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D-29
여덟 가지 인생을 오가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소감을 뭐라고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자급자족을 표방하는 그들의 국가에서 표면적으로는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이 죄악시되지만, 권력자들 사이에서 일본 제품은 대체로 수요가 높고 중국이나 소련 제품보다 품질면에서 훨씬 월등하다고 여겨진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p. 156,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최가은님의 대화: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평론을 쓰고 있는 최가은이라고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 금정연 선생님께서 너른 시선과 꼼꼼한 안내로 소설을 잘 소개해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이 대단하고 광할한 서사에 관해 ... 어느 부분에 집중하여 이야기 나누면 좋을지 힌트가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함께 읽기가 더욱 기대되네요. 우선, 오늘은 저도 한국어판 서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저도 최근에 제2, 제3외국어인 영어나 타외국어로 창작 활동을 전환해보려고 하는 주변 친구들을 여럿 보게 되었고 그런 멋진 모습을 지켜보면서 괜히 저도 영어로 비평문 쓰기!에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야망..을 품어보기도 했었는데요. 그러나 평생을 모국어로 써온 한국어를 통과할 때조차도 문장화나 언어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인지라 시도와 동시에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작가의 도전과 끈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문을 보면 심지어 대단한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 식의 태도를 보여주는데 그 역시 놀랍고 멋지다는 생각이고요. 한편, 정연 선생님이 언급해주신 부분을 저도 다시 들여다보았는데요.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본문의 문체와 한국어로 쓴 서문의 문체를 비교하는 것이요. 우리가 다소 이국적(?)인 혹은 조금 난해하게 다가오는 작품을 볼 때 흔히 하는 말, “번역투라서 신선하다”거나 “번역투라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글에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번역이며 번역‘투’일까, 작가에게 번역 이전과 이후의 언어는 한국어일까 영어일까 등등 ... 번역투라는 말에 기존에 합의된 의미를 초과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도 새삼 들고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좀 늦게 시작했는데 저는 우선 서문에서부터 우와 이거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문이 이미 소설 한 꼭지 아닌가요 한국인인데 영어로 소설을 써 가는 여정 자체가 한권의 장편 소설 감임데 이렇개 서문으로 써버린게 아쉬울 정도에요 다음엔 이부분만 소설로 내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두번째로 많이 얘기하시는 번역문체에 관해서도 할말이 많아요 저는 서문과 본문의 문체느 분위기가 거의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물론 번역가님의 능력이시겠지만 혹시 작기님이 한글로 먼저 써보시고 영어로 다시 쓰신건 아니겠죠 왜냐하면 번역투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영어로 쓰신 걸 다시 번역하셨다는게 잘 믿기지 않아요. 그리고 프롤로그를 읽는데 구성이 너무 참신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여덟가지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기대되네요 소설이 사람의 마음을 끌 때는 보통 독특한 캐릭터나 엄청난 서사 또는 참신한 소재가 있디고 생각했는데 왠지 이 소설은 이렇게 구성되고 이렇게 전개될거야 라고 책의 목차를 맛보기처럼 이야기로 보여줘서 끝까지 가고 싶은 그런 매력도 있다는 걸 느꼈네요 이제 얼른 첫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볼께요. 밤새워 읽고 싶은 인트로였어요
최가은님의 대화: 인상 깊었던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지점은 서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한데요. 남편의 배신으로 자존감이 박살 난 인물이 새 인간, 새 삶을 살아내기 위해 다름 아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위치로 가고자 하는 것. 여기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 수 있을지 소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타인의 이야기를, 특히 부고 지면을 획득할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위치는 묻힌 이야기를 소생시키는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로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듯 ‘윤리적’이라 말해지기 쉬운 자리 같아요. 확실히 화자에게서 그런 식의 뿌듯한 마음이 발견되기도 하고,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과 자존감을 얼마간 회복할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이 엿보이기도 해요. 