 무방비 상태를 즐기는 것 같아요.
2. 1번 답의 연장선에서 내 자신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행동이 사랑이라면, 저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자신의 본모습을 마음 편히 보여줄 수 있는 존재니까요.
어크로스
밍묭님의 진정한 사랑은 가족이군요! ^_^ 가끔 가족들과 있다가 '어디서 내가 이렇게 무방비 상태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그럼 참 감사하죠!
어크로스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독서 모임입니다.
두 가지 질문이에요.
(~333p까지 읽으셨다면)
🟣 앤드루의 아내 릴리는 그와 함께 시력검사에 동행한 후 남편의 상황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답답함을 느끼다가, 그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게 된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봅시다.
🟣 이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각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고민합니다. 여성, 남성, 직장인, 학생, 자식, 부모 등 여러분의 정체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그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다음 주 월요일에 마지막 질문을 가지고 찾아올게요! 주말 동안도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와 함께 해주세요! 😊
밍묭
1. 종종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다가 머리를 크게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저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인가보다' 생각하다가도 사연을 알게되면 역시 내가 무지했구나 생각이 들어요.
2. 이 질문에 답변을 하려고 보니, 제가 정체성에 대해 딱히 고민을 깊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정체성이 안에 있겠지만, 저는 직장인도 자식도 그 무엇도 아닌 태어났을 때와 같이 무의 상태의 나를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꼽고 싶어요.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인물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닐 때의 자기자신이 행복해야 다른 정체성일 때도 안정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크로스
태어났을 때의 그 상태, 와. 엄청 자유로울 것 같아요.
하뭇
1. 모임 시작할 때 잠깐 언급했듯이. 제 남편이 시각장애가 있어요. 오른쪽 눈의 시력이 없어요. 왼쪽 눈의 시력으로 생활을 하는데.... 일상에선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이 생활을 하니까 남편의 장애를 늘 염두에 두고 살진 않거든요.
그런데 운전할 때 제가 조수석에 앉아있으면 차선 변경하거나 복잡한 좁은 길 지나면서 유독 예민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왜 까칠하게 구나 속으로 짜증냈었는데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내가 오른쪽이 안 보여서 그래.' 하더라고요. 그간의 예민함이 이해가 되면서 되게 미안했어요.
어크로스
아, 그렇겠네요. 서로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크로스
오늘이 마지막 모임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완독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을 드릴 시간.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도 드는데요.
어크로스 인스타그램에 자주 놀러오셔서 댓글로 소통하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 "잘못 디딘 발걸음도 생산적일 수 있다"라는 저자의 깨달음에 동의하시나요? 실패가 여러분을 성장시켰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 무언가의 끝은 무언가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합니다. 관점과 인식에 따라 부정적인 현상도 긍정적인 현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지요. 장애, 가족, 친구, 사랑, 독서, 기술, 정치 등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주제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우주먼지밍
“잘못 디딘 발걸음도 생산적일 수 있다”
네. 저자의 깨달음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자는 시력을 점점 잃어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작은 재앙’이라 이름 붙이고 이런 재앙들이 끊임없이 밀려와 꼭 사뮈엘 베케트 희곡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스스로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슬픔과 절망에 깊게 빠져 있을 땐 스스로에게서 분리되어 나오기가 힘든 법이니까요.
저는 언제부턴가 제 삶이 ‘작은 실패’이 쌓이고 쌓이는 과정 같다고 느껴집니다. 이 작은 실패를 소화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삶의 과정이 아닐까..그런 생각을 요새 종종해요.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직을 하고 나서 작은 실패가 본격적으로 쌓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흐흐. 이 실패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나르시시즘적이고 공감력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머물렀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는 역시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탐구하는 과정의 연속이구나..라는 점이요. 저자는 ‘눈멀은 내게 평생을 탐구할 흥미로운 해석학적 인식론적 질문을 열어주었다’라고 말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나 제멋대로 펼쳐지는 삶은 탐구의 연속인것 같아요. 이 탐구를 게을리했을 때 저는 항상 우울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말한 ‘미묘한 미소’ 를 배워서 일상에서 실천해 보고 싶어요. 나약한 정신 빼곤 사지는 멀쩡한 편이지만 그래도 종종 사는 것은 끝내고 싶은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감정이 들때는 미묘한 미소를 짓도록 해볼게요.
『나는 점점 보이지 않는다』 읽을 기회를 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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