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로 📙 읽기] 11. 아우스터리츠

D-29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점점 더 많이 사로잡히고, 어쩌면 이 로잔의 작은 장례 행렬처럼 어떤 것이 기억에서 떠오를 때, 몇 번의 붓질로 금방 다시 사라지는 환상들을 재빨리 붙잡아 두려는 시도였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자신이 극복해야 할 분명히 엄청난 거리에 대한 예감으로 두려워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처럼 위험한 허공을 항해하도록 보내진 이 새들이 어떻게 자신의 근원지를 찾는지는 오늘날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그 당시 내가 아우스터리츠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 그에게는 자신의 전 생애가 아무런 지속도 없는 하나의 맹목적인 순간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좀 더 침착하게 기다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어떻게 옮길지 알지 못하는 공중 줄타기 곡예사처럼 나는 내 밑에서 플랫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훨씬 벗어나 번쩍거리는 균형 막대의 끝이 더 이상 이전처럼 나의 등불이 되지 못한 채, 나를 밑으로 떨어지게 하는 불길한 유혹이라는 사실을 경악하며 깨닫게 되었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극단적인 정중함만이 최종적으로 나를 사람들과 묶어 놓았는데, 그것은 오늘날 생각해 보면 그때그때 몇 안 되는 상대방에게 적용되어서, 그들은 항상 피할 수 없는 절망감의 바닥에 서 있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닫아 버리는 것을 허락해주었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만약 그 당시에 누군가가 나를 처형장으로 데려가려 했다면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마치 카스피 해를 지나는 증기선에서 몹시 심하게 멀미를 앓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갑판 밖으로 던져 버리겠다고 했을 때 아무런 저항도 보이지 못하는 것처럼, 눈도 뜨지 않은 채 그 모든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 두었을 거예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우리는 확실치 않은 내적인 움직임에 따라 생애의 거의 모든 결정적인 걸음을 내딛게 되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이 감옥의 환상이자 해방의 환상 속에서 내가 이 폐허 가운데 있는지 아니면 막 생겨나려는 미완성 건물 속에 있는지 하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어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나는 단지 벤치에 앉아 있는 소년을 보았고, 뻣뻣하게 마비된 채 내버려진 상태가 과거의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속에 가져온 파괴를, 그리고 한 번도 진짜로 살지 않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제 처음으로 태어난 것 같은 생각 속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죽기 전 날 같은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결국 나는 모국어가 사라지는 것과 주의를 기울이면 매번 놀라서 중단되고 침묵하는, 한동안 내 안에 갇힌 그 뭔가가 긁거나 두드리는 소리가 한 달 한 달 점차 잠잠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그리고 화자가 아우스터리츠에서, 아우스터리츠가 다른 애쉬만이나 제랄드 등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다른 건축물과 사물들 속에서 자기 자신의 파편일지도 모르는 것을 탐색하고 퍼즐 조각들을 끼어맞추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오는 배낭이나 당구대 등 기타 사진들을 보면서 얼마 전 Daniel Arsham의 전시를 보면서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 문명 (8,90년대 게임기나 잡지 등)의 잔존 유적을 발굴하는 현장처럼 만든 조각들이 생각났어요. 마치 고고학자가 되서 인간 문명의 유적을 파내면서 묻혀진 과거의 과오와 우연과 엇갈리는 필연을 짚어가는 기분입니다.
나는 이제 기억하는데 내가 얼마나 훈련되어 있지 않은지, 반대로 가능한 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나의 근원과 관련된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얼마나 애를 써 왔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 내게 세상은 19세기의 종식과 더불어 끝난 것이었지요. 나는 감히 그것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구한 시민 세기의 전체 건축사와 문명사는 당시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지요.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공교육으로는 중학교 때 배운 한국사가 전부였는데 당시 국사 선생님은 '근현대사는 아직 논란도 많고 시험에 안 나오니까 그냥 자습하렴~'하고 나갔던 것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어쩌면 지금 나의 현재 대한민국의 실상에 가장 근접하고 현재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었던 단서들로 가득한 근현대사를 왜 나는 가장 적게 알고 있을까.. 나는 차라리 서양 현대사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나도 의식적으로 가장 나 자신의 정체성에 맞닿아 있는 고통스러운 역사에서 눈을 무의식적으로 돌린 게 아닐까.
프리즈 (frieze): 방이나 건물의 윗부분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띠 모양의 장식을 한 것, 모놉테로스 (monopteros) : 원형기둥이 둘러싼 신전
고서점의 여주인 이름을 피넬러피 피스펄이라고 번역했는데 Penelope Peacefull은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면 '피넬러피'는 원 발음에 더 가깝긴 하지만 '페넬로페 (오딧세우스의 아내) 피스풀(평화로운)'이라고 번역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요런 디테일이 아쉬워요;;
그리고 낱말 퀴즈도 원래는 One way to live cheaply and without tears?인데 ('눈물'이라고 번역되었는데 tears는 '찢어진 데, 구멍'이란 뜻도 있죠) '저렴하고 찢어진 데 없이 살아갈 방법은?'이어서 rent-free (rent는 방세, 임대료란 의미도 있지만 옷이나 스타킹 등의 찢어진 곳을 의미하기도 하죠)라고 답을 찾은 것 등 영문 pun을 이용한 거에요. 제발트가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20대에 독일을 떠나 한참 영국에서 살았기에 제발트를 번역하기 위해선 영어도 갖춰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아우스테리츠를 영어로 번역한 Anthea Bell은 카프카, 스테판 츠바이크, 에리히 캐스트너 등 독일 작품도 번역 많이 했지만 꼬마 니콜라, 아스테릭스 등 프랑스어 작품도 언어유희까지 잘 살려 번역한 번역가로 유명한데요. Anthea Bell의 아버지 Adrian Bell이 타임즈지의 크로스워드퍼즐을 처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실은 크로스워드 퍼즐 너무 좋아해서 한때 타임즈지를 구독했죠.^^;;
우리의 세계가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단다.
아우스터리츠 55%,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마치 절망에 찬 한솜 소리를 - 그녀는 이것을 gémissements de désespoir라는 말로 표현했다 - 듣는 것처럼 그들 속에서 뭔가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마치 사진 자체가 기억을 가지고 우리를 기억하며, 살아남은 우리와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이 이전에는 어떠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 (...)
아우스터리츠 56%,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우리는 과거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법칙을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더 이상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좀 더 높은 구적법에 따라 안에 차곡차곡 들어 있는 공간들만 존재하며, 그 공간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고, 내가 그런 생각을 오래 하면 할 수록, 아직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은 사람의 눈에는 비현실적이고 단지 이따금씩 빛의 특정한 상황과 대기 조건에서만 보이는 존재처럼 생각되었지요.
아우스터리츠 57%,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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