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로 📙 읽기] 11. 아우스터리츠

D-29
https://blog.naver.com/collect_phrase/222615284119 저만 안미현 번역에 아쉬움을 느낀 게 아니군요. 주술호응도 그렇고 문장들이 길어서 그런지 번역가가 가끔 문장의 갈피를 못 잡고 혼동한 것 같습니다.
오 굉장히 좋은 가이드 글이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전 '이민자들'부터 시작하는게 좋을뻔 했군요. 그래도 시작한거 borumis 님의 친절한 가이드와 다른 분들 조언 따라가며 읽어봐야겠어요. 번역 주의도 알려주시니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민자들>을 작년에 그믐 모임에서 읽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저의 23년도 인생책으로 뽑을 정도로...모임 링크 https://www.gmeum.com/meet/913 저는 제발트를 그 책으로 처음 알았어요. 그믐에서 작년 내내 제발트 읽기 모임을 이끌어 주시던 russist 님과 함께 읽었어요. <이민자들>은 전혀 난해하지 않은 책이었는데요, (적어도 내용의 이해 측면에서는요.) 아우스터리츠는 꽤 어렵나보군요.
이 책도 별로 난해하다는 느낌은 안 받았어요. 워낙 건축학적 역사적 얘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렇지 배경 지식만 좀 찾아보면 어려운 건 없어요. 그나저나 전 지금 40%까지 읽었는데 어디까지 읽고 어디까지 덧글을 달아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다들 <이민자들>로 시작하길 추천하시네요! 인생책 정도였다니 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아우스터리츠보다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걸 싶네요 ㅠㅠ 그래도 계속 읽으니 뭔가 그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져서 그런지 심하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저도 아직 이민자들은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처음에 약간 어색했던 문장들 외에 갈 수록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어요. 게다가.. 그가 어디에도 정을 못 주고 떠돌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만한 어떤 언어를 찾아 헤매는 듯한 모습에서 웬지 어릴 적 역마살에 의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의 제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뭔가 동질감도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풍경들이 너무 쓸쓸하면서도 낯설면서도 낯익은 듯 현실과 꿈 그리고 환상과 실사를 오가는 듯 하네요.. 아까 홍수에 빠진 마을의 소녀 사진에서도 그렇지만 언제 어디선가 흘러갔을 이 사람의 삶을 상상해보면서 어쩌면 내 자신이 수면 위에서 해저 마을을 훔쳐 보는 건지 반대로 내 자신이 물 위에 비친 내 자신을 보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오 인생책이셨다니 다음 책은 이민자들 꼭 읽어봐야겠단 다짐을 하게 만드는걸요. 모임 링크까지 감사합니다! 작년에 함께 참여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싶으면서도 뒤늦게 따라가며 모임글들 찾아읽는 즐거움도 쏠쏠하겠는걸요. 그믐 덕에 좋은 책들을 가이드와 함께 하나씩 올라가보는 느낌이에요^^
장 아메리(Jean Amery)는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활동하다 게슈타포에게 고문을 당하고 나서 나치 독일의 핵심이 고문이었음을 알려주는 에세이를 쓴 작가입니다. 클로드 시몽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인간의 기억에 대한 소설을 주로 쓴 소설가입니다. 가스토네 노벨리는 이탈리안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다 고문받았고 책에서 나왔듯이 뭔가 원초적이고 소리 없이 오래 울려퍼지는 비명을 쥐어 짜내는 듯한 작품들을 만든 예술가였습니다.
항상 동일하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길게 이어지는 외침처럼 파장 속에서 올라가거나 내려가게 새겨 넣었다.
Wurzelbürste (Wurzel 식물뿌리, bürste 빗, 솔) 이건 실제로 나무뿌리로 만든 솔인데 이런 단어가 왜 이런 반응을 나타나게 만들었을까..했는데 단어가 뿌리와 빗으로 이루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했어요. 마치 유대인들을 뿌리 채 빗질해서 제거하려던 아버지가 속해 있던 독일 나치군이 연상되서 그런 게 아닐까요?
전 여기에서 얼마전 본 존오브인터러스트 영화에서 나치 장교가 토하는 장면이 수많은 신발과 옷들이 남아있는 장소에서 청소를 하는 장면과 겹치는 게 기억나는데..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그곳이 그저 평화롭고 즐거운 집이었을 텐데 실은 그들이 학살하던 이들에게는 완전 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던 곳이었죠. 장소와 물건들은 아무 말도 아무 기록도 없는데 이것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남을 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네요.
