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 소설이 지닌 ‘문체의 예술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정연 선생님 말씀대로 여러 층위에서 발생하는 언어의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희가 ‘서문’에 관해 나눴던 많은 이야기를 비롯하여 ... 그런 한편, 여러분께서 이 소설이 보여주는 문체의 속도감이랄까 몰입을 위한 힘 같은 것을 언급해주셔서 문득 떠오른 이야기도 있는데요. 최근 아주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고, 틈틈이 번역을 하고 계시는 시인 겸 번역가와 이야기를 오래 나눈 적이 있어요.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미국의 문예창작학과의 경우(아마 한국의 문창과와는 그 성격 면에서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텐데) 글쓰기를 배울 때, 시인 뿐만 아니라 저처럼 산문이나 논픽션, 비평을 쓰는 사람들 역시 문장의 리듬감을 중요하게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문장의 길이를 조절하면서 음악성을 생성하는 방식을 따로 공들여 배운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왜냐하면 (제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시나 소설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비평 글쓰기를 훈련 받아왔던 저의 경우엔 단 한 번도... 그 누구로부터도 그런 식의 요구나 조언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요. 그보다는 내용을 얼마나 명료하고 정확하게 드러내는가, 문장이 모호하다면 얼마나 매력적으로 모호할 수 있는가 정도에 초점을 맞춰 훈련을 받아왔던 거죠. 그러다 미국에서 온 시인의 저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만약 제가 제 글에 리듬을 부여하는 방식을 중요한 사항으로 고려하는 법을 배웠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글을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엇이 더 낫다는 것이 아니라요.) 이미리내 작가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신 것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글쓰기를 훈련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니... 작가의 속도감 있고 리듬감 있는 문체는 단지 영어->한국어로의 번역 문제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특수한 방식의 글쓰기 훈련이 가져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화자에 따라 문체가 바뀌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묵 할머니의 역할에 따라서도 문체가 바뀌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서 같은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인 거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많았어요 미희가 성미 역할을 랄 때도 그렇고요 한 책에서 이렇게 다양한 문체를 본 적이 있을까요 그리고 처음과 끝에 묵할머니를 만나는 주인공으로 시점이 돌아가면 왠지 작가님의 문체로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오..네.. 저도 단락마다 묘하게 문체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옴니버스라는 느낌이 더 들었던거 같아요. 제가 일할때 영어로 써보고 구글로 한국말로 번역해보면 내가 원래 말하려던 한국말과 구글로 번역된 한국말이 오묘하게 다르거든요.. 짧은 비지니스 문장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처음 작가님이 바로 영어로 쓰셨는지 한국말과 영어가 같이 머리속에 있는데 영어로 쓰셨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의 언어와 영어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돌아온 경우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해요.
글을 읽을 때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수월하진 않았어요.영어 어순을 한국어로 바끈어놓은느낌? 한국어의 풍부한 어휘를 영어의 정직함으로 바꿔놓은 느낌이었어요.아주 편안하게 느낌을 살리면서 읽지도 못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목할머니의 그때그때의 감정은 잘 느껴져서 좋았어요
문장에 대한 느낌은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정말.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평부터 영어 문장의 어순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는 평까지. 이런 각자의 차이가 늘 신기하게 느껴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은 ‘인물과 사건의 새로움’에 대해 이야기 나눌 차례네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 그리고 냉전 시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 사건,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이니만큼 할 이야기가 더욱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냉전시기 등 시대적 배경이 개인의 소사에 관련되는 소재의 역할을 주로 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했듯이 천일야화 중에서도 ‘신밧드의 모험’과 같은 활극스러운 속도감과 경쾌함이 같이 느껴지기도 했구요. 묵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개별 사건들을 따로따로 보아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적당한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져간 점이 좋았습니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말씀해주신 ‘활극스러운 속도감과 경쾌함’이 느껴진다는 게 이 소설의 특징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영화나 소설에서 일제강점기 6.25 민주화항쟁을 겪은 세대에 대한 얘기는 많았던 거 같아요 파친코나 철도원 삼대 등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한 인물이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보이는 설정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캐릭터의, 참신함이라고 해야할까요 인내나 희생 한 등의 전형적인 여자 주인공에게 주어지던 이미지 보다는 사기꾼이나 살인자 스파이 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과 선택을 보여주는 한편 여전히 한 남자를 사랑하고 엄마의 역할응 하고 할머니의 역할을 함께 한다는 점이 또 다른 매력 아닐까요 그런데 문득 흙을 먹던 소녀가 흙을 먹는 할머니가 된 설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한국 역사에서 어려운 시절을 겪기만 하고 만약 이 세상을 마쳤다면 슬픈 이야기로 끝나겠지만 그 와중에 힘든시절의 여자로 고난들을 스스로 이겨나가고 살았다는 것과 죽음도 결국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끝났다는 것에서. 처음에는 너무 무겁게 읽었는데 나중에는 처음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더라고요 ...
