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함께 읽기] 두 번째 시간 - 숨(테드 창)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6.1.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어떻게 읽으셨나요? 소감이나 궁금한 점 나누어 주세요~
얼마 전에 끝난 독서 모임의 도서인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는 ‘사실’과 ‘진실’을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다. 진실이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 자체이다(45쪽)’. 테드 창의 본 소설에 따르면 감정적 진실이며 옳은 생각인 ‘미미’가 ‘진실’이고 사실적 진실이며 정확한 생각인 ‘보우’가 ‘사실’인 셈이죠. 저는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기 전에는 ‘진실’을 자신이 믿는 바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사실’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진실’과 ‘사실’을 구분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서 ‘진실’ 대신 ‘사실’을 써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되는 건가요. 어쨌든 테드 창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좋은 거짓말 또는 착각의 순기능을 옹호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하나부터 열까지 까발려질 사실에 허덕이게 될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테드 창은 이미 지나간 역사인 ‘글쓰기’ 라는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이런 문제를 검토하고 ‘리멤’이라는 신기술로 인해 생길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검토해보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바로 비유가 되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한 쪽 한 쪽 넘기면서 신기술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의 간극이 커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끝맺음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건데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역시 테드 창이었네요. 시대의 변화는 막기 어려우며 신기술의 장점을 찾을 수 밖에 없다면서 ‘리멤’을 자신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기 보다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낸 것입니다. 그나저나 테드 창의 본업이 기술 매뉴얼 작성이라 그런가요, 언어나 글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들 곳곳에서 언어와 글이 주제 또는 소재로 등장하네요. ‘리멤’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생활이 많이 바뀌겠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재판의 행태 변화입니다. 어떤 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동영상으로 확실하게 판별할 수 있을테니 동기가 무엇이냐를 찾고 입증하는데 주력하지 않을까요. 형량에 큰 영향을 줄 테니까요.
티브족 이야기는 구전문화와 문자문화의 관계를 표현 했다면, 니콜 아버지의 고백록은 디지털적 영상 기억 문화로 넘어가는 관계를 보여 줬다고 할 수 있을 듯 한데.. 놀라운 이야기 였습니다. 다루는 주제는 조금 다르지만, 니콜 아버지의 이야기는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1, ‘당신의 모든 순간’이 떠올랐어요. 거의 동일한 기술적인 이야기인데.. 오래전에 본거라 바로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처음만 간략히 이야기 하면, 면접을 보는 주인공이 있는데, 회사에서 그의 기억을 다음주에 철저히 재생해 볼거라고 말합니다.(무섭게 시작하네요.) 글을 읽으면서는 니콜 아버지처럼 생각을 따라 갔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즉, 리멤은 자신이 어떤 사건을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남탓 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라도요. 어떤 생각과 평가는 부지기수여서, 어떤 사실들을 이상하게 끌어다가 이야기 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지만, 그럼에도, 열불 날수도 있지만, 내가 책임을 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생각하기도 해서요.) 그런데 실제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충격적인 그 반전 사례(화자가 소리침)는 벙 찌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사실들을 왜곡함으로써 위선적인 나를 만들어 책임을 지겠다고 생각만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과거를 재구성한다는 것이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까지일까 싶지만, 사실이라는 것도 여기서 충분히 말하듯이 쉽지 않죠.) 그래서 화자가 말한대로 리멤은 한편으론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그럼으로써 더욱 책임을 지는 도구로 활용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네요..(하지만 이 기술이 있다면 그렇게만 사용되지 않을 터이니까…'당신의 모든 순간'을 다시 본 지금,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봤는데 전혀 생각이 안나서 블랙미러 ‘당신의 모든 순간’ 다시 봤습니다. 악몽같은 내용이었군요. ㅠㅠ
넷플릭스를 거의 보지 않아 블랙미러라는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말씀해 주신 '당신의 모든 순간'은 서술된 내용만 봐도 무섭네요 ㅎㅎ 못볼 것 같아요... 저도 화자의 반전!이 다시 봐도 충격적이네요.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그 부분에서 진짜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럼에도 그것을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슷하게 기억을 재생하는 '리콜러'라는 장치를 활용한 블랙미러의 다른 에피소드 '악어'(시즌4)도 떠올랐습니다. 보험 조사원이 리콜러를 활용하여 뺑소니 사건을 파헤치는 그런 내용... (정작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나무위키의 줄거리를 보고서야 이런 내용이었지, 하게 됐네요 ㅎㅎ;; 제게도 리멤이 필요한 건 아닐지...)
'악어'도 봐야겠네요! 끝부분에서 아, 본 거구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봐도 재미있더라고요.
말씀하시니 저도 보험 관련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정도만 생각나네요. ㅎㅎ
가까운 미래에 리멤과 비슷한 장치가 나오더라도 저는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불킥할 일들이나 안 좋았던 일등을 다시 들추어서 후회를 곱씹고 싶지 않아요. 기쁘고 즐거웠던 일은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한데,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고,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억을 모두 기억하기 보다는 내가 선택한 '나'의 기억들로 채워진 오늘을 사는 게 더 가치 있을 것 같아요. 망각을 할 수 있어서, 아직 리멤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 다행입니다! (블랙미러 '당신의 모든 순간' 저도 다시 봤는데요. 침대 위에 걸린 그림과 관련된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예전에 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챕터를 읽고 보니까 새로웠습니다. 리멤과 비슷한 그레인,,,기억을 재생할 수 있다는 게 얼핏 좋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무섭습니다.)
