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가을] 『냉담』 함께 읽기

D-29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건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완벽한 증거예요.
냉담 129p, 김갑용 지음
보통 의연한 속에야말로 표현 못한 아픔이 크지 않던가.
냉담 김갑용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드디어 2부가 시작 되었습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새로운 도서관’ ‘지하의 타령’을 함께 읽습니다. 2부는 1부와 많은 것이 다른데요, ‘나’라는 1인칭에서 ‘그’라는 3인칭이 된 주인공은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그리고 도서관에서 다른 도서관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었으나 죽지 않은 아버지, 나의 권유에 의해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만 나를 떠나며 노트북을 박살내며 이야기를 말소했던 여자와 달리 주인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계속해서 요구하는 친구, ‘그’가 된 나에게 “나는 나야” “나는 너야”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나’와 ‘너’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도서관 동료들, 그리고 도서관의 중심에 유리벽으로 격리되어 ‘그녀’라고 불리는 거대한 나무를 만납니다. 와우,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네요... 반면 변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요, 주인공은 여전히 글을 쓸 수 없고 또 다시 인사 담당자의 착오(혹은 독단)으로 도서관에 취직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아버지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고, 어머니와 누이가 숨을 불어넣으며 ‘태엽’을 감고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흰개미굴처럼 복잡한 도서관에서 주인공이 ‘나’와 ‘너’와 함께 책을 펴보지 않고 제목도 보지 않은 채 기호에 의지해서 매일 수백 권의 책들을 옮기는 기계적인 반복 노동은 무엇을 위함일까요? 도서관 중심에 자리잡고 ‘그녀’라고 불리며 숭배와 닿을 수 없다는 절망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거대한 수삼목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의문이 있겠지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읽는 게 언제나 더 낫죠. 제가 드린 질문에 나름의 생각을 올려주셔도 좋고 또 다른 물음을 찾아주셔도 좋고 마음을 붙잡는 문장을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즐거운 독서 되시길!
소제목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아무도 가족들도 반기지 않는 그 남자를 얘기하는 걸까요
그럴 것 같아요.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차분히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죠. 가족들과 아버지를 둘러싼 갈등이 있을 때 그들 중 누구도 감정이 잦아들기를 차분히 기다리지 않았으니까요... 이런저런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그냥 어떤 분위기로 읽는 걸 선호하는 독자인가봐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라면 조금 쓸쓸한 내용이 이어지겠군, 하는 식으로요...
감사합니다 특히나 이 소설은 단어 의미 그대로 보다는 분위기로 읽어나가야 할 것 같네요
그의 머릿속에 죽음이라고 외치는 자는 사라졌다.
냉담 151p, 김갑용 지음
끝이 도래하리라는 전망은 그를 성마르게 만들어 조바심의 화살이 애끛은 나와 너에게로 향했다.
냉담 185p, 김갑용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책 읽기 좋은 계절이네요!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그녀에게 이르다' '셧다운' '공동격리'를 읽습니다. 이제 소설은 절정으로 접어드는데요, 과연 '절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셧다운'에서 '그'는 '나'와 '너'에게 처음으로 화를 냅니다. '나'와 '너'가 '그녀'라고 부르는 나무의 존재를 두고서인데요. 그것은 '그녀'가 아닐 뿐더러 실은 살아 있는 나무조차도 아니고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작품이라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어요. 근데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일까요? 대체 '그녀' 혹은 나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런 의문들은 이것이 결국 예술과 작품에 대한 논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그'가 된 1부의 '나'가 '나'와 '너'에게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아주 약간 비약하자면) 한때는 같은 것, 말하자면 문학 혹은 예술을 바라보는 어떤 특정한 관점을 다른 이들과 공유했던 사람(그가 그것을 공유했던 시절은 이 소설에 그려지지 않은 과거의 시간이고요)이 과거의 나와 너(한때 동료였던 예술가)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너처럼 티를 역력히 내지는 않아도 그들 역시 수삼목을 남몰래 훔쳐보고 곱씹으며 숭상함이 틀림없었다. 한데 알지 못하는 이유로, 비할 바 없이 미천한 자신을 의식하며 괴로운 회오에 잠기는 듯했다. 나는 그렇지 않아. 그는 생각했다. 나는 수삼목의 영향을 받지 않아. 나무를 보며 흠모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아. 왜냐하면 나와 동떨어졌기 때문이야. 동떨어졌지만, 마주하지. 그게 작품의 속성이야. 수삼목의 실재 여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설령 존재하더라도 도서관 중심에 심긴 이상 이 나무는 서고에 꽂힌 수많은 작품과 다르지 않은 거야. 이 또한 지어낸 거야." (199쪽) "이것 도서관 수삼목 숭배자들처럼 하릴없이 수적 공동을 빙글빙글 맴돌았으나 그들과는 달리 나무에 어떤 애정이나 회오도 내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그녀라손 치더라도, 눈에 보여야지 믿는 그들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녀가 존재함을, 그럼에도 눈앞에 현현(顯現)하지 않으리라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녀는 존재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시되는 식은 아니야. 