그 어둠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더 짙어져서, 세상이 마치 스스로를 텅 비운 것처럼 지워져 버린 삶과 함께 모든 것이, 줄곧 얼마나 많은 것이 망각 속에 빠져 버렸는지 우리는 거의 붙들 수 없고, 그 시간 이후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처음으로 다시 생각나는, 예를 들면 그림자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나무 선반 위의 짚이 든 자루나 그 속에 들어 있는 겨가 수년이 지나는 동안 삭아서 가늘어지고 짧아지고 수축되어, 마치 한때 여기 이 어둠 속에 누워 있던 사람들의 시체처럼 스스로는 어떤 기억의 능력도 갖지 않은 수많은 장소와 물건 속에 달라붙어 있는 이야기들은 이전에 그 누구에 의해서도 말해진 바도, 기록된 바도, 전해진 바도 없었다.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이 요새에 있던 날 이미 희미해진 것은 그곳에서 본 것을 나는 정말로 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이 요새 안에 몇 개 안 되는 램프의 희미한 불빛으로만 비추어지고 자연광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세계가 사물의 윤곽을 흩어지게 한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인간의 최선의 계획들은 실현되는 과정에서 언제나처럼 정반대로 흘러갔다고 말했다.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아름다운 외양의 환상과 일찍 찾아온 소멸의 위험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과, ... 영원히 뭔가를 쓰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풀려나 윤곽이 없이 오로지 희미한 색깔만을 인식할 수 있는 세계에 둘러싸인 채 정원의 대나무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는 환상으로 차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나 자신의 상황과 연결했는지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다.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나온 psychoanalysis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느낌이네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모디아노의 소설들도 생각납니다.
공간 상상해보려고 벨기에 안트베르펜 중앙역 검색해봤다가 너무 멋진 건물이라 여행기들 둘러보는 즐거움에 잠깐 빠지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ㅎㅎ 웅장하면서도 우아함이 가득한 공간이라 가보고싶단 느낌이 절로 드네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히기도 했다네요. 옆에 있는 동물원도 읽으면서 한 상상과 달리 규모가 아주 크고 진귀한 동물들로 가득한 곳이더라구요. 어쩐지 등장하는 동물들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참, 녹투라마'는 고유명칭인줄 알았는데 야행성동물들을 모아둔 동물원 구역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와 정말 멋진 사진인데요! 물에 비친 모습도 근사하네요.
이런 웅장하고 멋진 건물들도 실은 화려한 외양이나 인간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오히려 더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드러내고 최선의 계획이 결국엔 쓸모없어지거나 폐허가 될 거라는 허무함을 아우스터리츠는 대화에서 계속 내비칩니다. 그만큼 그가 이런 것에 집착하는 계기가 될 만한 그의 과거가 있겠죠? 아마 2차 세계대전의 Kindertransport 계획에 의해 나치 독일에서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이동된 아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합니다. 이런 그의 이야기는 그 자신도 스스로 무의식 속에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네요. 반면 아버지가 나치 독일 군이었던 화자는 장 아메리, 클로드 시몽, 가스토네 노벨리처럼 나치에 의해 고문당하고 괴로워하는 그들의 글과 그림에서 생각이 맴돌고 그 기억이 마치 자신의 기억인 양 무의식이 흔들리고 겹쳐지는 듯 합니다. 차라리 못 알아차리고 귀를 막고 눈이 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자신도 죄책감과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지만 그런 그이기에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었고 그렇기에 아우스터리츠가 자기 자신에게조차 터놓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 묻혀버린 기억의 파편을 끄집어내는 듯합니다.
저는 원서를 참고해가며 읽고 있는데요, 확실히 을유문화사 번역이 많이 아쉬운 것 같아요. ㅠㅠ 쉼표로 끝없이 이어가며 길게 늘어뜨리는 문장은 독일어의 특성이고 또 그것이 좋은 독일어 글쓰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는 데는 문제가 있고, 그렇게 해서는 사실상 좋은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ㅠㅠ 처음에 화자의 대사인지 아우스터리츠의 대사인지 헷갈렸던 문제의 경우에는, 저는 혹시라도 원서에는 어떤 특정 문법적 장치(인용할때 쓰이는 Konjunktiv 1)를 사용한 것인데 번역 시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 줄 알고 찾아보았더니, 그렇지 않고 원서에서도 똑같이 헷갈리게 써 놓았더라고요. ㅎㅎㅎ 다만 책이 진행될수록 아우스터리츠가 거의 화자의 역할을 넘겨받게 되면서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녹투라마도 저는 동물원 이름이 "녹투라마 동물원"인줄 알았어요! ㅎㅎㅎ 그런데 원서로 읽어보니 읽는 즉시 바로 속시원하게 해결이 됐습니다. 이런 부분에는 각주라도 달아 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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