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나마 선택했다고 느꼈던 것조차 과연 내 선택이 맞았을까 의심'하는 마음, 너무 알 것 같아요. 이미 답의 범주가 주어진 오지선다형처럼,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미 한정적이니까요. 결국 내 삶의 나의 선택의 결과라는 말은, 때로는 나에게 온전히 책임을 지우기 위한 핑계로만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이 저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주지는 못하죠. 그러므로 어쩌면 소설 속에 나온 것처럼 '자기기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래서 '정신승리'를 폄하하지 않는 편이에요. 정신승리로 내 멘탈을 잡아야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SF 함께 읽기] 두 번째 시간 - 숨(테드 창)
D-29
흰벽
링곰
운명이 이미 정해져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어찌되었든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그냥 현재를 잘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단편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네요.
흰벽
저 역시도... 어떻게 해도 알 수 없다면 그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생각한답니다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흰벽
3.2.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남겨주세요!
밥심
“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인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숨』 <우리가 해야 할 일>, 94-95쪽,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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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저도 @별사탕777 님과 같은 문장을 선택했습니다.
흰벽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일을 한 것일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숨』 95쪽,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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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림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것은 진심으로 믿기 전에는 아무런 해도 되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숨』 93쪽,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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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림
수집한 문장을 두고는 ‘어떤 믿음이 해가 되는 것일까’하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깨어 있는 혼수상태’가 되게 하는 믿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편 화자의 메시지에 따르면 무동무언증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으므로, ‘그렇다면 어떤 믿음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라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를 굴복하지 않게 만드는 믿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당장 답을 내리긴 어렵네요...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링곰
지식을 원했기를, 우주가 내쉬는 숨으로부터 무엇이 생겨나는지 알고 싶다는 갈망에 의해 움직였기를 희망한다.
『숨』 p. 8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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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벽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렸습니다.”
『숨』 94쪽,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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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anngg
우리가 해야 할일
이 소설상,
네거티브 딜레이 회로가 중추인 예측기는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증적 증거이고, 추후에는 일년 뒤 미래에서 이 회로를 이용해 과거로 장문의 메세지를 보내는 설정인데, 마지막 문단조차 빠져 나올 수 없는 듯이 표현되어 있어서 숨이 막힐 수도 있다고 여겨 집니다.(흰벽님 말씀처럼)
이미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정한 이상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 버리는 순환고리에 빠져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소설을 현실에 대한 비유로서 해석을 해 보았어요. 일단, 자유의지가 없을지라도,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 해 보았습니다.( @별사탕777 님이 수집해 주신 문장을 여전히 다시 읽으면서요.) 그렇지만, 자유의지가 있냐, 없냐의 논점으로 들어가면, 결국 순환고리에 빠져 버려 생각 전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계속 자유의지가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인 거죠.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나의 선택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에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고, 그저 어쩔 땐 아무런 근거 없이, 어떤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선택하기도 하고요. 인간은 어떤 완벽한 세계를 만들고자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서슴 없어 하기도 했고요.(지금 현실도 그러죠.) 오히려 나의 선택이 자기기만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결국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우리가 해야 할일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지호림
‘나의 선택이 자기기만임을 아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부터’라는 말씀에 (박수가 절로 나오며) 동의합니다. 메타인지가 보다 중요해진 시대가 온 것 같고, 그에 따라 깊이 있는 독서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믐이 그걸 도와주고 있는 것 같고요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흰벽
오늘부터 17일까지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읽습니다. 이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긴 소설이에요.
예전에 읽었을 때 저는 이 작품이 가장 재밌었어요. (그냥 그 느낌만 기억나고 내용은 전혀 기억나질 않아서 이번에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모임지기가 책읽기에 도움될 정보 하나 드리는 법이 없어 민망하오나, 모임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의 수준에 높아 앞다투어 여러 정보를 올려주고 계시므로… 저는 숟가락 얹겠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즐거운 독서 해요!
밥심
아마도 테드 창의 소설들 중 가장 길지 않나 생각됩니다. 읽으면서 제법 길다고 여겼던 <네 인생의 이야기>도 80여쪽 밖에 안 되네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을 정도로 분량이 제법 있습니다. 화이팅들 하시죠. ㅎㅎ
흰벽
오, 그건 몰랐네요. 역시 밥심님 SF계에서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테드 창을 직접 만난 대단한 분…!
흰벽
추석 연휴 내내 현생이 바빠 그믐에는 잠깐 들어와서 글만 겨우 훑어보고 나가기를 반복했네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도 사흘에 걸쳐서 조금씩 읽었지 뭐예요.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이 왜 이렇게 슬프죠... 애나와 데릭이 디지언트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안심되면서도, 그 지난한 과정이 안타깝기도 하고, 현실에 이런 일이 있다면 더 엉망이겠지 싶은 비관적 생각도 들고...