부고를 쓰기로 한 노인들에게 ‘당신의 인생을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라’는 요구는 그야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특권적 위치가 행사하는 묘한 종류의 권능이기도 하고요. 관련해서 인상 깊었던 점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타자였던 묵할머니가 역으로 제시한 여덟 개의 키워드였어요. 세 개는 너무 적고, 아홉 개는 너무 많다고 느끼기에 나는 여덟 개를 선택하겠다는 묵미란의 말은 이처럼 ‘소수자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기존에 확립되어 있는 위치를 재전유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특히 그녀가 프롤로그의 화자 ‘나’에게 완전한 타자로 느껴지는 이유가 그녀의 치매 가능성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묵할머니의 이야기 전유는 매우 적극적 행위처럼 생각되고요. 세계로부터 신뢰 받지 못하는 화자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고, 그럼에도 내 이야기는 내가 하겠다, 라는 식의 태도이니까요. 저도 자기 이야기를 쓰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습관처럼 인생을 세 가지 키워드로 추려서 생각해보라는 제안을 자주 하는데, ‘나’처럼 허를 찔린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인생을 새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겐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최가은님의 대화: 서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정말 흥미로워요. 해피엔드님이 언급해주신 ‘트릭스터’의 의미와 김해지 편집자님께서 들려주신 번역 비하인드 스토리, 마린님께서 말씀해주신 ‘한국인 특유의 겸양’ 그리고 금정연 선생님의 번역투 고민까지 ... (..이제 저도 확실히 괴롭네요...) 아직 책을 못 받으셨다는 분들이 계셔서 걱정이 되지만, 뒤처진 진도를 천천히 따라잡으며 감상을 남겨보겠습니다. 우선 ‘프롤로그’에서 제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우리에게 이야기로서 만나게 하는 사람인 화자 ‘나’가 ‘부고 쓰기 프로그램’이라는 기발한(?) 기획을 실행하게 된 계기가 좀 충격적이었는데요. 바람난 남편을 망치로 내려칠 수 없기에... 그러나 그러고 싶기에... 하지만 “이런 판타지를” 그러니까 “히스테릭한 일련의 행동에 굴복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미친 여자가 될 수는 없어!라는 절박한 마음을 바탕으로)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선택한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상당히 아침 드라마스러운 (실제로 한국의 ‘아침 드라마’가 언급되기도 하고, 그것이 다양한 시간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국적을 두루 거치는 이 소설에 그럼에도 묻어 있는 한국적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시작점의 의미와 위치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금정연 선생님께서 수집해주신 문장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소설은 여성들의 수난사인 동시에 기본적으로 그러한 비극에 대해 초국가적으로 작동하는 가부장제의 원리와, 그 속에서 특별히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성들의 존재를 문제의 상당한 원인으로 배치하며 전개되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소설 속 남자 인물들이 대체로 형편 없고 ... (물론 아닌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 형편 없음 때문에 역사 속 여자들은 ‘노예’가 되기도 하지만 ‘이야기꾼’이, ‘스파이’가,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점이 프롤로그의 ‘나’가 새 삶을 선택하는 정황과 겹치며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흙에 대한 맛과 향을 묘사하은 대목에서도 이걸 먹어보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로 생생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벌거벗은 채 내던져진 진실이라는 기괴한 코끼리가 거대한 엉덩이로 지금 내 시야를 믹고 있었다는 문장에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런 비유는 정말 처음 보는데 한편으로는 이국적이고 다른 문화권에서 쓰는 거 같지만 어떤 막막하고도 답답한 느낌인지는 충분히 전달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처음엔 좀 억센맛이 있었다면 뒤로갈수록 연인과 공작원부분은 특히나 더 억센부분이 한풀 꺾여 껍질을 벗고 부드러워진듯한 감성적이게 글 느낌이 바뀐것 같았어요
이 글에 달린 댓글 2개 보기
