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그림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북유럽 그림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D-29
캄멜모임지기의 말
캄멜
<2024년 9월 8일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말, 첫 번째 이야기 / 초능력자(슈퍼맨, 원더우먼, 아쿠아맨)가 아닌 배트맨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를 동일시해 보게 되었다. >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동일시라는 말은 니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동일시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라고 말했다 - 49p
📕크로그가 밀려난 사람들의 고통에 깊이 이입했기 때문에 나 역시 작품을 보며 빵을 향해 간절히 손 뻗는 군중 속 한 명의 자리로 건너간다. 그들 속에 있어본다. 상상한다. 이윽고 질문한다. 내 주변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 53p
최근 넷플릭스에 DC 영화들이 업로드 되었고 어쩌다 보니 배트맨 VS 슈퍼맨 / 아쿠아맨 / 저스티스 리그 등을 연달아 보게 되었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마블이 그렇듯 DC의 캐릭터들도 주인공 혼자만 끌어가던 영화에서 확장되어 히어로들 끼리 만나게되는 확장된 세계관으로 영화들이 만들어졌죠. 배트맨의 경우 배트맨 비긴즈, 배트맨 다크나이트, 배트맨 다크나이트 - 라이즈 등을 마지막까지 봤을 땐 위기가 있었지만 배트맨은 고담시를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해왔고 히어로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이전 배트맨 시리즈와 다르게 크리스토퍼 놀란의 감독이 관심을 갖는 인간의 복잡한 심경과 이해관계 등을 조명했기에 더 재밌게 본 영화 시리즈)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을 처음 봤을 때 슈퍼맨의 강력한 초능력에 비해 배트맨의 능력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리고 배트맨은 슈퍼맨과 지구를 침략하는 악당에 의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슈퍼맨을 미워하게 되었죠. 슈퍼맨에 대한 미움 역시 배트맨의 동일시 능력과 인간적인 면모를 더 볼 수 있었습니다. (수퍼맨 역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히어로지만 위 영화에서는 배트맨과의 대립각을 내세우기 위해서인지 '대의'를 위해서만 싸우는 모습만이 다뤄졌음 , 마블에서의 시빌워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다뤄졌었지..)그렇게 모든 히어로가 등장하는 세계관의 영화에서 배트맨은 '히어로'가 아니고 정말 애쓰는 평범한 인간이이구나라는 것을 느끼며 앞에서 설명된 '동일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스티스리그에서는 슈퍼맨과 원더우먼 이외의 초능력자들이 더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이때 배트맨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히어로들을 모으는 것을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팀의 리더 자리를 '원더우먼'에게 넘겨주기도 하며 ,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하고 슈퍼맨을 다시 되살리려는 계획까지 세우기도 합니다. (물론 슈퍼맨과 배트맨은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엔 화해를 한다) 그리고 되살아났지만 이전 기억을 잃어버렸던 슈퍼맨은 자신에 대한 악의를 가졌던 배트맨의 모습만을 기억해서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배트맨은 이러한 수모를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고담시 그리고 세계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굴하지 않고 본인을 희생할 계획까지 세우면서 싸움을 합니다. 만약 제가 배트맨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면서 기가 죽었을 것이며, 싸움에 나서지 못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보니, 다른 히어로들보다 배트맨에게 더욱 애착을 같게 된 경험을 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둘리토비
@캄멜 님, 이 북유럽 주제의 책을 읽고 여기에 논하다니....
반가움의 마음에 이리 글을 씁니다. 네 이 책, 5년여전에 나왔지만 참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캄멜
오 공감해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캄멜
<2024년 9월 19일(목)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말, 첫 번째 이야기 /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내밀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힙합과 노래 그리고 사진 >
📕 미술계 주요 인사와 인맥을 쌓아야 할 타이밍에 이들은 돌연 코펜하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막 지대 꼭짓점 해변으로 들어가 소음을 차단했다. 평론가와 교수 대신 어부와 농민 가까이에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내밀한 시선으로 포착했다.