그는 그렇게 믿었따. 그녀에게 이르는 길은 이렇게 투명하게 내다보이는 유리 벽으로 가로막히지 않았다고." (201-202쪽) 한편 선생님은 '그'에게 한 권의 책을 요청합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도서관은 숙원 사업과 자선 사업을 병행하며 대상에게 노동과 일과, 생활을 제공하는 한편 도서관이 계속해서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책이 서고에 채워지는 순간, 도서관이 완성된다고 말해요. 하지만 '그'는 쓸 수 없습니다. "선생님. 제 내부에는 쓸 것이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보낸 지난날들과 같은 날을 앞으로도 보내고자 합니다. 저를 그만 가만히 놓아두세요." (209쪽) 그런 그에게 선생님은 고작해야 당신의 신변잡기 같은 걸 쓰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당신이 쓸 것은 이미 정해져있다고, 그것은 바로 나무라고, 그것은 실체이며 원본이며 쓰일 가치가 있는 완연한 이미지를 영원히 보존 중이라고 해요. 자... 이제 서로 다른 문학관 혹은 예술관의 충돌이라는 게 보다 분명해 보이네요. (여담이지만, 작업실이 필요한 작가들에게 도서관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한 권의 장편 소설을 쓸 것을 요청하는 소전서림의 상주작가 프로그램이 떠오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고요...) '그'는 언뜻 선생님의 말에 동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그의 눈에는 나무가 새롭게 보여요. 그렇다면 그는 선생님의 말을 따라 순순히 한 권의 책을 쓸까요? 쓸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책을 앞에 두고도 펼쳐 읽어야 한다는 불쾌한 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 정신적 자유에 가까운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는 책을 뽑고 꽂는 즐거움을 알아냈고 청구 기호의 우연적인 배열에 기뻐하였으며, 책 한 권에 촘촘히 적힌 수만 자의 내용보다 이 책이 하필 여기에 꽂혔다는 물리적 현상에 더 큰 고양과 신비를 느꼈다.
냉담 p.183, 김갑용 지음
이 시대의 놀라운 특성은 바로 그거야. 아무도 숨기지 않는데도, 모두에게 열려 있는데도 걸작이 없는 시대야.
냉담 p.189, 김갑용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깔끔한 단편을 지나 2부의 초반부를 읽었습니다. 시점이 바뀌고 주변 인물과 상황도 전환되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네요. 개인적으로는 2부의 분위기가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네요.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데로부터 오는 해방감을 서술한 부분에 많이 공감이 됐었어요 ㅎㅎ 물론 "그"가 일하는 도서관이 책을 다루는 방식은 어딘가 수상쩍고, 또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겠죠... 소설에서도 "그는 일할수록 한 권의 책이 지니는 수많은 가능성을 점점 잊어 갔다."(183) 라는 식으로 어떤 미심쩍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어요. 책이란 것은 무엇보다 읽혀야 하는 것이지만, 한 명의 독자로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전체에 비하면 극소수이고, 그러니까 어쩌면 책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려면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들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읽은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쩌면 그와 관련되지만... '걸작'이라는 것도 '내일의 고전'이라는 이 시리즈의 기획, 또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믐의 기획 의도와도 관련지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아무도 숨기지 않았지만 걸작이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특성이라는 서술에도 공감이 갔는데요. 어떻게 보면 '내일의 고전'이라는 기획은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거스르려 하는 움직임 같기도 하고요. 김갑용 작가의 서술에서 보이듯 걸작은 어떤 작품이 좋냐 좋지 않냐, 아주 훌륭한 특정 작품이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라기보다, '걸작'이라는 카테고리를 시대가 허용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카테고리가 없으면 그 내용도 사라지고, 내용을 알아볼 능력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어쨌든 '걸작'이란 건 다른 평범한 작품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작품이고, 그런 '특별한 작품'의 카테고리 자체가 사라졌으므로 우리는 이 특별함에 대한 감각도 잃어가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그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네요. 어떤 감각을 잃어버린 대신 새로운 감각을 얻게 되기도 하니까요. 다른 독자분들은 '걸작'이 있는 게 좋은지 없는 게 좋은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ㅎㅎ
이 소설 전체에서 <걸작이 없는 시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조적으로 비춰집니다. 결국엔 이 소설의 주인공도 걸작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도 내외부로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걸작은 있어야 좋은 게 아닐까요? ^^;;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걸작품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어떤 것이 기준이다 명확하게 제시하기는 어려워도(시대에 따라서), 걸작이 아닌 작품은 잘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안해주신 생각거리를 보면서, 제 안의 걸작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사람들이 걸작(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는 작품은 어떤 것이었는지, 각각의 기준은 정말 의미가 있고 또 정말 <훌륭함>을 걸러내 주는지 등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그들은 솔직함에 집착한다. 진실하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상대가 품은 비밀이 자신을 괴롭힐까 경계해서다.