나는 너에게 알맞은 불쏘시개를 주었고,이제 너는 너 혼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그리고 그 불을 멈추는 것은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P221,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금정연님의 대화: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일곱 번째 인생'을 읽습니다. 소제목은 '평범한 결혼에 대한 고백'이네요. 이건 물론 역설적인 제목이지요. 이 소설에 나오는 '결혼'이 평범한 결혼일 리 없으니까요. "에메 아델은 결혼이 특별함에 평범함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라는 첫문장이 거기에 어떤 아이러니를 더하는 것 같네요. 책에서 가장 분량이 긴 부분이에요. 다른 인생들도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로 읽을 수 있지만, 일곱 번째 인생은 중편 소설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네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 챕터의 화자는 묵 할머니가 아니고, 한 명도 아닙니다. 그리고 굉장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때론 누군가를 속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다시 한 번 변주되네요. 서로를 모르는 채 사랑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된 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떠오르고요.--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는 채 사랑하네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고요. 그러니 모든 '평범한 결혼'은 사실 '평범한 결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늦게 책을 받으신 분도 계신 것 같은데, 진도와 관계 없이 현재 읽고 있는 부분에서 문장과 감상, 질문 기타 등등 편하게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미희야, 가끔은 말이다. 가장 큰 속임수, 그리고 가장 친절한 속임수는 속아주는 거란다. 그것이 상대에게 소중한 위안이 될 수 있단다, 아가야.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p326,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금정연님의 대화: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일곱 번째 인생'을 읽습니다. 소제목은 '평범한 결혼에 대한 고백'이네요. 이건 물론 역설적인 제목이지요. 이 소설에 나오는 '결혼'이 평범한 결혼일 리 없으니까요. "에메 아델은 결혼이 특별함에 평범함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라는 첫문장이 거기에 어떤 아이러니를 더하는 것 같네요. 책에서 가장 분량이 긴 부분이에요. 다른 인생들도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로 읽을 수 있지만, 일곱 번째 인생은 중편 소설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네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 챕터의 화자는 묵 할머니가 아니고, 한 명도 아닙니다. 그리고 굉장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때론 누군가를 속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다시 한 번 변주되네요. 서로를 모르는 채 사랑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된 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떠오르고요.--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는 채 사랑하네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고요. 그러니 모든 '평범한 결혼'은 사실 '평범한 결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늦게 책을 받으신 분도 계신 것 같은데, 진도와 관계 없이 현재 읽고 있는 부분에서 문장과 감상, 질문 기타 등등 편하게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결혼(생활)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미희와 루소가 서로를 사랑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두 사람보다 왠지 미희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커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금정연님의 대화: 모두 잘 읽고 계신가요?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두 번째 인생’ 챕터를 읽습니다.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요, 일본군의 ‘이야기’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이 ‘이야기’를 통해 삶을 견디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요. 단지 그런 이야기라고 요약해버려도 좋을지 모르겠지만요. 이야기라는 건 그런 거 같아요. 때때로 우리는 고작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때론 그 이야기가 누군가를 살아가게 만들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는 것. 특히 이번 챕터에서는 이어질 이야기에 중요한 복선이 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괴롭고 힘든 이야기지만 찬찬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길지 않은 이 글에 이야기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책을 늦게 받으셨거나 조금 느리게 읽으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읽으시고 구간과 관계 없이 좋았던 문장, 떠오르는 생각,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은 다른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을 올려주세요!
