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가을] 『냉담』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쩌면 그와 관련되지만... '걸작'이라는 것도 '내일의 고전'이라는 이 시리즈의 기획, 또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믐의 기획 의도와도 관련지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아무도 숨기지 않았지만 걸작이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특성이라는 서술에도 공감이 갔는데요. 어떻게 보면 '내일의 고전'이라는 기획은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거스르려 하는 움직임 같기도 하고요. 김갑용 작가의 서술에서 보이듯 걸작은 어떤 작품이 좋냐 좋지 않냐, 아주 훌륭한 특정 작품이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라기보다, '걸작'이라는 카테고리를 시대가 허용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카테고리가 없으면 그 내용도 사라지고, 내용을 알아볼 능력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어쨌든 '걸작'이란 건 다른 평범한 작품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작품이고, 그런 '특별한 작품'의 카테고리 자체가 사라졌으므로 우리는 이 특별함에 대한 감각도 잃어가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그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네요. 어떤 감각을 잃어버린 대신 새로운 감각을 얻게 되기도 하니까요. 다른 독자분들은 '걸작'이 있는 게 좋은지 없는 게 좋은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ㅎㅎ
이 소설 전체에서 <걸작이 없는 시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조적으로 비춰집니다. 결국엔 이 소설의 주인공도 걸작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도 내외부로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걸작은 있어야 좋은 게 아닐까요? ^^;;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걸작품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어떤 것이 기준이다 명확하게 제시하기는 어려워도(시대에 따라서), 걸작이 아닌 작품은 잘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안해주신 생각거리를 보면서, 제 안의 걸작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사람들이 걸작(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는 작품은 어떤 것이었는지, 각각의 기준은 정말 의미가 있고 또 정말 <훌륭함>을 걸러내 주는지 등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그들은 솔직함에 집착한다. 진실하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상대가 품은 비밀이 자신을 괴롭힐까 경계해서다.
냉담 p.38, 김갑용 지음
누구나 일의 보람이나 분노, 슬픔 따위를 이야기해도 유독 슬픔에 관해서는, 그 비통함이 못된 상사나 거래처 탓이 아니라 애초 태생적인 감정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냉담 p.49, 김갑용 지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인건지.. 불안하지만 덕분에 완독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소설은 말씀하신대로, 다양한 <미로>가 등장합니다. 그 미로가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광경으로 다가와서 계속하여 보고 생각하고 곱씹게 되어요! 저에게 인상 깊었던 몇몇 <미로> 중 하나는, 아무래도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순환선>의 미로입니다.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나니, 인간의 삶이 순환선에 갇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결말을 다 알아도, 주인공은 순환선을 타는 장면으로 다시금 삶을 똑같이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느낀 또다른 미로는 <꿈 속의 꿈 속의 꿈>에서 깨어나오지 못하는 미로예요. 주인공은 실제의 삶에서와는 정반대로 꿈 속에서 많은 것을 해소하고 표현하는 듯합니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 그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결국 끝까지 모르겠는 것도 있는데, 그래서 더 꿈 같고,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우리도 꿈은 미지의 영역으로 놔두잖아요. 그래서인지 그 내용을 다시금 계속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 전체에서 이 꿈 장면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더 깊게 생각해보게도 되고요. 그리고, 2부에서 나오는 <도서관>의 미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공간, 상상에 맡겨진 길,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 그곳에서 주인공은 결국! 빠져나오게 되는데 그 방법도 참 이상하고요. 재밌어요! 암튼! 이상한 미로의 매력을 많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벌써 막바지네요! 오늘과 내일은 '나와의 작별' '드높은 방에서' '골과 굴' '숲으로'를 읽습니다. 뭔가 소제목들만 보더라도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나와 작별하고 드높은 방에 갔다가 골과 굴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그리고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쓰기에 관한, 읽기에 관한, 고전에 관한,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인간의 행위에 관해 집요하게 묻는 이 소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끝을 맺을까요? 과연 ‘나’였던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고 싶지만 ‘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나’의 말을 옮기겠습니다. “실은 무엇도 기억나지 않아. 아무것도 읽히지 않아. 인생 처음으로 조급하지 않고 여유 넘치는 지금에야 깨달았어. 내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야. 그동안 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읽어 왔던 거지. 읽은 건 본문이 아니라 그저 네가 상상한 책 내부였어. 백지 앞애서 나는 깨닫고 한없이 무력해졌어.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데 뭐라고 이해하는 것처럼 짐짓 아는 체하던 내가 부끄러워. 나는 진실로 단 한 권도 읽지 못했어.” 작가는 쓸 수 없지만 계속해서 쓰려하고 독자는 진실로 단 한 권도 읽지 못했지만 거듭해서 읽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요?
당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소설이 없는 시대이며 그 소멸로 완성된 시대, 아무도 읽지도 쓰지도 않음으로써 평화와 번영에 이른 시대라고.
