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고요한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한국 소설이 좋아서 2> 고요한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결혼은 세번쯤 하는게 좋아>를 쓴 고요한입니다. 제목이 조금 파격적이죠? 이 소설에는 '스너글러'가 나옵니다. 타인의 집을 방문해, 돈을 받고 잠옷을 입은 채 밤새도록 침대에서 사람을 안아주는 남자. 이 소설을 쓰게 된 건 이 남자때문이었습니다. '장인수'라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고요한 입니다. 이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웰컴~
<결혼은 세번쯤 하는게 좋아> 는 이번에 세계문학상을 받은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과 같이 쓴 소설입니다. 두 작품을 사년간에 걸쳐 썼는데요, 이 책이 작년에 먼저 나왔습니다. ㅎㅎ
안녕하세요 예쁜파랑 입니다 :) 파격적인 내용의 책이라 파격적인 질문 해도 될까요? 고요한작가님께서 뉴욕에 불법체류자 장인수 였어도 그런 상황이면 스너글러 직업을 택할 수 있을까요?
그럼 파격적인 답변을 해야겠군요. 아마 하지 않았을까요. (이순간 이성이 작동되는데 자꾸 고민이 듭니다... 사실 장인수와 저를 같이 생각하며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늘 장인수가 되려고 했지요). 빵을 먹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스너글러란 직업이 충격이었지만, 아주 어려운 순간이 오면, 그것도 한국이 아닌 뉴욕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 아직도 뉴욕의 밤거리를 유령처럼 헤매는 꿈을 꿔……. 뉴욕을 배경으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이었다. 뉴욕이란 도시에 ‘스너글러’란 직업이 있다는 기사를 본 날이었다. 세상에 뉴욕은 어떤 도시이길래 사람을 안아주는 직업이 있을까. 대체 얼마나 쓸쓸한 도시이길래. 뉴욕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동시에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뉴욕의 밤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사람을 안아주는 한국인 불법체류자가 떠올랐다. 도시가 삭막해질수록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고독해진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노래방에 가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잠을 자고. 그리고 혼자 죽어간다. 어쩌면 그곳이 뉴욕일지 모른다. 문을 열면 빌딩만 보이고, 문을 열면 자신과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은 외로움이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릴 테니까. 외로움만큼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게 어디 있을까. 외로움만큼 사람을 고독하게 하는 게 어디 있을까. 그렇게 외롭고 고독한 도시에서 스너글러가 탄생하는 건 당연했다. 그곳에 나는 한국인 불법체류자인 데이비드 장이란 인물을 거닐게 했다. 불법체류자로 살면서 밤이면 외로운 사람들을 안아주러 거리를 헤매는 남자를 말이다. 이국의 거리를 걸으며 장이 본 것은 낯선 백인과 낯선 거리와 낯선 풍경일 것이다. 그 순간 장이 그리워한 것은 그가 떠나온 한국일 것이다. 낯선 곳에 가면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은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던가. 장이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밥을 먹거나 거리를 걸을 때도 장을 생각했다. 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떠나온 한국을 그리워하며 허드슨 강을 따라 걷고 있을까. 아니면 센트럴파크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빌딩들을 쳐다보고 있을까. 그 빌딩 위로 날아가는 한국행 비행기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도 있었다. 물론 엠파이어 빌딩 앞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들을 따라다닐 수도 있었다. 밤마다 나는 장이 되어 뉴욕의 밤거리를 헤맸다. 어느 땐 눈을 맞으며, 어느 땐 비를 맞으며, 질척질척한 거리를 유령처럼 걸어 다녔다. 소설을 거의 썼을 때 나는 장을 만나러 뉴욕에 갈 계획을 세웠다. 근사하게 뉴요커처럼 커피를 마시며 그간 못한 이야기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엠파이어 빌딩 앞에서 소설의 결말 부분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별수 없이 코로나가 끝나길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뉴욕을 떠올리며 소설의 결말 부분을 그려나갔다. 부족한 부분을 메꿔준 것은 뉴욕에서 대학교를 다닌 친구들이었다. 수시로 뉴요커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뉴욕에 거주하는 페친과도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뉴요커의 취미와 성격은 물론이고 뉴욕의 날씨와 거리와 주변 경치에 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들었다. 페친은 친절하게 뉴욕에 대한 설명을 해줬고, 가끔은 사진을 찍어 보여주며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이해시켜 주었다. 어느 밤에는 구글맵으로 들어가 뉴욕의 거리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문학을 공부한 친구 형주와 수시로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설은 4년 만에 완성됐다. 내가 장이 되어 지낸 4년의 시간들. 어쩌면 나는 장이 되기 위해 4년을 보냈는지도 몰랐다. 내 안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고 완성되기까지 나는 서울이 아닌, 뉴욕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래선지 가끔 나는 내가 있는 서울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직도 나는 뉴욕의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장을 안아주고 싶은 밤이다. 2021년 여름 고요한
장은 지금쯤 마거릿을 주인공으로 한 멋진 소설을 완성했을까요? 소설 속 마거릿은 장과 조금 더 오래 행복했으면 좋을 텐데요~
ㅎㅎㅎ 누님 오셨어요.... 아직도 장은 소설을 쓰고 있을 것 같아요..... 뉴욕의 푸른 밤하늘 속에서 두 사람은, 뉴욕의 밤을 보며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분이, 이것 한국 버전이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나중에 한번 시도해 볼게요.ㅎㅎㅎ
안녕하세요, 장의 성장소설 잘 읽었습니다. 사랑이 불시에 찾아온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대비를 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함정같은 사랑을 통해 장이 들려줄 이야기를 가진 작가로 거듭나는 내용으로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감상평 궁금합니다.