저도 리멤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리멤 같은 기술이 생겨난다면 그때의 젊은 세대는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돼요. 문자 문화를 접했을 때 모두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징기가 받아들인 것처럼, 젊은 세대에서 변화가 시작되겠죠... 리멤은 개인적으로는 악몽에 가까운 기술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했는데?), 이 소설 속에서 화자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 기술도 어떤 태도로 활용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안의 비관론이 조금은 잠잠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써내다니 테드 창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리멤'이라는 기술에 대한 화자의 이야기와, 구전문화의 세계에 문자문화가 등장할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티브 족 이야기를 교차 서술한 것이 정말로 흥미로웠습니다. '리멤'에 대한 파트만 있었다면 오직 디지털 기술에 대한 생각만 했을 것 같은데 문자문화가 등장하는 부분을 같이 읽으니 실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기술도 처음 등장할 때는 혼란을 가져오고 부득이하게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는 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져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티브 족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미미'와 '보우' 중 반드시 '보우'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무엇이 사실/진실이냐에 한없이 집착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겠죠.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문자의 등장이 '미미'와 '보우' 중 차츰 '보우'에 힘을 실어주는 변화를 가져왔을 문명의 흐름이 다소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새로운 기술은 필연적으로 사고의 변화, 나아가 세계의 변화를 초래하고 그것은 기존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리멤'의 등장은 '미미'를 없애고 '보우'만 남는 현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없이 위험해 보이지만, 기술의 발달이라는 것을 과연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인지? 막을 수 없는 것이 명백해 보이지요. (최근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해서 늘 수동적으로 대한다고만 하더라고요. 즉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에 대해 주도적인 입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기정사실화하고 '이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수동적 입장으로만 접근한다고요. 그게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태도라는 비판적 의견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책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살아보니, 시간' 이었나...?) 어쨌든,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우리가 지연시킨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막지 못한다면, 소설 속 화자가 말한 것처럼 '최선의 선택은 장점을 찾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 보니, 시간 -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여기, 과학과 세상과 그 모든 가능성을 둘러싸고 끝내주게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보이는 책이 출간되었다. 천문학자이자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펭귄 각종과학관장 이정모, 도서 평론가 이권우 그리고 물리학자 김상욱이 한데 모여 시간의 요모조모를 논한다.
기억에 관해 여러 가지 정의와 설명이 있겠지만, 최근에 인상 깊었던 것은 이승우 작가님 북토크에서 들은 내용이었습니다. “기억은 우리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우리의 과거와 경험이 기억이 되고 여기에 편집 과정이 작용하며 결국 이것은 이야기가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경험한 삶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나만의 이야기를 가지는 일은 중요하고,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 내용은 이승우 작가님의 신간 산문집 ‘고요한 읽기’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편집의 과정 없이(소설 속 표현으로 말하자면 망각의 과정 없이) 기억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사실의 나열이 서사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결국 ‘기억의 연화軟化’는 용서의 전제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주춧돌’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징가가 글쓰기를 통해 생각이라는 벽돌을 쌓아서 강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요. 리멤을 사용하면 결국 자기만의 이야기를 잃어버리는 셈이 되겠네요. (고맙다 망각아!)
고요한 읽기작가 인생 43년, 소설쓰기로 인생에 복무하는 작가 이승우.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두 개의 기둥인 ‘종교적 실존’과 ‘문학적 실존’ 위에 지은 집 같은 산문집을 펴낸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왠지 마음에 묵직하게 남습니다... 매번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책과 책의 연결고리를 너무 잘 찾아내시는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6.2.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문장 수집 기능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295쪽 자기 좋아하는 일에 자기 시간을 쓰면 그만이야. 297쪽 글쓰기는 단지 말을 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단 보고 나면, 그것들을 개선시켜 더 강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299쪽 한편으로는 사실에 입각한 진실, 다른 편으로는 작가의 감정에 입각한 진실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의 진실이 일치하는 지점은 그 어떤 외부의 권위에 의해서도 미리 결정될 수 없다. 301쪽 인생이 시작됐을 때의 경험을 거즈로 여과해서 보는 어린아이 특유의 능력을 지켜줌으로써, 그들의 근원을 이루는 이야기들이 차갑고 무감동한 동영상으로 대체되는 것을 막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퇴색될 염려가 없는 디지털적 기억에 대해, 내가 불완전한 생체적 기억들에 대해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따뜻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301쪽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313쪽 우리가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인생의 세부 사항들은 우리 인격의 반영이라고 했다. 322쪽 “보상이라고요?” 니콜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그냥 조금만 더 배려를 해주시는 건 어때요?” 327쪽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글쓰기는 테크놀로지다. 따라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의 사고 과정에는 테크놀로지가 매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인지적 사이보그가 되며, 그 사실은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329쪽 그러나 나는 내 시대의 산물이며,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구전 문화가 글의 도래를 막지 못했듯이, 우리는 사람들이 디지털적 기억을 채택하는 추세를 막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 장점을 찾아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디지털적 기억의 진짜 혜택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요점을 말하자면 이렇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사람은 수 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 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p30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디지털적 기억이 우리가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하는 행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그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p330.,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도입됐을 때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271쪽,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용서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어느 정도 망각을 해야 한다.
287쪽,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저도 @밥심 님과 @흰벽 님처럼 이해가 잘 안되어서 몇 번 더 읽어보기도 했지만, 자식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참 어렵네요...저도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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