냉담 p.38, 김갑용 지음
누구나 일의 보람이나 분노, 슬픔 따위를 이야기해도 유독 슬픔에 관해서는, 그 비통함이 못된 상사나 거래처 탓이 아니라 애초 태생적인 감정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냉담 p.49, 김갑용 지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인건지.. 불안하지만 덕분에 완독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소설은 말씀하신대로, 다양한 <미로>가 등장합니다. 그 미로가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광경으로 다가와서 계속하여 보고 생각하고 곱씹게 되어요! 저에게 인상 깊었던 몇몇 <미로> 중 하나는, 아무래도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순환선>의 미로입니다.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나니, 인간의 삶이 순환선에 갇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결말을 다 알아도, 주인공은 순환선을 타는 장면으로 다시금 삶을 똑같이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느낀 또다른 미로는 <꿈 속의 꿈 속의 꿈>에서 깨어나오지 못하는 미로예요. 주인공은 실제의 삶에서와는 정반대로 꿈 속에서 많은 것을 해소하고 표현하는 듯합니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 그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결국 끝까지 모르겠는 것도 있는데, 그래서 더 꿈 같고,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우리도 꿈은 미지의 영역으로 놔두잖아요. 그래서인지 그 내용을 다시금 계속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 전체에서 이 꿈 장면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더 깊게 생각해보게도 되고요. 그리고, 2부에서 나오는 <도서관>의 미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공간, 상상에 맡겨진 길,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 그곳에서 주인공은 결국! 빠져나오게 되는데 그 방법도 참 이상하고요. 재밌어요! 암튼! 이상한 미로의 매력을 많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벌써 막바지네요! 오늘과 내일은 '나와의 작별' '드높은 방에서' '골과 굴' '숲으로'를 읽습니다. 뭔가 소제목들만 보더라도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나와 작별하고 드높은 방에 갔다가 골과 굴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그리고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쓰기에 관한, 읽기에 관한, 고전에 관한,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인간의 행위에 관해 집요하게 묻는 이 소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끝을 맺을까요? 과연 ‘나’였던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고 싶지만 ‘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나’의 말을 옮기겠습니다. “실은 무엇도 기억나지 않아. 아무것도 읽히지 않아. 인생 처음으로 조급하지 않고 여유 넘치는 지금에야 깨달았어. 내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야. 그동안 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읽어 왔던 거지. 읽은 건 본문이 아니라 그저 네가 상상한 책 내부였어. 백지 앞애서 나는 깨닫고 한없이 무력해졌어.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데 뭐라고 이해하는 것처럼 짐짓 아는 체하던 내가 부끄러워. 나는 진실로 단 한 권도 읽지 못했어.” 작가는 쓸 수 없지만 계속해서 쓰려하고 독자는 진실로 단 한 권도 읽지 못했지만 거듭해서 읽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요?
당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소설이 없는 시대이며 그 소멸로 완성된 시대, 아무도 읽지도 쓰지도 않음으로써 평화와 번영에 이른 시대라고.
냉담 12%, 김갑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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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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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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