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의 장르살롱] 18. 이것은 유익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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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스터리는 유해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해함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의 이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역설적이게도 미스터리는 유해함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최근에 박 평론가님이 읽은 미스터리 중에서 정말 유해한 이야기가 있다면(제대로 유해함에 대해 다룬)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질문을 받고 나니 오히려 최근에 미스터리가 충분히 유해함을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저는 최근 미스터리들이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거나, 사이코패스류의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식 자체가 소재적으로는 자극적이지만 반대로 아주 안전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터리가 진정으로 극복하고 회피해야 하는 것은 범인의 내면을 '자연화'하거나 '미학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으로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할만한 범죄 및 범인에 대하여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나이브스 아웃 2>의 마일즈 브론 같은 인물, 거대 기업의 CEO이면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우발적으로라도 주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과장되고 멍청한 범죄자'가 훨씬 더 유해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같은 사이코패스라면 연쇄살인범보다도 수많은 해외노동자를 하루아침에 구조조정할 수 있는 거대기업의 CEO가 훨씬 더 사회적으로 유해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합니다. 싸이코패스라는 한 명의 개인은 N명에서 NN명을 해하고 말지만… 초거대 다국적 기업의 CEO들은 자기들이 내린 결정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 영향도 동시대에서는 파악하기 힘들고 수년 또는 수십년 뒤에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즉, 제대로 유해함을 다루는 이야기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이로군요. 파격적인 사이코패스나 빌런보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무해해 보이는 사회 지도자층과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사회에 더 유해할 수 있단 뜻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최근에 모 sns를 인수한 모 대표가 문득 떠오르는데요. 전 <나이브스 아웃2>가 대놓고 그 CEO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거든요. 아마 대부분 제가 누구를 말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아, 저는 이부분에 깊게 공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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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부 첩보물을 다룬 파트에서 “진정한 미스터리의 대상은 국가의 기밀이 아니라 짐작하기 어려운 인간의 심리이며, 인간적인 약점이야말로 첩보원에게는 감출 수 없는 자기 발견으로 연결된다.”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존 르 카레의 팬입니다. 이 파트에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더불어 ‘제이슨 본’ 시리즈에 대해 리뷰를 해주셨는데요. 전 박 평론가님이 높이 평가하는 첩보물은 첩보 세계 자체를 다룬 작품보다 첩보원 내면의 미궁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에 대한 평론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평론가님이 기대하는 k- 첩보물은 어떤 이야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실까요?
저는 아무래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대변되는 첩보물의 시대가 자ㅓ물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첩보물이나 방첩물은 과장된 세계 정세에 대하여 씨름하는 국가적 시스템의 과잉된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데올로기는 허울에 가깝고 국가라는 시스템에 의해서 소외되는 개인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밀거래되는 개인 정체성의 문제가 새로운 첩보 방첩물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지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K-첩보물이 가능하다면 그 또한 북한과의 허울 같은 이데올로기 싸움이 아니라 결국에는 북한에 사는 실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출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말씀해주신 지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제가 작년에 스파이 스릴러 시놉시스를 준비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 구축에 나름대로 공을 들였거든요. 그런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건 지나치게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라고 비판 당하는 거 아닐까.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전형적인 스파이물인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스파이 심리물인 것 같다.”라고 혼자 걱정했거든요. 박 평론가님의 <이유장>을 읽고 조금은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새로운 각도로 다시 생각하고 더 공부해서 스파이물을 준비해 보려고요. :-)
평론가님께서 방첩물에 대해 쓰신 부분 정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허울 네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그냥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적당한 배경으로 소모되고 끝나는 느낌이었어요.
맞아요 이제 방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스파이물은 좀 촌스럽게 느껴져요.
영화 <탈주>가 생각나네요.
저도 영화 <탈주>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 이데올로기는 그냥 하나의 장치일 뿐이고 탈주를 감행하는 자 이 탈주를 막으려는 자, 개인-개인을 다룬 영화라고 보았거든요!
영화 <탈주>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들 두 녀석이랑 같이 보러 갔다 왔는데요. 초5, 초3인 아이들도 무척 재밌다고 했어요!
오오 맞아요. 영화 탈주에서 구교환 배우님 정말 멋있었어요. 이제환 역할을 ‘자유’를 향해 돌진하는 캐릭터였다면 구교환 배우님은 좀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여서, 더 인상 깊었어요.
솔직히 영화 보고 나와서, 기억에 남는 건 대부분 구교환이라고 대답할 걸요. 캐릭터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동의합니다. 구교환 배우는 그 존재 자체가 캐릭터이기도 한 보배같은 배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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