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은 나와 그래도 문체가 맞는 것 같다. 지금 이 소설은 그렇게 인기 있는 것 같지 않지만 나와 좀 문체가 맞아 서점에서 손에 들었다. 무슨 얘길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
빛과 멜로디
D-29
Bookmania모임지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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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작가의 글은 끝까지 다 들어봐야 안다. 말을 빙빙 돌려 말한다. 그건 아마도 습관이 되고 여자의 습성이고 남에게도 세련되어 보이게 해 자기 글을 무시하지 말라는 신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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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를 떠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앞날에 할 것을 한,
사람만 존경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간의 특성을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인간에게 안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가 그 분야를 모르거나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같다.
인간들은 간사하고 결국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의 앞날을 밝히는 사람만 존경해 마지않는다.
자기가 지금 야구 선수면 이승엽만이 그런 것이다.
절대 작가인 김훈이나 한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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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멀쩡하게 생기고 그런 멀쩡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게 주로를 이룬다. 주인공은 절대 특이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평범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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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알아야 한다. 일단 인간은 자기 위주다. 의사들이 그러는 것은 나라의 의료 환경이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보다는 자기 위상이 위태로워 그런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들으면 그들이 이익만 대변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의사건 뭐건 일단은 자기 밥그릇이 우선인 것이다. 그들이라고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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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는 세상엔 그런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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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내숭
여자는 섹스하고 싶어도 남자 앞에선
직접적으로 말을 안 한다.
이것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선 여자가 자가보단 상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 맞게 행동하는
즉 관계 지향적이라는 본능 때문이고 그래서
만일 섹스하고 싶다고 바로 말해버리면 그녀는
바람기에 있고, 쉬운 여자로 새겨질까 봐, 상대에게
그렇게 자기를 생각할까 봐 그게 겁이 나서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 직접적으로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말한다.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본능적인 몸짓은
그것을 숨길 수 없으니까 그녀의 행동으로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할 수 있다는 거다.
만일 여자가 헤프고 아무 남자에게나 들이댄다고 생각하면
일단 남자는 그녀가 질리고 결국 싫어지게 된다.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자는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옛날 생각지만,
내숭을 떨어야 더 매력이라는 게 고리타분하지만
그러는 게 다 통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여자가 너무 헤프면 그녀에게서 나은 자식이
그녀는 자기 자식임을 분명히 알지만 남자는
그런 여자가 나온 자식이 자기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소중히 대하지 않고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남자가 그런 여자를 싸구려 취급하고 또 여자는
그런 자기를 경계하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가능하면
숨기고 안 그런 척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본능에서 우러나와 그런 것 같다.
여자도 남자의 이런 불안이나 여자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자기는 쉬운 여자가 아니고
지조 있는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속은
안 그렇지만 헤픈 여자가 아닌 척 내숭을 떠는 것이다.
이런 게 다 본능적으로 그러는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가능하면 화장을 안 고치고
-대신 거기서(안 보는 데서) 고치려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예쁘고 매력적인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뭔가 안 좋은 모습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선
가리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게 원래 난 예쁘고 매력 있다고 하는 것만
보여주기 위해 여자의 내숭이 겉으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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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멸종 안 된 건 남자의 공
이런 말을 하면 요즘 젊은 여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거지만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지구상에 이렇게 인류가 퍼진 것에선 여자보단
남자의 공이 더 큰 것 같다.
우선 몸의 구조를 보자.
남자는 사랑이 없어도, 별로 상대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어도
여자와 섹스를 한다.
아무나 섹스하는 남자도 실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어떤 여자와 지금 섹스를 하고 있어도 사랑하는
여자와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르는 여자에게 자기 정액을 뿌리는 것이다.
이건 남자의 본능이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법이 없던 원시 시대엔 강제로도 했다.
그래 섹스를 한 그 여자를 통해
자기 자식을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다.
강제로든, 서로 눈이 맞아 하든, 하여간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여자와 할 수 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하루에 열 번도 할 수 있다.
그게 다 성공하면 열 명의 자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수만 명의 자식을
생산할 수 있다, 남자는.
그러나 여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 임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특성상 마음이 동해야 남자와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고 남자처럼 아무 때나 할 수 있다고 해도
여자 몸 구조적으로 그게 가능하지 않다.
우선 여자가 어떤 남자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남자라면 그냥 성기를 세우고 넣으면 된다.
그러나 여자는 하고 싶어도 남자가 호응해 주지 않으면
삽입이 안 된다.