여러 인물들이 나누어 보여줬던 이야기를 한 인물 안에 구축한 것 역시 인물의 새로윰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흙을 먹던 소녀가 흙을 끊고 살다가 다시 흙을 먹는 할머니가 되었다는 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의 은유가 아닐까요?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소설적 인물과 사건의 새로움을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기를 다룬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꽤 많은 데에 비해 전쟁 이후 한반도 땅에서 있었던(진실 규명이 어려운) 스파이라는 소재가 독특했습니다. 미.소 스파이 소설이야 정말 많이 접했지만 남.북한 스파이 소설은 한두편을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기억나는 소설은 <빛의 제국> <제3의 남자> 정도). 그런 측면에서 인물과 사건은 어느 정도(?) 새로웠습니다.
맞아요, 저 역시 남북한 스파이 소설은 별로 생각나는 게 없는데 묵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짧게나마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3의 남자>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빛의 제국북으로 귀환명령을 받은 남파간첩의 24시간을 긴박하게 묘사한 『빛의 제국』은 냉전문학의 이념적 계보를 스파이스릴러라는 장르로 해체해버리고, 신념과 가치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서 인간 실존의 의미를 묻는 문제작이다. 기존판에는 없었던 작가의 말을 싣고 오류를 바로잡았다.
제3의 남자박성신 작가의 장편소설. 아들 최대국의 시점과 젊은 시절의 아버지 최희도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아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과거사를 한발한발 따라가는 한편, 이를 통해 간첩, 안기부, 요정정치, 납북사건 등 6~70년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을 절묘하게 작품에 녹여낸다.
실제로 있었던 시대를 다루다 보니, 소설이 아니라 실존 인물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았어요. 읽으면서 '아, 한국이 이러한 고난을 겪은 끝에 지금에 도달했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밍묭님과 같은 새각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시대를 다루시다 보니 인물의 일기를 보는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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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토론 주제는 ‘해석의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시대, 마치 여러 사람인 것차럼 디양한 주인공의 인생이 펼쳐지기에 어느 시기에 집중해서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벌써 마지막이 되었네요. 저는 특별히 무언가를 해석했다기 보단 묵 할머니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 또한 묵 할머니의 이야기가 진실이길 바랐고, 진실이라고 믿게 된 것 같아요. 그 길었던 우여곡절을 지나 할머니가 마지막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등장인물을 믿고 싶어지고 그의 행복을 바라게 되는 게, 어쩌면 작가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도 특별하게 해석하긴 보단 묵할머니의 인생 그 자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어떠한 일관적인 메세지를 주려는 이야기보다 다양항 관점을 가질 수 있거나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들이 더 끌리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친구의 신분을 사칭해서 행복을 얻었다면 비난받아야 하는지 꼭 진실을 말해야 하는지 많은 분들이 많이 인용한 문장이었던 가장 친절한 속임수는 속아주는 거라는 말은 그냥 봤을 때는 그냥 멋진 말이네 싶지만 그말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 알고 보니 너무나도 먹먹한 상황이었거든요 묵할머니의 인생이 사실이든 아니든 속아줘도 된다고 대입할 수도 있고 다시 성미의 남편도 그런 마음이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니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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