2000년대 초반에 잘나갔던 50cent와 카니예웨스트라는 아티스트를 비교하면서 힙합 소재의 변화까지 다룬 유튜브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50cent의 경우 자신의 어렸을 적에 겪었던 '갱스터' 생활을 힙합을 통해 이야기했었고 카니예웨스트는 중산층 흑인 집안에서 자라기까지 있었던 평범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힙합을 통해 말했다. (옷차림 역시 노출이 아닌 대중들이 쉽게 입을만한 브랜드인 '랄프로렌' 등을 전략적으로 입었다고 함) 여러가지의 리듬적인 트렌드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일일상을 내밀한 시선으로 포착했기에 칸예가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칸예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에미넴 역시 이혼, 마약 등의 사회에서 금기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말해서 인기가 참 많았다. 지금은 힙합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래의 장르에서도 자신만의 일상을 내밀한 시선으로 포착해 가사를 작성하고 본인만의 감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내가 봤을 때는 자우림의 김윤아 뿐만 아니라 선우정아 등이 일반적인 감정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탁월하게 잘 표현하는 가수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노래가 아닌 예술쪽에서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 막 생각이 나지 않지만 뭔가 '사진'이라는 예술장르가 떠오르는데 그나마 내가 아는 사진작가들도 사람들의 일상을 본인만의 따뜻한 시선을 담아 표현하는 작가들이긴 하다 사울레이터, 비비안 마이어가 자신들의 동네와 일상을 찍었는데 뭔가 설명되지 않을만큼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한 번 봐보는 것도 추천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좋아해서 전시회를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한다)
도로시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 1차 / 도로시
공교롭게도 바로 직전에 최혜진 작가의 <에디토리얼 띵킹>을 읽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에디터로 살아온 그녀가 편집자적 사고와 시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인데요. 예술가들을 뛰어난 편집자로 생각하고 수많은 전시회를 관람하며 영감을 얻어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전작들을 훓어봤는데 미술과 관련된 책들이 꽤나 많이 보여서 미술에도 조예가 깊으신 분이구나 싶어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서 내가 그 책들을 언젠가 읽게 되려나(?)하고 넘겼는데 이렇게 바로 읽을 계기가 생겨서 반갑고 재밌네요! 저의 첫 미술 관련 책입니다.
p. 67
이들이 스카겐으로 모여들었을 때, 그들은 이미 주류 평단으로부터 재능있는 젊은 화가로 주목받고 있었다. 평론가와 교수 대신 어부와 농민 가까이에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내밀한 시선으로 포착했다. 그저 그림에 써먹기 위한 관찰이 아니었다. 대상과 작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로 만들려는 야심을 품었다. 그리는 대상을 도구화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잠깐 창작 여행하러 들르는 관광객 되기를 거부하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작품에 그리는 대상을 단순히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일체화하려는 아나 안셰르의 정신에서 작가 니키리의 작품 <프로젝트들>이 떠올랐어요. 니키리는 레즈비언, 시니어, 학생, 히스패닉, 스트리퍼 등 다양한 신분과 직업군의 사람들과 각각 한달 정도씩 생활을 하며 그녀 자신이 그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직접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작품으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https://blog.naver.com/no_marketers/222317717425
잠깐 분장을 하고 사진 몇 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위치에서 생활하며 여러 특징들을 체화하려는 의도가 아나 안셰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p.70
‘통속성’에 대해 나는 북유럽 화가들 덕분에 찬찬히 재고할 수 있었다. 세상과 널리 소통하는 일이 정말이지 그렇게나 심미안 떨어지는 일일까? 아름다움이 정말 소수만 이해하고 누릴 수 있는 무언가일까? 통속적인 것이 열등하다는 공식은 누가 만든 것일까?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이라는 구분과 위계로 권위가 유지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할 말이 없다’라는 고고한 태도로 자기만의 사유 실험에 매진하기보다는 보통 사람의 삶 가운데로 미술을 데려와 밀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나는 북유럽 화가들에게 매료되었다.
예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회나 미술전에 가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듯 쭈뼛거리곤 했었고요. 물론 지금도 예술을 잘 모르고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판별할 수 있는 눈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뒤, 편안한 마음으로 종종 전시회를 관람하곤 합니다. 이런 저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작품들이 바로 북유럽 화가들처럼 고고하지 않은 태도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작가들, 여러 번 꼬아서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의미가 전달되는 작품들 덕분에 예술이라는 분야를 닫아놓지 않고 나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뻔하고 시시한 작품일 수도 있지만요ㅎㅎㅎ
<에디토리얼 띵킹>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요.