읽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사람에게 잔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없이 잔인한 위안부 생활 끝에 또다시 흙을 먹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슬펐습니다ㅜㅜ
밍묭님의 대화: 읽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사람에게 잔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없이 잔인한 위안부 생활 끝에 또다시 흙을 먹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슬펐습니다ㅜㅜ
네..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위안부도.. 그리고 마침내.. 흙퍼먹는 모습에요.. ㅠㅠ
최가은님의 대화: '첫 번째 인생' 파트에서는 '외국어'에 대한 지식,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언어와 힘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이때의 '힘'은 양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처음 이 파트를 읽을 때, 어머니에 관한 묘사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조금 투박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전형적인 악인으로서 가부장을 묘사하는 방식 같았달까요. 이후 화자의 선택(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 같은 것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놓여 있는 '외국어' 혹은 '고급 어휘'의 문제가 허구리 거주민들에게 '외국어'가 갖는, 나아가 한국인들에게 '외국어'가 갖는 보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의미와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아버지는 "교육의 중요성을 믿지 않는 문맹의 어부"로서, 애초에 언어와 언어를 통한 앎을 획득해보지 못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 힘이란 곧 약자에게 즉각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물리적, 신체적인 폭력 행위와 같은 것이고요. 한편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서, "똑똑하고 아름답고 교양 있고 자애로"운 사람인데 그런 그녀에게는 풍부한 어휘 뿐만 아니라 "맛과 향을 구별하는 재주"가, 나아가 언어를 통해 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 말하자면 그런 특수한 종류의 앎이 있어요. 언제나 아버지에게 폭력의 대상이 되는 어머니는 신체적으로는 절대적 약자이지만 지적으로는 아버지에 비해 우월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어려운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느끼는 공포는 권력 관계의 역전에 대한 인지와 두려움으로 보여요. 이는 '두번 째 인생'에서 일본 군인들이 절대로 입을 다물지 않는 용말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리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이때 언어는 기존의 권력 관계를 전복시키는 힘이기 때문에 약자들에겐 무기이자, '죄'가 되는 것이겠고요. 그런데 이 '죄'가 허구리 사람들이라는 (나아가 한국인이라는) 약자 공동체에게 '외국어'를 아는 일과 연결될 때 그것은 민족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고, "영혼을 파는 것"이며, 권력에 영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세 번째 인생' 파트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하는데요. "나는 누구를 섬길 것이냐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상관없었다. 내게는 무엇보다 생존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기울어진 힘의 관계에서 누군가에게 언어는 그 자체로 생존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나'에게 미군 '하우스'에서의 생활은 영어를 매개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영어를 통해 '나'는 '생존'합니다. 영어는 '나'가 "작은 이빨로 서서히 네 귀퉁이를 갉아 먹는 몹쓸 벌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말하자면 공모자이자 전복자로서의 '생존'을 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는데요. '나'는 하우스의 여자들을 착취하는 데 공모하고, 그 공모를 통해 하우스의 벽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니까요. (말하고 보니 언어가 정말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진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인 이유도 있겠고요. 갑자기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꺼삐딴 리> 생각도 나는...)
오..그렇네요.. 신기하게도 한국사람이 영어로 쓰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 된 글을 우리들이 읽고 있는데.. 이 책 내내 언어가 숨어 있었네요. 언어의 힘이 상당히 무섭습니다. 결국 어쨋거나 강요당한 일본어도 생계를 위해 우월한 수단으로 쓰이게 되었을 때 그 느낌은 어땠을까 싶어요. 자존감을 지키게 위해 위안부 시절에도 쓰고 싶지 않았던 일본어를 뭔가 고가품을 팔 때 상대를 맞춰주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니 말이예요. 어제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 타시고 우리도 이제 노벨문학상을 원어로 읽는 국민과 국가가 되었다라는 댓글을 보고.. 언어라는게 이렇게 중요하구나..싶었어요
