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네요! 오늘은 한글날이고 책 읽기 딱 좋은 조명, 온도, 습도... 아니 이게 아니라, 집에서 무릎 담요 덮고 따듯한 차 마시면서 책 속에 빠져들기 정말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적은 동네 카페에서 맛있는 차와 함께 읽어도 좋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매년 이 날이 되면 한 편의 영화가 떠올라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나랏말싸미](2019)라는 영화인데요, 천만 관객을 꿈꾸며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지만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모두 ‘폭망’한... 그래서 사실 제게는 조금 울적한 날이기도 합니다. 뭐 그건 제 사정이죠!
오늘은 여덟 번째 인생입니다. 장 제목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소설 전체의 제목과 같네요. 각양각색의 색깔로 펼쳐졌던 지난 일곱 인생을 하나로 모아주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그렇죠?
이야기는 다시 프롤로그의 요양원으로 돌아갑니다. 아마추어 부고 작가인 ‘나’가 다시금 화자로 등장하고요. 지난 일곱 번의 인생 동안은 묵 할머니의 관점에서 묵 할머니의 인생을 바라보았다면, 타인의 관점으로 묵 할머니를 묘사하며 독자 또한 지난 일곱 번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묵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분명 무척 매력적이지만 사실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요. 그 시절을 살지 않은 화자에게, 요양원의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우리 독자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에 그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와 비극과 슬픔이 있을 수 있다고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묵 할머니에게 푹 빠진 화자는 사실이든 허구이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지지할 것이다, 마음 먹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도 모르게 묵 할머니에게 사실 관계를 캐묻습니다. 묵 할머니는 진실 게임을 하자는 거라면 본인은 빠지겠다고 말하며 굳이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도 더는 캐묻지 않아요. 그건 묵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며 그녀를 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 관계의 조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의 것일 테니까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겠네요. 책을 늦게 받으신 분들도 있어서 더더욱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야기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이야기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앖는데요, 아마 첫 구간에서도 문체 이야기를 한참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나올 때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다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문체가 눈에 들어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한데요.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말처럼, 과거의 이야기는 낯선 나라의 언어가 번역되어 우리에게 오는 것처럼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게 되지만,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번역투로 느껴저서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금-여기의 이야기를 번역투로 읽는 경험이 낯설고 독특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쩌면 한글 창제를 다룬 [나랏말싸미]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라는 제 자의식이 번역 문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오늘 내일 이틀 동안 마지막 장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들, 감상들, 떠오르는 질문들을 올려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호디에
완독했습니다.
프롤로그와 마지막 챕터의 문체에 대한 말씀이 있네요.
저는 이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더라고요. 현재 시점으로 환기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죽음이 이렇게 안타깝지 않기는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
혹독한 생의 과정에서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것들을 지켰고,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잖아요.
(물론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안타까웠습니다)
묵미란 삶의 고통의 크기를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그 고통 때문에라도 함부로 동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한데잠, 그녀의 가슴에 시원하고 무해한 바람이 지나갔으리라 생각합니다.
금정연
휘몰아치는 역사의 시간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았던 묵 할머니에게, 죽음의 순간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