작가는 이것이 ‘잘 설명하기’와 ‘낯설게 하기’라는 목적 스펙트럼의 양극단 사이에서 조금씩 다른 지점에 좌표를 찍는 것이며, 에디토리얼 띵킹을 위한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p.100
글을 다룰 때든 이미지를 다룰 때든 정보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신선한 재미가 없고, 너무 멀면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사용할 재료 사이의 거리를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하나의 작품을 보더라도 개인별로 느끼는 ‘잘 설명하기’와 ‘낯설게 하기’의 좌표의 위치는 각각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설명하기’ 쪽에 좌표가 찍힌 작품들로 힘을 얻고, ‘낯설게 하기’ 쪽에 좌표가 찍힌 작품들도 나름대로 해석해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저 나름의 방법이랄까요 ㅎㅎㅎ
캄멜
@도로시 오.. 우연히 최근 같은 작가의 책을 읽으셨다니 해당 책의 내용을 좀 더 스터디에서 들어보고 싶네요!
브랜드바라기
2024년 9월 23일 금요일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 2차 / 김정우
저도 이 책이 첫 미술 관련 책인것 같습니다. 다만 작가가 말하는 각 장의 표제어들이 저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고 저의 입장에서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가 잘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3장까지 못읽었는데 이런 책에 대해서 저는 서툴게 느껴집니다. 오늘 카페에서 이 책을 한챕터씩 읽고 창밖을 보고 한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 이 작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 또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그렸던 세상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더불어 저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면서, 주말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였던 것 같아요
chapter 4. 좋아한다고 발설하는것. 그게 용기에요
자신이 원해서 결심한 것을 선택하고 실행할 것
이 시대의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고싶은일에 몰두하고 몰입하는것 다 할줄 아는데 그럴 능력이 있는데 망설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불안하거나 또는 너무 안정적이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마리, 아나 안세르, 릴리 엘베는 각자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좋아한다고 외칠때 그 여정이 시작된다" 라는 부분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삶의 어떤 다양성일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답답한 생각이 조금은 뚤리는 듯한 격한 조언이 아니였나 생각이 듭니다.
아직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서 조금 시간을 두고 계속 봅니다. 무엇을 그렷는지, 말하고자 하는지
그런 재미가 있는 책 인것 같습니다. 아직 이 책이 궁금합니다. 좀 더 재미있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캄멜
@브랜드바라기 님께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봤다는 것 자체가 작지만 조금의 변화 를 드린 것 같아서 뭔가 기분이 뿌듯하네요, 재밌게 읽어주시고 어떠셨는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캄멜
<2024년 9월 23일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말, 세 번째 이야기 / 돌아온 삼시세끼, 흑백요리사 그리고 우리네 밥상 >
📕식탁이 단순히 먹는 기쁨을 누리는 공간일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아이덴티티, 젠더, 우정, 가족, 예절 등이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게 전시의 기획 의도였다. 113p
📕 우리말의 식구가 그러하듯 동반자 동행 친구를 뜻하는 companion은 함께 빵 먹는 사이를 뜻한다 113p
밥을 먹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생활에서 느끼고 있으며, 주말에는 희한하게도 먹는 것이 주된 소재가 된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light 그리고 흑백사요리사를 보게 되었다. 삼시세끼는 역시나 그렇듯 주어진 환경에서 제철 재료들을 손질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수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쉽지 않다라는 것을 이야기했고 지금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흑백요리사는 널리 알려진 요리사들과 재야의 고수들이라 불리는 요리사들의 오로지 맛이라는 평가기준으로 최고의 요리사를 뽑는 내용이다. (그 안에 흑백 요리사들의 짤막짤막한 스토리들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 재미적인 요소였고 심사위원의 적절한 밸런스도 좋았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인 피지컬 100의 요리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그 만큼 우리는 먹는 것에 관해서 이전과 다르게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지만 아직도 특히 바쁜 평일에는 살기 위해서 먹어 해치운다라는 방식의 식사를 한다는 게 아쉽다. 