금정연님의 대화: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네요! 오늘은 한글날이고 책 읽기 딱 좋은 조명, 온도, 습도... 아니 이게 아니라, 집에서 무릎 담요 덮고 따듯한 차 마시면서 책 속에 빠져들기 정말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적은 동네 카페에서 맛있는 차와 함께 읽어도 좋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매년 이 날이 되면 한 편의 영화가 떠올라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나랏말싸미](2019)라는 영화인데요, 천만 관객을 꿈꾸며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지만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모두 ‘폭망’한... 그래서 사실 제게는 조금 울적한 날이기도 합니다. 뭐 그건 제 사정이죠! 오늘은 여덟 번째 인생입니다. 장 제목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소설 전체의 제목과 같네요. 각양각색의 색깔로 펼쳐졌던 지난 일곱 인생을 하나로 모아주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그렇죠? 이야기는 다시 프롤로그의 요양원으로 돌아갑니다. 아마추어 부고 작가인 ‘나’가 다시금 화자로 등장하고요. 지난 일곱 번의 인생 동안은 묵 할머니의 관점에서 묵 할머니의 인생을 바라보았다면, 타인의 관점으로 묵 할머니를 묘사하며 독자 또한 지난 일곱 번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묵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분명 무척 매력적이지만 사실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요. 그 시절을 살지 않은 화자에게, 요양원의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우리 독자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에 그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와 비극과 슬픔이 있을 수 있다고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묵 할머니에게 푹 빠진 화자는 사실이든 허구이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지지할 것이다, 마음 먹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도 모르게 묵 할머니에게 사실 관계를 캐묻습니다. 묵 할머니는 진실 게임을 하자는 거라면 본인은 빠지겠다고 말하며 굳이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도 더는 캐묻지 않아요. 그건 묵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며 그녀를 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 관계의 조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의 것일 테니까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겠네요. 책을 늦게 받으신 분들도 있어서 더더욱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야기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이야기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앖는데요, 아마 첫 구간에서도 문체 이야기를 한참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나올 때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다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문체가 눈에 들어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한데요.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말처럼, 과거의 이야기는 낯선 나라의 언어가 번역되어 우리에게 오는 것처럼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게 되지만,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번역투로 느껴저서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금-여기의 이야기를 번역투로 읽는 경험이 낯설고 독특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쩌면 한글 창제를 다룬 [나랏말싸미]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라는 제 자의식이 번역 문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오늘 내일 이틀 동안 마지막 장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들, 감상들, 떠오르는 질문들을 올려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완독했습니다. 프롤로그와 마지막 챕터의 문체에 대한 말씀이 있네요. 저는 이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더라고요. 현재 시점으로 환기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죽음이 이렇게 안타깝지 않기는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 혹독한 생의 과정에서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것들을 지켰고,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잖아요. (물론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안타까웠습니다) 묵미란 삶의 고통의 크기를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그 고통 때문에라도 함부로 동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한데잠, 그녀의 가슴에 시원하고 무해한 바람이 지나갔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차례의 이혼을 겪고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를 양육하면서 내가 배운 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관계의 열쇠라는 거야. 남자하고든 여자하고든, 심지어 자식하고도. 기본적으로 누구와도 그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367쪽,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어제 드디어 마지막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기뻐서, 혼자 알기에는 너무 설레서 기사를 단톡방에 퍼올렸습니다. 학창 시절 빌보드 차트는 딴 나라 이야긴 줄 알았는데 BTS가 거기서 1등에 오르는 걸 보고는 그러나보다 했습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넷플릭스에서 1위하는 드라마가 나와도 그런가보다 조금 기쁘다 말았습니다. 그런데 노벨상이라뇨? 특히나 우리나라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한때 금서로 지정하기도 한 책의 가치를 세상이 알아줬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정말 후진 정치죠?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5.18과 4.3의 아픈 역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갈 걸 생각하니 가슴이 떨립니다. 아울러 지금 제가 읽은 이 작품 역시 영어로 쓰여진 글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한국전쟁, 멍키하우스, 스파이 등으로 우리나라 근현대를 훑는 내용인데 기꺼이 서양의 독자들이 주목해 줬다는 것도요. 한 단계 국격이 상승한 느낌은 저만 가지는 건 아니겠지요? 