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가을] 『냉담』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새요. 앞으로 3주 동안 김갑용 작가님의 <냉담>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게 된 금정연입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냉담>에 대한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앞서 소전문화재단에서 올려주신 내용을 빌리면 “『냉담』은 동정심과 죄의식 그리고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가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변화를 그린 소설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려 분투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밀도 있는 문장과 다양한 소설 기법으로 구현”하는 소설입니다. 어떤 소설인지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냉담>은 카뮈적인 인물이 보르헤스적인 공간에서 카프카적인 상황에 처하는 소설이다. (*주의: 이 이름들은 얼마든지 변경되거나 추가될 수 있음) ...그래서 어떤 소설이라는 건지 여전히(당연히) 모르시겠다면, 저는 그냥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냉담>을 읽어보시는 게 좋겠다고요. 그리 좋은 책소개는 아닌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서평가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활동했는데... 하지만 세상엔 그런 소설들이 있죠. 몇 마디 말로 요약되기를 거부하는 소설, 빠르게 읽는 것이 불가능한 소설, ‘타협’이나 ‘적당한’ 같은 단어를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 그런 소설을 소개하고 또 평하는 일은 늘 곤혹스럽지만, 그래도 오늘 저는 운이 좋은 편이죠. 어차피 여러분은 저와 함께 이 책을 읽으셔야 하니까요! 앞으로 3주 동안 <냉담>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텐데요, 마지막 3주차는 각자가 읽은 소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토론 시간이니 실질적으로 책을 읽는 기간은 2주입니다. 때마침 책이 2부로 구성되어 있으니 첫 주에는 1부를 읽고 두 번째 주에는 2부를 읽으시면 됩니다, 라고 하면 심플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그렇게 되면 매일 조금씩 나눠 읽기 보다는 마지막에 몰아 읽어야지 생각하게 되잖아요(아닌가요? 전 그렇거든요. 늘...).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빠르게 읽는 것이 불가능한 소설’이고, 그래서 나중에 몰아 읽으려다가 자칫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일정을 약간 세세하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1주 차 -9/27~28 기시감 + 쇼팽의 1번 야상곡이 흐르는 도서관 + 그녀에 관하여 -9/29~30 일에 관하여 + 꿈의 기다림 + 층계참에의 연루 -10/1~2 되찾은 번화가 + 굴속으로 + 깨어남 -10/3 벽의 틈새 2주 차 -10/4~5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 새로운 도서관 + 지하의 타령 -10/6~7 그녀에게 이르다 + 셧다운 + 공동 격리 -10/8~9 나와의 작별 + 드높은 방에서 + 골과 굴 + 숲으로 -10/10 도래한 미래 시작부터 제가 너무 부담을 드렸나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각각의 구간마다 제가 해당 부분에 대한 간단한 가이드나 질문을 드릴 거예요. 그것들을 참고해서 천천히—장거리 달리기를 하듯 욕심 내지 않고 호흡에 신경 쓰면서—읽으시면 무리 없이 완독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쓴 시인이자 평론가인 강보원 선생님과 이 소설을 직접 편집하신 소전서가의 김미정 선생님도 저희와 함께 해주실 테니까요! 자, 이제 책을 펼쳐볼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첫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이틀 동안 '기시감' '쇼팽의 1번 야상곡이 흐르는 도서관' '그녀에 관하여' 세 개의 챕터를 읽어주시면 됩니다. 9쪽부터 46쪽까지 모두 37쪽이네요. 가뿐하죠? 김갑용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의 순서를 강박적일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냉담>이라는 제목이 먼저 떠오른 후에야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고 ‘기시감’이라는 소제목이 떠오른 후에야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만큼 <냉담>이라는 제목, 그리고 ‘기시감’과 이어질 소제목들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소설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제목과 소제목들의 의미를 공유해주세요.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들, 의문들, 함께 공유하고 싶은 문장들도 자유롭게 올려주세요!
고분보분히 그녀를 따라 가로등이 켜진 새벽 거리로 나왔다.
냉담 17p, 김갑용 지음
숱이 줄어 가는 앞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부장은 얇은 은테 안경 너머로 스스로를 가여워하면서도 남한테는 질릴대로 질려 찌푸려진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였다.
냉담 26p-27p, 김갑용 지음
[첫 번째 시간] 읽는 내내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 인물이 만나는 타자(그녀)가 모호했어요. 한 손에 잡히지 않아서 눈에 힘을 주고 인상을 쓰면서 읽는 데 가독성은 좋더군요. 신기했어요:)
더 놀라운 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면서 믿기지 않는 명제이다. 우리는 함께 살았다. 문장이 품은 간단한 이치에, 그렇게 단순히 확정지을 수 있다는 편리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냉담 p.39, 김갑용 지음
왜 하필 옛 도서관인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설명한다. 당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소설이 없는 시대이며 그 소멸로 완성된 시대, 아무도 읽지도 쓰지도 않음으로써 평화와 번영에 이른 시대라고.
냉담 p.43, 김갑용 지음
의도적으로 인물이나 상황 등에 대한 구체성을 최대한 제거한 것처럼 보여요. 작가는 인터뷰에서 "<냉담> 속 인물은, 그리고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여타 무엇이든 그것은 소설 내에만 종속된다. 소설 바깥으로 연계될 수 있는 어떤 여지도 내주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생생한 디테일들이 더욱 몰입해서 읽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좋은 건 정말 신기한 거 같아요!