냉담 12%, 김갑용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드디어 마지막이네요! 이제 부록 ‘도래한 미래’만 남았습니다. 오늘은 그걸 읽을 거고요. 근데 ‘부록’이라니, 소설에 원레 ‘부록’이 있나? ‘도래한 미래’는 독특한 글입니다.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했던 것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부록으로 실은 거예요. 좋아, 그런 식의 수정과 재수록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근데 왜 하필 ‘부록’인 거야? 아마 읽다 보면 이유를 느끼게 되실 것 같은데요, 많은 부분 수수께끼 같고 미로 같았던 <냉담>의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창작 노트 같은 느낌을 줘요. 마치 참고서 뒤에 해설이 있는 것처럼요. 작가님, 이렇게 친절하신 분이었어요?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요. 근데 다시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기도 해요. 소설과 현실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작가가 이렇게 작가의 현실의 삶과 곧바로 연결 시킬 수 있는 힌트를 준다고? 이거... 함정 아냐...? 과연 왜 마지막에 이런 부록이 실려 있는 건지, ‘도래한 미래’라는 장 제목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며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많은 밑줄, 감상, 질문 기다릴게요!
저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너희가 보는 건 한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야. 누군가가 치밀하게 구성하여 재현한 작품이라고. 어떻게 살아 있지 않은 대상과 사랑에 빠질 수 있어? 대답해 봐. 어떻게 그래?
냉담 p.198, 김갑용 지음
나는 그렇지 않아. 그는 생각했다. 나는 수삼목의 영향을 받지 않아. 나무를 보며 흠모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아. 왜냐하면 나와 동떨어졌기 때문이야. 동떨어졌지만, 마주하지. 그게 작품의 속성이야. 수삼목의 실재 여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설령 존재하더라도 도서관 중심에 심긴 이상 이 나무는 서고에 꽂힌 수많은 작품과 다르지 않은 거야. 이 또한 지어낸 거야.
냉담 p.199, 김갑용 지음
수삼목은 전에 본 적 없는 완전한 그녀였다. 공동 내부에서 그녀는 시간에도 바람에도 외부의 어떤 힘에도 영향받지 않고, 온전하고 완연히, 오로지 그녀로서 존재했다.
냉담 p.211, 김갑용 지음
수직 공동 속에 반짝이는 빛의 파편 한 무리가 천천히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냉담 p 215, 김갑용 지음
동트기 전 새벽에 차갑게 젖어 눈을 떴다. 그가 벽을 더듬거려 형광등을 켰다. 난방 제어 장치도 키면서 방바닥에 온기도 돌았다.
냉담 p269, 김갑용 지음
간혹 벗어났다고 믿어 온 것에 다시 사로잡히는 바람에 반복함을 벗어남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냉담 p 315, 김갑용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ㅎㅎ 일정에 맞추어 완독을 했네요.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녀'를 둘러싼 '그'의 혼란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인용한 문장들에서 보다시피 그는 '그녀'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고 했다가, 온전히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그런 혼란 속에서 도서관을 나와 이어지는 <골과 굴>부터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끝까지 읽어도 그녀가 실존했던 건지 환상이었던 건지 모르겠다'는 감상이 와닿기도 했고요.
저믄 도서관에서 발견한 수삼목을 그녀라고 부르며 데려가고 싶어한다는 것도 눈에 띄던데요 그토록 찾던 그녀를 왜 나무에서 찾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차피 자기에게만 존재하면 되는 것이디 때뭄에 상관없는것일까요
저도 그 부분이 의문스러웠어요. 도서관의 수삼목은 어쨌든 어떤 종류의 글쓰기나 책들을 지탱하는 중심 같은 면이 있는데요, 그러한 중심에서 '그'가 '그녀'를 발견했다는 것은 '그녀'의 존재가 결국 글쓰기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녀'가 떠난 것도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기도 했고요. 말하자면 1부에서는 그 자체로 어떤 상징이라기보다 실존인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던 '그녀'가 2부에서 상징적인 대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에서 <미로>에 주목한 김미정 편집자님의 독해에도 한층 더 공감할 수가 있었어요. 순환선의 미로, 혹은 깨어나도 여전히 꿈속인 꿈, 그래서 어쩌면 김갑용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명확한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자체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환상과 실재 중 하나가 아니라, 미로처럼 그 사이를 헤매는 과정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고보면 김미정 선생님이 첫 댓글에서 궁금하다고 말씀하셨던 <미지의 갈망>이란 것도 어떤 식으로든 존재, 실재와 관련되어있지 않을까 싶네요. 소설 전반에서 '그'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 어떤 집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2주간의 함께 읽기가 끝나고 1주일 동안의 토론 시간이 시작되었는데요, 소전서림에서는 다섯 개의 ‘고전 지수’ 항목을 통해 우리가 읽은 소설이 새로운 고전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고 해요. 이런 항목들인데요. 1) 주제의 보편성 2) 구성의 탁월함 3) 문체의 예술성 4) 인물과 사건의 새로움 5) 해석의 다양성 내일부터 각각 하루에 하나의 항목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밖에 책을 다 읽은 감상과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여타 떠오르는 생각들 나눠주셔도 좋고요! 일단 오늘은 책을 늦게 받으신 분들은 더 읽어주시고, 이미 책을 다 읽은 분들은 앞으로 돌아가서 앞부분 다시 읽어보시며 감상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해요. 이건 저만의 작은 팁인데, 한 책을 끝까지 완독한 다음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앞부분을 다시 읽으면 전에는 몰랐던 부분이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들이 다시 보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러면서 새롭게 밑줄 친 문장이나 생각들 자유롭게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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