후반부에서 데릭과 애나가 하는 고민, 디지언트에게 법인권을 주는 문제, 그들을 언제까지 '보호'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문제는 정말 답을 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데릭이 디지언트에게도 이때부터 성인, 이렇게 정해진 시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공감되더라구요.
이후 디지언트들의 향방은 어떻게 될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저도 @ssaanngg 님처럼 후속이 궁금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흰벽
4.1.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어떻게 읽으셨나요? 소감이나 궁금한 점을 나눠주세요~
밥심
하하. 제가 테드 창을 만난 때가 아마도 200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였을 겁니다. 그 때 테드 창이 미발표된 소설을 잠깐 낭독도 했었는데 아마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소설의 발표 시기를 따져보면 그런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이 단편소설이 2010년에 발표되었거든요. 벌써 14년 전의 일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테드 창의 소설 중에는 아마도 가장 긴 소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최근에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이 소설에서 묘사한 인공지능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테드 창은 고뇌합니다. ‘인간을 창조한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듯이(<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는 부정했지만 말입니다.) 인공지능을 만든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자유의지를 줘야 하는가?’
소설을 읽는 저는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의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저는 의식이 기억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자궁에 착상되어 폭발적인 세포 분열을 앞둔 수정체는 뭔가를 기억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따듯하다’ 정도가 첫 기억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세포가 분열될수록 기록되는 기억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 자궁 바깥으로 나와 사방에서 쏟아지는 언어에 노출되면 기억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고 의식이 빠르게 형성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의식이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에게도 의식이 있겠지만 인간의 의식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인간만큼 방대한 언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드 창은 이 소설에서 인공지능인 디지언트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애정을 가지고 보육을 하죠. 그 과정에서 의식이 생겨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디지언트가 가지고 있는 것이 과연 인간의 의식과 같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갑론을박이 있겠죠. 의식의 정의에 대해서도 재정립하자는 움직임이 있겠구요. 왜 이 문제가 중요하냐면 의식은 생명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란 보통 생식을 해서 자손을 퍼뜨리고 대사를 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 기준으로 볼 때 인공지능은 생명이라 볼 수 있을까요? 기존 생물이 자식을 낳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인공지능은 자신을 복제해서 업그레이드하여(마치 전통 생명체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듯이) 또 다른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사는 꼭 동물과 식물이 하는 대사만으로 국한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탑재된 하드웨어가 하는 물질의 흐름 및 변화도 폭 넓게는 대사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꼭 기존 생명의 정의를 인공지능과 같은 이질적인 존재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맞을까요. 마지막으로 고등 생물은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인공지능에게 의식이 없지만 언젠가 사람의 의식과 비슷한 무언가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에서 디지언트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연상시킵니다. 디지언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아니, 인간의 아이와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그들의 의사를 어디까지 존중해줘야 하는가?’ 와 같은 질문을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립니다. 하지만 디지언트를 키우던 많은 유저들은 싫증을 내고 디지언트를 정지시킵니다. 수많은 유기견과 유기묘가 양산되고 있는 현실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디지언트가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면 유저들의 이런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반려견이나 반려묘, 그리고 사람의 아이와 디지언트를 비교하게 되나 봅니다. 테드 창은 아마도 독자들이 이런 감정을 갖게 되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드 SF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인 그렉 이건의 단편 <큐티>가 있습니다. 그의 단편집 ‘대여금고’에 실린 소설로서 인간의 생식세포로 만들어졌지만 4세에 죽게끔 유전적으로 설계된 큐티라는 아기 복제품을 다룹니다. 말 안 듣는 청소년기나 부모를 괴롭히기만 하는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고 싶지는 않고 오직 귀여운 4세까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 큐티를 구매한다는 설정입니다. 4년간 애정을 주며 키웠는데 예정된 어느 날 큐티는 그냥 죽고 마는 거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 말 잘 듣는 귀여운 디지언트만 보육하던 유저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테드 창이나 켄 리우의 작품들로 하드 SF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되셨다면 그렉 이건의 단편집인 ‘대여금고’와 ‘내가 행복한 이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장편 ‘쿼런틴’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졌다고 판단할 정도로 발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그런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인공지능을 생명체로 존중해주고 자유의지도 인정해주는 미래가 올까요.
추석 연휴가 다가와서 속도를 올려 독서를 마쳤습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ssaanngg
디지언트가 탄생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애나와 데릭과 함께 성장하는 여정이 흥미롭고 곧 다가올 미래는 아닐 지라도, 언젠가는 우리들이 이런 상황들을 겪게 될 것을 미리 경험하는 듯한 소설이었어요. 데릭과 애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긴장감도 소설을 읽는 재미에 한몫 했구요.
다른 소설들에 비해 긴 소설이었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도 정말 궁금합니다. 또 어떤 사건들을 겪게 될까요? 데릭과 애나는 어떻게 될까요? 테드창이 후속편도 써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