일곱 가지 인생으로 보았을 때, 여덟 번째 인생에서 극중 화자인 나와의 대화에서 '사낙'이 언급되었을 때 소설의 마지막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묵 할머니다운 방법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을 떠나서 변방의 지극히 한국적인 내용과 문체가,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듯하여 작가 이미리내와 한강 작가를 응원합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또 그믐에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이런 모임에 참석하여 따끈따끈한 신간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금정연님의 대화: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네요! 오늘은 한글날이고 책 읽기 딱 좋은 조명, 온도, 습도... 아니 이게 아니라, 집에서 무릎 담요 덮고 따듯한 차 마시면서 책 속에 빠져들기 정말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적은 동네 카페에서 맛있는 차와 함께 읽어도 좋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매년 이 날이 되면 한 편의 영화가 떠올라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나랏말싸미](2019)라는 영화인데요, 천만 관객을 꿈꾸며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지만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모두 ‘폭망’한... 그래서 사실 제게는 조금 울적한 날이기도 합니다. 뭐 그건 제 사정이죠! 오늘은 여덟 번째 인생입니다. 장 제목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소설 전체의 제목과 같네요. 각양각색의 색깔로 펼쳐졌던 지난 일곱 인생을 하나로 모아주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그렇죠? 이야기는 다시 프롤로그의 요양원으로 돌아갑니다. 아마추어 부고 작가인 ‘나’가 다시금 화자로 등장하고요. 지난 일곱 번의 인생 동안은 묵 할머니의 관점에서 묵 할머니의 인생을 바라보았다면, 타인의 관점으로 묵 할머니를 묘사하며 독자 또한 지난 일곱 번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묵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분명 무척 매력적이지만 사실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요. 그 시절을 살지 않은 화자에게, 요양원의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우리 독자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에 그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와 비극과 슬픔이 있을 수 있다고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묵 할머니에게 푹 빠진 화자는 사실이든 허구이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지지할 것이다, 마음 먹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도 모르게 묵 할머니에게 사실 관계를 캐묻습니다. 묵 할머니는 진실 게임을 하자는 거라면 본인은 빠지겠다고 말하며 굳이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도 더는 캐묻지 않아요. 그건 묵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며 그녀를 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 관계의 조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의 것일 테니까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겠네요. 책을 늦게 받으신 분들도 있어서 더더욱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야기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이야기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앖는데요, 아마 첫 구간에서도 문체 이야기를 한참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나올 때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다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문체가 눈에 들어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한데요.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말처럼, 과거의 이야기는 낯선 나라의 언어가 번역되어 우리에게 오는 것처럼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게 되지만,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번역투로 느껴저서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금-여기의 이야기를 번역투로 읽는 경험이 낯설고 독특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쩌면 한글 창제를 다룬 [나랏말싸미]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라는 제 자의식이 번역 문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오늘 내일 이틀 동안 마지막 장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들, 감상들, 떠오르는 질문들을 올려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현재 시점의 화자로 등장하는 '나'의 이름을 독자는 맨 마지막에 미희를 통해 알게 됩니다. 몰라도 그만이고, 처음부터 밝혀도 무방한 '부고 작가'의 이름을 마지막에 굳이 언급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묵미란 어르신께서 이새리 부고작가에게 건네는 어투가 흥미로왔어요. 화자가 청자를 자신보다 낮게 보되 무례할 정도는 아닌 존중의 하게체. 이 부분은 번역자 정해영 선생님의 솜씨겠지요? 그 하게체가 썩 매력적이었어요. 묵미란 어르신의 단단한 성정과 꼿꼿한 태도 그리고 청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한 번에 느껴졌어요. 예전에 지도 선생님께서 저에게 자네라고 하시며 하게체를 쓰셨는데 존중받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는 존재. 이새리. 위안소에서 용말의 이야기를 탐닉하듯 들었던 묵미란, 남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새기듯 듣는 가짜 용말, 김일성 대학 기숙사에서 남몰래 남한의 것들을 보고 있는 미희, 성미의 이야기를 듣는 루처럼 소설 속 청자들은 모두 성실합니다. 국정원의 요원까지도 성실하게 하나하나 새겨 들어요.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묵미란 어르신이 다른 이름과 다른 운명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소설에서 배웁니다. 온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들었던 사람은 모든 것에서 확연히 달라지지요. 