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세계

D-29
"작가의 소임이란 단순한 것을 중대하게 말하는 일이 아닌, 중대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일이다. -빌헬름 셰퍼 헤르만 헤세는 이 말을 인상 깊게 받아들이면서도 속에서 긴 여운을 남기며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일말의 틈과 저항감을 남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말은 뒤집어 보았다고 한다. "작가의 소임이란 중대한 것을 단순흐게 말하는 일이 아니라 단순한 것을 중대하게 멀해주는 것이다." 해석하자면, "작가의 소임이란 무엇이 중요하고 대단한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후세의 독자들 대신 취사 선택을 해 오로지 가치가 있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골라 일러주는 무슨 훈육사 노릇도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작가의 소임은 아무리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에서도 무변광대無邊廣大한 것을 인식하고, 센안 어디에나 존재하며 만유에 깃들어 있다는 보물 같은 지식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일러주는 일이다." 진리를 뒤집어 보난 건 언제나 유익하다. 한 시간 동안 내면의 그림을 거꾸로 걸어두면 사고가 더 유연해지고, 다채로운 착상이 좀 더 활발하게 떠오른다. 그리하여 우리의 작은 나룻배가 세상이라는 큰 강을 타고 더 매끄럽게 나아가게 된다. 만일 내가 교사여서 수업을 해야한다면, 학생들에게 작문 같은 걸 시키게 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한 시간 씩 뚝 떼어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얘들아, 우리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좋은 거란다. 하지만 가끔 우리가 정한 원칙과 진리를 한번쯤 시험삼아 뒤집어보려무나!" 라고 말이다. 아무 단어든 뒤집어 철자를 바꾸어보면, 종종 굉장한 교훈과 재미와 탁월하누착상을 던져주는 화두를 얻게 되기도 한다. 즉 그런 유희를 통해 사물에 붙여진 꼬리표가 떨어져나가고 그 사물에 대해 새롭고 경이롭게 말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낡은 유리창에 싱거운 색칠 장난을 하다가 비잔틴 모자이크가 나오는 것도, 끓는 찻주전자에거 증기기관이 나오는 것도ㅜ바로 그런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바로 이런 상태, 이런 정신자세, 세계를 익숙한 모습 그대로가 아닌 더욱 풍요로운 의미로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느누이런 마음가짐을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으니, 즉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작가들이다. 빌헬름 셰퍼 주제에 의한 변주곡 Variationen über eine Thema von Wilhelm Schäfer p. 274
나는 두 팔 벌려 그들을 맞이하고 수긍하였으며, 내가 하는 일이 심히 의심스러울지언정 결코 그만두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매번 새록새록 깨달았다. 다시금 깨닫노니, 나는 행복한 이들의 모든 행복, 스포츠맨들의 그 모든 신기록과 건강, 돈 많은 이들의 모든 재물, 권투선수들의 모든 명성을 다 준다 해도, 만일 그걸 얻는 대신 나 자신의 생각과 고뇌를 조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면 내겐 일말의 의미도 없으리라. 또한 비록 그 모든 역사적-사상적 논증이 나의 '낭만적' 추구의 가치를 조금도 인정해주지 않고, 모든 이성과 도덕과 지혜가 반대할지라도, 나는 내 일을 계속할 것이며 나의 주인공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러한 확신을 마음에 품고 나는 마치 거인처럼 당당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글쓰는 밤 Arbeitsnacht p. 139
독자가 세계문학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어떤 정해진 도식이나 교육과정보다는 자신에게 특별히 와닿는 작품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은 사랑으로 걸어야지, 의무로 걷는 길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너무나 유명하다는 이유만로, 그래서 그걸 모를다는 게 창피해서 억지로 부득부득 읽는다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그럴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각자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을 읽고 알고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문학 도서관 Eine Bibliothek de Weltliteratur p.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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