솔직함은 대부분 타인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해가 되기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냉담 김갑용 지음
쇼팽의 1번 야상곡이 흐르는 도서관이라니 뭔가 낭만적일 것 같지만 어느 도서관에서나 흔하게 들을 수 있다고 하니 뭔가 구태의연한 평범한 조직 사회를 살짝 비아냥 거리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 도서관에서의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었어요 수군수군 웅성웅성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분위기에 기시감이 드네요
그러게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이 아닌, 도시의 이곳저곳, 심지어 공사장 같은 곳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몇몇의 음악들이 생각나네요. 보통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어떤 목적이나 경고를 하기 위해 간단히 멜로디로 만들어 내는..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멘델스존: 봄의 노래> 같은! 저는 그런 멜로디를 들으면.. 공포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조직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이미지는, 구성원을 점선면(<깨>, <줄>, <평>이라는 별명을 사용하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1부의 <일의 관하여>라는 챕터를 코믹하게 읽었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는 저로서도 너무 이해가 가고^^;; "그들이 일하고 오가던 풍경은 활인화, 혹은 구성주의 회화 속의 기하학적 패턴으로 기억된다" "직원들은 잘 섞이지 않고 각자 따로 놀다가도 대표의 단호한 붓터치 한 번에 사각 프레임 속 하나의 완결적인 구성을 이루었다."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해요. 이북으로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책 표지가 단정하고 왠지 책 제목처럼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처음에 부조금을 들고 새벽에 돌아다니고 처음 만난 여자와 호텔에 가고..이게 무슨 상황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라리 돈을 들고 튀면 보통의 상황인데..같이 집을 구해서 사는 걸 보고 도데체 이건 뭘까..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몰아서 읽지 않고 야금야금 잘 읽어보겠습니다.
번번이 떠났다가 돌아올 때마다 해내지 못했다
냉담 31, 김갑용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평론 등의 글을 쓰고 있는 강보원이라고 합니다. 이번 계절 김갑용 작가의 <냉담>을 함께 읽어가실 여러분 반갑습니다 ㅎㅎ 금정연 작가님이 친절하게 일정을 짜 주셔서, 저도 함께 이 일정에 맞춰 읽어가보려고 해요. 사실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게 여러모로 쉬운 일만은 아닌데 이렇게 조금씩 매주 읽어갈 분량이 있으니 생각보다 부담이 훨씬 덜어지는 기분이네요. <냉담>을 읽자마자 저도 금정연 작가의 소개("카뮈적인 인물이 보르헤스적인 공간에서 카프카적인 상황에 처하는 소설")처럼 모종의 계보 속에 있다는 느낌을 뚜렷하게 받았는데요, 초기 금정연 작가님이 언급한 작가들 외에 정영문이나 블랑쇼 같은 작가들도 생각났었어요. 그런데 첫 장의 제목과 주제가 <기시감>이라서 그것이 묘하게 재밌는 포인트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기시감'과 관련된 김갑용 작가의 해석도 재미있었어요. "그 순간 주워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애쓰며 되뇌었다.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빠짐없이 떠올릴 날이 올 거라고. 이제는 내가 애를 썼다는 것 말고는 그때의 다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또 잊어버리지만, 사실 한 번 저장된 정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단지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리는 거죠. 기시감이란 처음 본 무엇인가가 언젠가 이미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을 말하는데요. 그렇다면 기시감이란 실은 그 접근 방법을 잃어버린 어떤 기억들이 남기는 흔적 같은 건 아닐까? 위에 인용한 문장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네요. 한편 화자는 소설 초반부에 "그녀"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성과의 갑작스러운 만남이라는 전개는 개연성의 측면에서 꽤나 부담이 되는 설정인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김갑용 작가가 이 부담을 어떻게 소설 속에서 해결해나갈지 궁금해서 뒷부분을 어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네요. (우리가 27,28일까지 읽을 분량 속에서도 그런 시도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네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녀>를 만나는 부담스러운 설정을 해결해 나가는 조짐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 부분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흥미로운 접근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기시감이 '접근 방법을 읽어버린 어떤 기억들이 남기는 흔적'이라는 말씀이 와닿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기억의 흔적의 단서를 갖게 되면 그 누군가가 의미 있는 타인이라는 존재로 남더라구요. 여러 번 거듭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을 늦게 구해 이제 읽기 시작했어요 그녀와의 만나는 부분이 너무 몽환적이라 혹시 꿈을 꾼건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하지만 그녀와 함께 살고 도서관에 취직을 하는 것으로 보아 꿈일리가 없는데 그럼 망상일까요 ㅎㅎ 뒤를 더 읽어 보면 알 수 있겠죠? 저는 주인공의 말투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전개가 왜 이상의 날개를 읽는 거 같은 느낌리 들까요
반복할수록 이야기 속 그 시절은 더 선명해지고 확정적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더는 누구에게도 그 시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시절은 사라졌다. 기시감에 홀로 두리번거린들 어디에도 없다.
냉담 10, 김갑용 지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소설은 이미 모든 가능성이 소진되었다. 내가 아는 한으로는. 기존과 다르고 새로운 무엇을 담기는 애초에 불가능 해 보인다“라는 김갑용 작가님의 인터뷰가 떠오르더라고요. 모든 것이 이야기 되고 더는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 자리를 채우는 기시감!
아, 그렇게 연결이 되네요. 그런데.. 소설에 모든 가능성이 소진되었다!고 말하면서 소설을 다시 쓰는 소설가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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