들은 만큼 이해하게 되고 들은 만큼 깊어지니까요. 더 잘 듣고 오래오래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심도이니까요.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2주간의 함께 읽기가 끝나고 1주일 동안의 토론 시간이 시작되었는데요, 소전서림에서는 다섯 개의 ‘고전 지수’ 항목을 통해 우리가 읽은 소설이 새로운 고전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고 해요. 이런 항목들인데요. 1) 주제의 보편성 2) 구성의 탁월함 3) 문체의 예술성 4) 인물과 사건의 새로움 5) 해석의 다양성 내일부터 각각 하루에 하나의 항목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밖에 책을 다 읽은 감상과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여타 떠오르는 생각들 나눠주셔도 좋고요! 일단 오늘은 책을 늦게 받으신 분들은 더 읽어주시고, 이미 책을 다 읽은 분들은 앞으로 돌아가서 프롤로그와 여력이 있으시다면 첫 번째 장까지 다시 읽어보시며 감상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해요. 이건 저만의 작은 팁인데, 한 책을 끝까지 완독한 다음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앞부분을 다시 읽으면 전에는 몰랐던 부분이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들이 다시 보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러면서 새롭게 밑줄 친 문장이나 생각들 자유롭게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호디에님의 대화: 엄마도, 딸도 기구하다... 했는데, 두 번째 인생을 읽다보니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아직까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족을 제 소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은 참 어지간히도 변하지 않는구나, 싶어 안타깝더군요. '여동생'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나'나 엄마가 처한 상황이 참 속상합니다.
맞아요,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삶에서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부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밍묭님의 대화: 손목 염증 이슈로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어서 이제서야 참여합니다ㅠㅠ 저는 프롤로그에서 묵 할머니의 역질문이 인상 깊었어요. 내가 만약 그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묵 할머니 말씀대로 과연 인생을 세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어요.
우리 삶을 몇 단어로 정리하는 건 너무 어렵고 때론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많은 삶이 몇 단어조차 남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라도 정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굳이 몇 개의 단어로 한정짓지 않더라도(물론 이런 한정이 생각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지난 삶을 때때로 돌아가며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 증정] 소설 <모두가 나를 죽이려고 해>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6. 열광금지 에바로드⭐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남해의봄날/책선물] 김탁환 장편소설 <참 좋았더라> 알쓸신잡 재질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 여러분의 처방책이 필요합니다.
수험생이 시집이 읽고 싶대요. 스무살 청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을 추천해주세요.
'밀란 쿤데라' 챌린지 by 신아
밀란 쿤데라 <농담>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연극 보고 책 읽는 [연뮤클럽]
[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작품 함께 읽어요.
[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1탄) 작별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성북구 비문학 최종후보도서 4권을 소개합니다.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①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② 『공감의 반경』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③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④ 『탄소로운 식탁』
버지니아 울프를 읽어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믿고 읽는 그믐북클럽 🌘
[그믐북클럽X교보문고sam] 23. <좋은 불평등> 읽고 답해요[그믐북클럽X교보문고sam] 22. <더 나은 세상> 읽고 답해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었습니다
강릉교육문화관 <생존독서>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다정한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나서<도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서평 쓰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조선과 한국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김영사/책증정] 다니엘 튜더 소설 《마지막 왕국》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
논픽션의 유혹!
중독되는 논픽션–현직 기자가 쓴 <뽕의계보>읽으며 '체험이 스토리가 되는 법' 생각해요[그믐북클럽] 7. <더 파이브> 읽고 기억해요 [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글쓰기 책 함께 읽기 네 번째, 《네 번째 원고-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책방연희>의 다정한 책방지기와 함께~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끝나지 않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읽기 행렬!
[라비북클럽]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같이 읽어요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진주문고 서점친구들]비문학 독서모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