사랑, 참 대비한다고 대비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게다가 뉴욕이라는 공간에서라면 더욱더 그럴 듯 합니다. 여기서는 뒤늦게 찾아오는 사랑이죠.... 여기선 마거릿과의 사랑이지만, 사실 이 소설의 단편이 있습니다. 아직 발표는 안했는데, 거기선 장과 줄리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ㅎㅎ
고요한작가님 당황스런 질문에도 솔직담백한 답변 감사합니다 :)🙇‍♀️ 하나만 더 궁금한게 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장을 안아주고 싶은 밤에 만나면 장에게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간략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ㅎㅎㅎ 한번만 질문 하려했는데 자꾸 이거 여러말하게 되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작가님에게 관심 많은 찐팬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이번에도 진솔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please🙏😍
ㅎㅎ 저는 장은 꽉 안아줄 것 같군요.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고요.. 이방인인 장이, 뉴욕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죠. 지금쯤 뉴욕 거리를 걸어다니며 지난 일을 떠올리지 모르겠네요.ㅎㅎ
장과 줄리아의 이야기는 마거릿과의 이별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인가요? 시점에 따라 다른 성격의 이야기가 펼쳐지겠죠?
마거릿를 만나기 전의 이야이에요. 그러니까 장이 처음 스너글러를 하면서 알게 된 여자가 줄리아죠. 즉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뉴욕이란 공간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죠. 제목은 <데이비드의 겨울>이라고 해놓긴 했는데, 바뀔 수는 있습니다. 여기서는 스너글러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오죠.ㅎㅎ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 생각도 궁금해서요^^
앗.. 그랬어요... 어서오세요..... 다른 분들의 생각이 어떨지 저도 궁금하네요...ㅎㅎ 사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보다 이 책이 조금 빨리 나온 것은 재밌게 써서, 먼저 끝났기 때문이에요. 우밤시는 죽음이란 소재가 들어와서 그것에 대한 사유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고요. 반면 <결혼은 세번쯤 하는게 좋아>는 마거릿의 사유를 넣는데 시간이 좀 걸렸죠.
외국에서 1년 정도 잠시 체류한 경험 있는데 심지어 학생이었던 그 시절에도 이방인 기분 감출 수 없었어요. 현지인들 일상으로 스며 들지 못하고 물 위 기름처럼 둥둥 떠있던 시절, 불안하고 그래서인지 자유로웠던 시절이었네요 돌이켜보니..
아...... 외국서 체류한 경험이 있군요. 우리에게는 한때 기름처럼 떠 있던 시절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 서울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이방인이라는 걸 느껴요. 전주에서 살 때는 느끼지 못한 거죠... 그래서 어느땐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 같아요.
작가님, 다른 공간에서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직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 단계🐛) 파랑나비입니다. [그믐]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지어 책으로 소통할 수 있어 기쁩니다.
언젠가는 애벌레는 나비가 되겠죠..... 그믐이란 공간이 이렇게 생겼네요. 이런 공간이 앞으로는 더 자주 생길듯 하네요.
<결혼은 세번쯤 하는게 좋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었음에도 나중에 깨달음처럼 사랑이 되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음에도 나중에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치게 하는 사랑도 있다.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우겨도 끝끝내 사랑이 되고 마는 사랑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눈을 뜬다. 사랑이 인생을 통해 가르치고, 인생이 사랑을 통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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