이전 사람들 역시 우리만큼 바빴을 것이다.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냉장고도 없었던 시절, 그들은 그래도 그들 꾸준히 느리겠지만 지금보다는 건강히 먹었을 것이다. 우리는 식사를 제때 그리고 건강하게 하지 못할 만큼 뭐가 그리 바쁜 것일까.. 시계가 개발되어 촉박함을 느껴서 그러는건지 아니면, 배달이라는 편리함의 유혹에 못이겨서 그러는건지, 정말 댈 수 있는 핑계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느리겠지만 건강한 식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식사를 할 때 우리가 먹는 요리도 중요하지만, 식사의 시간과 분위기도 참 중요한 것 같다. 그저 후딱 처리해버리는 것이 아닌 우리가 식사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잠깐만이라도 돌아봐야겠다. 이 재료들이 오기까지의 태양의 에너지를 받은 농작물, 그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부지런했던 농부들의 발자국, 음식을 만들기까지의 메뉴 구상과 장보기 등 이건 절대로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이룰 수 없는 과정이며 이는 절대 우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식사인 것이다. 그리고 같이 먹는 식구들은 어떤가, 이들 역시 엄청난 확률을 뚫고 만난 사람들이다, 이러한 접점들을 조금만 생각하고 식사를 대한다면 그저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 신성히 여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식사만큼 신성한 것은 없다.
캄멜
<2024년 9월 30일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말, 네 번째 이야기 / '피카소도예'를 통해서 바라본 피카소의 일상에 대한 사랑>
📕 내가 본 북유럽 화가들은 일상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고 본인이 살아낸 내용을 그렸고,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재능을 헌신할 공간으로 가장 먼저 집과 그 안에서 쓰는 물건을 선택했다. 북유럽 미술관을 여행하는 내내 '미'와 '생활'을 어떻게든 분리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발버둥을 느꼈다.
이번에 ACC에서 진행되었던 'MMCA 이건희컬렉션 : 피카소 도예'를 보고 왔다, 처음 방문 시에 봤을 때 처음부터 도슨트 분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 이번에는 도슨트의 설명 시간에 맞추어서 제대로 전시 내용을 듣게 되었고 '피카소의 도예'에 대한 태도는 북유럽 화가들이 일상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태도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에 피카소는 도예를 60세 부터 시작하게 되었으며, 더이상 비싸져 버린 자신의 회화 작품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자신의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생산 하고자 했다. 북유럽 디자이너들이 추구했던 단순함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디자인이긴 하나,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은 같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피카소의 회화 소재와(큐비즘 - 입체주의 (모든 현상은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해야하는 것이 아닌 여러가지의 모습을 관찰하고 이 종합적인 것이 포현이 되어야 진짜라는 주장에서 나온 화풍) - 전쟁, 학살과 관련된 소재들이 꽤 있음)와 여기서 소개된 북유럽 작가 들의 회화 소재(일상)는 상당히 대척점에 서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랑'이 기반이 되어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같았다, 피카소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내가 많지는 못하나, 형식에 대해서는 기존의 것을 거부했으나 사물, 사람,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이 가득한 화가였기 때문에 수많은 고민 끝에 회화 작품과 도예를 할 수 있었으며, 위 책에서 소개된 북유럽의 화가들도 일상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기에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화의 소재의 거리의 길이가 다를 뿐이지 사랑이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같다.
피카소의 도예에서는 정말 뭔가 피카소라는 거장이 아닌 개인의 사람냄새가 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랑하는 부인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접시 (그녀는 나를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동력이자 영감이라고 감사를 표현하는 작품), 그리고 비둘기 / 염소 / 올빼미 등을 자신의 곁에서 키울 정도로 동물에 대한 애정이 컸고 이를 입체적으로 도예에 나타내기도 했다. 이 도예에는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몰랐을 동물들의 특징이 드러난다. (염소의 눈은 직사각형..이라고 한다) 우리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라고 말하지면 더 들여다보면 그 역시 일상 위에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의해서 그림을 그렸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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