즉 남자는 여자 뜻에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욕구, 즉 발기가 안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생 낳을 수 있는 자기 자식이 한정되어 있고
때문에, 사람이 모두 여자 같은 구조였다면
인간은 퍼지지 못하고 멸종되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런 특성 때문에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새끼를 만들 수 있게 몸의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한 여자뿐 아니라 여러 여자와 호감과는 관계없이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고
남자가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보단
그렇게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남자는 섹스한 후 사랑하는 것이고
여자는 사랑이 있은 후 섹스한다는 말도 다
본능에 기인한 것 같다.
거기에 무슨 의지나 그런 게 작용하는 게 아니고
본능에 따른 행동인 것이다.
성욕에서, 여자가 더 자제할 줄 알고
남자는 참을성이 없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프로그램된 것을 실행하는 것뿐이다.
여자는 배임기와 폐경이 있지만
남자는 그게 없어 나이가 들어도
생산할 수 있는 구조로 탄생한 것 아니겠나.
멸종 없이 남자에게 계속 사람을 만들어내라고.
이건 아마 인류의 멸종의 공포 때문에
남자에게 그런 의무가 주어진 것이리라.
그러니 지구상에 인류가 멸종되지 않고 이렇게나
많이 퍼진 것엔 여자보단 남자의 공이
더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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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독일에게 당한 것을 그대로 가자지구에 하고 있다. 그러니 인간은 모순 투성이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고 자기 위주로 뭐든 생각하고 정당화한다. 이게 인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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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귀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약자만을 찾아 떠난다. 가자 지구로, 우크라이나로. 그들이 전에 강자였어도 지금은 그들이 약자이면 그들을 찾는다. 그들을 돕기 위해. 이건 자기 만족이라기보단 자기가 약자였을 때를 기억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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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힘, 서로 주고받기
특히 직장 생활을 처음 하거나 소중한 사람과
영영 헤어지거나, 이처럼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그때 그가 한 말 중에서
그걸, 내가 다시 살아갈 힘으로 삼는 경우는 흔하다.
힘들 때 힘이 되었던 사람과 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도 남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걸 꼽자면 뭐가 있을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아줘
다시 살아갈 의지와 의미가 생기게 한 것이고
그걸 내게 심어준 사람, 그는 내겐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내가 그래서 살아가지만, 그 사람 때문에 또
나도 혹시 남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러려고 노력하는 삶 아닐까.
누구 때문에 살고, 그가 한 그것 때문에
나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기서 벗어난 것이고
나는 그에게 그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남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하는 게 가장 소중한 것 아닐까.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기고
남에게도 그걸 주려고 하는 것.
실은 그게 대개 자식인데, 그를 겨냥해 내가 그를 어려움에서
살리는 사람이고자 하나, 실제는 그는 그걸 수동적으로 받은
그 사람(부모)에게서 그런 힘을 얻는 경우보단 다른 사람에게서
그 힘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 경우가 더 많고
감히 나도 누굴 겨냥해 그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그는 나에게서 그걸 받는 경우보단
생각지도 못한 다른 사람에게서 그 힘을 대개는 얻는
경우가 대부분인 게 또 삶의 아이러니 아닐까.
주려는 사람에게선 안 받고, 주려고
생각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이건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게 주는 사람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시대나 장소에 있어 너무나 멀리 떨어진 사람일 수도 있다.
또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게서도 내가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말뿐 아니라 글로도 영화나 그림,
음악으로도 나는 그걸 얻을 수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당연히 남도 그렇다.
또 많은 사람이 따르는 그런 사람이 내게도 같이 힘을
줄 수도 있지만 진짜 과연 내가 그에게서 얻은 힘으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인지-단지 자기와 실제로는 안 맞지만
많은 사람이 따르는 사람이라 내가 착각하는 건 아닌지-
내게 꼭 맞는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수렁에 빠졌을 때 진짜로 나를 거기서 건져준 사람을.
진정 내게 힘을 준 사람을.
그는 한낱 거리의 노숙자일 수도 있다.
그가 누구든 그는 내게 그런 힘만 주었다.
이렇게 인간 세상에선 누가 누구에게 힘을 주고받는지
알 수 없게 얽히고설키며 삶을 꾸려나가는 것 아니겠나.
그러면서도 내가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도 가능하리라.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스스로 강한
존재 이유를 찾고 그것 자체를 하는 것에서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얻은 것을 남에게 우연히,
그가 어려움에 처한 것 같을 때, 위로 한마디가
그에게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남긴 그 무엇으로
모르는 남이 우연찮게 그것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에게 언제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른다.
이건 일부러 만들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자신을 살리고 남을 동시에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모른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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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평번하게 사는 게 유일한 목적인 인간들도 많다. 이런 건 여자에게 더 많다. 안정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게 뭐나 나빠? 하면 정말 할말이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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